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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HELMUT LAND

박찬 기자
2021-01-07 14:55:25
[박찬 기자] 기쁜 소식이다.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스트리트 패션 열풍도 이제 그 한계를 서서히 내비치고 있다. 이에 반응이라도 한 걸까, 디자이너들의 발걸음도 예사롭지 않다. 누구보다도 트렌드에 밝은 그들답게 과감한 아이템을 꺼내 드는가 하면, 과거의 영광을 통해 새로운 저력으로 나아간 이들도 있다.
‘미니멀리즘 대표 브랜드’ 헬무트 랭(Helmut Lang)의 귀환은 후자에 가깝다. 오스트리아 출신 디자이너 헬무트 랭이 설립한 이곳은 80년대 말 한창 인기를 끌며 세상에 등장했다. 날카로운 커트라인과 실루엣을 바탕으로 아카이브를 쌓아갔던 것도 잠시, 2005년 랭이 떠난 후 기세가 급격하게 누그러졌던 상황.
그로부터 15년 후, 새롭게 영입된 디렉터 토마스 카슨(Thomas Cawson)은 패션계의 ‘올드&뉴’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헬무트 랭이 기록한 해체주의적 미학을 계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캐주얼 웨어 시장에 눈을 돌려 그 범용성을 넓히기도. 지난 몇 시즌 간 지독히도 소란스러웠던 컬렉션 런웨이, 그의 승선이 유독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다.
S/S 2020 COLLECTION

지금은 라코스테(Lacoste)로 둥지를 옮긴 마크 토마스(Mark Thomas). 그와 카슨이 두 번째로 합작한 S/S 2020 컬렉션은 당시 대담한 구성으로 화제를 모았는데, 걸어온 길만큼이나 상반된 취향을 갖췄기에 극적인 시너지를 발휘한 것. 평소 실용적인 수트 스타일링을 고수하던 조셉(JOSEPH) 출신 마크, 캐주얼 데님 웨어 기반 캘빈 클라인 진(Calvin Klein Jeans) 출신 카슨의 만남은 생소하면서도 특별했다.
껍데기만 화려한 게 아니라 알맹이 또한 다채롭다. 담백하고 찬란한 컬러 팔레트를 바탕으로 랭의 아카이브를 자유롭고 절묘하게 조합해냈다. 그간의 팬덤이었던 X 세대를 넘어 밀레니얼 세대를 타깃으로 잡았다는 것도 인상 깊다. 최소한의 테일러링과 실용적인 유틸리티 재킷, 라텍스 소재 등 90년대 헬무트 랭의 아카이브에 플리츠 드레스와 시스루 소재 아이템 등 각자의 참신함을 더 했다.
A/W 2020 CAPSULE COLLECTION: HELMUT LAND

무겁게만 느껴지던 그들이 잠시 무게를 내려놓았다. 무심하고 차가운 브랜드 컬러와 2020년 경자년을 대표하는 ‘마우스’ 캐릭터는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았지만 결과는 대성공. 가상 행성 ‘헬무트랜드’를 중심으로 짜인 이 컬렉션 테마는 스케치북 속 아이디어가 실시간으로 구체화되는듯 역동적이다.
아이템 군은 기본에 충실한 모양새다. 컬렉션 마스코트가 그려진 후디, 스웨터, 롱슬리브 티셔츠가 눈에 띄며 로고 그래픽을 재구성한 스웨트 팬츠, 숏 팬츠 또한 구매욕을 불러일으킨다. 컬렉션 소개 영상에는 1993년산 카우보이 부츠 등 랭의 자산이 오랜만에 등장하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정통 아카이브에 대한 카슨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HELMUT LANG SAINTWOODS RESORT 20/21 COLLECTION: See You Soon

이어 캐나다 몬트리올 기반 브랜드 세인트우드(SAINTWOODS)와 만난 그들. 헬무트 랭의 시그니처 콘텐츠를 세인트우드의 유스컬처 웨어로 멋스럽게 매치했다. 최근 발매한 발렌시아가(Balenciaga), 엠부시(AMBUSH)의 캠페인 아이템을 보고 자극받았는지 감각적인 캐주얼 웨어를 무기로 내세운 모습.
후디와 티셔츠 상단 중앙의 그래픽이 인상 깊은데, 이는 1998년 미국 택시 차체에 새겨진 브랜드 광고를 삽화로 만들어 삽입한 것이다. 23년이 지난 지금 90년대 패션 심벌로 거듭난 광고를 효율적으로 활용했다는 평. (사진출처: 헬무트 랭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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