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인터뷰] 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 대표, “우리의 음악은 자위행위다”

2014-05-01 18:58:00

[윤소영 기자] “음악이 너무 하고 싶은데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노래나 작사작곡 말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실력 있는 친구들의 앨범을 발매해주고 홍보하는 건 잘할 수 있겠다 생각했죠. 그렇게 제 방식대로 음악인 인생을 살기 시작했어요”

붕가붕가레코드는 ‘인디계의 서태지’로 불리는 ‘장기하와 얼굴들’을 비롯해 ‘브로콜리너마저’ ‘아마도 이자람밴드’ 등 여럿 유명 인디밴드들을 배출시킨 일명 ‘인디계의 명문’ 레이블이다.

4명의 서울대 학생들의 소소한 대학동아리로 시작된 붕가붕가레코드. ‘서울대 출신’이라는 똑똑한이미지 때문에 그들은 음악도 ‘국영수를 중심으로 교과서에 충실하게’ 할 것이라는 필자의 예상은 완전한 오판이었다. 붕가붕가 뮤지션들은 어떤 장르에도 딱 끼워 맞춰지지 않는 애매한, 이상하게 매력 있는 그런 노래를 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음악은 ‘대중을 향한 자위행위’라고 당돌하게 외치는 붕가붕가레코드는 어느 누구에게도 맞춰진 음악이 아닌 본인이 하고 싶은, 자기자신을 흥분시키는 음악을 추구한다고 한다. 이렇게 이기적인 음악을 고집하면서도 뮤지션들이 음악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건 반지하 사무실에 숨어 조용히 그들을 후원하는 ‘곰사장’이 있기에 가능했다.

돼지보단 곰이 나아서 곰사장이라는 별명을 골랐다는 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 대표는 한국 가요계에 인디 센세이션을 몰고온 ‘장기하와 얼굴들’을 미디어에 데뷔시킨 ‘인디계의 양현석’이다. 곰같이 푸근한 외모와는 달리, 다소 높은 톤의 목소리와 툭툭 내던지는 그의 명언들은 슬램덩크의 안감독을 연상케 했다.

자신이 심각한 음치이기 때문에 실력있는 뮤지션들을 이용해(?) 자신의 음악욕구를 채운다는 고건혁 대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한국인디음악의 현황과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라는 그만의 독특한 음악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Q. 레이블 이름으로 ‘붕가붕가’ (개나 고양이가 사람의 다리나 봉제 인형에 매달려 자위하는 행위)를 선택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주류음악은 대중의 취향에 맞춰 만들어 지는데 이것을 파트너와의 타협을 요구하는 일반적인 성교행위에 비교한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맞춰진 음악이 아닌,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며 스스로 욕구를 해결하겠다라는 의미에서 이 단어를 선택했다. 또, 개나 고양이에게 있어 ‘붕가붕가’는 대상을 깔보는 행위라고 한다. “우리가 하는 음악이 다른 이들의 음악보다 우월하다”라는 음악적 자긍심도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Q. 인디레이블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교내에서 음악활동을 하는 대학밴드들의 기념 앨범을 제작하는 동아리로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계속 그들의 음악들 듣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었다. 그들이 음악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다 보니까 사업으로 이어지게 됐다. 이게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라는 우리 모토의 시초이다.

Q. 자본금 100만원으로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처음에는 사무실도 없고 자본금도 없는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다. 소속가수들의 앨범을 제작할 돈이 없어 손수 공씨디에 앨범을 구워 리아카에 싣고 멜로디언을 불면서 소비자를 찾아 다녔다. 약 2년간 7개의 타이틀을 냈는데 모두 망했다(웃음). 2009년 ‘이번이 마지막이다’하는 마음으로 기대 없이 마지막 앨범을 냈는데 그게 1만 3000장이 팔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게 장기하와 얼굴들의 1집 ‘싸구려 커피’이다.

Q. 메이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나?

지금의 ‘메이저시장’에는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갈 욕심도 없다. 현재 ‘메이저’라는 정의에는 음악만이 포함된 게 아니다. 소위 ‘메이저급’ 뮤지션이 되려면 음악보단 영업과 마케팅에 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예능에 나가서 농담도하고 개인기도 해야 하는데 우리 소속팀들에게는 그런 것들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 그저 그들이 지속적으로 ‘딴따라질’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싶다.

Q. 장기하와는 서울대 동문 동갑내기친구?

2001년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에서 장기하를 처음 만났다. 친한 선배가 장기하와 같이 대학밴드를 시작하면서 함께 어울려 지내게 됐는데, 그가 군대 제대 후 솔로앨범을 내고 싶다는 말을 꺼내 함께 작업하게 됐다.

Q. 장기하가 뜬 건 곰사장 덕분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성공에 내가 기여한 건 고작해야 5% 정도다. 장기하는 음악적으로 특출할 뿐만 아니라, 앨범 콘셉트, 뮤직비디오 기획, 퍼포먼스 등 모든 계획을 세우는 브레인이었다.

Q. 2집 앨범 발매 후 바로 레이블을 떠난 장기하를 원망한 적은 없나?

원망한 적도 없고 그와 결별 한 것도 자연스러운 순리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견하고 키우는 게 붕가붕가레이블이 하는 일인데, 이미 스타가 된 장기하에게 더 이상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는 소소하게 음악만 하고 싶었던 반면 그는 소위 ‘큰판’에서 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마케팅이라던가 엔터테인먼트의 전문적인 서포트가 필요했다.

Q. 제 2의 ‘장기하와 얼굴들’을 준비하고 있다면?

현재 붕가붕가의 에이스는 ‘술탄오브더디스코’다. 우리 수석 프로듀서이자 창업 맴버 한 명이 리더로 소속되어 있는 그룹으로 실력과 개성을 두루 갖춘 팀이다. 나 또한 잠시 맴버로 활동한 적도 있고(웃음), 레이블에게 있어 영혼 같은 팀이다. 최근 큰 규모의 해외공연에 초청되었는데 이 참에 해외진출 준비하고 있다.


Q. 스스로 음악을 해볼 생각은 없는가?

지독한 음치다 (웃음). 음치인건 그렇다 치고 악기를 배우고 노래를 만드는 것에 전혀 소질이 없었고 재미도 없었다. 먹는 건 너무 좋아하는데 요리하는 건 매우 싫어하는 것처럼 말이다. 좋은 요리사를 영입해 좋은 재료를 공급해주고 그가 맛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Q. TED강연 중 ’36.5도씨 정도의 열정’, ‘비관적인 낙관’이라는 내용이 감명 깊었다. 이에 대해 좀 설명해 달라.

대부분의 자개개발 강연이나 책들에서는 자신의 꿈에 모든 것을 바치고 100도씨의 노력과 열정을 쏟으라고 한다. 하지만 인디가 필요한 것은 끓어오르다 증발해버리는 100도씨가 아닌 사람의 정상체온 36.5도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 되든, 잘 되지 않던 자기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어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

성공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하다 보면 작은 실패에 좌절하고 소소한 성공은 무시하게 된다. 차라리 ‘나는 안 될 거야’라는 자기 비관을 갖고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에 웃을 수 있는, 그런 비관적인 낙관이 있어야 한다.

Q. 붕가붕가레코드는 어떤 음악을 추구하는 레이블인가?

‘이 노래는 재즈다’ ‘저건 록이다’ 이렇게 우리의 음악이 쉽게 예측되고 규정되는 것을 싫어한다. 어느 장르에도 딱 규정할 수 없는 그런 애매한 음악을 하고 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아티스트의 영입조건은 ‘애매함’이다. 유니크 하되 대중음악이라는 틀 내에서 보편적이면서도 독특한 뮤지션들을 선호한다.

Q. ‘인디음악은 아마추어다’라는 선입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메이저시장에 비해 아마추어 뮤지션들의 비중이 크다는 건 사실이지만 메이저 못지 않은 프로급뮤지션들도 많고, 우리 소속팀들 또한 굉장한 실력파인데다 세계적인 음향 트랜드에 맞추고 있다.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팀이 저 예산으로 만든 음악이기 때문에 아마추어일 것이라는 편견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작 하이퀄리티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로컬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 점이 매우 아쉬울 따름이다.

Q. 그런 하이퀄리티음악을 하고 있는 국내 인디뮤지션을 추천한다면?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와 ‘검정치마’.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는 설명할 필요도 없는 훌륭한 밴드고, ‘검정치마’도 매우 인상 깊은 뮤지션이다. 붕가붕가 소속팀에서는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공연을 보자마자 반해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그들의 심파적이면서도 심파를 비꼬는 스토리텔링, 웃기면서도 슬픈, 그런 모순적인 면이 우리 레이블의 에센셜과 맞는다고 생각했다.

Q. 좋은 음악, 뮤지션의 조건이 있다면?

음악에는 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중들을 흥분시키고 쾌감을 자극하는 음악, 무대를 압도하는 존재감과 에너지를 갖고 있는 뮤지션들을 좋아한다. 두 팀을 꼽자면 데이빗보위(David Bowie)와 피식스(Pixes)다.

Q. 최근 돈 주고 산 앨범 다섯 개

블랙사바스(Black Sabbath)의 ‘Master Of Reality’ 다프트펑크(Daft Punk)의 최신 신보 ‘Derezzed’ 데위빗 보이(David Bowie)의 2013 앨범 ‘The Next Day Extra’ 롤링스톤즈(The Rolling Stones)의 ‘GRRR!’ 그리고 윤석철트리오의 노래 몇 가지. 음악이 일이다 보니 쉴 때는 이미 모두에게 검증이 된 좋은 음악을 듣는다.

Q. 현재 음악시장의 경제사정은 어떤가?

디지털 음원시대에는 한 곡이 66원. 앨범이 660원정도의 수입을 가져오는데 아이튠즈와 비교했을 때 1/10도 안 되는 가격이다. 한국음악의 발전과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선 덤핑제를 폐지하거나 음원정가제 같은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붕가붕가레코드의 다음 스텝은?

홍대를 넘어선 전국진출. 최근 발매한 컴필레이션 앨범을 가지고 전국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붕가붕가스러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수는 한정되어 있고, 그 중에는 아직 우리의 노래를 발견하지 못한 이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전국 구석구석에서 그들을 찾아 모두 끌어오고 싶다. 누군가에게 맞춰진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찾는 게 우리가 음악 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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