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진혜림 vs 이다해, 아시아 女를 대표하다

2015-12-07 09:47:42

[양완선 기자] 문화혁명(1966년~1969년) 이후 중국의 영화계는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우삼(‘영웅본색’ 1986 연출), 정소동(‘천녀유혼’ 1991 연출), 서극(‘황비홍’1991 연출)과 같은 감독들이 중국영화의 황금기를 가져왔고, 그 시절을 대표하는 주윤발, 장국영, 이연걸과 같은 스타들이 탄생했다.

이렇듯 ‘중국영화’의 발전에는 ‘무협’과 ‘느와르’라는 중국 특유의 장르적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멜로영화’에 약한 나라인가. 그렇지 않다. ‘천녀유혼’에도 멜로적 플롯은 존재했고 1997년 작 ‘친니친니’, 2007년 작 ‘색, 계’는 중국 멜로영화의 힘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진혜림이라는 배우가 있었다. 양자경, 장쯔이와 같은 중국의 여배우들이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며 중국 특유의 ‘무협영화’에 녹아 들었다면 진혜림은 전 세계적인 공감을 이끄는 멜로에 힘을 실었다. 그렇게 그는 중국을 대표하는 여배우가 되었다.

한편, 2000년대에 들어서며 역으로 ‘한류열풍’이 강하게 불었다. 김수현, 배용준, 이다해, 전지현과 같은 한국스타들이 아시아를 대표하기 시작했다. 1980, 1990년대와 다른 것은 한국과 중국이 함께 하는 작품이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다해가 있다. 여전히 아름다운 진혜림과 현재, 아시아의 남심을 녹인 이다해는 11살 차이의 터울을 두고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 프롤로그 – 운명적인 데뷔


1973년 9월13일생 진혜림은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 그래픽 디자인 학사로 졸업한 일명 ‘엄친딸’. 대학 졸업 후 홍콩에 들어와 강한 듯 부드러운 이미지의 외모 덕분에 광고 모델로 발탁되게 된다.

이렇게 모델 활동을 하던 중 중국의 4대천왕 중 한 명이었던 장학우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대륙 전체에 알리게 된다. 이때부터 그의 눈부신 외모를 바탕으로 한 성공가도가 시작된 것.

이후 1995년, 곽부성이라는 또 다른 중국 4대천왕과 함께 영화 ‘선락표표’의 주연을 맡으면서 중국 영화계에 얼굴을 드러냈다. 이때 그는 영화의 O.S.T에도 참여하며 가수로서도 운명적인 데뷔를 하게 된다.


1984년 4월19일생 이다해는 2001년 제 71회 미스춘향선발대회에서 ‘진’을 차자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미스춘향선발대회는 많은 연예인들을 배출한 것으로 유명한데 대표적으로는 최란, 오정혜, 윤손하 등이 있으며 장신영은 이다해와 함께 참가해 ‘현’을 차지했다고 한다.

미스춘향 출신 스타들만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대회는 외모의 평가에 있어 ‘미스코리아’와는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단아하고 참하다는 표현이 적절한 이다해는 이렇게 지극히 한국적인 모습으로 데뷔해 훗날 아시아를 호령하게 된다.

그런 이다해가 대중적 스타로 떠오르게 한 드라마가 있으니 바로 MBC ‘왕꽃 선녀님’. 그는 이 드라마에서 시련을 극복하는 무속인 윤초원 역으로 온 국민을 울리는 명 연기를 보여줬고 결국 ‘2004 연기대상 신인상’까지 수상한다.

# 아시아를 대표하는 미녀 배우


1995년 중국 내에 자신을 알린 진혜림이 아시아의 스타가 되는 데에는 3년이면 충분했다. 1998년, 금성무, 곽부성이라는 동시대 최고의 남자 배우들과 함께 한 ‘친니친니’는 아시아 전역에서 성공을 거두며 진혜림이라는 이름을 알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의 주제가 ‘A Lover’s Concerto’는 누가 들어도 알 정도로 지금까지도 유명한 곡. 바로 진혜림의 곡이다. 앞서 ‘선략표표’의 주제가로 이름을 알린 그가 3년만에 히트 영화와 히트곡을 동시에 만들어낸 것이다.

이후 그는 2000년 ‘동경공략’, 2001년 ‘라벤더’, 2003년 ‘무간도’(우정출연)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자신의 얼굴을 비췄다. 하지만 진혜림에게는 역시 ‘멜로’가 어울렸다. 2003년 일본의 다케노우치 유타카와 함께 한 ‘냉정과 열정 사이’는 그야말로 ‘히트작’이었다. 특히 원작 소설이 인기 있었던 한일 양국에서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한국 팬들에게 진혜림이라는 배우를 강하게 인식시켰다.


이다해의 중국 진출은 이미 예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2004년에서 2005년까지 ‘왕꽃 선녀님’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후 그는 SBS 드라마 ‘마이걸’을 통해 중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중국 내 ‘마이걸’의 인기는 대단해서 2011년 중국판 ‘마이걸’인 ‘채홍첨심’이 방영되기도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중국에서 ‘채홍첨심’이 방영될 때 이다해는 MBC 드라마 ‘미스 리플리’에서 장미리 역으로 열연했다. 그리고 곧 ‘미스 리플리’는 중국 전체 시청률 5~6위를 꾸준히 유지하며 이다해라는 이름을 아시아 TV시장에 강하게 새겨 넣었다.

# 한국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2012년, 중국 진출 첫 드라마 ‘사랑의 레시피’가 방영됐다. 이다해의 중국 진출은 단순히 SBS 드라마 ‘마이걸’, MBC 드라마 ‘미스 리플리’가 중국에서 사랑 받았기 때문은 아니다. 이미 이다해는 중국 진출을 위해 7년동안이나 중국어를 배우며 준비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중국에 진출하자마자 큰 성과를 가져왔다. 그의 유창한 중국어 실력은 통역 없는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줬고 중국 언론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결과로 그는 2012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3회 LETV 영화&드라마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최고 여자배우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그 동안 판빙빙, 종한량이 받았던 상으로 한국 여배우로서 이례적인 결과였다.


진혜림은 2006년에는 한국의 화장품 광고에도 등장했다. 최고 미녀들만 할 수 있다는 화장품 광고에 국내 배우가 아닌 외국인 배우가 등장한 일은 그만큼 당시 진혜림의 한국 인지도가 어떠했는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가수로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국에서 주최한 ‘아시아 송 페스티벌’에서 2005년, 2006년 4차례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 다음에서 선정한 ‘한국의 대중적인 중국가수’로 뽑히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영향력 때문일까. 최근 유역비와 열애를 인정하며 중국 내에서 한류열풍을 이끌고 있는 송승헌도 자신의 웨이보를 통해 진혜림을 만난 순간을 자랑했다. 이렇듯 한류스타가 인정하는 아시아의 별이 바로 진혜림이다.

# 에필로그


진혜림은 이미 21편의 영화와 7편의 드라마, 31장의 앨범을 낸 중국 최고의 만능 엔터테이너. 데뷔부터 화려했던 그는 이렇게 쉬지 않고 작품활동을 하며 아시아 여배우 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2008년 사업가 류젠하오와 결혼했고 현재 두 아들의 어머니로도 살아가고 있다. 인생으로서도 1인3역을 해내는 그는 또다시 연말 콘서트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다해는 곧 한중합작드라마 ‘최고의 커플’을 통해 안방극장을 찾을 예정이다. 2016년 초, 중국 알리바바와 후난TV를 통해 방영될 이 드라마에는 슈퍼주니어-M의 조미가 남주인공으로 출연해 힘을 보탰다.

그에게는 그의 중국 진출에 힘을 실어주는 조력자들도 많다. 이다해의 소속사 FNC는 최근 신우철PD를 영입했다. 그는 1세대 중국 행 한국 스타PD로 이미 첫 미니시리즈 ‘파리의 연인’부터 ‘시크릿 가든’, ‘신사의 품격’, ‘구가의 서’까지 자신이 연출한 모든 드라마를 히트시킨 바 있다.

이렇듯 이다해의 아시아 정복기는 현재 진행형. 진혜림이 쌓아놓은 아성을 무너뜨릴지 그 추이가 주목된다.
(사진출처: bnt뉴스DB, 진혜림, 이다해 웨이보, 영화 ‘선락표표’, ‘친니친니’, ‘냉정과 열정 사이’ 스틸 컷, MBC 드라마 ‘왕꽃 선녀님’, ‘2004 MBC 연기대상’, ‘미스 리플리’, SBS 드라마 ‘마이걸’, KBS뉴스 ‘LETV 최고인기여배우상’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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