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루’, 인간의 나약함에서 피어난 영화의 변별력 (종합)

2017-06-07 19:07:19

[김영재 기자 / 사진 백수연 기자] 세 남자의 ‘하루’가 개봉한다.

영화 ‘하루(감독 조선호)’의 언론시사회가 6월7일 오후 서울시 성동구 CGV 왕십리에서 개최됐다. 이날 현장에는 조선호 감독, 김명민, 변요한, 신혜선, 조은형, 유재명이 참석했다.

‘하루’는 매일 눈을 뜨면 딸이 사고를 당하기 2시간 전을 반복하는 남자가 시간에 갇힌 또 다른 남자를 만나 그 하루에 얽힌 비밀을 추적해 나가는 미스터리 스릴러.

김명민이 딸의 죽음이 반복되는 남자 준영을, 변요한이 지옥 같은 시간에 갇힌 또 다른 남자 민철을, 조은형이 준영이 살려야만 하는 하나뿐인 딸 은정을 연기했다. 그 외에 충무로의 라이징 스타 신혜선이 민철의 아내 미경 역을, 독보적 신 스틸러 유재명이 반복되는 하루의 비밀을 간직한 남자 강식 역을 맡아 극에 힘을 보탰다.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 ‘원스 어폰 어 타임’ ‘홍길동의 후예’ ‘더 웹툰: 예고살인’의 조감독을 거친 후 이번 작품이 입종작인 조선호 감독은 “하루가 반복된다는 설정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앞으로도 있을 매력적인 소재다”라며, “기존 영화들이 장르적으로 사건을 풀어나간다거나 인간적 성장을 이뤘다면, 나는 계속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 인간의 감정을 바라보고 싶었다. 반면 누군가를 계속 죽여야 하는 사람의 마음도 풀어내고 싶었다”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하루’는 ‘살려야 한다, 하루를 바꿔서라도’라는 광고 문구가 눈길을 끈다.

여기서 “살려야 한다”라고 말하는 주체는 아버지와 남편으로, 두 사람은 객체인 딸과 아내를 구하기 위해 같은 상황을 반복한다. 과거에는 ‘시간 여행’이라는 단어로, 현재는 시간이 미끄러진다는 뜻의 ’타임 슬립(Time Slip)’이란 표현으로 요약되는 영화인 것. 영화 ‘빽 투 더 퓨쳐’가 지향성을, ‘엣지 오브 투머로우’가 반복성을 강조했다면 ‘하루’는 후자인 셈이다. 과연 주인공들은 어떤 식으로 목표를 이루고, 시간을 탈출할지 궁금증을 모으고 있다.

더불어 ‘하루’는 충무공 이순신부터 의사 장준혁, 마에스트로 강마에, 루게릭 환자 백종우, 페이스 메이크 주만호, 삼봉 정도전 등 겹치는 것 하나 없이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했던 김명민이 스크린에 수놓는 새로운 작품이라는 사실에도 주목할만하다. 또한, 지난해 개봉작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 누적 관객수 116만 8,740명이라는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던 변요한이 이번에는 손익분기점 이상의 성적을 기록할 수 있을지도 이목이 쏠린다.

#하루(A Day)의 연기


김명민이 연기했던 준영은 딸의 죽음을 반복해서 목격한다. 기자가 그 횟수를 세어보려 했지만, 너무 반복되는 나머지 중간부터는 포기했을 정도로 안타까운 사고는 계속된다. 반복되는 하루 그리고 딸의 죽음. 배우로서 힘든 배역이었을 터다.

먼저 김명민은 “상당히 힘들었다. 마음도 힘들고. 매일 똑같은 촬영을 같은 장소에서 하다 보니까 심신도 지쳤다”라며, “나 같은 경우는 현장 모니터를 전혀 보지 않기 때문에 과연 어떻게 찍히고 있는지, 우리가 잘하고 있는지 모른다. 1년 만에 보는 것 같다.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담은 채로 연기했다가 살아 움직이는 완성된 혼이 실려진 영화를 보는 것이 1년여 만이다. 그래서 아직도 먹먹하고, 감회가 새롭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관객이 힘들었던 만큼 촬영하는 사람들에게도 정말 지옥 같은 하루하루였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에 조금씩 다른 감정들과 미묘함을 표현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런 부분들이 이 한 시간 반이라는 러닝 타임 내내 얼마나 녹아들었는지 궁금했고, 바람이었고, 그런 마음 하나로 연기했다”라고 말했다.

#하루(A Day)의 연출


‘하루’는 정말 약 2시간의 하루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영화다. 반복이라는 것은 지금이 또 다시 재현된다는 이야기.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한 관객으로서는 난색을 표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조선호 감독은 “하루가 반복되는 설정은 매력적인 만큼 똑같은 상황들이 반복돼서 관객들이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다. 변화를 주더라도 캐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다”라며, “어떤 상황에서의 변화점, 하루가 반복되면서 다른 선택을 했을 때의 지점을 표현하는 데 노력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인물들이 하루 전에 어떤 선택을 해서 실패하고, 다시 깨어났을 때의 감정이었다. 다른 선택, 다른 행동, 다른 감정에 신경 썼다”라고 말했다.

#하루(A Day)의 외양


이번 영화는 하루가 반복되는 극의 특성상 배우들의 외양이 고정되어야 했다. 신마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불편은 ‘하루’에서만큼은 없었겠지만,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옷을 입은 동료들을 만나야 하는 것은 곤욕이었을 법하다.

이에 김명민은 “의상 팀이 힘들었을 듯하다. 할 것이 없어서”라며, “처음에는 한 벌이라서 편했다. 하지만 똑같은 것이 계속 반복되니까 너무 식상하더라. (변)요한이를 봐도, (유)재명이를 봐도 매일 피 칠갑한 똑같은 모습만 보니까 촬영 중반쯤 갔을 때는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라는 생각도 했다. 더불어 (변)요한이는 외모 관리했겠지만, 나는 그 외모가 그 외모라 관리할 것이 없었다. 비주얼적으로 모두 포기 상태였다”라고 말했다.

유재명은 “나는 피 분장을 많이 했다. 피 분장 특유의 냄새와 끈적함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데, 나중에는 분장이 자연스럽게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더라. 그래서 다른 현장에서 피 분장을 해도 이제는 전혀 불쾌하지 않을 것 같다. ‘득템’을 한 기분이다”라고 회상했다.

신혜선의 대답은 모두를 웃게 했다. 그는 “나는 혼자 두 벌을 입었다”라며, “내가 맡았던 미경의 반복되는 하루는 거의 택시 안에서 죽어있는 상태였다. 얼굴이 머리로 다 가려진 덕에 화장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아서 편했다”라고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모두의 맺음말이 이어졌다. 먼저 유재명은 “오늘 영화를 처음 봤다. 보는 내내 머리가 어지럽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물이 났다. 영화의 진실된 마음을 잘 읽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관람을 당부했다. 이어 신혜선은 “스크린으로 보니까 현장에서 느꼈던 열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같다. 좋은 결과가 있을 듯하다”라고 흥행을 소원했다.


영화 ‘하루’는 ‘타임 슬립’을 소재로 다루지만 그 안에는 소재가 가지고 있는 허구성 짙은 판타지 대신 인간의 선택이 불러일으키는 나비 효과가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이에 인간이기에 할 수 밖에 없는 결정과 존재의 나약함은, 상상과 과장의 미디어인 영화를 등에 업고 관객에게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단순히 아버지와 남편이 딸과 아내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고군분투하는 처절한 구원기 혹은 모험기를 기대했던 누군가에게는 묘한 전개다.

하지만, 그 묘함이 나쁘게 다가오진 않는다. 유월 국내 극장가는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원더 우먼’ ‘미이라’ 등 할리우드의 공세 속에 한국 영화의 설 자리는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 이 가운데 대량의 자본이 투입된 영화들 앞에서 ‘하루’가 가지고 있는 뻔하지 않은 전개 그리고 메시지는 영화가 변별력이라는 것을 갖도록 돕는다. 과연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는 ‘타임 슬립’은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영화 ‘하루’는 6월15일 개봉 예정이다.

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