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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영인터뷰①] ‘자체발광 오피스’ 고아성, 행복의 갑(甲)을 느끼다

2017-05-19 17:28:50

[김영재 기자 / 사진 조희선 기자] “행복으로 충만한 시간들...정말 행복했다.”

가상에서 꾸며진 거짓으로 시청자가 마주 앉은 사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드라마는 역설의 미디어다. 그리고 여기 미세먼지처럼 만연한 현실을 가짜지만 진실하게 지적한 어떤 드라마 한 편이 5월4일 종영했다. MBC 수목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극본 정회현, 연출 정지인 박상훈)’다. 최고 시청률 7.4%(닐슨 코리아 기준)는 아쉬운 성적이지만, 사회의 대립 구도 갑(甲)과 을(乙)을 코믹한 접근 아래 극에 녹여낸 점은 칭찬을 불러 모았다.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어언 5년 째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은호원을 연기한 배우 고아성을 16일 서울시 성동구 한 카페에서 bnt뉴스가 만났다. 은호원은 자학의 시대가 낳은 흙수저의 표준이지만, 극중 대사를 빌리자면 ‘믿을 것도 없는데 지르는 게 특기인’ 캐릭터. 갑을 관계에 녹아든 이 21세기형 캔디 캐릭터는 ‘솔직 갑’ ‘부활의 아이콘’ 등의 별명을 생성시켰고, 더불어 고아성은 주연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Q. 16회 동안 고생이 많았다. 소감을 듣고 싶다.

“드라마 종영 인터뷰는 처음이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될지 모르겠다. (웃음) 영화 인터뷰는 개봉을 앞두고, 뭐라고 할까? 그래도 영화에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이야기를 보탠다. 하지만 종영 인터뷰는 드라마가 모두 끝난 이후에 이뤄진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 옳은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동안 ‘자체발광 오피스’를 시청해주셨던 분들에게 감사하다.”

Q. 회사원 연기는 ‘자체발광 오피스’가 두 번째다. 피상적으로 접근하자면 영화 ‘오피스’의 인턴 이미례와 ‘자체발광 오피스’의 계약직 은호원은 같은 처지의 인물이다. 하지만 성격은 전혀 다르다. 어려움은 없었는지?

“처음에 ‘자체발광 오피스’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마음이 곤란했다. 만약에 ‘오피스’의 이미례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이 작품을 본다면 은호원은 정말 천방지축, 천진난만 회사원인데 이런 차이가 수긍될 지 우려했다.”

“서로 워낙 다른 작품이기에 어려움은 없었고, 아예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어떻게 보면 회사라는 같은 공간이지만, ‘오피스’를 할 때는 회사에서 일어나는 어려운 일들이나 불편한 인간 관계에 집중했다면 ‘자체발광 오피스’는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 돈독한 인간 관계 및 작은 로맨스 같은 긍정적인 부분에 더 포커스를 맞췄다.”

‘오피스’라는 단어의 반복 외에도 등장인물의 배경 또한 비슷한 상황. 게다가 인턴과 계약직은 거시적으로 볼 때 모두 비정규직에 속한다. 또한,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도 정규직의 활성화를 강조하는 현실. 예술과 시대의 연관은 당연한 것이지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현실에도 불구 그에게 현 세태에 관심이 많은지 물었다.

“많다. 정말 많다. 그런데 영원히 의견을 표현하진 않을 것이다. 그냥 관심이 많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할 일을 다 하고 있지만, 나로 인해서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 분들에게 영향을 주고 싶진 않다. 나로 인해서 생성되는 심상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의견에 나를 보내고 싶지 않다. 모두 각자의 탄탄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작품의 감상에 어떤 영향, 극단적으로 말하면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의견을 보태니 그는 “그런 것도 있을 수 있고, 아니면 나에 대한 평소 생각이나 이미지가 있을 텐데 그로 인해서 바뀌고 싶진 않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Q. 은호원이라는 등장인물을 돌이켜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알고 싶다.

“미숙하지만 당당한 점이 정말 좋았다. 처음에, 극 초반에 대본을 보면 너무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치고 있더라. 사내 메일을 잘못 보낸다든가, 전 직원에게 보낸다든가. 이런 스케일 큰 사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응원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감독님께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나도 살면서 실수를 ‘어마무시하게’ 많이 했고, 감독님이 ‘실수는 사람들이 많이 하지만 극복하는 과정에도 의의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씀해주셔서 이후에는 (은)호원이가 가진 미숙하지만 당당한 점이 정말 좋았다.”

“캐릭터 연구할 때 비유하자면 ‘식탁 위에까지 팔딱팔딱 뛰고 있는 죽지 못한 생선’을 생각했다. 정말 끈질기고 치열한 느낌. 드라마는 취준생 은호원의 이야기로 시작됐지만, 취준생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누구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치열함이라고 할까. 개인적인 을의 감정들을 다 일으켜보고 싶었다.”

연구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호응을 얻는 것은 배역을 체험해 보는 것이다. 어떤 배우는 서울역에서 잠을 청하며 노숙자의 생리를 깨달았던 바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얻는 것은 많을지언정 위험도가 매우 크다. 아역 배우 출신 고아성은 아르바이트나 직장 생활 경험이 없었을 터. ‘미생’ 같은 미디어의 편린으로 은호원을 이해하는 것에 부족함은 없었는지 물으니 “출산 연기도 마찬가지”라는 답이 나왔다. 고아성은 SBS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서봄을 연기하며 해당 연기로 화제를 모았다.

“끝내 도달하지 못한다는 점은 어느 역할을 맡든 그렇다.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것을 실제로 겪어본 마냥 하는 것이 연기다. 그래서 늘 부족함을 느낀다. 예전에 ‘설국열차’라는 영화에서 요나 역을 연기했을 때의 일이다. 요나는 주변에 경험자도 없고, 아예 새로운 시대의 환타지기 때문에 레퍼런스를 구할 수도 없고, 오로지 내 상상력에 의존해야 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점이 너무 어려워서 나중에는 현실에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었다. 근처에 있을 법한 인물을.”

“하지만 회사원도 어떻게 보면 주변에 많고, 당장 가족이나 지인들도 모두 회사원인데 그렇다고 해서 결코 쉬운 것이 아니더라. 항상 연기는 어렵다. 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을 하니까.”


Q. 시한부의 주인공은 은호원이 아닌 도기택이었다. 맨 처음부터 결말을 알고 연기한 것인지? 아니면 등장인물과 똑같이 시한부라는 생각으로 연기한 것인지 궁금하다.

“시한부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감독님께서 안 알려주시더라. (웃음) 시한부 삶 속에서 더 대담해지는 용기가 생길 것이라고 나만의 개연성을 쌓아왔지만, 결국 은호원은 시한부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 폭탄 같은 기질을 계속 유지해도 되는 것일까 고민이 많았다. 이에 감독님은 ‘보통 여자 주인공에게는 하나의 무기가 다 있다. 은호원은 무서울 것이 없는 점이 무기다’라고 말씀하셨고, 원래 은호원이 가지고 있는 기질이라는 생각 속에서 연기했다.”

Q. 은호원-도기택(이동휘)-장강호(이호원). 셋이 응급실을 탈출해서 다리 위에 나란히 있을 때는 작위적인 인상이 강했다. 하지만 홈쇼핑 사은품 건을 해결한 이후부터 셋의 ‘케미’가 완성되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은장도’는 너무 애잔하고, 정말 각별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실제로도 배우들과 더 돈독했다. 예전에 ‘오피스’ 영화를 준비할 때 어떤 설문조사를 봤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을 묻는 조사였다. ‘해고나 갑질 같은 부당한 대우’ ‘과도한 야근’ ‘적성’ 등 쟁쟁한 후보들을 다 제친 1위가 ‘불편한 인간 관계’더라.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로 회사 생활이 아무리 힘들지만, ‘돈독한 인간 관계’가 돋보였다. ‘은장도’ 같은 동기가 있으면 정말 든든할 것 같다.”

극중 은호원은 도기택을 대신해 하지나(한선화)의 잘못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린다. 가상을 그리는 드라마의 특성이 빚어낸 한 권의 도덕책이다. 하지만 고아성은 해당 상황에 처한다면 실제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왜냐하면 ‘은장도’는 서로의 바닥까지 훑어본 신기한 관계 아닌가. 잃거나, 빌려주거나, 꾸거나 하는 관계가 아닐 것 같다. 물질적인 이해 관계를 전혀 계산치 않는 관계일 것이다. 벼랑 끝에서 만난 인연이기 때문에 손해 같은 것을 계산 안 하고 도와줄 것 같다.”

Q. 정지인 PD와 정회현 작가. 제작진의 두 축이 모두 여성이다. 동성의 장점이 있었는지?

“딱히 없던 것 같다. 그냥 화장실에서 같이 양치할 수 있다는 점? 감독님이랑 양치를 많이 했다. (웃음) 어른이 되면서 계속 내가 가진 편견이 무엇일지 점검하게 되더라. 최근에 깨달은 점인데, 편견은 무에서 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에서 무가 되는 것 같다. 여자 감독님이라든지, 여자 주인공이라든지 모두 드문 일 아닌가. 이런 상황을 많이 만들고 싶다.”

최근 드라마를 시청할 때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잦다. 이유는 대사의 생생함이 보는 이를 소름 돋게 할 정도로 발전했기 때문. ‘자체발광 오피스’도 마찬가지다. 은호원이 내뱉는 ‘그 유리 천장은 방탄유리인가요’ ‘패밀리라서 가족을 신용 불량자로 만드나요’ 등의 대사는 오직 대사만으로 시청자를 웃게 만든다. 이 외에도 열거하기 힘든 대사들이 많았다. 이에 고아성은 “대사가 주는 힘이 연기에 도움이 됐다”라고 운을 뗐다.

“작가님의 힘인 것 같다. 작가님이 대사를 워낙 맛있게, 맛깔나게 쓰신다고 할까. 그런 부분이 있다. 연기라는 것이 남이 하는 말을 글로 받아서 내가 내뱉는 말처럼 해야 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작가님의 대사는 어색함이 없이 그냥 머릿속에서 나오는 말처럼 아주 자연스러웠다. 이해가지 않는 대사가 하나 없었다”


Q. 오대환과 ‘오피스’에 이어 ‘자체발광 오피스’까지 연이은 공연이다. 인연이다. 이런 우연 아닌 인연에 관해서 두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하다.

“‘자체발광 오피스’ 정지인 감독님이 예전에 드라마 단막극을 하셨다. 단막극은 아니고, 어떤 작품이 12부작 정도 있으면 2부작씩 감독님과 작가님을 계속 다른 식으로 해서, 출연진도 바뀌는 드라마가 있었다. MBC ‘심야병원’이라고. 그 드라마에서 류현경과 박정민이 나왔다. 그래서 감독님께서 두 사람이 출연하는 ‘오피스’도 자연스럽게 찾아보셨고, 그 와중에 ‘오피스’ 오대환 오빠가 눈에 들어오셨다고 들었다. 사실 이번 작품은 오빠 빼고는 전에 만났던 배우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 너무 반갑고, 의지를 많이 했다.”

Q. 남자 배우들 사이에서 피어났을 장신영, 한선화와의 ‘케미’가 궁금하다.

“아무래도 여자 배우들이랑 더 친해지게 된다. 대기실도 같이 쓰게 되고. 공유하는 지점이 많아진다. (한)선화 언니랑 촬영장 아닌 밖에서 만났던 적도 한 번 있다. 선화 언니를 알게 돼서 정말 기쁘다.”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은호원의 옷은 언제나 검정 혹은 네이비 일색이다. 반면 하지나(한선화)는 매일 옷이 달라진다. 이와 관련 고아성은 ‘제68회 칸 영화제’에서 특정 브랜드 의상을 협찬 받을 정도의 패셔니스타. 돋보이는 패션 센스를 가진 한 사람으로서 은호원을 더 돋보이게 하고픈 욕심은 없었는지 알고 싶었다.

“옷 입는 것을 좋아하긴 한다. 패션에 관심도 많다. 하지만 그것을 작품까지 가져오고 싶지 않다. 작품에서는 작품에 충실하고 싶다. (한)선화 언니 역할은 원래 그렇다. 하지나 캐릭터 설명 중 이런 것이 있다. ‘월급의 70%를 겉모습에 쓰는’이라고. 화려한 의상이 옳은 역할이다. 의상이나 화장은 작품 할 때 오히려 더 자유롭다. 내가 많이 신경 쓰는 것은 홍보할 때나, 영화제에 나갈 때다. 그때는 정말 신경을 많이 쓴다.”

한선화는 “늘 현장에서 웃음을 잃지 않더라. 많이 배웠다고 말했던 적도 있다”라고 고아성을 칭찬했던 바 있다. 이에 그는 “정말 재밌어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쉽지 않은 현장이었지만, 정말 재밌었다. 모두 스태프 분들 덕분이었다”라며, “그동안 메시지가 강하거나 진중한 역할을 많이 했다. 코미디 장르는 처음이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고아성은 “사람들 앞에서 코미디 연기를 하는 것이 새롭더라. 낯설었지만, 결과적으로 연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신 부들이 현장 스태프 분들이다. 특히 코미디 요소는 같은 공기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머를 던지는 타이밍처럼 사소한 것들이 전체를 결정한다. 그런 포인트들을 스태프 분들과 같이 공유할 수 있었다.”

스태프들과의 교감을 이야기하던 중 특히 카메라 감독과의 연결 고리를 언급했다. 미묘한 차이를 교감하는 느낌을 받았고,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원래 카메라 감독님과 정말 살갑게 지낸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난히 친하게 지냈다. 카메라 감독님이랑 같이 워킹할 때가 있다. 이동차나 헨드 헬드. 예를 들어서 시한부인 것을 알게 된 후의 신에서 이동차가 나를 둥글게 감사는 신이었는데, 미묘한 차이를 카메라 감독님이 알아서 교감 속에 맞춰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 컷을 찍고 나니까 ‘정말 교감이 됐구나. 이런 게 호흡을 맞추는 재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카메라 감독님에게 직접 얘기할 수는 없었다. 쑥쓰러우니까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종방연 때 말씀해주셨다. ‘카메라 찍을 때 사실 열 번 중에 네 번은 재밌었다”라고. 더불어 배우랑 교감이 느껴질 때를 말씀하시면서 출근 신도 언급해주셨다. 정확히 그 장면을. 정말 감사했다. 아직도 생각난다.”


Q. 작품에 푹 빠진 것 같다.

“원래 그렇다. 하지만 스태프 분들과 이토록 가까웠던 적은 처음이다. 이렇게 사비를 많이 들여서 간식을 쐈던 적도 없다. 집에 있는데, 정말 맛있는 찹쌀떡이 있더라. 누가 사온 그것을 보면서 갑자기 스태프 생각이 났다.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라는. 세 달 동안 이렇게 살았다. 행복으로 충만한 시간들이었다. 정말 행복했다.”

Q. 결국 서우진과 연결됐지만, 개인적으로 키다리 아저씨 서현(김동욱)과 은호원의 호감이 사랑으로 이어지길 바랐다. 이와 관련 ‘자체발광 오피스’ 시즌2 기약은 힘든지?

“만약 한다면 꼭 참여하고 싶다. 단, 이왕이면 모든 출연진과 스태프 분들도 다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웃음) 드라마는 A팀과 B팀이 있는데, B팀까지도 전부 다 함께하고 싶다. 이번 작품은 B팀 스태프 분들마저 정말 좋았다.”

Q. 나중에 드라마를 또 촬영한다면 같은 제작진을 만나고 싶겠다.

“그러고 싶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같은 스태프 분들 만나는 것이. 정말 추울 때 시작해서 함께 고생했던 사이다.”(사진출처: bnt뉴스 DB, MBC ‘자체발광 오피스’ 홈페이지)

▶[종영인터뷰②]로 이어집니다.
[종영인터뷰①] ‘자체발광 오피스’ 고아성, 행복의 갑(甲)을 느끼다
[종영인터뷰②] ‘자체발광 오피스’ 고아성의 ‘Let It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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