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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연 칼럼] 아낌없이 베푼 영원한 패션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 앙드레김을 추모하며

2010-09-18 12:55:48

[패션팀] 고인이 된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미래를 꿈꾸는 패션계 예비 디자이너들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에게 무었을 배워야하며 준비해야 하는가? 보석디자이너이자 패션디자인스쿨 모다랩과 주얼리 디자인스쿨 JDMI를 운영하는 안동연 학장으로부터 앙드레 김과의 운명적 만남과 그에 대한 추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엘레강스’ 하고 ‘판타스틱’하게 ‘드라마틱’한 인생을 사셨던 고 앙드레 김 선생님이 소천하신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내 일생에서 선생님을 뵌 건 딱 4번이었다. 선생님을 알기 전 우연하게 스치듯 뵌 것이 2번이고 정식으로 지인의 소개를 받아 인사를 나눈 게 2번이다.

가장 처음으로 스친 인연은 내가 20대 후반에 한 종교 연례행사에서 본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계단을 오르던 모습이셨고 두 번째는 강남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하 꽃상가에서 아틀리에 쇼 윈도우에 디스플레이 할 조화를 꼼꼼하게 고르시던 모습이셨다. 그 후 세 번째는 잘 아는 연기자를 통해 뮤지컬 ‘미녀와 야수’ 시사회장에서 인사를 정식으로 처음 드린 것이고 마지막은 주한인도대사 초대로 관저에서 열린 파티행사를 끝으로 다시는 못 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처음 선생님을 소개 받았을 때 먼저 악수를 청하시며 뭐하는 분이냐고 물어 보셨다. 주얼리 디자이너라고 말씀 드리자 짧지만 길었던 선생님의 첫 마디, “아~!” 가 지금도 기억난다. 그때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다 이해 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건 왜일까? 프랑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간지 르 피가로는 그를 두고 ‘환상의 나라에서 온 마술사’ 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그는 패션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마냥 지루 할 법도 한 패션쇼를 모두가 보고 싶어 하는 퍼포먼스로 만든 이벤트의 달인 이셨고 패션을 단지 입는 옷이 아닌 보여 지는 예술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아티스트이셨다.

본인 자신이 패션의 시작이기도 하셨지만 스타 마케팅의 시초를 연 분이기도 하다. 그와 동시에 우리나라 패션 디자이너로는 가장 활발하게 여러 다양한 분야와 콜레보레이션을 시도한 분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제일 먼저 1인 브랜드의 가치가 얼마나 높아질 수 있는지 보여준 장본인인 동시에 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우리나라에 대중화 시킨 직업관이 투철한 분이기도 하셨다. 생각해 보면 돌아 가시기전인 75세의 나이로 그때까지 현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가 어디 그리 많은가. 자그만 치 48년 동안 한 길을 걸으며 반세기를 패션에 몸 바친 프로는 드물다.

항상 공연장의 가운데 맨 앞줄에 자리 잡는 걸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술가와 연기자들의 특성 및 개성을 굉장히 깊이 있게 관찰하기도 한다. 앙드레 김 선생은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삶이 그의 작품세계와 삶의 여정이 그대로 드라마틱한 신화 같다.

1960년대 패션계에 등장한 앙드레김은 국경과 시대, 유행의 한계를 초월하여 독창적 작품세계와 차원 높은 예술성으로 세계인의 가슴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의 패션쇼를 보면 위대한 작품이나 명화 혹은 명곡을 만났을 때처럼 극치의 예술만이 선사하는 영혼의 떨림을 체험하게 하였다. 앙드레김의 패션쇼는 완벽한 종합예술의 절정이다. 이렇게 그는 지난 40여 년간 해외에서 가진 패션쇼를 통해 대한민국 문화의 우수성을 당당하게 세계에 알린 명실상부한 세계적 패션 아티스트다. 그 이유는 아티스트의 눈동자, 손끝 하나의 움직임도 관심 있게 본다.

"디자인이 한결 같다"는 말과 함께 "보통 사람들은 소화 할 수 없는 의상"이라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는 자신의 의상을 누구나 보면 바로 알아보기를 원한다고 했으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계속 알리기를 고집하셨다. 마치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누구나 단 한 번에 그것을 알아보듯이 자신의 의상을 제품이 아닌 예술로 봐주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 들리지만 일관성 있는 개성의 추구를 우리는 느낄 수 있었다. 뛰어난 사업가 이면서 훌륭한 엔터테이너 그리고 영원한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였던 그는 패션의 한 획을 긋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셨다. 그러나 한 가지 궁금증이 남아있다면 추모를 기리는 자리에 패션계 및 관련학계 조문객 수보다 연예계 조문객들이 많았다는 현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패션 역사는 영원히 그를 기억 할 것이다. 대한민국 디자이너로서, 아시아인으로서, 동양인으로서, 한국과 동양의 역사, 문화 세계를 좋아하고 소중히 생각한 애국자였다는 것을. 그래서 한국적이면서 아시아적인 왕실의 다양한 문양을 재창조하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남기고 가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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