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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nt's pick] ‘도봉순’ 김원준, 신인에서 정답으로 향하는 배우 (인터뷰)

2017-03-24 19:26:38

[김영재 기자 / 사진 김치윤 기자] 배우가 되고 싶은 김원준을 만났다.

JTBC ‘힘쎈여자 도봉순(극본 백미경, 연출 이형민)’은 ’힘쎈’과 ‘여자’가 결합된 제목부터 대중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사회 통념상 남성보다 근력이 세지 않다고 여겨지는 여성과, 힘을 결부시키는 데서 오는 역설이 묘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여기 한 신인 배우는 상식의 전복을 온 몸으로 표현하며 대중의 눈도장을 받았다.

‘힘쎈여자 도봉순’ 5화 도입부에서 도봉순은 또다시 괴력을 발휘한다. “내가 힘을 제대로 쓴다면 세상이 좀 나아질까?”라고 고민하던 찰나 어떤 지하철 치한이 시야에 들어온 것. 잠시후 치한은 손가락이 부러진 채 고통을 호소한다. 잠시 스쳐가는 단역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도봉순은 공공의 이익을 지킨다는 괴력의 당위성을 얻었다.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치한을 연기했던 배우의 이름은 김원준. 1986년생으로 올해 나이 만 31세다. 그는 자기 소개를 원하는 기자의 질문에 “현재는 대중이 많이 모르기 때문에 신인 배우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며, “연예인, 탤런트, 연기자 아닌 오래 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목적인 배우다. 그런 곳을 지향하고 있는 신인 배우다”고 자신을 설명했다.

최근 진행된 bnt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원준은 ‘힘쎈여자 도봉순’의 치한 역할은 본래 오디션 봤던 배역이 아니라며, 자신의 연기를 기억하고 새로운 역을 맡겨준 이형민 감독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다. 리허설도 실전처럼 몸을 사용해가며 연기 열정을 불태웠던 김원준의 노력이 연출자의 눈에 미리 닿았을 것이 분명하다.

“드라마 오디션을 봤다. 치한이 아닌 고등학생 역할이었는데, 나이 차이 때문에 연이 닿진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이형민 감독님께서 당시의 연기를 좋아해주셨고, 나중에는 영광스럽게도 치한 역할을 위해 나를 직접 찾아주셨다.”

“촬영을 위해 역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이형민 감독님께서 내게 어떻게 연기할 건지 여쭤보셨고, 본 연기랑 똑같이 바닥을 뒹굴었다. 나중에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리허설 때부터 미친 듯이 연기했던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말씀하셨더라.”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재촉하는 초록 검색창일지라도, 배우 김원준을 입력했을 때 어떤 인물도 표시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는 문자 그대로 신인(新人)이다. 그간 어떤 작품들을 통해 대중이 김원준을 스쳐갔는지 물어보니 제목만 들어도 이미지가 떠오르는 몇몇 유명작들이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단역들이었지만 그에게는 피와 살이 되는 존재들이었다.

“tvN ‘슈퍼대디 열’에서는 운동 선수를 연기했고, 영화 ‘마이너클럽’에서는 쉽게 말해 양아치 역을 맡았다. 더불어 영화 ‘판도라’에서는 소방 대원을 공연했는데, 마스크 탓에 나도 나를 못 찾겠더라. 강신일 선배님이 복구 작업장으로 대원들을 등 떠미는 장면들 중 투 샷이 있는데 그게 나였다. 아직까지 몸 쓰는 역할들을 많이 하고 있다.”


어쩌면 늦은 나이일 수도 있는 스물넷 대학교 시절부터 연기를 꿈꿨다는 김원준. 학교에 가서도 수업은 듣지 않은 채 배우의 길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택했던 그때의 결정은 다행히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더불어 그는 아버지께서 꽃다발을 주셨을 때를 잊지 못한다고 추억했다.

“배우를 할지 말지 약 두 달 동안 고민했다. 학교에 나가기만 할 뿐 수업도 잘 못 듣고 고민만 했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왜 고민하고 있지? 해보면 되는 거 아닌가.’ 결국 아니다 싶으면 그때 가서 접어도 늦지 않겠다 싶어서 무작정 시작했는데 하면 할 수록 더 재밌고 매력적인 게 연기였다. 결국 여기까지 왔다.”

“부모님은 자식의 평범한 삶을 원하시지만, 그게 아니니까 답답하다고 말씀하시더라. 지금도 연기를 반대하신다. 하지만 언젠가 대학로에서 첫 작품, 첫 공연을 할 때 부모님께서 오셨던 적이 있다. 그때 아버지께서 꽃다발을 주시면서 ‘수고했다’고 딱 한마디 하셨는데, 기분이 참 좋았다. 그때를 기억하며 열심히 노력 중이다.”

연기를 하고자 하는 것과 연기를 잘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다. 더군다나 당시 대학생 김원준과 같은 나이의 혹은 또래 경쟁자들은 마치 선행 학습을 하듯 오랜 시간 전부터 연기를 준비했을 것이 당연하기에, 그는 어떤 방식으로 연기를 연마했을지 궁금증이 생겼다. 그의 대답은 두 가지였고, 하나는 평범했지만 다른 하나는 비상했다.

“연기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던 건 학원 밖에 없었다. 집이 인천이었는데 서울 신사동 학원까지 통원하기도 했다. 학원에서도 좋은 가르침이 있었지만, 문득 ‘여기서 다 배우고 나면 끝인건가? 아닌 거 같은데. 현장으로 나갈 실력이 되나? 틀린 거 같은데’란 의문이 들더라. 그래서 들어갔다. 강원도 산 속으로.”

“아마 2008년으로 기억한다. 연기에 자부심이 없다는 이유로 강원도 홍천의 어느 산골에서 연기 연습을 했다. 한 1년 정도 살다가 나왔다. 그때를 계기로 자신감이 늘었는지 돌이켜보면 솔직히 대답은 아니오다. 연기는 너무 어렵다. 배워도 배워도 갈구하게 되고, 점수가 없기에 끊임없는 노력을 하는 거 외에는 방법이 없더라.”

지금껏 많은 인터뷰이(Interviewee)를 만났지만, 연기를 목표로 산골에 들어갔다는 배우는 김원준이 처음이었다. 산중호걸 호랑님이 계시는 그곳에서의 연기 연마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노력으로 연기를 간절히 희망했던 김원준은 장점을 묻는 물음에 ‘말’을 강점으로 꼽았다. 이순재가 요즘 배우들은 말을 못 한다며 언급했던 그 ‘말’이었다.

“강원도에서 제일 신경 썼던 점은 그거다. 배우는 말을 하는 직업 아닌가. 그렇기에 장음, 단음, 띄어쓰기 등을 1년 동안 확실히 연습했다. 다른 건 모르겠어도 대사를 국어에 맞게 소화하는 것에는 자신이 크다. 예전에 이순재 선생님이 요즘 배우들은 말을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방송에서 봤다. 말을 제대로 해야 연기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알면 알수록, 물으면 물을수록 김원준의 매력은 새로웠다. 강원도 홍천 유학기만으로도 가슴이 벅찬데, 더군다나 강점으로 꼽는 특징이 언(言)의 바르고 곧음이라니. 이쯤에서 배우로서의 버릇이 궁금해졌다면 그것은 기자의 욕심이었을까. 어떤 배우는 지인들의 습관을 눈여겨본다고 말하니, 그는 지하철에서 사람을 유추하던 경험이 있었다고 말했다.

“버릇은 아닌데 비슷한 게 생각났다. 지금도 타고 다니지만 20대 중후반 때 전철을 타고 다녔을 때의 일이다. 고개를 안 들고 앞에 계신 분들의 운동화를 쳐다봤다. ‘저 운동화를 신으신 분은 어떤 외모, 성향, 옷 스타일이겠구나’라고 생각한 후 정답을 확인했다. 맞으면 좋고, 틀리면 또 그것대로 좋았다. 분명 연기에 도움이 됐다.”

“아직 안 봤던 작품의 시나리오를 구해서 매 신들을 머릿속에 그린 후, 그것들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영화를 보며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이건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이다. 감독님들이 이렇게 찍을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먼저 생각해 보는 건데, 도움이 되더라. 감독님이 원하는 걸 알면 배우로서 더 잘 표현할 수 있으니까 남는 게 많다.”

연기에 대한 열의는 이미 가늠했지만, 시나리오와 영화를 연계한다는 대답은 사실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배우가 연기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연출의 영역까지 포괄하며 감독의 의중을 미리 파악한다는 개념을 들으니 이제는 배우 김원준의 실제 연기가 알고 싶어졌다. 그는 연기하고 싶은 인물로 영화 ‘프라이멀 피어’의 아론 스탬플러 역을 꼽았다.

“안과 밖이 다른 사이코패스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다. 낮에는 바보 같고 어리숙하지만, 밤이 되면 날카롭고 냉소적으로 확 변하는 캐릭터. 돌이켜보면 영화 ‘프라이멀 피어’에서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했던 아론 스탬플러가 딱 그 역할이었다. 사이코패스가 하고 싶은 걸 보면 나도 이상한 놈이다. 반대적인 모습이 있는, 대조적인 인물을 표현하고 싶다.”

그는 사이코패스를 연기하고픈 자신을 괴짜 취급했다. 하지만 배우는 예술을 몸으로 노래하는 직업. 가상의 공간 안에서 사이코패스는 배우가 추구하는 한 갈래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방향을 바꿔 진폭이 큰 연기로써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김원준이 같이 호흡하고픈 배우는 누구인지 물으니 “유재명 선배님”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유재명 선배님과의 연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이너클럽’에서도 함께 작업을 했었고 이번 ‘힘쎈여자 도봉순’에서도 인사를 드렸는데, 회식 자리에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배우로서도, 배우가 아닌 인생 선배로서도 배울 점이 많은 분이다.”

“과거 ’판도라’로 인연이 닿았던, 매번 ‘선배님’이라고 부르지만 개인적으로는 ‘형님’이란 호칭을 원하는 송영규 선배님과도 연기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 그분은 스스로를 낮추시면서까지 현장에서 남을 살펴주시는 분이다. 사실 배우들이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본인 매력 어필을 더 해야 돋보일 수 있는 직업 아닌가.”

“마지막 한 분은 친분도 없고 잘 모르는 분이지만, 제 롤모델인 조진웅 선배님이다. 지나가다 우연히 뵈었을 뿐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워낙 강렬함을 뽐내고 가셨던 기억이 난다. 그분의 연기를 보면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지?’라는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선배님과의 작업은 소망이며, 어떤 역이든 상관없이 그분과는 꼭 작업해보고 싶다.”


유재명과 송영규에 이어 조진웅까지. 김원준이 꼽는 세 배우의 공통점은 연기 그리고 사람 냄새였다. 거창하고 숭고하게 다뤄지는 예술일지라도 결국은 사람의 손때가 묻는 작업. 그는 연기는 기본이고, 덧붙여 풍기는 인간미에 존경을 더할 수 있는 선배들과의 호흡을 원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꿈꾸는 미래는 어떨지, 무슨 배우로 기억되고 싶을지 알고 싶었다.

“딱 하나 있다. 전작이 잊혀지는 배우가 되고 싶다. 딱 나왔을 때 ‘전이랑 똑같은 것 같은데?’란 말이 없는. 다양한 역할들을 소화해내는. 탑 스타의 자리에 오르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그런 위치는 노력만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아닌가. 목표하는 바로 추구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예인 아닌 배우로서 작품마다 다른 매력을 부여하고 싶다.”

연결 고리를 형성할 미래의 배역마다 저마다의 색들을 덧입히고 싶다고 말하는 김원준에게서 영화 ‘프라이멀 피어’를 예로 들었던 진폭 큰 역할이 떠올랐다. 인터뷰에서 만났던 그는 정체(停滯)를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달리고 싶은 배우처럼 보였고, 마지막으로 그는 “영화를 하고 싶다”며 김원준이 영화의 한 부분으로서 움직이길 원했다.

“가릴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한다면 뭐든지 다 하고 싶다. 뭐가 됐든 간에 다 안 가리고 해보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며 준비 중이다. 좋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개인적인 목표는 있지만 아직까지 계획은 없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영화를 하고 싶다. 영화를 많이 하고 싶다. 할 수 있다면, 가능하다면 영화를 꼭 하고 싶다.”


인터뷰 중간 그에게 인간 김원준의 목표를 묻자 어색한 적막이 공간을 휘감았다. 질문지가 미리 전달된 것도 아닌데 청산유수처럼 말을 이어가던 이전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 고민을 마친 그는 “성공과 행복을 두고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며, 돈이 전부로 치부되는 현재지만 성공보단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바람을 소망했다.

모두가 알아주는 화려한 톱 스타의 인생,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 적합한 돈이 많은 삶 등 혹자에게는 마냥 행복해 보이는 조건들이 김원준에게는 마냥 하찮은 것들로 느껴지는 듯 보였다. 추측해보건대 아마 그 이유는 스물넷이란 나이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마치 구도자의 자세로 목적지인 배우를 채근한 김원준만의 의지 때문이리라.

목적지에 언제 도착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 땅을 딛고 서있는 현재가 바라보는 미래는 마냥 뜬구름으로만 보이고, 어떤 노력을 해도 가시권에 들어오지 않는다. 정답은 오직 미래만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김원준은 배우를 꿈꾸고, 준비하고, 그렇게 필모그래피를 쌓아간다. 부디 그가 포기하지 않길, 스스로를 배우로 인정하는 그때가 오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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