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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없는리뷰] ‘공작’, 13년째 이어온 윤종빈의 호연지기

2018-08-24 19:31:16

[김영재 기자] 8월8일 ‘공작’이 개봉했다.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3.2/5)

그간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 등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이 신작 ‘공작(감독 윤종빈)’을 들고 돌아왔어요. 정확히 4년 만의 연출 복귀입니다. ‘공작’은 “빨갱이”란 말이 지금보다 공공연히 사용되던 1990년대 북파 공작원의 실화를 다루는 작품입니다.

현실에서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 소속 그 북파 공작원은 ‘북풍’ 수사의 확대 속에 그 정체가 드러나 조직을 나와야 했습니다. 이어 대북 비선으로 활동했죠. 정권이 바뀐 후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징역 6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비선 활동을 벌인 이가 정권 교체 후 감옥에 가다? 미화 여부를 떠나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부분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영화 제작까지 이어졌어요. ‘공작’이 기획된 때가 지난 2015년입니다. 윤종빈 감독은 “압력을 받진 않았지만 그냥 조용히 찍고 싶었다”며 ‘공작’은 ‘흑금성’을 가리기 위한 가제였다고 밝혔습니다. 더불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임에도 불구, 바빠야 할 소위 ‘높은 사람’들이 세심함을 자랑했다고 꼬집었죠. 적폐를 이겨낸 ‘공작’입니다.

주인공은 박석영(황정민)입니다. “북한의 핵(核) 개발을 저지하는 것만이 한반도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란 말에 군 장교에서 대북 공작원으로 거듭난 ‘흑금성’ 박석영은 ‘안기부’ 해외 실장 최학성(조진웅)으로부터 지령 하나를 받아요. “이제 자네가 북한 권력층으로 침투해 그들이 어떤 일을 일으킬지 알아봐줘야겠어.” 북의 핵무기 진척 상황을 알아내기 위해 박석영은 그 자신을 “해외 비즈니스 하는 서울무역 박석영”으로 위장하죠.

“아주 외롭고 고독한 싸움”을 시작한 그는 ‘대외경제위’ 처장 리명운(이성민) 등을 만나며 북 고위층의 신뢰를 얻어요. ‘최고 존엄’ 김정일(기주봉) 국방위원장을 만나기까지 하죠. 하지만 수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으려는 순간, 야당 대선 후보 지지율이 집권 여당 후보의 것을 상회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남북 수뇌부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한 박석영은 고민해요. 조직의 명령, 임무의 완수, 한반도의 해빙. 그 어느 것도 놓칠 수 없기 때문이죠.

대학 졸업작 ‘용서받지 못한 자’로 화려하게 데뷔한 윤종빈 감독입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시스템과 개인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 본성과 사회적 거대 개념의 접점”을 다룬 영화였죠. 군대에선 착한 것보다 말 잘 듣는 게 좋은 거라고 하는 태정과 “야, 그게 좋은 거냐? 바보 같은 거지” 하는 승영의 대화에서 관객은 상명하복의 세상 대한민국을 만났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은 나쁜 아버지가 살아온 사회를 다뤘습니다. 혈연과 지연으로 1등을 지향하는 ‘반달’ 익현은 그 시절 사회가 만든 욕망 덩어리였죠.

오락 영화를 지향한 ‘군도’에서 태기는 외칩니다. “뭉치면 백성이고 흩어지면 도적이오.” 세상을 바꾸는 건 영웅 하나가 아닌 불특정 다수임을 생각게 했습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범죄와의 전쟁’ ‘군도’까지 줄곧 사회 속의 개인을 다뤄온 윤종빈 감독이에요. 어른이 되지 못한 군인(‘용서받지 못한 자’), 탐욕을 이어가는 망령(‘범죄와의 전쟁’), 도적에서 백성이 된 민중(‘군도’)를 잇는 감독의 선택은 이데올로기에 휘말린 스파이입니다.


‘공작’은 상업 영화입니다. 배우 주지훈이 연기한 정무택 역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윤종빈 감독은 처음엔 중년의 배우를 정무택 역에 고려했다고 뒷이야기를 밝혔습니다. 소위 ‘젊은 배우’ 주지훈의 에너지는 박석영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정무택과 결합해 좋은 합을 보여줍니다.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외에 또 다른 중년 배우가 ‘공작’을 이끌었다면 분명 극은 보다 진중해졌을 겁니다. 하지만 배우의 생물학적 나이가 뿜어내는 생기는 덜했겠죠.

이건 젊음이 우세하다는 걸 이야기하려는 게 아닙니다. 조합 면에서 ‘공작’은 최선의 배우 조합을 찾았고, 이는 순제작비 약 165억여 원이 투입된 상업 영화의 당연한 선택이었어요. 주연을 맡은 황정민의 존재도 상업 영화 ‘공작’을 지탱하는 한 축입니다. 인터뷰서 황정민은 “‘어? 내가 하는데 투자가 안 돼? 기다려. 될 거니까’ 하며 감독님께 자신감을 드렸다”고 했죠. 일명 ‘쌍천만 배우’의 존재는 관객이 ‘공작’을 택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공작’ 속성에 상업 영화만 있는 건 아닙니다. ‘공작’은 스파이 영화입니다. 더불어 실화에 바탕한 ‘공작’입니다. 박석영에게 북한 권력층으로 침투하란 지령이 내려온 것처럼 윤종빈 감독에겐 상업성과 장르 ‘스파이’ 그리고 실제 북파 공작원 박채서의 실화를 맛좋게 버무려야 한다는 배급사의, 혹은 대중의 지령이 내려온 셈이죠.

실화를 다룬 영화는 무겁고 불편한 마음으로 관람해야 한다는 건 이미 영화 ‘1987’로 깨진 속설입니다. ‘공작’이 그 뒤를 잇습니다. 국군정보사령부 출신 장교가 북파 공작원 사실을 숨긴 채 김정일을 만났다는 건 그 자체로 굉장한 긴장과 호기심을 불러 모읍니다.

‘흑금성’의 모든 첩보 활동을 다루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깨달은 감독은, 전체 맥락에 어긋나지 않는 한 최대한 간략하게 가자는 생각 아래 박채서를 박석영으로 각색했습니다. 북한만 가면 경상남도 마산 말씨를 쓰는 스파이? 말도 안 되죠. 영화적 각색입니다. 하지만 각색 여부를 따지기 전에 관객은 박석영의 공작에 몰입합니다.

배우의 대사 싸움으로 ‘구강 액션’을 표방한 윤종빈 감독의 연출과, “밧줄을 몸에 꾹꾹 묶고 있는 듯한 느낌”에 굴하지 않은 황정민의 연기 덕입니다.


하지만 마스터피스는 아닙니다. 언론시사회서 감독은 “냉전의 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남북 요원이 서로를 의심하고, 이해하며, 화해하는 과정을 “티격태격”이라고 표현하며 그것을 피했다고 했습니다. 감독에게 ‘공작’은 냉전의 끝에서 두 남자가 서로를 존중하는 이야기입니다. 체제나 이념이 다른 두 사람이 같은 신념 아래 서로를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 스파이는 그 안에서 ‘빨갱이’ 말고 한 인간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해설이 부족합니다. 인물의 대사, 신의 구성, 작은 디테일까지 종합하면 남과 북의 두 남자는 자그맣지만 묵직한 움직임으로 우정의 탑을 쌓아갑니다. 황정민은 ‘구강 액션’에 “퀘스천 마크”를 가졌다고 했지만, 관객은 시계 브랜드 ‘롤렉스’로 상징되는 우정에 물음표를 가집니다. ‘본’ 시리즈처럼 기존과 다른 방법으로 장르 ‘스파이’를 시도한 건 좋았어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봐요. 하지만 출연진 덕입니다. 연출의 공은 아니에요.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의 아우라가 극을 덮습니다. 그들은 체스 판의 말이 아니에요. 감독과 동등한 지위를 지녔죠. 그래서 ‘공작’은 배우들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났던 ‘범죄와의 전쟁’이 떠오르는 영화입니다. “살아있네”, “느그 서장 어딨어?” 같은 명대사나 ‘풍문으로 들었소’ 같은 명OST는 없지만 특정 시대의 단면을 다뤘다는 점도 비슷하고요.

박석영의 내레이션은 ‘공작’이 가진 특징 중 하나입니다. 윤종빈 감독은 전작 ‘군도’서 상영 시간을 줄일 방법으로 내레이션을 활용했던 바 있습니다. 설명한 거리가 많을 때 내레이션은 모든 걸 단 몇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좋은 도구입니다. 이번에 그는 ‘공작’서 또 내레이션을 썼습니다. 이번엔 작품 밖 화자가 아닌 박석영이 내레이션을 맡았어요.

관객은 박석영의 내레이션을 통해 그가 대북 공작원이 되기까지의 전사와 대북 작전 진행 상황 그리고 남과 북 사이의 오월동주를 안내 받습니다. 장점이고 단점입니다.

장점은 앞서 ‘군도’ 때처럼 짧은 시간 안에 긴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죠. 내용이 풍부해질수록 극 역시 풍부해지니 장점입니다. 단점은 장점과의 교집합에 있습니다. 실화 바탕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1987’처럼 프로세스를 다루는 전개 대신 한 인물의 감정 고양과 발자취를 따르는 영화입니다. 황정민이 연기한 박석영에게 최대한 몰입하는 것이 관객이 ‘공작’을 가장 재밌게 보는 법이죠. 하지만 박석영이 내레이션을 할수록 몇몇 관객은 극과 자신이 유리되는 경험을 합니다. 몰입이 깨진다는 소리죠.

내레이션이 윤종빈 감독의 고집이라면, 그가 선보인 또 하나의 고집은 ‘영화의 주체는 이야기’란 자세입니다. ‘범죄와의 전쟁’ 때 감독은 그가 하고자 한 이야기가 장르 영화의 집중에 무너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다치게 하면서까지 장르의 쾌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고 했죠. 그렇게 윤종빈은 인간 최익현의 이야기를 그려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예요. 실화에 힘이 있다고 생각한 그는 이야기의 힘을 믿고 액션 신을 뺐습니다. 말 그대로 뺐어요. 기차 신 하나가 등장합니다. 추격 신이 들어갈 자리였죠. 하지만 감독은 액션 신을 넣으면 이야기로 꾸려진 세계가 파괴될 것을 염려했습니다. 덕분에 ‘공작’은 배우의 구강이 총칼에 비유되는 어쩌면 단조로운 영화가 될 뻔했죠. 하지만 북 고위층을 만난 박채서의 실화에, 1990년대 후반 ‘북풍’이 결합돼 시너지를 냅니다.


고(故) 김대중 전(前) 대통령의 이름이 참 많이 나오는 영화 ‘공작’입니다. ‘한나라당’ ‘국민회의(새정치국민회의)’ 등 지금은 사라진 정당이 뉴스 앵커의 입을 통해 2018년 관객에게 닿는 광경은 우리 사회가 지나온 약 20년의 시간을 가늠케 하죠.

극중 ‘북풍’과 그 당시 벌어진 ‘총풍’은 다릅니다. 하지만 북한을 주적으로 삼아 그것으로 이익을 본 집단이 있다는 사실은 같죠. 윤종빈 감독은 최학성과 박석영의 대화로 그것을 친절히 소개합니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씀하십시오. (중략) 그래서 그 적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자극하고 손에 쥔 권력을 놓고 싶지 않은 거라고 말입니다.”

박석영의 일갈은 너무 친절하기에 거북하지만 동시에 순진하게 속아왔던 과거를 반성하게 합니다. 더불어 감독은 말맛이 좋은 대사를 다수 배치해 ‘공작’의 무거움을 경화시킵니다. ‘탈선과 직진’ ‘뱃바닥에 구멍’ 등의 표현이 관객을 웃게 합니다.


‘공작’에겐 약점이 있습니다.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촉진된 남북 평화 분위기가 그것입니다. ‘1987’과는 달라요. 직선제는 당연한 일이 됐고 독재는 물러난 현 시대에 보는 ‘1987’은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친 그 시절 숭고한 이들의 항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느끼게 했죠. 관객은 그야말로 개벽한 세상서 과거를 뒤돌아봤습니다.

하지만 ‘공작’은 달라요. 앞서 언급한 평화 분위기가 문제예요. 더 이상 대중은 북 최고 지도자 김정은을 베일에 가려진 독재자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대신 대한민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포옹한 미래의 동반자쯤으로 여기죠. 물론 김정은이 등장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장군님을 뵐 때는 절대 눈을 마주치지 말고 상의 두 번째 단추에 시선을 두시오” 하는 리명운의 말은 현재에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며 긴장감을 하락시킵니다. 마냥 옛날이라고 부르기엔 가까운 그때의 긴장감입니다. 세상에겐 호재지만, 영화에겐 악재입니다.


윤종빈 감독 영화에 늘 “1+1”으로 등장해온 하정우입니다. 하지만 ‘군도’서 관객은 그를 만나지 못해요. 스케줄이 안 됐다는 것이 감독의 설명입니다.

때문에 과거서 하정우를 불러오자면,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그가 연기한 태정은 군대 얘기에 지친 여자 친구 지혜에게 다음을 말합니다. “지혜야, 내가, 내가 너 봤을 때는 너는 일단 인내심이 부족해. 넌 좀 호연지기를 키워야 돼.” 호연지기는 ‘공작’서 또 등장합니다. 리명운도, 김정일도 박석영을 호연지기의 사내라고 칭찬하죠. ‘도의에 근거를 두고 굽히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바르고 큰 마음’이 호연지기의 뜻입니다.

‘공작’은 윤종빈 감독 최고작이 아닙니다. 그가 만든 최고는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죠. 그렇다고 ‘공작’이 최악이란 이야기는 아닙니다. 윤종빈 감독은 13년 전에도 현재에도 ‘호연지기’의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13년 전에는 “이 영화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분명 중요하고 의미 있는 영화가 될 것”이라는 마음에 본래 내용과 다른 시나리오로 육군의 촬영 허가를 받았죠. 처벌을 불사한 그의 마음은 곧 ‘호연지기’였습니다.

이번엔 각색에도 불구, 정권 혹은 ‘높은 사람’들의 참견을 걱정해야 하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그가 구(舊) 정권의 비판 용도로 ‘공작’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장르 ‘스파이’를 비튼 영화예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름이 등장할 뿐 정치 영화가 아니고요. 그럼에도 영화 제작 당시 걱정이 끊이지 않았죠. 오죽하면 ‘흑금성’ 대신 사용한 가제 ‘공작’이 영화 제목이 됐겠어요. 그래서 ‘공작’은 ‘호연지기’의 영화입니다.

휼륭함이나 숭고함 대신 실화의 증명과 출연진의 연기를 봐달라고 주문한 윤종빈 감독입니다. 하지만 전 그의 ‘호연지기’를 칭찬해주고 싶어요. ‘호연지기’로 만든 윤종빈의 새 창(窓)이 여름 극장가에 왔습니다.(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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