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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다혜 “철없는 아내, 철든 엄마 그리고 배우로서 인정받는 것이 꿈”

2017-03-22 16:37:11

[마채림 기자] 170이 훌쩍 넘는 키에 또렷한 이목구비, 흡사 모델이 걸어 들어오는 줄 알았다. 애써 말하지 않으면 아이 둘을 가진 엄마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싱그러운 분위기를 가진 그. 바로 배우 정다혜다.

육아에 치여 너무나 힘들다고 한숨지으면서도 이내 아이들로 인해 우주가 바뀐 기분이라는 정다혜. 자신에게 아이들은 지구와 같다는 말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연예계에 발을 들인 정다혜는 잡지 모델, CF, 뮤직비디오, 드라마 출연의 단계를 착실히 밟으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얼마 전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종영과 함께 사전 제작 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 촬영을 모두 마쳤다는 그. 때로는 언니 같고 때로는 동생 같은, 주위에 힘을 줄 수 있는 배우로 남고 싶다는 정다혜의 진솔한 모습을 들여다보자.

Q. 화보 촬영 소감

정말 재미있었다. 한을 다 푼 느낌. 사진 찍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나니 화보 촬영을 할 기회가 줄어들더라. 소속사에 bnt 화보를 꼭 찍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러다 정말 진행하게 돼서 설레고 기대됐다. 스케줄 조율하느라 촬영 예정일이 늦춰지기도 했는데, 묵묵히 기다렸다.

Q. 가장 마음에 들었던 콘셉트

사진 찍힐 때는 배우의 마음보다는 피사체의 마음으로 임한다. (웃음) 이게 마음에 든다, 안 든다는 없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상의 사진을 뽑아낼 포즈에 대해 고민하는 스타일이다. 현장에서 네 번째 콘셉트가 시안 없이 갑자기 추가돼 고민스럽기도 했는데 오히려 자유롭게 할 수 있어 좋았다.

모든 콘셉트가 다 마음에 들었다. 볼에 주근깨를 찍는 것도 처음이었고, 레드 립 메이크업을 했다가 보이시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등 즉각적으로 분위기가 전환되는 게 화보의 매력인 것 같다. 표현할 수 있는 재미가 있어서 좋았다. 옷도 편안하고 분위기도 편안했다.

그때그때 변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 화보의 매력이다. 아무래도 연기는 동영상이고 움직임을 포착하는 과정이라, 찰나의 순간인 사진과는 다르다.

Q. 화보 촬영을 위해 준비한 게 있다면

최근 bnt 화보는 거의 다 본 것 같다. 시안 받은 것도 꼼꼼히 봤다. 아무래도 옛날 사람이라 촌스러운 포즈가 나올까 걱정되기도 했다. 요즘 포즈가 뭔지 찾아보고 연습했다. 이왕 하는 거면 잘하고 싶다. 내 얼굴이기 때문에 그만한 책임감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Q. 2007년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부터 2016년 시즌 15까지 무려 10년 동안 이영채 역으로 출연했다. 연초에 종영을 했는데 소감이 어떤지?

‘영애씨’가 다큐멘터리 형식의 드라마이지 않나. 실제로 출연 중에 결혼을 했으며 임신하고 출산하는 모습까지 담겼다. 그래서인지 ‘인생 앨범’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영채라는 캐릭터와 정다혜의 컬래버레이션 같다. 영채는 또 다른 나다. (웃음)

Q.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예전부터 시즌제 드라마가 많았지만 우리나라는 드물었다. 첫 촬영 당시 이렇게 오래 이어질 줄 알았나?

원래는 시즌제가 아니었다. 못생긴 언니와 인기 많은 여동생의 이야기였다. 동생인 나는 계속 연애를 하고, 언니는 회사에서 핍박받는 내용의 드라마.

CJ가 tvN을 개국하고 처음 만든 드라마였는데 시청률이 잘 나와 시즌제가 됐다. 아마 ‘응답하라’처럼 브랜드화하려는 계획이었던 것 같다. 한 해에 2개 시즌은 기본으로 했었고 어쩔 때는 1년에 2개 반의 시즌이 진행됐기도 했다. 그래서 10년에 15개의 시즌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까지 오래 이어질 줄은 생각도, 상상도 못 했다. 초창기에는 20대 초반이다 보니 노출을 시키기도 했다. 그게 부담스러워 중간엔 빠지기도 했는데 그 뒤로 방황 아닌 방황을 하며 슬럼프를 좀 겪었다.

침체돼 있을 때 친정식구처럼 맞아준 곳이 ‘영애씨’였다. 돌아가니 따뜻한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했다. 똑같은 역할인데도 마음먹기에 따라 이렇게 느낌이 다를 수 있구나. 한 작품으로 끝났다면 느끼지 못했을 텐데 10년이 되니 자연스레 알게 됐다.

웃긴 게 보통 다른 드라마는 종영 기념 회식 자리에서 울면서 아쉬워하는데 ‘영애씨’는 다들 울지도 않고 쿨하게 인사한다. 때 되면 만나, 내년에 보자며.

Q. 시즌마다 달라지는 것

작가와 감독의 교체가 가장 큰 변화다. 가족이 기존 멤버라면 시즌에 따라 다른 배우들이 조금씩 추가됐다. 영애 언니의 남자들은 갑자기 안 나올까 봐 늘 불안해한다. 약혼만 하면 다음 시즌에서 볼 수가 없다. (웃음)

배우 고세원이 드라마 속 영채 남편인 김혁규 역을 맡고 있는데, 시즌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모르고 작가가 우리를 너무 일찍 결혼 시켰다. 영채가 더 많은 남자를 만났어야 했는데 시즌 2 때 결혼을 해 버려서 곤란했다. 작가에게 이혼 시켜달라고 장난치기도 했다.

Q. 작가, 감독 등의 변화에도 잘 유지되는 걸 보면 팀워크가 좋은 것 같다.

그렇다. 그래서 tvN에서도 마음 놓고 바꾸나 보다.

Q. 바뀐다는 소식을 들으면 신경이 쓰이는지

바뀌고 나서도 꾸준히 연락하고 있다. 경조사 챙기면서 자주 만난다. 작품을 같이 안 하더라도 자주 만나니 마치 동창회 느낌이랄까. 프로그램 인연이라고 해야 하나. 동지애 같은 게 있다. 서로 잘되면 좋겠고, 나가서 잘되면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분위기다. 이름 앞에 ‘영애씨’ 출신이라고 붙여야 하나. 하나의 견고한 공동체 같다. (웃음)

Q. 언제까지 ‘영애씨’와 함께 할 예정인지, 다음 시즌 계획

시즌 15의 초반 시청률이 좋지 않아서 이번이 끝이겠거니 했다. 사실 잘 나온 시청률인데도 불구하고 기대치가 높아지다 보니 다들 그렇게 생각하더라. 이제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방향성은 있지만 확정된 스토리 라인이 없어서 끝날 때까지는 앞으로의 내용을 알 수 없다.

시즌 초에는 만나서 반가우면서도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 이게 마지막 시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래놓고 마지막 회 촬영을 마치면 다음 시즌에 만나자며 인사한다.


Q. 다들 의리가 대단한 것 같다.

그렇다. ‘영애씨’가 예고 없이 시작되니 본의 아니게 스케줄이 겹치는 분들도 많다. 그런 경우 그 일이 마무리된 후에 꼭 다시 돌아오더라.

Q. 2011년 10월에 결혼했다. 결혼 후 가장 달라진 것은?

아줌마가 된 것. 아줌마가 된 것도 모자라 어느 순간 엄마가 됐다. 결혼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속도위반 의혹을 갖더라. 27살이 갑자기 결혼한다고 하니 ‘영애씨’ 식구들조차 사실을 털어놓으라며 닦달했다. “아니야, 없다고! 만들어?”라며 큰소리쳤는데 어느 순간 진짜 엄마가 됐다. 정다혜보다는 상윤 엄마, 누구 며느리 등의 호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게 가장 달라진 점이 아닐까.

Q. 심경의 변화

많이 달라졌다. 우주가 변했다. 결혼도 결혼이지만 아이를 낳고 나니 책임감이 생기더라. 아이들이 믿을 건 저, 엄마밖에 없지 않나. 내가 해야 할 것들과 우주가 달라졌다. 그간 내 우주는 나를 중심으로 움직였는데, 어느새 나는 달로 바뀌었고 우리 아이들이 지구가 됐다.

그래서 여자들은 결혼하면 나 자신을 잃는 것 같아 우울한가 보다. 나도 똑같다. 그래도 다행히 이렇게 화보 촬영도 할 수 있고 배우로서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어 행복하다. 정다혜로 불릴 수 있으니까.

Q. 결혼 이후 작품 선택 기준이 달라졌다면

일단 작품이 별로 없다. (웃음) 내가 일찍 결혼을 해서 그런지 겹치는 역할이 없나 보다. 아가씨 역할을 하자니 유부녀고, 유부녀 역할을 하자니 조금 어리다.

대신 좋아하는 게 달라졌다. 예전엔 공포영화를 싫어했는데 이제는 재난 영화라든지 아이를 대상으로 한 슬픈 영화가 싫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걸 주제로 하는 영화는 안 보게 된다. 아이에게 해를 끼치는 내용의 영화들은 마음이 아파 더더욱 볼 수 없다. 취향이 달라지는 것 같다.

Q. 실제 만삭의 몸으로 영애씨에 출연하기도 해 화제였다. 뱃속에 아이가 있으면 몸을 아끼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만삭의 몸으로도 출연을 결심한 특별한 계기?

임신하고 출산하는 모습을 공개한 이유는 해당 시즌이 항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작진도 마지막에는 함께 이름을 올리는 게 좋지 않겠냐고 설득하니 출연하게 됐다. 어떤 여배우가 만삭의 모습을 공개하고 싶겠나. 유종의 미를 거두자는 뜻으로 출연했는데 계속 안 끝나더라. 나는 더 이상 애도 안 낳을 건데. (웃음)

Q. 제작진이 직접 출연 제의를 한 건가?

그렇다. 정말 잔인하다. 심지어 첫째 때는 애를 낳고, 한두 달 만에 마지막 회 촬영을 하러 갔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화면 보고 깜짝 놀랐다. 화면 속 내 얼굴이 곧 터질 것만 같더라. 5분 이상을 못 본 것 같다.

Q. 그 결정에 후회는 없는지

다들 내 안부를 궁금해하니 나와주면 좋겠다는 제작진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워낙 아끼는 드라마라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출연했다. 아이를 낳고 나면 답답한 마음이 드는데, 바람도 쐴 겸 마지막 회 촬영 현장에 간 거다. 덕분에 영원히 지우지 못할 영상을 남겼다.

Q. 아이들 나이 차가 많지 않다. 셋째 계획?

전혀 없다. 27살에 결혼해서 28살에 임신을 했고 29살에 출산했다. 또 30살에 임신해서 31살에 둘째를 낳았다. 남편은 첫째 상윤이가 10살이 되면 셋째를 갖고 싶단다. 그래서 “누구랑?”이라고 말했다.

애가 너무 예뻐서 생각은 해봤다. 첫째보다 둘째가 더 예쁜데 셋째는 오죽할까. 하지만 예쁜 건 예쁜 거고 일단 나부터 좀 살아야겠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자유가 오는데, 셋째를 낳아 기르다 보면 성질이 나빠질 거 같다. (웃음)

Q. 슈퍼맘으로 거듭나기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

친정 엄마가 없으면 안 된다. 엄마가 안 계시면 일하러 갈 수가 없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물론 대가는 다 드린다. 너무 완벽하려고 하면 모두가 힘들다. 친정 엄마에게 애를 맡긴 이상 엄마 육아법을 따르는 게 맞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얻을 건 얻어야지, 모든 걸 내 손에 쥐고 가려 하면 모두가 힘들어진다. 때문에 타협할 수 있는 것과 불가능한 걸 정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Q. 지난해 53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아름다운 드레스 자태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몸매 관리 비결은?

출산 전후로 필라테스를 꾸준히 했다. 둘째를 낳고 나서는 너무 답답해 3~4주 뒤에 운동하러 가기도 했다. 평소 몸이 찌뿌듯한 걸 싫어한다. 살이 잘 찌는 편이 아닌데 결혼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살이 조금 붙더라. 게다가 20대 후반에 족저근막염이 생겨 몸이 더 부었다. 몸이 무거운 그 느낌이 싫다.

이번에 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가 ‘영애씨’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가다 보니 식단 관리를 더 열심히 했다. 피부를 위해 콜라겐이 들어간 음식을 챙겨 먹는다. 다이어트 할 때 파파야, 아보카도, 소 힘줄인 스지를 즐겨 먹는 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몸에 로션을 꼼꼼히 바르는 것. 샤워하고 나서 온몸을 체크하는 느낌으로 마사지하듯 발라주면 혈액순환이 잘 되는 느낌이 들면서 촉촉해져 좋다. 로션을 꾸준히 바를 때와 안 바를 때가 확연히 다르다. 내가 내 몸에 관심을 끊는 순간 라인이 눈에 띄게 망가진다.

Q. 평소 성격이 털털하고 활발한데 이성 친구들이 많은 편인가

많은 편은 아니다. 이성 친구를 떠나 동성 친구들도 결혼하고 나니 미국이나 부산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더라. 친한 이성 친구를 꼽자면 배우 허정민. 오빠긴 한데 친구처럼 지낸다.

활발한 성격이지만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한다. 혼자서 만화책 보는 게 좋다. 지금은 육아에 치여 혼자 있을 시간이 없다. 애들이 얼른 커서 집을 나갔으면 좋겠다. 지금은 너무 예쁘니 조금 천천히 컸으면 좋겠고, 나중에 말 안 들을 시기에는 빨리 컸으면. 애들이 자라서 집을 나가면 방을 만화책으로 꾸미고 나만의 맥주 냉장고를 마련하고 싶다. 방에 ‘해먹’을 달아 거기에 누워 만화책을 보고 싶다.

Q. 만화책은 언제부터 읽었는지?

초등학교 때부터 봤다.

Q. 그것도 친오빠의 영향?

그렇다. 이제 보니 오빠가 문젠 것 같다. 책, 만화책 보는 것 좋아하고, 그냥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한다. 결혼을 했지만 여전히 혼자 잘 논다. 영화도 혼자 잘 보러 다니고 커피숍도 잘 간다. 밥도 잘 먹고.


Q. 그렇다면 도저히 혼자 할 수 없는 것은?

뷔페는 못 가겠다. (웃음) 혼술은 가능하다. 혼술은 주로 집에서 하는 편인데 얼마 전에는 밖에서 혼자 술을 마셨던 적도 있다. 아들이 유치원에 갔을 때 집에 친정 엄마가 오셔서 둘째를 봐주셨다. 엄마가 처음으로 집에 와서 아기를 봐주셨을 때였나. 갑작스럽게 자유가 생겼다.

낮에 집 근처 카페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너무 재미있더라. 한 시간 반 만에 혼자 세병을 마셨다. 안주로 퀘사디아를 먹었다. 먹다 남은 걸 포장해가니 남편이 혼자 술 마시지 말라며 창피하다더라. (웃음) 너무 좋았다. 아마 기자도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 자유의 소중함을 알게 될 거다.

Q. 가장 좋아하는 만화책

‘나나’라는 만화책을 좋아한다. 작가가 지금 아파서 연재가 중단된 지 오래다. 자주 가는 만화방 사장님께 여쭤보니 후속 연재는 포기하라고 하더라. ‘나나’, ‘짱구는 못 말려’, ‘명탐정 코난’, ‘원피스’ 등을 좋아한다.

남편과 홍대 원피스 카페에 간 적이 있는데 남편이 그렇게 한숨을 쉬어댔다.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한심하다 했는데 자기가 줄을 서고 있다면서. (웃음) 육아에 시달려 신간 만화책을 못 산지 오래됐다.

Q. 배우의 꿈은 언제부터?

나는 기억나는 바 없지만 엄마 말씀으로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TV 속 드라마 장면을 따라 했다더라. 특별히 배우의 꿈을 꾸진 않았지만 자연스레 동경했던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키가 174였다. 우연히 길거리 캐스팅이 됐고, 대형 기획사에 들어가 가수 이수영의 ‘사랑이 지나가면’ 뮤직비디오를 이영애와 함께 찍었다. 잡지 모델, CF, 뮤직비디오, 드라마의 코스를 착실하게 밟았다.

Q. 드러내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었는지

그렇진 않았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면도 있는 학생이었다. 그냥 키가 커서 눈에 띄었다.

Q. 길거리 캐스팅 당시 반응

“할게요” 했었다. 알고 보니 사기성의 엉터리 기획사였지만 덕분에 이쪽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뒤로 일이 많아지면서 운 좋게 대형 기획사에 들어간 거다.

Q. 데뷔작이 2001년 드라마 피아노다. 당시 시청률이 40%를 넘기도 했는데 데뷔하자마자 좋은 작품을 만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감회가 남달랐을 텐데

그때는 어리고 뭣도 몰라 더 잘했던 것 같다. 나는 부산 사람이 아니라 사투리를 잘 못한다. 의사가 나를 진찰하는 장면에서 대사가 끝났는데도 감독이 컷을 안 하길래 “의사가 뭐 이러노?”라며 애드리브를 했다. 그것까지 전파를 타더라. 다들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어려서 에너지가 넘쳤다. 철없는 애송이처럼 대담했다. 우는 장면에서도 눈물이 너무 많이 나와 하루 종일 울었고, 한겨울에 반팔을 입고 뛰는데 추운 줄도 몰랐다. 현장을 갈 때면 마치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하루는 극 중 아빠인 조재현이 아파 누워있는 장면을 찍는데 눈물이 수도꼭지처럼 나오더라. 원래는 조인성, 김하늘의 연기만 찍는 거였는데 내가 너무 슬프게 우니까 주희도 좀 찍으래서 우는 장면이 나가기도 했다. 그땐 날것의 느낌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하래도 못 할 것 같다.

Q. 그게 매력인 것 같다. 꾸미지 않은 듯한 연기

내가 갖지 못한 걸 좋아하기 때문인 건지 정돈된 연기를 하는 분들을 좋아한다. 목소리, 발성이 좋은 분들. 어떤 연기가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시대에 따라 주목받는 배우가 달라지듯 연기 흐름도 바뀌는 거니까. 피아노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것처럼.

누군가에게 변했다고 말하는 건 웃긴 것 같다. 내가 결혼을 해서 애 엄마가 됐는데 예전의 나처럼 살 순 없는 거지 않나. 모든 건 다 자연스럽게 변한다. 내 연기도 좀 더 진지해지고 정돈됐으면 좋겠다.

Q. 연기를 오래 했으면 좋겠다.

나도 같은 마음이다. 보통 대학 전공을 살리기 쉽지 않은데 나는 전공을 살렸다. 물론 대학 입학 전에 연기를 시작하긴 했지만. 또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 또한 쉽지 않은데 나는 이 일이 즐겁고, 좋다. 이 마음과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다.

Q. 차기작 ‘품위 있는 그녀’ 사전제작을 마쳤다고 들었다. 간단한 작품 소개

강남 여자의 이야기다. 워낙 복잡하다. 화려하게, 부자로 살고 싶었던 여자의 마지막을 그린 내용이랄까.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모든 걸 다 갖춘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여자의 삶?

Q. 작품에서 맡은 역할

화려해 보이지만 슬픈 여자. 여우인 척하지만 여우가 아닌 곰. 곰도 아닌 바보다. 처음에는 미움을 샀다가 끝에는 연민을 사게 될 거다. 굉장히 미스터리한 캐릭터다. 여태 해본 적 없는 역할이었다. 이런 역할은 앞으로도 없을 거다.

Q. 전무후무한 캐릭터라는 뜻인지

여태까지의 드라마에서는 본 적 없는 독특하고 신기한 캐릭터다. 이 역을 맡게 돼서 정말 좋았다. 밤새도록 대본을 보며 생각하고 고민했다. 드라마 속에 내 옷과 신발이 많이 나온다. 사전 제작이다 보니 의상 협찬이 힘든 부분이 있어서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에 맞춰 직접 구매해 연출했다.

Q. 꼭 해보고 싶은 역할

강한 캐릭터를 맡아보고 싶다. 항상 털털하고 착한 역할을 많이 맡아왔기에 그간 보여주지 못한 악역이라든지 살짝 정신이 나간 캐릭터 등을 표현해보고 싶다. 아니면 영화 ‘밀양’의 전도연 같은 캐릭터도 좋다. 점점 욕심이 많아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겁이 나서 못하겠다는 마음이 컸다면 지금은 도전해보고 싶은 욕구가 더 크다. 도전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지 않나. 마음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


Q. 호흡을 맞추고 싶은 배우

김수현을 좋아한다. 그와 호흡을 맞추고 싶다기 보다 곁에서 보고 싶다. 팬심에 더 가깝다. 또 한석규처럼 목소리가 좋은 사람을 좋아한다. 진경, 서이숙 같은 안정된 연기를 선보이는 분들. 그분들과 함께 연기하면서 배우고 싶다. 나쁘게 말하면 그분들의 장점을 훔치고 싶달까.

Q. 롤모델

이순재, 김용림 선생님. 자기관리를 정말 잘 하는 분들이다. 뭐 하나 빠질 게 없다. 존재만으로 후배 배우들에게 귀감이 되는 분들. 멋지고 존경스럽다.

Q. 콤플렉스

짧은 혀와 목소리가 아쉽다. 목소리에서부터 여성스럽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것 같다.

Q.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원하는 건가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기에 내 목소리에 한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

Q. 해보고 싶은 장르

영화 ‘어바웃 타임’ 같은 분위기를 좋아한다. 부성애나 모성애도 있고 그 안에 로맨스도 있으면서 의미를 전하는. 또 ‘이터널 선샤인’도 좋다. 사람의 심리가 반영되는 그런 영화들을 좋아한다.

영화를 못 한지 오래됐다. ‘심장이 뛴다’ 이후로 못 했다. 상대 배우가 박해일 이었는데 연기하기 편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또 같이 하고 싶다. 좋은 목소리를 가진 데다 상대방이 연기하기 쉽도록 배려하는 편이다.

Q. 혹시 남편분도 목소리가 좋으신지

그렇다.

Q. 결혼을 결심하게 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남편이 그렇게 전화를 자주 걸었다. (웃음) 전화 통화를 많이 하다 보니 정이 들었고, 편안하게 해주는 점에 마음이 갔다. 그게 가장 컸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나 자신을 다 내려놓을 수 있도록 해줬다.

Q. 육아 예능프로그램 출연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일로서는 다 하고 싶긴 하지만 아이들을 노출하는 것은 꺼려진다. 고등학교 1학년을 아역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어릴 때 데뷔해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나의 선택이었지만 아이들은 본인의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내 경우에는 조금 부담스럽다. 뭐든 아이들이 선택했으면 좋겠다. 아이들 미래도 미리 계획하지 않는다. 아이 스스로 원하는 걸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Q. 그 외 예능프로그램 출연은?

1대 1로 이야기를 나누면 재미있는 편인데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끼어들기 미안해 듣고만 있게 되더라. 대본에 쓰여 있는 대로 연기하다가 예능을 나가게 되면 뭔가 정글 한복판에 던져진 느낌이 든다.

정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정글의 법칙’에는 한 번쯤 출연해보고 싶다. 내가 언제 정글에 가보겠나. 여행이나 탐험 등을 좋아하는데 방송을 통해서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Q. 인생의 목표, 꼭 이루고 싶은 꿈

그냥 열심히 오래 하고 싶다. 꾸준히 해서 이 분야에서 인정받고 싶다. 자식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 결혼하고 아줌마, 엄마가 된 이후로는 나만을 위한 목표를 추구했던 게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의 목표, 내 인생의 목표를 생각해본 지 너무 오래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싶은 마음과는 조금 다르다. 그냥 정다혜, 나로서 인정받고 싶다.

Q. 어떤 아내, 엄마가 되고 싶은가

철없는 아내, 철든 엄마가 되고 싶다. 남편이 저보고 철딱서니가 너무 없단다. 마치 자식 셋을 키우는 것 같다고.

Q. 마지막으로 한 마디

가끔 SNS에 팬이라며 댓글을 써주는 분들이 있다. 전부 읽고 있지만 바빠서 답글을 못 다는 경우도 있고,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부끄러워 읽기만 한 적도 있다. 그런 응원들이 엄청난 힘이 된다.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

아이를 키우는 육아 동지들에게도 힘이 돼주고 싶고, 30대 여성분들에게도 힘이 되고 싶다. 때로는 언니 같고 때로는 동생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 다들 힘들 거다. 힘내라는 말 밖에는 해드릴 말이 없다. 이것 또한 지나간다고.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따뜻한 날이 찾아와 있을 거라고.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뻔하고 멋없는 말 같지만 애를 낳고 나니 이런 생각들이 들더라. 우리 아이가 희망을 잃지 않고 항상 꿈을 꿨으면 좋겠다. 늘 도전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기획 진행: 마채림, 배아름
포토: 윤호준
의상: 비에이블투, 레미떼, 프릭스, 크리에이티브 폭스, 매료
퍼 베스트: TOTUM Senatore(토툼 세나토레)
슈즈: 수페르가, 모노톡시
액세서리: Tedora(티아도라), 아르뉴
아이웨어: 엣오메가
백: BIQUA BICHE(비콰비채)
헤어: 이희 헤어&메이크업 이하정 아티스트
메이크업: 이희 헤어&메이크업 이태리 실장
장소: 어반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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