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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없는리뷰] ‘광대들’, 말에 웃고 웃음에 울고 예인에 깨닫고

2019-09-01 22:05:41

[김영재 기자] 21일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감독 김주호/이하 광대들)’이 개봉했다. 개봉 후 첫 주말 맞이. 관객들의 선택으로 ‘광대들’은?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2.6/5)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속담이 있다. 말이 얼마나 빠르게 전파되는가를 알 수 있는 좋은 예다. ‘광대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공기처럼 접하는 그 ‘말’에 대한 작품이다. 세조실록에 기록된 약 40여 건의 이적(異跡) 현상이 출발점으로, 그것이 실은 세조의 왕권 정통성 확립을 목표로 조작된 허구라는 가정이 ‘광대들’의 뼈대다. 허나 그 매력적인 가정에도 불구, 시도 때도 없는 웃음 유발이 작품을 ‘가벼운 영화’로 격하시키고 만다.

세조(박희순)는 요즘 근심이 깊다. 종기가 조금씩 나더니 어느새 얼굴과 몸을 뒤덮어버린 것. 아마 이대로 죽으면 세상은 그를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자로 기억할 터. 이에 한명회(손현주)는 광대 패거리를 불러 백성이 하늘의 뜻이 대왕에 있음을 알게 해달라고 명령한다. 우두머리 덕호(조진웅)의 주도 아래 공갈패는 귀신이 하는 것과 다름없는 기술로 여러 이적 현상을 일으키고, 백성은 세조를 하늘이 내린 왕으로 인정하는데….

세조 10년 음력 2월. 소나무가 법주사로 향하던 세조의 가마가 지나가도록 길을 비키다. 세조 10년 5월2일. 회암사 법회 중 환한 빛과 채색 안개가 공중에 가득하더니 부처님이 나타나다. 세조 10년 6월19일. 원각사 하늘을 황색 구름이 둘러싸고 사방에 꽃비가 내리다. 세조 12년 윤 3월28일. 금강산을 순행하던 세조 앞에 담무갈보살이 1만 2천 보살의 권속과 함께 나타나다. 세조 12년 가을. 문수보살이 세조의 등을 문질러 피부병을 낫게 하다. 세조 13년 봄. 상원사 고양이가 세조의 옷자락을 물어 자객의 존재를 알려주다.

당시 발생한 여러 이적의 구현만큼 재밌는 구석은 바로 말의 전파다. ‘정이품송 작전’의 성공 후 덕호는 “이제 겨우 씨앗을 뿌렸는데 열매를 바라시다니요”라는 반문으로 한명회에게 ‘발 없는 말’이 그 누구보다 빠름을 강조한다. 씨앗이 자라고 커질 것이라는 그의 말대로 부풀어진 소문은 한명회를 흡족하게 한다. 세조가 하늘이 보살피는 왕이 분명하다고 믿는 백성을 통해서는 최근 유행 중인 ‘가짜 뉴스’에 대한 경각심을 느낄 수 있다.

나비 효과도 등장한다. 이적 현상의 창조주인 그가 부처와 꽃비가 모두 공갈이고 가짜라고 실토하나 세상은 매질을 가할 뿐 그의 고백은 전혀 믿지 않는 것이다. 말의 속성을 꿰뚫는 신이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공기와 다름없다. 하지만 그 공기가 타인의 귀에 들어가는 순간 말은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변할 수 있다. 결국 덕호는 그의 “이야기”에 스스로를 옭아매고 또 그의 “이야기”로 세조와 공신들이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한다. 애초에 한명회가 광대들을 불러 모은 이유가 ‘육신전’―조선 성종 때 문인 남효은이 사육신(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의 행위를 역사에 남기고자 펴낸 책―을 모티브로 하는 ‘육신의 충’에 맞불을 놓기 위함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말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말이라는 결론과 함께, 부제 ‘풍문조작단’이 오히려 원제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다만 웃음에의 집착이 병적이다. ‘노쇠한 세조와 공신 한명회의 갈등’이 갖는 무게감이 그 웃음에 희석되고 만다. 왜 문수보살은 딱지 말고 다른 것을 만졌나, 꼭 덕호는 전문성 없는 계획도를 제시해야 했나 등 여러 의문이 산재한다. 특히 발명품 중 조명기와 뜀박틀(트레드밀)은 그 유치함을 배가시키는 일등공신. 언론시사회에서 김주호 감독은 “코미디 부분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편히 보실 수 있을 정도로 활용했다”고 했지만, 그것이 충신과 역적이 한데 뒤섞인 세조 시대와 따로 논다는 것이 문제다.

한편, 극 중 덕호의 스승 말보(최귀화)는 “뭐 언제는 자유로워서 좋았다며. 거침없이 말할 수 있어서. 신나게 돌아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며. 그래 어디 벼슬 받으니까 행복하더냐? 개새끼 마냥 목줄 채워지니까 좋아?”라는 말로 제자를 나무란다. 오버랩되는 순간이 있다. 중화권 출신 국내 아이돌 그룹 멤버 몇몇이 SNS에 ‘14억 명의 오성홍기 수호자가 있다. 나는 국기 수호자다’는 글을 공유하고 있는 작금의 행태다. 홍콩이 송환법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동안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는 그들에게 덕호의 일장 연설 하나를 소개한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시오.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유일한 천민, 예인들이오. 억만금을 줘도 부리고 싶지 않은 재주는 부리지 않고 굶어 죽더라도 그리고 싶은 그림은 그려야 직성이 풀리고 자존심이 상하면은 누가 죽이지 않아도 스스로 혀 깨물고 죽는 놈들이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고 사는 놈들이란 말이오. 아시겠소?”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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