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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f②] 이희진, 운명 같은 우연을 만나다

2017-08-26 12:47:23

what if...“다른 길을 선택했었다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이 질문. 화려한 스타들이라고 살아오면서 단 한 가지 꿈만 쫓았으랴. 그들의 마음속에 고이 접혀있는 또 다른 모습들을 꺼내보고 싶었다. 단지 말과 글로만 설명되어지는 것이 아닌, 실제 그 모습으로 꾸며진 채로! bnt 기획 인터뷰 ‘What If’는 스타가 꿈꿨던 다른 모습을 실체화 시켜본다. -편집자 주-


[김영재 기자] ‘What If’ 일곱 번째 주인공으로 배우 이희진을 만났다.

박복자(김선아)의 죽음과 죽음으로 시작과 끝을 맺은 JTBC ‘품위있는 그녀(극본 백미경, 연출 김윤철)’. 분명 주인공은 욕망을 낭비한 박복자와 욕망을 절제한 우아진(김희선)이었다. 하지만 백미경 작가는 출연진에게 다음의 말을 전달했다. “모든 분들이 언젠가는 꼭 한 번씩 주인공이 되는 회차가 있다. 그것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 작품을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글을 쓸 것이다.”

명사 ‘작가’와 관형사 ‘허튼’은 서로 상극인 것일까. 말은 현실이 됐다. 평소의 불륜극과 치정극이었다면 가을 낙엽처럼 바스러질 무의미한 등장인물들이 생기를 갖고 정말 주인공으로 거듭난 것. 이 가운데 기자가 꼽고 싶은 제일(第一) 주인공이자 로맨스의 주인공은 바로 김효주(이희진)다. 레지던스 호텔을 소유한 남편을 둔 파워 블로거이자 사모님 모임의 세 번째 혹은 네 번째인 그는 17회에서 띠동갑 연하를 앞에 둔 채 절절한 감정선을 펼쳤다.

핫 초코와 생크림을 벗 삼아 “우린 서로 관계에 대한 기대가 달랐어”라고 이야기하는 김효주를 보면 인륜을 벗어난 사랑이라도, 사랑의 순수함과 절절함은 퇴색되지 않는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과연 불륜을 차치하고 인간의 감정에 집중하게 만드는 일은 작가의 힘일까. 아니면 배우의 힘일까.

‘What If’ 일곱 번째 주인공은 배우 이희진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 그의 시작은 걸그룹 베이비복스(Baby V.O.X.)였고, 어느새 그는 뮤지컬, 연극,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를 섭렵한 어엿한 배우가 되었다. 기자가 이희진과 배우를 연관시킨 첫 작품은 MBC ‘최고의 사랑’이었다. 그래서 ‘What If’ 주인공으로 이희진이 결정되었을 때 기자는 그와의 인터뷰를 희망했던 바 있다. 질문을 건넸다. 최신작 ‘품위있는 그녀’ 이야기부터 배우 이희진의 이야기까지.

사전 미팅에서 만났던 그는 1990년대부터 활동해온 베테랑의 아우라를 말과 표정 그리고 배우다운 감정 표현을 통해 한껏 뽐내며 기자를 주눅 들게 했다. 하지만 그를 만난 모든 취재진이 인터뷰의 서두로 걸크러시의 정반대를 언급한 것처럼 기자 또한 세간이 평가하는 이희진의 정반대를 인터뷰에서 만났다. 그는 ‘What If’의 주제로 도예(陶藝)를 희망했다. 다른 길로서 도예가를 희망한 것이다. 서울 종로구 북촌의 어느 공방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What If①]에서 이어집니다.
[What If①] 이희진, 또 다른 품위를 기다리며
[What If②] 이희진, 운명 같은 우연을 만나다


Q. 공방에 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마주하고 있는 북촌의 공방이다. 분위기가 아늑한데, 이희진과 인연이 깊다고. 이곳이 어딘지 직접 설명하자면?

“특별한 취미가 없다. 뭔가를 배워보고 싶다든지, 실질적인 시도를 안 하는 스타일이다. E채널 ‘라이더스: 내일을 잡아라’라는 드라마를 찍었을 때 이곳에서 공방 사장님을 연기했다. 자연스럽게 도자기를 만져야 하는 신이 많았는데, 너무 재밌더라. 난 그 정도의 섬세함으로 다뤄야 되는 일인지 몰랐다. 섬세하게 다뤄야 하고, 조심히 다뤄야 하고, 또 장시간 집중해야 되는 작업이었다. 만지면서 기분이 좋았다. 사람 다루듯이 다뤄야 한다는 느낌?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기분 좋았다. 또 누군가의 손길 대신 나만이 완성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도예란 직업이 매력이 많다. 배우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상황이 닿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주윤경 도예가) 선생님에게 다시 말씀드렸다. 배우고 싶다고.”

Q. 배경은 공방이지만, 사진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영화 ‘사랑과 영혼’의 물레 신 대신 의상과 느낌이 도예와 상반되게 표현됐다. 마음에 드는가? 도자기 앞에서 너무 어깨를 드러내는 것 아닌지 묻기도 했다.

“나는 좋았다. 생각해보지 못한 콘셉트였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획기적이었다. 다음 번에 어느 분이 하실지 모르겠지만, 누군지 모르겠지만, 분명 그분도 같은 생각을 하실 듯하다. 도예라는 주제에 맞게 앞치마 입고 앉아서 물레를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흙을 만진다는 생각에 기분 좋게 왔는데 누우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도자기를 만드는 데에서 어깨를 보이는 것도 깜짝 놀랐고. 도자기를 만들면 왜 도예가 분들이 산으로 올라가는지 알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경건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주윤경 도예가) 선생님이 ‘도예가 남자들이 사랑할 수 있게끔 보여줘’라고 종용하시더라. 선생님이 특이하다. 특이한 성격의 분이다. 오늘 촬영은 100% 만족한다.”

Q. 옛날부터 도예에 관심이 많았다고?

“삼청동에서 친한 동생과 한두 번 정도 계속 시도했다. 그런데 기회가 안 닿았다. 내가 만든 그릇으로 가족이나 누군가에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선물한다는 것이 좋아 보이더라. 그래서 배우고 싶었다. 솔직히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감정이 붕 뜨는 직업이다. 그래서 정적인 것에 관심이 많기도 했다. 제일 먼저 시작한 취미는 퍼즐이었다. 하지만 단순했다. 풀 붙여서 액자로 만들면 끝이고. 어느 날 도자기를 사러 갔다가 도방까지 들어가게 됐는데, 흙이 너무 부드러웠다. 배우고 싶었지만 기존 수업의 인원이 만석인 상태라서 기다려야만 했다. 또 한 번은 작품에 들어가는 바람에 못 배우기도 했고.”

Q. ‘What If’의 주제는 ‘다른 길을 선택했었다면?’이다. 흙을 빚고, 흙을 굽는 도예가 이희진. 어떤가? 가수나 배우 아닌 새로운 직업을 꿈꿔보다는 것이 주는 느낌은?

“연예인을 보면 생활이 불규칙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요즘은 자격증도 굉장히 많이 따더라. 직업을 두 개 갖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평생 갈 수 있어서 좋았다. 도자기라는 것이. 그리고 섬세함이 정말 좋다. 할머니가 되서도 앉아서 흙을 만질 수만 있다면 할 수 있는. 또 덧붙이자면 요새 트렌드가 다 비슷하다. 그림 그리고, 글 쓰고, 사진 찍고. 너무 진부하고 싫다. 사진 다 찍을 줄 안다. 제일 잘 나오는 것이 휴대폰이다. 아이폰.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도예를 평생 직업으로 가져가면 내 자신도 행복할 것 같다. 누군가에게 가르쳐 주는 것도 행복하고. 성취도가 굉장히 클 듯하다. 갈아타고 싶은 생각도 있다.”


Q. 걸그룹 베이비복스 출신 배우 이희진이다. 또한, 연예계 21년 차 베테랑이다. 본격적인 연기의 시작은 2003년 뮤지컬 ‘펑키펑키’라고 들었다.

“맞다. 베이비복스 때다.”

Q. 아예 배우로 전향하겠다고 생각한 작품은 무엇인지?

“베이비복스 때 뮤지컬 하나, 시트콤 하나를 했다. 베이비복스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 ‘사랑은 비를 타고’라는 뮤지컬 오디션을 봤다.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Q. 2012년 SBS ‘내사랑 나비부인’과 관련한 한 인터뷰에서 “무작정 대학로로 갔다. 돈 받으면서 연기 공부를 했다. 공연하면서 사람에 대해 공부했고. 2, 3년 있으면서 많이 성숙됐다”라고. 우직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베이비복스라는 배경도 있고, 표현은 그렇지만 쉽게 들어갈 수도 있었다.

“맞다.”

Q. 대학로라는 배경도 그렇고, 3년이라는 시간도 그렇고. 정석의 길을 걸었다.

“‘사랑은 비를 타고’가 그 대학로 작품이다. 무대 공포증이 굉장히 심하다. 베이비복스 때는 우황청심환 먹고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친한 언니가 ‘너 이거 하면 성격도 밝아질 것 같고, 노래도 연기도 다 할 수 있고, 무대 공포증도 없앨 수 있으니까 한번 가보자’라며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보러 가지고 했다. 그래서 공연을 봤는데 매력을 강하게 느꼈다. 관람 당일에 오디션을 봤고, 오디션에 붙은 다음에 참 악착 같이 연습했다. 왜냐하면 베이비복스라는 배경이 없었다면 나는 떨어질 수도 있었으니까. 다른 뮤지컬 배우 친구들에게 민폐 끼치기 너무 싫었다. 내가 그 자리를 뺏은 것 아닌가.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면서 가르침을 부탁했다. 대본도 더 열심히 보고, 노래 연습도 더 많이 했다.”

Q. 연극은 어떻게 하게 됐나?

“뮤지컬 특징이 정적인 순간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어느 순간 그것이 너무 싫어지더라. ‘아니, 연기로 다 보이고 나서 노래를 불러도 되는데 왜 연기를 하다 만 것처럼 하고 노래를 부르지?’ 그래서 작가님에게 여쭤보니 연극 출연을 제안하시더라. 연기에 깊게 빠져 있고 집중을 하고 있는 것을 작가님이 캐치하셨던 것 같다. ‘연극이 더 정서에 맞을 것 같다. 한 편 하고 오면 더 완벽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그래서 뒤도 안 돌아보고 연극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첫 번째 연극이 너무 어려웠다. 원숭이를 사랑해야 됐다.”


Q. 사전 미팅에서 연극을 했을 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밝혔다.

“정말 재밌었다. 그 생각은 변함이 없을 듯하다.”

Q. 또, 만약에 늙어서까지 연기를 외면 안 받고 쭉 할 수 있다면 배우 강부자처럼 공연하고 싶다고도 했다. 무대의 마력은 브라운관보다 확실히 큰가?

“많이 크다. 그리고 내가 만약 뮤지컬만 하다가 드라마를 처음 시작했다면 첫 번째 작품 SBS ‘괜찮아, 아빠딸’을 조금 더 어렵게 촬영했을 것이다. 사실 연극을 많이 안 했다. 세 개 밖에. 하지만 연극을 통해서 감정 쌓고, 대본 분석하고, 상대방의 눈빛과 숨소리를 느끼려고 노력했던 것이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연기의 호흡을 만들더라.”

“대학로에서 빠듯한 돈을 받아가면서 실질적인 경험과 공부 그리고 남들은 절대 못하는 것을 다 경험했다. 그리고 베이비복스 이희진에서 벗어나서 사람 대 사람으로 정말 헝그리한 분들도 만났고, 톱스타 분들도 만났고, 그때 느꼈다. 소위 사람을 구경한다고 그러지 않나. 그것이 그렇게 재밌고 즐거운 일인지 몰랐다. 관찰을 하게 되고. 사람 냄새 나는 것이 너무 좋았다. 대학로에서 길거리에 앉아 소주와 라면 하나에 인생을 논하고, 작품을 논하기도 했다. 공연 끝나고 나서는 항상 집에 걸어갔다. 두 시간 되는 거리를 그냥 걸었다. 그것이 좋았다.”

“이제는 연기할 때 대본이 들어오면 빨리 빨리 외워서 빨리 빨리 해야 된다. ‘울어!’라고 하면 울고. 그것이 참 싫다. 아직도 힘들다. 서로 교감하고 차근차근 경험해서 어느 순간 팡 터지고, 정리하고. 그렇게 처음 연기를 시작했기에 많이 버거웠다.”


Q. 사전 미팅에서 엿본 이희진의 인생은 ‘우연’이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연예인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개그맨 윤정수의 추천으로 베이비복스가 되었고, 연기를 할 수 있다고 결론 지어본 적이 없지만 배우가 되었고, 무대에서 브라운관으로의 진출은 SBS ‘강심장’을 눈여겨본 한준영 작가의 도움이 있었다. ‘품위있는 그녀’ 파워 블로거 김효주와 연예인 이희진의, 상실의 교차도 우연이다.

“계획해서, 계획을 쫓는 스타일이 아니다. 우연히 한 번 되고 다니까 우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강심장’을 나가서 예능과 드라마를 하고 싶다고 작정했으면 이렇게 안 됐을 것이다. 모든 것이 우연히, 우연히, 우연히 이뤄졌다. 계획하지 않고 행동했기에, 또 대중이 그것을 알아주셨기 때문에 뭔가를 더 할 수 있었다. 그런 행운이 더 올 수 있었다.”

Q.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

Q. 그간의 여러 이희진 인터뷰를 보면 도입부가 엇비슷하다. ‘걸크러시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다르다’라는. 여전히 이희진을 지칭하는 것은 ‘걸크러시’ 혹은 ‘걸크러시인 줄 알았지만’이다. 이처럼 대중에게 인식되는 것에 관한 생각은? ‘걸크러시’. 누군가에게는 나쁜 말일 수도 있다.

“나쁜 말 아니다. (웃음) 나는 내가 이렇게 차갑게 생긴지 모르고 살아왔다.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정말 무섭게 보인다고 하더라. 어떤 감독님은 베이비복스가 거의 끝나갈 때 ‘너는 어쩜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게 생겼니?’라고 묻기도 하셨다. 그런데 내 성격은 외모와 다르게 털털하다. 낯을 많이 가리지만, 사람을 무시하진 않는다. 그런 선입견들이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베이비복스가 끝난 후에 혼자서 짊어지기에는 버거웠다. 대학로 갔을 때도 오해를 많이 받았다.”

Q. 낯을 가릴 뿐인데.

“도도하다고 그러고, 낙하산이라고 비하하고. 나는 오디션 다 보고 들어왔으니까 ‘그렇게 떠들어라. 나는 내 할 일 열심히 할 테다’라고 생각했다. 막내니까 청소하고, 대본 열심히 외우고, 연습하고, 술 먹자고 하면 열심히 먹고 그랬다. 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했다. ‘희진아, 사람들 앞에서 더 도도한 척 해’라고 말씀해주시는 감독님도 계셨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성형수술을 해서 더 유하게 인상이 바뀌어도 머릿속에 박힌 이미지는 안 없어지는 것 아닌가. 베이비복스가 만들어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미지라도 각인이 됐기 때문에 연기에서 비슷한 캐릭터라도 할 수 있었다.”


Q. 19살 나이에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 21살에 ‘겟 업(Get Up)’을 불렀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19살 혹은 그보다 더 어린 학생들이 꿈을 쫓아 이곳으로 오고 있다. 각종 기획사뿐만 아니라 이제는 방송국 또한 화려한 꿈을 종용하는 시대. 현 세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또한, 마침 2017년은 베이비복스가 20주년을 맞는 해다. 1세대 아이돌 출신 게다가 배우로의 성장통을 겪은 복합적 과정을 겪은 이로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듯하다.

“미용실에서도 그렇고, 이번에 예능을 갔다 와서도 그렇고. 참 모르겠다. 우리 때는 몸 피곤하면 그냥 찡얼대고 투덜대는 것이 전부였다. 즐거웠다.”

Q. 즐거웠다?

“가면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연예인들끼리, 가수들끼리 교감을 할 수 있었다. 같이 어울릴 수도 있었고, 정말 재밌었다. 가수 활동을 했을 때가 가요계가 붐이 일어서 피크 때였다. 완전 정점을 찍는. 그리고 아날로그 시대니까 아무래도 찾아와 주시는 분도 많고, 우리도 많이 찾아갈 수밖에 없었고. 행사도 많았고, 축제도 많았고, 흥에 겨워서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런데 요새 친구들은 메마른 것 같다. 그리고 열 명이든 다섯 명이든 그 안에서 경쟁이 너무 세다. 옆에서도 느껴진다.”

“그리고 애들이 너무 기계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떤 아이돌과 작품을 같이 했던 적이 있다. 너무 싫었던 것은 ‘나는 가수를 하고 있고, 돌아갈 데가 있고, 난 아이돌이야’라는 생각이 너무 강하더라. 배우 한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데, 그것을 인지도 못하고 그냥 예능 왔다는 식으로 하는 것이 느껴졌다. 너무 싫었다.”

Q. 앞서 “내가 그 자리를 뺏은 것 아닌가”라는 말이 떠오른다.

“전혀 다른 분야 아닌가. 예의는 갖춰야 한다. 그런데 요즘 친구들은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한다.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이 크겠다. 처음부터 고삐 풀린 망아지로 태어난 사람은 없으니까. 너무나 치열하게끔 만든다. ‘너희들끼리 싸워. 그래야 드라마도 하고, 예능도 나가고, MC도 볼 수 있어.’ 사무실에서 어른들이 애들을 부추긴다. 그리고 요즘 소위 말해 센터 병이 심하다고 들었다. 우리는 공통으로 돌아가면서 센터를 봤다. 한 명이 잘 되면 그룹이 잘 되기 때문에 회사에서 경쟁을 각인시키는 듯하다. 시간에 쫓기고, 멤버들끼리도 싸우고, 자기 영역이 아닌데 들어가서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고. 어른들이 만들었다. 언젠가는 내려온다, 정말. 내려왔을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자신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인성부터 배웠으면 좋겠다.”


Q. ‘품위있는 그녀’ 동료들과 어울리다 보니 연애, 썸, 결혼에 생각이 많아졌다고 들었다. 이 가운데 평범함을 갈구하는 이희진이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러브 어페어(Love Affair)’다. 평범한 삶 속에서 꿈꾸는 극적인 사랑. 역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생처럼 ‘우연’히 다가올 수도 있겠다.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Q. 우연히?

“이 작품을 하면서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상상을 하게 됐다. 남들은 이런 작품을 통해서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결혼을 하고 싶어해?’라고 할 수 있는데, 전체적인 작품과 캐릭터가 그렇지 내가 느낀 감정은 달랐다. 나를 너무 버렸기에, 사랑 받고 싶다는 감정이 들더라. 사랑 받고 싶고, 관심 받고 싶고, 내 가족만큼은 정말 사랑을 주고 받으며 서로에게 의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게다가 언니들도, (정)다혜도 다 결혼했다. 실질적인 이야기를 내 앞에서 하니까 혼자만 할 수 있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게 되더라. ‘나 정말 결혼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너무 강해졌다. 그래서 또 한 번의 우연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Q. 가능할 것 같다. 왜냐하면 ‘우연’은 여태껏 지속됐으니.

“남자는 우연이 없더라. 사랑은 우연이 없고. 극적인 우연으로 사랑이 이뤄지는 것이 여자로서 로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러브 어페어’가 좋았던 것은 주인공 서로가 다시 만나자고 약속은 했지만, 중간에 그날을 기다리는 모습이 정말 예뻐 보였다. 안 되는, 이루어지면 안 되는 사랑이긴 하다. 각자 원래의 약혼자가 있으니까. 설렘이 좋았다. 여러 번의 리메이크가 이뤄진 작품이다. 원작도 봤는데, 다 그 섬세함을 가지고 있더라. 그래서 그 작품이 좋았다.”

Q. 명대사가 있더라. 마이크 갬브릴(워렌 비티)의 고모는 테리 맥케이(아네트 베닝)에게 다음을 이야기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원하는 걸 얻는 게 아니다. 그것을 얻은 후에 계속 원하는 지가 중요하다”라고. 이희진에게 중요한 것은? 그리고 그것을 갈망하는 마음을 영속하고 있는지?

“특별히 뭔가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다. 난 이성적으로 살아가는 사람 같다. 감성은 풍부한데, 현실을 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작품도 그렇고, 뭐도 그렇고 주제 파악이라는 것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그러다 보니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다. 사람이고, 그렇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해서 다 내 사람을 만들고자 하진 않는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믿음이 있는 사람이 전부다.”

“사람한테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 사람이 좋아서, 날 좋아해주는 것 같아서 이성이든 동성이든 다 오픈을 한다. 그런데 매번 나만 오픈하고, 이용당하고, 배신당했기 때문에 사람에 관한 존재를 굉장히 귀하고 조심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순간 마음을 닫아버렸다. ‘이쪽에 있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과 깊게 가지 말자’가 강해졌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고, 끝까지 소유하고 싶고, 가져가고 싶고, 얻고 싶은 것은 역시 사람이다. 돈도 그렇다. (웃음)”

Q. 돈은 빼겠다.

“돈도 갖고 싶다. 돈 가지면 안 될까? (웃음) 돈도 필요하다. 생각해보자. 일을 열심히 해서 그 돈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쓰면 얼마나 좋은가. 나는 제일 하고 싶은 일이 어린 아이들을 돕는 것이기도 하고, 미혼모를 도와주고 싶다.”

Q. 계기가 있을까?

“특별한 계기는 없다. 하지만 보호할 곳이 없다. 뉴스를 많이 보고, 다큐멘터리도 많이 보는데, 미혼모들이 갈 곳이 없다. 같은 여자로서 안타깝다. 내가 만약 애를 낳았는데, 애를 데리고 일할 곳도 없고, 키울 곳도 없다면? 애를 낳고 나서 몸도 추스르지 못하고 그런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한 명이면 한 명, 두 명이면 두 명. 그들을 위해서 후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기저귀 값과 분유 값이 엄청나다. 어느 정도 애가 커서 엄마가 혼자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손길도 필요하고. 돈을 번다면 그런 일에 쓰고 싶다. 돈을 벌면 연극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연극을 하려면 헝그리 정신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Q. 오만석처럼 연출 욕심이 있는가?

“연출 욕심은 아니고, 좋은 작품이 있다면 돈을 내더라도 작품을 완성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연극 배우 분들이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지금도 그렇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뮤지컬을 하려고 하고, 영화로 오고 그런다. 그리고 돈을 벌면 다시 대학로로 돌아간다. 오지랖인가? 나는 다 오지랖이다. (웃음)”


‘What If’. ‘~라면 어떨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품위있는 그녀’가 떠오를 수 밖에 없다. 주인공 박복자가 상류층을 욕망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What If’다. 현실로 돌아와 이희진에게 ‘What If’를 대입하자면 재밌는 결과가 나온다. 그가 윤정수를 만나지 않았다면, ‘사랑은 비를 타고’를 하지 않았다면, ‘강심장’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마지막으로 ‘품위있는 그녀’ 김효주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간 그는 ‘예’와 ‘아니오’의 여러 분기점을 거쳐왔다. 그리고 아마 ‘품위있는 그녀’가 아니었다면 대다수는 그를 베이비복스 출신 배우라는 틀 안에 가뒀을 테다.

낯을 가리는 그의 겉모습만 보고 혹자는 그를 낙하산이라고 비하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또한, 그간 대중은 이희진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의 기준으로 재단했다. 언제나 이희진을 좋은 길로 이끈 ‘What If’와 ‘우연’은 이번에도 그를 좋은 방향으로 안내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연기적으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며, “나이에 맞는 캐릭터를 입”게 했다. 다음 ‘What If’는 무엇일까. 약자를 지키는 돈? 섬세한 사랑? 흙을 빚는 도예? 무엇이든 가능할 테다. 계속되는 행운의 중심에는 이희진이 있다. 이쯤 되면 행운 아닌 역량이다.

기획/진행: 김강유
인터뷰: 김영재 기자
촬영: 윤호준 bnt포토그래퍼
스타일링: 유어툴즈 최미선, 이슬기 디렉터
의상: 네이비 아우터&드레스(리코베스단), 화이트 수트(아르코발레노), 주얼리(엘렌스타), 슈즈(스타일리스트 개인 소장품)
헤어: 박호준헤어 주니 원장, 윤지 코디
메이크업: 뷰티르샤 문하나 아티스트
장소: 인클레이주(inclay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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