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크러쉬만으로 꽉 찬 무대, 그가 진짜 가수다 (종합)

2018-11-04 23:39:47

[김영재 기자] 크러쉬가 올림픽공원을 움직였다.

가수 크러쉬(Crush)의 단독 콘서트 ‘2018 크러쉬 온 유 투어 원더로스트(CRUSH ON YOU TOUR wonderlost)’가 11월3일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개최됐다. 이와 관련 매 콘서트마다 전석 매진을 기록해온 크러쉬 콘서트는 이번 공연 역시 전 좌석(3일부터 4일까지 양일간 약 8000석)이 매진돼 가수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공연 첫째 날인 3일에는 프레스 초청이 이뤄졌다. 이날 크러쉬는 ‘뷰티풀(Beautiful)’ ‘잊을만하면’ ‘오아시스(Oasis)’ 등의 히트곡을 포함 약 서른 곡을 열창했다.

이날 공연은 심장 박동을 연상케 하는 소리가 공연 전부터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시작을 앞두고 그 심장 소리는 더욱 커지며 함성을 불러 모았다.

‘널 생각할 때면 심장이 뜨거워’. 지난달 발표한 신곡 ‘넌(None)’이 흘러나온 오프닝 영상에서 그는 의문의 방에 입장, 브릿지 영상 속 서사의 시작을 알렸다. 영상이 끝난 후 그는 ‘헤이 베이비(Hey Baby)’ ‘뉴데이(Newday)’ ‘밥맛이야’ ‘시리얼(Cereal)’을 연달아 불렀다. “여러분 모두 손 머리 위로”, “다 같이 박수” 등의 호응 유도는 관객을 더욱 뜨겁게 했다.

‘인 디 에어(In the Air)’가 흘러나오는 영상에서 크러쉬는 한 편의 VHS를 재생했다. 가수가 2017년부터 함께하고 있는 밴드 원더러스트(Wonderlust) 등장 영상이 끝난 뒤, ‘원더러스트’ ‘스티비 원더러스트(Stevie Wonderlust)’ ‘서머 러브(Summer Love)’가 이어졌다. 흑백 파도가 화면에 넘실대는 가운데 크러쉬는 여지없이 “다 같이”를 외쳤다.


“안녕하세요. 이제야 첫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저는 크러쉬입니다. 반갑습니다.”

크러쉬는 “이번이 벌써 3번째 단독 콘서트”라며, “안 떨릴 줄 알았는데 내 심장 박동 소리가 무대 밖까지 들렸다”고 농을 건넸다. 이어 그는 “내가 뭐라고 이렇게 많이 와주셨는지 모르겠다. 너무 너무 감사하다”며, “최선을 다해서 무대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올림픽홀에서의 공연은 가수 크러쉬의 꿈이었다는 후문. 그는 “2년 만의 콘서트다. 그때 다음 콘서트는 올림픽홀에서 꼭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현실로 이 무대에 섰다. 너무 감사드린다”고 했다. 크러쉬는 “2년 전보다 조금 더 큰 공연장이지만 여러분들과 가까이에서 호흡하고 싶다. 계속 여러분 곁으로 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2018 크러쉬 온 유 투어 원더로스트’는 그가 밴드 원더러스트 결성 후 마련한 첫 단독 콘서트다. 크러쉬는 “2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 바로 뒤에 있는 형 누나, 밴드 원더러스트와 함께하게 됐다. 정말 최고의 밴드”라며, “이번 공연은 내 단독 콘서트이자, 나도 밴드 원더러스트의 일원이기 때문에 밴드 원더러스트의 첫 콘서트다. 오늘 내 노래와 함께 원더러스트 밴드의 연주와 편곡에도 귀 기울여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콘서트의 제목은 ‘원더로스트’다. 그는 지난 콘서트에선 ‘원더러스트’를 제목으로 내세웠던 바 있다. 가수는 “비슷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좀 다르다”며, “말 그대로 잃어버린 어떤 대단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살면서 아주 쉽게 잃어버리는 것이 많다. 가장 중요한 건 지나간 시간”이라는 말로 적막 속 한 관객의 감탄을 모았다. 그는 “뭐야?”란 말로 관객과의 친근함을 내비친 뒤, “누군가는 오래된 것을 이미 유행 지난 촌스러운 거라고 치부하고 관심을 끊어버릴 테다. 나는 이번 공연에서 내가 빠져 있는 옛것들과 아날로그 감성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이번 공연의 주제를 알렸다.

크러쉬를 향한 인기는 여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크러쉬는 “생각보다 남성 관객 분들께서 많으시다”며, “남자들만 세이 ‘오 예’”란 말로 함성을 모았다. 이에 “우와 크러쉬 성공했네” 하며 기쁨을 드러낸 그다. 이어 가수는 “배터리 잔량이 있는 분들께서는 플래시를 한번 켜주시면 너무 감사할 듯하다”고 관객에게 응원봉 대신 휴대폰 플래시봉을 요청한 뒤, 수천의 플래시 조명 가운데서 tvN ‘도깨비’ OST ‘뷰티풀’을 불렀다.

‘가끔’ ‘잊을만하면’ 후 그가 뉴욕 버드랜드 재즈 클럽에서 노래한 영상이 재생됐다. 다음 차례는 그가 라이브 무대를 최초 공개하는 ‘넌’이었다. 커튼을 스크린으로 활용해 마치 가수가 수면 아래에 잠긴 듯한 연출이 일품. ‘향수(nostalgia)’ 후 ‘소파(SOFA)’ 공연에서 크러쉬는 턴 테이블을 영사해 청각뿐 아니라 시각에서도 아날로그를 강조했다.

‘2411’이 흘러나오는 중간 영상에서 그는 카세트 플레이어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음을 내레이션 했다. “누군가는 시대의 흐름에 자기 자신을 억지로 맞춰 살아가고 있다. 유행은 돌고 돌지만 나는 늘 과거로 떠나는 여행을 하고 있다. 아날로그와 빈티지한 것들의 매력을 느끼고 또한 그것이 현재 트렌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도 과거가 되겠지만 지금을 잊지 말고 과거의 뿌리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것을 깨닫는 과정이 내가 옛 음악과 옛것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다. 가진 것 없이 열정 가득했던 그 시절, 간혹 버스 요금이 모자라 추운 겨울에도 한강 다리를 걸어 다녔던 그 시절. 나는 음악이 있어 춥지 않았다.” 관객의 웃음이 터졌음은 물론이다. 크러쉬는 “왜 웃는 거냐. 되게 진취적으로 썼다. 웃지 말아 달라”는 말로 또 한 번 웃음을 모았다.

‘2411’에서 크러쉬가 “이것은 내”를 외치자 관객은 “입시학원 연습실”로 화답했다. ‘우아해’ ‘마지막 축제’가 계속됐다. 특히 ‘마지막 축제’에서 크러쉬는 눈을 연상케 하는 다량의 가루를 공연장에 뿌려 관객에게 “폭설”이란 장난 섞인 핀잔을 듣기도.

크러쉬는 “전(前) 무대가 조금 정적이었다. ‘쟤가 왜 저러지?’ 생각하실 수도 있다. 내 단독 콘서트만큼은 내가 정말 꾸며보고 싶은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었다”며, “긴장 바짝 하셔야 한다”고 했다. 분위기 전환은 게스트 몫이었다. 가수 시피카(CIFIKA)와 래퍼 병언이 ‘료(Ryo)’를 불렀고, 식케이(Sik-K)가 ‘칠(Chill)’ ‘파티(Party)’ ‘링 링(Ring Ring)’을 안겼다.

‘제로백(0-100)’과 함께 영상 속 의문의 방이 사라진 후, 크러쉬는 ‘유 앤드 아이(You and I)’ ‘쉬 세이드(She Said)’ ‘기브 잇 투 미(Give It to Me)’ ‘눈이 마주친 순간(I Fancy You)’를 연이어 불렀다. 이날 공연의 본무대는 ‘가수가 관객을 마주하는 면’과 ‘그가 발을 딛고 서있는 면’을 제외한 나머지가 LED 스크린으로 채워져 자연히 의문의 방을 떠올리게 했다. 스크린 자체가 하나의 조명 장치로 작동해 현란한 눈요깃거리를 제공했다.

크러쉬는 “요즘 너무 바쁘다 보니까 꿈을 잊고 살고 있더라. 이렇게 많은 관객 앞에서 노래하는 게 내 꿈이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제 진짜 마지막 곡들로 마무리하겠다”며, “이제부터 미친 듯이 놀 거다. 체력을 아껴뒀다. 일상 생활 하시면서 잃어버린 흥을 되찾아드리려고 한다”고 후반 공연은 활력 넘치는 곡이 연속될 것을 약속했다.

사랑한다는 적막 속 관객의 외침에 “나도”라고 답한 크러쉬는 이어 ‘오아시스’를 불렀다.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편곡했어요.” 가수의 말처럼 원더러스트의 편곡은 ‘오아시스’를 보다 풍성히 만들어 콘서트의 강점을 백 마디 말보다 노래로 설명했다.

크러쉬는 원더러스트 멤버의 근황을 알린 후, “난 원래 되게 욕심이 많았다. 사실 2년 전 콘서트를 했을 때 내 모습을 보면 되게 못되게 생겼더라”고 운을 뗐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세상을 좀 편하게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힘든 세상을 내려놓고, 욕심을 버리고 한길로 가자’란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지금의 그가 ‘내려놓기’를 주목함을 알렸다.

이어 가수는 “‘복잡한 건 스킵하자’가 내 주의다. 오늘 주말이니까 그냥 재밌게 놀았으면 한다”며, 관객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다. “제가 이 노래에서 ‘복잡한 건’ 하면 ‘스킵(SKIP) 해’ 해주시면 돼요.” 실제로 ‘스킵’에서 크러쉬와 관객은 가사 ‘복잡한 건’과 ‘스킵 해’를 주고받으며 무대를 즐겼다. 더불어 노래에 몰입한 크러쉬의 “여러분 아까 복잡한 건 뭐라고요?”란 질문은 공연을 즐기는 지금만큼은 삶의 복잡함을 잊게 도왔다.

‘허그 미(Hug Me)’에서도 크러쉬는 멈추지 않았다. 체력을 아껴뒀다는 그의 말마따나 가수는 보라, 빨강 등의 조명 아래에서 뜨겁게 노래했다. 이에 화답하듯 노래가 끝났음에도 원더러스트는 연주로 여운을 길게 가져갔다. ‘아웃사이드(Outside)’에서도 크러쉬는 존재감을 발산했다. “마이크 여기 놓을게요.” 더불어 그는 양 손 생수병 물을 관객에게 쏟아붓는 퍼포먼스로 앞서 약속한 잃어버린 흥의 귀환을 단번에 성취했다.

약 2분여의 앙코르 요청 후 셀카봉을 들고 등장한 크러쉬는 ‘내 편이 돼줘’를 불렀다. 이어 “내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앞서 말했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잃어버린 제일 소중한 건 바로 여러분이었다”고 팬의 소중함을 언급했다.

가수는 “우리 이 순간을 절대 잊지 않기로 하자. 절대 여러분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난 열심히 음악하겠다”고 덧붙였다. ‘잊어버리지마’를 부를 때 크러쉬는 눈물 때문에 노래를 잇지 못했고, 관객은 가수 태연이 부른 ‘언젠가 날 기억해주길 / 한 번쯤은 뒤 돌아보길 / 부디 놓지 말아줘 / 우릴 계속 바라봐주길’을 대신 불렀다.

크러쉬는 “내가 뭐라고 여기까지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크러쉬라는 가수가 그리고 신효섭이라는 사람이 더 단단해지고 노력하는. 말을 갑자기 까먹었다. 아무튼 여러분께 정말 감사하단 말씀드리고 싶다. 다음에 더 멋있는 모습으로 인사드리고 싶다”고 감사를 전했다. 이어 크러쉬는 90도 가까이 허리를 숙여 관객에게 인사했다.

공연이 끝난 후 커튼에 투사된 영상에서 크러쉬는 “누군가는 시대의 흐름에 자기 자신을 억지로 맞춰서 살아가고 있다. 매스 미디어는 가치관의 시야를 흐려놓았고, 사람들의 신념을 조종하는 힘을 가졌다. 반면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숭고하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치유의 힘을 가졌으며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하다. 이 공연 또한 그런 메시지가 분명하게 내포되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음악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찾아나가는 여행을 같이 떠나보는 공연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번에 관객은 웃음 대신 박수로 가수를 응원했다.


이날 게스트 시피카는 “사실 (신)효섭이가 너무 멋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동료를 칭찬했다. 그의 말이 맞다. 크러쉬 세 번째 단독 콘서트는 전방위에서 빛났다. 가수는 수없이 “다 같이”를 외쳐 관객의 긴장을 유지시켰고, 오프닝과 브릿지 영상은 직육면체 본무대와의 공유성으로 몰입도를 높였으며, 밴드 원더러스트는 질 좋은 연주와 편곡으로 그저 ‘라이브 밴드 출연’만을 전면에 내세울 뿐인 타 공연과의 차별을 꾀했다.

눈에 띄는 건 공연을 관통하는 크러쉬의 메시지였다. 이날 그는 “방금 무대들은 바이닐(Vinyl)의 감성을 편곡에 넣었다”는 말과 함께 “요즘 LP에 엄청 빠져 있다”고 했다. 더불어 공연장에서 가수는 미공개 수록곡 등이 담긴 그의 LP를 판매했다. 크러쉬에게 시간은 살면서 잃어버린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과거가 현재와 맞닿아 있다는 그의 생각은, 몰개성을 이끄는 매스 미디어와 숭고하고 평화로운 예술의 비교까지 이어진다.

화려한 장치와 무대를 가득 채우는 댄서가 없음에도 불구, 아날로그를 향한 가수의 애정과 관심은 떳떳한 정규 콘서트를 완성시켰다. 마치 여러 트랙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정규 앨범처럼 말이다. 진짜 가수를 만났다.(사진제공: 아메바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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