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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석조저택 살인사건’ 김주혁, 한계를 벗어나 초탈한 배우

2017-06-11 20:20:14

[김영재 기자] “요즘 연기하는 것이 재밌다...흥이 나서 하고 있다”

배우는 전문직이다. 이와 관련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전문직을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한 직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체계적 지식, 복잡한 업무, 도덕성 요구, 높은 자율성 등의 전문직을 지칭하는 통상적 특성 중에서 배우는 무려 세 가지 이상의 항목에 중복을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배우는 연기라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전문직인 것이다. 지금도 많은 미래의 배우들이 누군가에게 연기를 배우고 있다.

동시에 연기는 기술 아닌 사람의 결이다. 기자가 누차 사용하는 표현이지만, 연기에는 사람의 색과 결이 묻어난다. 며칠 전 이세돌 기사와 알파고와의 대국을 근거로 인공지능이 사람의 업을 대체 가능하다는 취지의 방송을 시청했다. 이 가운데 과연 배우는 기계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직업일 것인가. 물론 알파고가 그랬듯이 딥 러닝 형식으로 작동하는 기계는 시쳇말로 ‘발연기’를 하는 어떤 이보다 더 멋진 연기를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연기는 예술이고, 배우는 예술가다. 예술마저 인공지능에게 정복된다면 과연 인간은 존재의 가치가 성립되는 동물일까. 멀리 돌아왔지만, 기자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연기는 기술이되 또한 개인의 성격, 행동 양식, 가치관 등이 총집약된 하나의 표현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질 수밖에 없다. 10대, 20대, 30대, 40대. 2차 성징뿐 아니라 인간의 뇌에는 여러 차례의 성징이 다가온다.

김주혁(44)은 20대 후반 SBS 8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배우다. 그리고 그때부터 약 1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년만 더 있으면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 1년이라는 시간도 누군가에게는 영속성을 가지는 영원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무려 열아홉 번이나 반복해왔다. 아마 그동안 김주혁은 많은 변화를 거쳤을 것이다. 수염이 굵어지고, 몸이 근육질로 변하는 것 같은 눈에 띄는 변화뿐 아니라 생각의 변화 말이다.

취재진은 그간 연기의 톤이 어떻게 변했는지 물었다. 사실 영화를 사랑하고, 배우를 좋아하는 이가 바라보기에 김주혁은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지, 톤의 변화를 느낄 순 없었다. ‘프라하의 연인’에서의 하나,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의 둘, ‘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의 셋, 그리고 최근 ‘비밀의 없다’ ‘공조’에서 비롯된 악역으로서의 넷. 캐릭터 변신 정도가 눈에 띄었다면 띄었달까. 이에 김주혁은 “이제 앞으로 받을 것 같다. 정말로. 느끼는 것이 많이 있다”고 운을 뗐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가 이해 못하는 것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과 막연하게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내가 하는 행동을 예로 들겠다. 확신을 갖고 하는 것과 ‘이런 것일거야. 이런 방향이 잘하는 느낌이야. 이렇게 하면 잘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라고 생각하면서 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그런 욕심은 이제 전혀 없다. 저곳으로 가야 하니까 가는 것이고, 무엇을 짚고 있는 중이다. 그저 원하는 바가 있으면 머릿속에 드는 생각대로 하면 그만인데, 굳이 다른 것을 짚고, 다르게 가고, 다르게 말하려고 해야 더 잘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 바로 욕심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다 겉치레고, 작위적이라고 생각한다.”

40대의 김주혁은 나이 듦을 이해의 과정으로 표현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도시화의 영향에 따라 참 많은 사물들과 더불어 정말 많은 숫자의 타인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중이다. 성인이 되고, 경제력을 갖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상황을 내 뜻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이지만, 실은 어떤 누구도 주변 환경을 제 뜻대로 조정할 순 없다. 그것이 인생이다. 아마 김주혁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리라.

욕심 대신 개인이 욕심하는 방향을 ‘김주혁 스타일’로 추구하는 그가 선택한 또 하나의 영화가 ‘장미 대선’이 열리는 5월9일 스크린에 개봉한다. 참 얄궂은 중첩이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고, 영화의 운명을 결정짓는 어느 날이 하루 날에 중복되는 것 말이다. 많은 수의 영화들이 개봉 첫날 성적에 맞춰 흥행 여부가 결정된다. 과연 김주혁의 새 영화는 어떤 결과를 받아들일까. 제목 소개가 늦었다.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감독 정식, 김휘)’다.

유일한 증거는 잘려나간 손가락뿐인 의문의 살인 사건에 경성의 재력가와 정체불명의 운전수가 얽히는 이번 영화에서 김주혁은 4개 국어와 능숙한 피아노 실력까지 두루 갖췄지만 베일에 싸여있는 남자 남도진 역을 맡았다. 더불어 그는 초라한 행색 뒤에 과거를 감춘 최승만을 연기하는 고수와 ‘1998’ 앙상블을 이뤘다. 여기서 1998은 두 남자의 데뷔 년도. 또한, 그는 사건을 무마하려는 변호사 윤영환을 연기하는 문성근과 연기 호흡을 맞췄다.

“고수와 데뷔 년도가 같은 것은 이번 영화 인터뷰 전까지 모르는 사실이었다. 고수는 연기를 진지하게 임하는 친구다. 배우 김주혁은 상대 배우에게 맞춰주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다. 단언컨대 그것만큼은 내가 전문 배우다. (웃음) 수비형 배우라고 불러도 좋다. 어떤 배우가 오건, 진지하든 진지하지 않든, 그 리듬을 맞춰가면서 연기한다.”

“문성근 선생님과의 연기는 참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연기를 잘하는 사람과 연기할 때는 얻는 것이 많다. 내가 한 5를 할 수 있다면, 잘하는 사람과 연기할 때는 나도 모르게 6에서 7을 오가는 기량이 나온다. 의식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나오게 된다. 양보를 받아서 시쳇말로 연기를 치는 거니까. 그래서 배우들은 좋은 연기자들과 같이 캐스팅 되는 것을 희망한다. 다른 것 없다. 서로 더 큰 것을 주는 상호 보완의 관계가 되는 셈이다.”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20세기 최고의 서스펜스 소설로 손꼽히는 빌 S. 밸린저의 1955년작 ‘이와 손톱’을 원작으로 두고 있다. 이와 관련 그것이 소설이든, 무엇이든 원작이 있는 영화는 관객들에게 균질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아마 다수에게서 인정 받은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일정 수준 이상의 구조성과 완성도가 이유일 것이다.

이번 영화 또한 2017년 개봉작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단단함과 옹골참을 스크린을 마주한 이들에게 선사한다. 물론 그것이 50년대의 감성인지, 현대의 감성인지는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는 담보하는 영화다. 참 많은 영화들이 완성도에 귀를 기울이면 재미를 잃고, 재미에 관심을 기울이면 완성도를 잃는다. 김주혁은 중후반에도 한 호흡으로 가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원작은 내 취향에 안 맞아서 읽다가 재미없어서 안 봤다. 하지만 취향의 문제일 뿐 원작 덕분에 이번 영화는 시나리오가 탄탄하다. 따로 쓴 시나리오보다 단단한 느낌을 준다.”

“이미 책을 독파하신 분들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을 따라잡을 순 없다. 각자 다른 상상력을 하니까. 그럼에도 초반의 긴장감이 중후반에도 한 호흡으로 간다. 원작의 힘이자 편집의 힘이다. 편집이 잘 됐다고 생각한다.”

악역에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감탄이 나오지만 그저 연기로 다가오는 경우, 연기도 평범하고 감탄도 안 나오는 경우, 연기가 너무 실감나서 악역과 배우가 동일시되는 경우. 김주혁은 후자다. 영화 ‘비밀은 없다’에서의 선거가 우선인 아버지 종찬 역, ‘공조’에서의 범죄 조직의 리더 차기성 역은 모두 악역과 배우가 동일하게 여겨졌다. 이에 대해 김주혁은 미친 사람에게 그 자신은 미친 사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감나는 악역에 대한 칭찬은 언제나 감사하지만, 무슨 작품을 하든 나는 악역을 대중이 생각하는 문자 그대로의 악역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난 악역이니까 보여줘야지’라고 다짐하면서 연기하는 것은 매력이 없는 것 같다. 무엇이든 그 행동에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연기한다. 내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고 공연한다. 미친 사람은 본인이 미친 사람인지 모른다.”

“악역을 즐기는 중이다. 내가 생전 할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에서 오는 짜릿함이 있다. 악역을 연달아 하면서 소극적인 마음과 적극적인 성격을 오갔는데, 요새 또 바뀔 것 같다. 적극적인데 외향적이지 않은 성격이 될 것 같다. 풀어서 말하자면 적극적인데 나는 무얼 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상황에 충실한.”

“다른 취재진에게도 말씀드렸지만, 나는 연기관이 있다. 스릴러라고 스릴러처럼 하면 안 된다. 멜로도 멜로처럼 연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배우는 인물의 상황에 맞게 움직이는 존재고, 장르는 감독이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배우들은, 최근 추세는 너무 그 장르에 맞춰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든다.”


의견의 통일 및 합치가 필요한 사회를 살아가는 다수 중 하나로서의 인간은 결국 엇비슷한 생각들을 품고 산다. 하지만 배우는 다르다. 그들의 가슴에는 저마다의 불꽃이 빛을 내뿜고 있다. 배우의 연기론을 들을 때는 그 생각이 더욱 짙어진다. 20년차 배우 김주혁. 이제는 연기뿐 아니라 연출에도 관심이 무거워지지 않았을까. 먼저 김주혁은 “이번 영화는 긴박감이나 편집적인 부분이 좋았다. 음악도 괜찮았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연출에 관한 욕심을 묻는다면 ‘전혀’라고 답하고 싶다. 해보고 싶긴 하지만, 아직 나는 능력이 안 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역량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 같이 할 의도가 있다면, 내가 보완해 줄 부분이 있을 것이다. 더불어 감독이랑 같이 한다면 나도 배우면서 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 왜냐하면 배우가 보는 시선과 감독이 보는 시선은 다른 것이 있으니까. 분명히. 하지만 전에도 이야기했듯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이것을 유속이 빨라진 것과 느려진 것에 비유해야 할지, 물이 맑아진 것과 혼탁해진 것과 비교해야 맞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한국 영화계는 남초(男超) 현상을 겪고 있다. 이에 관해 한석규는 남성이 도드라지는 영화가 돋보이는 최근 시류를 두고, 영화계가 노쇠하고 병들어 있다는 사뭇 자극적이지만 대배우의 직관성이 돋보이는 발언을 취재진에게 안겼던 바 있다. 더불어 그는 사람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은 ‘석조저택 살인사건’ 또한 당면하고 있는 문제다. 임화영이 연기하는 정하연 역이 로맨스의 한 축으로서 존재하지만, 인물의 행동성과 존재성에는 특이점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사실. 먼저 김주혁은 남초 현상의 지적에 앞서 남자 배우들만이 필름을 가득 메우는 영화의 수컷 향에 관해 “이렇게 찍어보긴 처음이다”라고 운을 뗐다.

“현장에서 어색하긴 했다. 다 남자니까. 남자만 앉아 있어서 낯선 느낌을 받았다. 인터뷰나 제작발표회 때도 다 남자만 앉아 있고. (웃음) ‘공조’ 때도 비슷했다.”

“영화나 드라마의 남초 현상을 묻는다면, 문제를 공감한다고 대답하겠다. 여자 배우들이 할 수 있는 연기가 사실 너무 없다. 정말 목마를 것 같다. 문제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배우들이 조정할 수 있는 점이 아니다. 관객들의 방향성이고, 지금의 현상은 영화계가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등장하는 좋은 영화가 스크린에 걸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의 기호에 따라 주류는 바뀔 수 있다.”

마지막으로 김주혁은 그를 즐겁거나 힘나게 하는 것으로 맛집 탐험을 꼽았다. 더불어 집 앞에 만발해있는 꽃들과 그것을 매개로 향유한 봄날을 대답으로 전했다. 이어 꽃을 좋아하면 그때부터 늙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어떤 기자의 말에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고, 김주혁은 손사래를 치며 지금 프로필 사진은 꽃 아닌 KBS2 ‘해피선데이-1박2일 시즌3’ 때 사진이라고 자기 변호를 했다. 인간 김주혁의 감성이 현장을 채웠다. 봄날의 훈풍처럼.

“맛집 찾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 맛집 찾는 건 재미없게 됐다. 방송에 너무 많이 나온다! 맛집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모두 줄을 서니 먹을 수가 없다. 나만의 맛집들이 많이 있어야 된다. 하나 하나 찾는 것이 재미다.”

“지금 집 앞에 꽃이 만발해 있다. 아파트 단지에 지나칠 정도로 많은 꽃들이 피어있다. 아파트 화단 정리를 너무 잘했나보다. (웃음) 날씨까지 좋으니까 나와서 서있는데, 기분이 좋더라. 봄날을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그때 참 좋았다.”


인터뷰에서 만난 김주혁은 냉소와 친절이 공존하는 배우였다. 이와 관련 그는 “내 말투가 그렇다. 던지는 스타일이고, 말을 꾸며서 못 하는 스타일이다. 처음 보면 말을 쉽게 던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상처가 되는 말은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한, 김주혁은 대중이 그를 기억하는 중산층 이미지에 관해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겉으로 표현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난하게 안 살았다”라며, “가난한 느낌을 표현하는 것은 나의 딜레마다. 차기작 ‘흥부’도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그들을 이해할 순 있다. 그러나 삶을 살아본 것은 아니다. 결국 표현에 제약을 받게 된다”라고 이야기했다.

가난한 느낌의 표현이 딜레마라고 이야기하는 김주혁. 어쩌면 ‘나는 부유하다’라는 의미로 곡해될 수 있는 것을 거침없이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아마 그 자신이 먼저 꺼냈던 말을 꾸미지 못하는 솜씨가 이유일 테다. 하지만 배경에는 가난과 등을 졌다는 사실 아닌 단점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20년차 배우의 여유가 큰 부피를 차지했으리라.

단점은 숨기고 싶은 것이다. 어떤 심리 치료에서는 단점을 이야기하는 것을 스트레스의 해소법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말을 이어가는 김주혁의 표정에서는 그 어떤 강제성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약점을 이야기했다. 자기 술회에 수반되는 덤덤한 감정이나, 타인의 특징을 꺼내듯 스스로를 객관화시키는 것 하나 없이 김주혁은 스크린보다 더 깊고 넓은 내면을 취재진에게 증명했다.

초탈이라는 단어가 있다. 세속적인 것이나 일반적인 한계를 벗어난다는 뜻이다. 약점의 고백과 더불어 김주혁은 “요즘 연기하는 것이 재밌다. 내가 맞는지, 안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 스스로는 흥이 나서 하고 있다. 관객들의 반응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 재밌다”라고 고백했다. 약한 부분을 숨기지 않고, 대중에게 휘둘리지 않은 채 연기에 흥을 느끼는 배우 김주혁. 20년차의 두 배수인 40년차 김주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스스로에게 솔직하며 나름의 기준을 갖춘 배우의 존재가 드문 현실 앞에서 그의 존재는 고맙기만 하다.

한편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열리는 5월9일 개봉했다.(사진제공: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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