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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더리스 웨어, 뉴 룩의 출발점에 서다

박찬 기자
2020-03-06 14:04:06

[박찬 기자] 2016년 미국의 글로벌 색채 전문기업 ‘팬톤(Pantone)’이 ‘올해의 색’으로 분홍색(로즈쿼츠)과 하늘색(세레니티)이 섞인 컬러를 발표해 화제를 일으켰다. 여성성을 상징하던 분홍색, 남성성을 상징하던 하늘색이라는 과거의 개념을 부숴버린 것. 성의 구분선이 그만큼 모호해지고 포괄적인 ‘젠더 컬러’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다양한 가치관을 존중하는 현대 사회에서 ‘성(Gender)’이라는 경계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런웨이 위의 모습은 어떨까. 2020년, 패션계에서는 성의 구분을 없애는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이 핫한 트렌드로 꼽혔다. 남녀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철폐하고 오직 개성과 콘셉트로 판단하는 시대. 젠더 뉴트럴 트렌드는 극적인 색채로 영감을 표현한다.

최근 컬렉션에서 남성 모델들에 핑크 컬러의 재킷을 입히기도 하며 중년 여성이 입을 법한 그래니 원피스를 레이어드하기도 한다. 이제는 여성 모델이 남성용 슈트나 볼드한 워크 웨어를 입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젠더리스 웨어는 이런 개념에서 본다면 성의 구분이 예측하기 어려운 스타일링이라고 설명할 수 있으며 놈코어 패션의 시작이자 그 중심인 것.


젠더리스 웨어의 철학은 ‘모두의 아름다움’을 기반으로 시작된다. 아름다움을 누구에게나 있는 가치라고 생각하고 성별과 관계없이 드라마틱한 변화를 꿈꾸는 것. 그뿐만 아니라 패션쇼를 통해 의류를 선보이는 것 외에도 사회적 이슈를 상기할 수 있는 메시지가 된다. 다시 말해서 젠더리스 웨어는 패션을 뛰어넘어 대중에게 사회, 문화적으로 고착된 고정관념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기획 기사에서는 패션계에서 ‘젠더리스 신드롬’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분석해보고자 한다.

[New Look]


‘르메르(Lemaire)’는 직선적이고 깊은 텍스쳐를 자랑하는 브랜드로서 유니섹슈얼 라이프웨어의 중심에 서 있다. 이번 2020년 봄, 여름 컬렉션을 통해 작업복을 재구성한 그들은 실용성을 바탕으로 로맨틱한 워크 웨어를 표현했다. 흙빛처럼 신중하게 채색된 브라운 셋업은 차분하면서도 매트한 분위기를 보여주며 르메르만의 핏을 이어나갔다.

1974년 영화 ‘Alice in the Cities’에서 영감을 받은 이번 컬렉션은 독일의 클래식한 멋에 대한 색다른 찬사. 뉴트럴한 색감과 더불어 다양한 가방들을 런웨이에 함께 출시했다. 남자, 여자를 구분하지 않고 포멀한 재킷 실루엣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며 프렌치 시크를 추구한 그들답게 차가운 미색을 그렸다.

젠더리스 웨어를 캐주얼로서 표현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추상적 미를 극대화해 라이프웨어로 결합하는 디자이너는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더 특별하다. 남성 셔츠와 롱슬리브 티셔츠는 물결처럼 느슨한 피팅감으로 새로운 풍경을 제시한다. 하이 웨스트 팬츠와 박스형 라이트 재킷은 더 장식적인 미를 가미했으며 탑 스티치 코튼 데님을 통해 미니멀리즘의 요소 또한 놓치지 않았다.


‘J.W 앤더슨(J.W Anderson)’이 그린 미래는 낙관적이면서도 고전적이다. 20세기 오뜨 꾸뛰르의 디테일이 생각나는 싱글 브레스티드 핏과 부츠컷 팬츠는 발상 자체는 혁신적이지만 그와 반대로 훨씬 더 레트로 적인 분위기를 이끈다. 이번 컬렉션에서 젠더리스 웨어의 다양성과 미래를 제공한 셈. 특히 아우터를 통해 강한 실루엣으로 공간을 차지해 참석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평소 캐주얼 웨어와 브리티시 컨트리 스타일 테마를 선보였던 그들답게 ‘동화’ 느낌의 무드도 묻어난다. 패치워크와 니트 카디건을 조나단 앤더슨이 재해석해 풀어낸 점이 돋보인다. 화려한 패턴의 원피스와 프린팅 티셔츠는 그의 시그니처적인 디테일. 아이러니하게도 다소 일방적인 디테일 포인트를 미니멀한 분위기로 탈바꿈한다는 점이 J.W 앤더슨의 큰 강점이다.

과장된 크기의 라펠은 퓨처리즘에 다가서는 뉴룩을 표현한다. 과거 미니멀리즘으로 한껏 줄여왔던 패션 디테일이 오버 사이징하게 되는 순간. 이외에도 새틴 소재를 깃발처럼 두르거나 트렌치 셋업의 부풀린 바지 밑단은 더욱더 독특하고 아이코닉한 요소이다.


‘써네이(Sunnei)’의 이번 슬로건은 장난스러우면서도 철학적이다. ‘I HATE “FASHION”’이라는 글자를 통해 유니크한 감성을 표현한 그들이다. 타임리스 적인 무드와 편안함을 택한 그들은 트렌드와 공통된 미학을 따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언뜻 정통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남성복을 과감한 패턴과 색감을 혼용해 유니섹슈얼한 캐주얼 웨어로 변모시키고 있다.

이번 컬렉션의 써네이는 유독 다채롭다. 머스터드, 그레이, 스카이블루 등 다양한 종류로 돌아가는 색채는 가벼우면서도 심심하지 않다. 소재 또한 한곳에 머무르는 법이 없다. 니트, 캔버스, 데님까지 실험적이고 적극적인 방향성은 단순한 캐주얼 웨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모습. 특히 토트백에 깃들은 그린, 옐로우 컬러의 끈 조합은 성별의 화합을 의미하는 것처럼 특별하다.

스트라이프 패턴은 써네이를 표현하는 또 다른 타이틀. 과거 스트라이프 패턴이 바로크적이고 여성적인 분위기에 매달렸다면 그들의 무늬는 찬란하고 심플하다. 컬렉션마다 새롭게 정의하는 스트라이프는 몸 전체를 뒤덮기도 하며 토트백과 팬츠의 컬러를 되살리는 패턴. 무엇보다도 유니섹슈얼과 젠더리스 웨어의 다양성에 대해서 가볍게 느껴볼 수 있는 매개체인 것. (사진출처: 아워 레가시, 르메르, J.W 앤더슨, 써네이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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