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터뷰] 이현재 “아주 느려도 좋으니 남우주연상 받고 싶다”

2015-12-10 17:23:56

[김민수 기자] ‘잘생겼다’라는 말은 식상하다. 파격적인 외모를 소유한 배우 이현재는 연기와 음악에 대한 열정 또한 파격적이다.

이현재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많이 없지만 그를 보여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 이 사람이었어? 잘생겼잖아’라고 한다. 그만큼 브라운관에서 한번쯤은 봤을 법한 배우로 대중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비췄었다.

그룹 메이트의 드러머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중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 배우로서 서서히 자리를 잡으며 실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남자대 남자로서 인터뷰를 하는 내내 술 한 잔 기울이고 싶을 정도로 털털하고 솔직한 성격까지,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성의 매력’ 갖고 있는 남자였다.

혼혈로 살아오면서 음악에 대한 애정과 미련, 배우에 대한 깊이가 남다른 그와 이야기했던 남자들만의 대화를 지금 공개한다.

Q. 얼마 만에 촬영하는 화보인가.
중국에서 일을 하다보니깐 화보 촬영한지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주위에서 편안하게 대해줘서 재미있게 금방 찍었다(웃음).

Q. 긴 헤어에 애착이 가는 이유는 따로 있는지.
8년 동안 짧게 두 번 정도 자르기는 했었는데 특별히 기르고 싶어서 기른 것이 아니다. 어느 새 몇 년 지나다보니 긴 헤어를 찾는 감독님들이 많아 진 것 같더라. 그리고 이현재하면은 긴 헤어라는 인식이 되어버려서 캐스팅할 때 머리카락 길이는 어떠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자르려고 했다가고 긴 헤어를 원하는 감독님들이 많아서 자르지 않게 되더라.

Q. 긴 헤어 때문에 캐스팅 된 작품이 있다고.
그룹 메이트 할 때였는데 ‘닥치고 꽃미남 밴드’ 할 때 헤어 때문에 캐스팅 했다고 들었다. 그 전에 영화 플레이를 찍었었는데 그때는 배우로 할 생각은 없었고 연기자로서 데뷔를 한 것이 아니었다.

Q. 배우를 할 생각이 없었다? 이유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었다. 자신감이 정말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인기를 얻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고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릴 때 드럼이라는 악기를 선택한 것도 보컬이나 기타처럼 앞에 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서는 것이 싫어해서 조명도 없는 드럼을 택한 것이다.


Q. 배우 이현재에게는 소중한 음악이었겠다.
‘쿵쿵쿵’하는 드럼소리가 그렇게 좋더라(웃음). 그래서 엄마가 다니던 교회에 부탁해서 일요일마다 드럼을 배웠다. 사춘기 때는 혼자 드럼에 응어리가 졌던 것들을 전부 쏟았었다. 대학교도 드럼으로 입학하고 그렇게 하면서 메이트도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연예인 되려고 메이트에 들어간 줄 안다. 단지 음악이 좋아서 들어가게 된 것인데(웃음). 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메이트 때문에 극복했다.

Q. 메이트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겠다.
내 음악 인생에 있어서 생각을 해보면 정말 많이 애잔하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음악뿐이었는데 손을 놓게 되면서 연기를 하다 보니 마음에 무게가 많았던 것 같다. 음악에 대한 향수는 있으면서 그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도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 있기 때문에 투자를 못하게 되더라.

어느새 음악과 점점 멀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더라.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다시 돌아갈 수는 있는지 걱정이 되기도 하면서 연기 또한 놓지 못하는 심리적 갈등을 앓았었다.

Q. 메이트 멤버 형들에 대한 그리움도 남았을 텐데.
처음 음악의 꽃을 피운 곳이 메이트와 함께한 형들이었다. 음악으로 대중 앞에서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처음 가지게 된 것도 메이트였기 때문에 정말 소중하다. 그리고 최근에 메이트 앨범이 나온 적이 있다. 나도 참여를 하고 싶었는데 중국에 일정이 많아서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도저히 상황이 맞지 않아서 어쩔 수 없으니 기다리는 팬들 생각해서라도 형들 먼저 데뷔하고 다음에 상황이 맞으면 참여 하겠다고 했다.

Q. 연기와 음악의 과도기.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형들이 군대 간 2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그 시간 안에 간간히 들어오는 광고나 연기를 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연기자의 꿈을 꾸지 않았다. 메이트를 계속 하고 싶었던 마음과 음악에 대한 꿈도 놓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멤버 형들이 군대 전역을 하면서 현실을 보니 각자 소속된 회사도 달랐다. 뭉치기 힘든 상황이 되더라. 2년 뒤에 뭉치자고 했던 계획이 계속 미뤄지면서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더라.

Q. 이현재에게 그룹 메이트는 특별한데 그럼 배우는 어떻게 시작했는가.
음악을 해오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에 접하게 되더라. 영화 플레이나 tvN ‘닥치고 꽃미남 밴드’로 브라운관에 비치게 되더라. 그러면서 ‘유희열 스케치북’으로 방송을 타면서 CF도 찍고 했었다. 사실 그때는 나에게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Q.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을 텐데.
맞다. 나에게 연기자로서 주연이라는 기회가 들어와서 했는데 ‘연기가 나에게 맞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시기다. 때마침 메이트 멤버 형들이 군대를 갔던 상태였고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을 하던 상태에서 ‘닥치고 꽃미남 밴드’가 들어오더라. 우연한 계기로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그런데 방영 프로그램을 내 모습으로 보니깐 너무 한심하더라(웃음).

Q. 연기학원도 다녔다고.
그렇다. 그래도 어찌 되었던 브라운관에 비춰졌을 때는 배우인데 방영된 내 모습을 보니 너무 한심했다. 그래서 학원도 다녀보고 연습도 많이 했다(웃음). 그때부터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 같다.


Q. 아까 언급한 중국 활동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기자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 중국이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연기를 했던 시간보다 음악을 했던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연기를 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 어색하게 느껴진다. ‘닥치고 꽃미남 밴드’할 때도 어색했었다. 어색했던 기억만 남아 있는 것 같다.

Q. 중국에서 생활은 어땠는지. 중국어는 잘하는가.
유학을 간 느낌이다(웃음). 대외적으로는 영화를 촬영하러 가는 거지만 개인적으로는 유학을 간다고 생한다. 중국에 있으면 많은 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문화와 가치관들을 보게 된다. 그래서 좁았던 시야가 넓어진 느낌도 든다. 중국어 부분도 친구들은 잘 사귀는데 인터뷰처럼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통역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디랭기지도 많이 늘었다(웃음).

Q. 촬영 중 언어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내가 한국에서 따로 공부를 하고 간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6작품을 했는데 그중 3작품을 내가 직접 중국어로 했다. 보통 한국배우가 촬영을 하면 더빙을 한다고 하더라. 그 소리 듣고 괜히 오기가 생겨서 첫 작품부터 중국어로 한다고 했다(웃음). ‘니하오’도 몰랐는데 대본에 있는 중국말들을 전부 한국어로 써서 녹음기로 듣고 그렇게 영화 두 편을 끝냈다.

Q. 중국어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았겠다.
스트레스를 받을 겨를이 없었다. 대사가 너무 많아서 촬영 전에 외워서 바로 해야 되기 때문에 힘들 시간조차 없었다. 그렇게 4~5개월 지나니 영화가 끝나더라. 그 작품 덕분에 중국에 대한 자신감도 얻었다.


Q. 배우 이현재가 생각하는 중국배우들.
남자 배우든 여자 배우든 젠틀하고 프로페셔널하면 정말 멋있어 보인다. 그런 사람들도 굉장히 많고 중국에 좋은 배우들이 많다. 그리고 나와 같은 혼혈 친구가 있다. 나와 영화 ‘소시대3,4’에서 유일하게 우리 두 명만 외국인이었고 전부 중국인이었다. 그래서 둘이 많이 의지했다. 비비안이라는 남자 배우인데 촬영 끝나면 헬스장가서 같이 운동하고 지내는 일이 많았다.

Q. 중국 팬들의 반응.
중국에서 많이 알아보는 것 같다. 한국에도 가로수길을 지나가면 한국인들은 몰라도 중국인들은 알아봐주더라(웃음). 그리고 메이트는 잘 모르고 얼굴 보면 잘 안다. 아무래도 중국 사람들은 배우로 알려져서 그런지 나를 리센자이로 부르던지 귀여운 표현인 자이자이라고 부른다.

Q. 다시 음악으로 돌아와서 연기를 본업으로 시작한 지금, 음악에 대해.
내가 음악을 했을 당시 보지 못했던 부분을 다시 보게 되더라. 우물안 개구리였다. 사실 다시 음악을 하고 싶다. 멤버 형들과 가끔 꼭 같이 다시 하자고 말한다.

Q. 혼혈에 대해.
친할아버지가 미국인이고 할머니가 한국인이다. 우리 아버지가 흔히 말하는 하프고 어머니는 한국인이다. 그리고 내가 쿼터다. 그런데 내가 하프처럼 진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혼혈 같다. 혼혈 2세 같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보통 혼혈 3세는 진하지 않은데 내가 진하는 것을 방송 일 하면서 알았다.

Q. 어릴 때 받은 상처.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 놀림을 많이 받았다. 따돌림을 당했기 때문에 어렸을 때 상처가 많이 되었다. 내가 더 그랬던 것이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 것 같다. 어릴 때 놀림을 많이 받다보니 주눅이 들었었다. ‘내가 다른가? 뭐가 다른데 나를 놀리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놀림을 받았었고 자신감이 없는데 무슨 방송에 브라운관에 나올 생각을 하겠냐. 그런데 고등학생이 될 무렵쯤에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웃음).

Q. 학창시절 인기 많았겠다.
고등학교 때는 누나들에게 인기가 많았다(웃음). 학교 다닐 때도 내 헤어가 원래 갈색인데 두발교정 때문에 학생주임 선생님한테 끌려가서 맞은 적도 있었다.


Q. 지금은 혼혈에 대해 어떤가.
지금은 너무 감사하다. 혼혈이 무기다. 일부러 혼혈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오히려 부모님에게 감사하다.

Q. 혼혈에 대해 색안경을 쓰고 보는 사람들에게.
우리나라도 점점 다문화가정도 많이 늘고 있어서 나도 스스로 느끼는 거지만 유난히 우리나라가 너무 구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중국에 있으면서 느끼는 거지만 ‘혼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실례라고 하더라. 질문도 하지 않을뿐더러 물어보는 것 물어보지도 않는다.

Q. 연애에 대한 가치관.
배우로서 살면서 공개 때문에 일부러 숨어서 만나는 것은 못하겠더라. 알려지면 알려지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하고 싶다. 대신 상대방이 동의를 했을 경우다.

Q. 중국에서의 활동 목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하자’라는 생각이다. 너무 최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감당을 할 수 있는 내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Q. 굳이 목표를 정한다면.
중국에서든 한국에서든 남우주연상 한번 받아보는 것이 목표다. 내가 연기를 하면서 거기까지는 가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주 느리더라도 죽기 전에 한번 받아보고 싶다.

Q. bnt독자들에게 한마디.
남은 2015년 행복하고 따뜻한 겨울 보냈으면 좋겠다. 나중에 한국에서도 음악으로나 배우로 어느 모습으로 와도 전보다 훨씬 발전된 모습으로 기대에 부흥할 수 있도록 발전하겠다. 항상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기획 진행: 김민수
포토: bnt포토그래퍼 심형준
의상: 슈퍼스타아이, 울프, 에이인, 이정기서울
슈즈: 아키클래식, 슈퍼스타아이, 로버스
헤어: 엔끌로에 조천일 부원장
메이크업: 엔끌로에 정경화 실장
장소협찬: 베이비기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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