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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상’ 한석규, “같은 반응을 하는 건 병든 사회예요”

2019-03-18 12:34:51

[임현주 기자] ‘반응’으로 시작해서 ‘반응’으로 끝났다.

3월8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 속 구명회 역할을 맡은 배우 한석규와 인터뷰를 가졌다. 특유의 느긋하고 여유 있는 어투로 영화 이야기부터 배우를 하게 된 이야기까지 털어놨다. 편안한 그의 음성에서 오는 따스함이 꽃샘추위를 녹게 하는가 하면, 자신이 들은 강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주기도 했다. 배우이자 인생 대선배인 한석규와의 인터뷰는 한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우상’은 아들의 뺑소니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이한 남자 구명회와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찾아 나서는 남자 유중식(설경구), 그리고 사고 당일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 최련화(천우희)까지 저마다 본인만의 우상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해 나가는 세 인물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극중 구명회는 명예와 권력을 쫓아감과 동시에 모두의 우상이 되고 싶었던 양면적인 얼굴을 보여준다. 배우 한석규는 캐릭터에 완벽하게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야기의 주제가 인상적이었어요. 이야기 안에 녹아있는 운율들이 굉장했죠. 시나리오를 다 보고 덮는데 한숨이 확 나오더라고요.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싶었어요. 한숨 쉰 그 느낌을 하고 싶어서 출연을 결심했어요.”

이어 한석규는 “충무로에서 엎어진 영화가 많잖아요. ‘우상’은 투자 받기 어려운 영화에 속하죠. 제작이 될까 싶었어요. 이수진 감독이 바보도 아니고 왜 썼을까 싶더라고요. 그렇게 고생해서 ‘한공주’를 찍었는데 그것도 투자가 잘 안됐잖아요. 두 번째 장편 영화를 ‘우상’으로 선택한 건 이수진 감독이 어떤 반응 때문에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털어놨다.

한석규 역시 스스로 느꼈던 ‘반응’으로 인해 이번 작품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구명회는 주제가 또렷하게 부각되는 인물이에요. 구명회의 반응은 처음부터 끝까지 병든 반응이죠. 썩은 내가 진동하는 반응이요. 이런 비겁한 인물을 연기하고 싶었어요. 어느 순간 ‘내가 용감하게 살고 있나? 안주하고 있는 거 아닌가?’ 별 생각이 다 들 때가 있었어요. 기존과 다른 역할을 연기한 건 배우 한석규라는 이미지의 변신이라기보다 제가 연기한 모습을 관객들이 한번 생각해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었죠.”

더불어 “같은 반응을 하는 건 병든 사회라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도 이상한 사회고요. 반응은 각양각색이지만 건강한 반응들이 나오는 사회가 좋다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한석규는 함께 호흡한 설경구와 천우희를 향해 존경심을 비추기도 했다. “시나리오가 만만치 않잖아요. (천)우희와 (설)경구를 과하게 표현하자면 존경심이 드는, 존중해주고 싶은 후배들이에요. 특히 (천)우희가 맡은 역할은 여자연기자로서 욕심을 내는 역할 뭐 이런 걸 다 떠나서 역으로 이야기하면 두려운 역할이에요. 잘못했다간 밑천이 다 드러나는 무대가 될 수 있죠. 최련화 역할 캐스팅이 가장 늦게 됐어요. 그만큼 그 역할은 쉽지 않았던 캐스팅이었죠. 그걸 (천)우희가 잘 해내줬어요.”

영화에서 이들의 연기는 흠 하나 잡을 것 없이 완벽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진행되는 혼란스러움이다. 영화 언론시사회 날 이수진 감독 역시 “한 번 놓치면 영화 내용을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석규는 “스토리가 어렵긴 해요. 촬영 때 이수진 감독한테 너무 알려주지 않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조금만 힌트를 줘도 관객들은 다 알거라고 (이해할 수 있는) 장치들을 깔지 않더라고요. 시사회 날 이수진 감독에게 ‘거봐 다들 어려워하지’라며 뭐라 했어요”라고 털털하게 웃어넘겼다.


그런가하면 이날 한석규는 인상 깊었던 강의를 설명했다. 어떤 부자가 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한 계획을 세우며 기분 좋게 잠든 그날 밤 죽었다는 이야기다. “선대 현인들이 이미 벌써 우리에게 답을 줬어요. 그 답은 너무나 명확하고 쉽죠. 저 또한 되돌아보니까 사람은 유한한 것인데 왜 무한을 꿈꾸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불행이 시작되는 것인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사람이 불행한 것 중에 하나가 끝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현재에 집중해야겠구나’ 생각했죠. 그러려면 반응을 살아 생생하게 해야겠더라고요.”

한석규는 ‘인생’을 돌아보기도 했다. “예전에는 액션에 집중했지만 지금은 리액션에 집중해서 연기하고 있어요. 생각해보면 배우가 된 것도 ‘연기를 하고 싶다’는 반응 때문에 하게 됐더라고요.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극장을 많이 데려갔거든요. 초등학생 때 ‘혹성탈출’을 본 게 아직도 생생해요. 부모님께 감사한 것 중 하나가 저에게 단 한번도 ‘너 하고 싶은 거해라’라는 말씀조차 하지 않고 믿고 바라봐주셨다는 거예요. 살아가는 것도 반응하는 것이구나. 반응이 중요하구나. 그렇다면 난 어떤 반응을 하며 살아가는가 생각이 들어요.”

한석규의 우상은 누구일까. 그는 우상은 곧 존경과 멘토의 의미라며 친어머니를 꼽았다. “가장 많이 영감을 주는 사람은 누굴까 생각해보니까 제가 막내거든요. 어머니가 엄청난 지대한 영향을 줬어요. 저의 풍부한 감수성, 어투 등 가장 강력한 영향력은 어머니예요. 우리 아이들을 통해서도 느껴요. 자주 영화를 보러 가는데 이걸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영화가 있어요. 근데 나름의 해석으로 보면서 본인들만의 가치관이 생기더라고요.”

한편, 영화 ‘우상’은 3월20일 개봉한다.(사진제공: GC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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