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 터부시한 ‘장사리’…과연 배척이 정답일까?
|목탁 같은 작품이나 그 공허만이 닮았을 뿐
[김영재 기자] 평균 나이 17세·훈련 기간 2주에 불과한 학도병 유격대가 문산호를 타고 장사리로 향한다. 허나 작전에 성공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고립감과 허기뿐인데….
하지만 그들의 필사적 전투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끝까지 냉정함을 유지한다. 소위 ‘애국 영화’에 대한 병적 터부가 작품 전반을 지배해서다.
만일 ‘장사리’가 시험지라면 감독은 그 시험지 위에 왜 학도병은 전쟁에 나가야 했는가에 대한 답을 충실히 적어 내려간다. 엄마에게 인정받으려고, 인민군에게 복수하기 위해, 오빠를 살리고 싶어 그들은 낡은 장총을 손에 쥔 채 장사리에 간다. 하지만 애국의 빈자리를 채우기에 그 설명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 아쉽다. 작전이 기밀에 부쳐진 탓에 군번도 없이 잊혀 가던 학도병을 ‘기억’하는 것은 물론 옳은 일이다. 장사상륙작전을 담백하게 그려 낸 데는 분명 고인과 유가족에 대한 예우가 큰 영향을 끼쳤을 터. 그러나 다큐멘터리가 아니지 않나. 영화적 작법으로 감정에 풍랑을 일으켜야 할 의무가 상업작에는 있다.
같은 제작사(태원엔터테인먼트)가 만든 다른 한국전쟁 영화를 보자. 영화 ‘포화 속으로’에서 강석대 대위는 눈앞의 오합지졸 학도병에게 다음을 말한다. “학도병은 군인인가 군인이 아닌가. 너희들의 조국이다 반드시 지켜낼 거라 믿는다.” 후에 그 부탁은 “학도병은 군인”이라는 다수의 자발적 함성으로 증폭돼 보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인천상륙작전’ 역시 마찬가지다. 장학수 대위는 서로 싸우는 부대원을 말리며 “단 한 명만 살아남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일갈한다. 과연 애국은 무조건 배척해야 마땅할 것일까. 또 장사리에 잠든 잊힌 영웅들에게 애국을 덧입히는 일은 그릇된 작법일까.
그간 애국이 반공의 일환으로 소모된 것은 맞다. 하지만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지난해 4월 판문점 남측 지역으로 내려 온 이상, 애국은 프로파간다에 의해 자라나는 것이 아닌 자발적으로 피어나는 일반적 감정이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철 지난 애국 영화’를 피하려다 ‘단순한 한국전쟁 영화’가 태어난 꼴이다. 하나를 택하라면 차라리 전자가 낫다.
‘장사리’는 할리우드 배우 메간 폭스가 한국전쟁의 지난(至難)한 실태를 전 세계에 알리고자 분투하는 종군 기자 매기 역을 맡아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마가렛 히긴스 등에 영감을 얻은 캐릭터로,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로만 그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아마 이번 영화는 그에 대한 편견을 깨는 일종의 시금석이 될 전망. 배우 김성철과 최민호의 연기도 ‘장사리’의 매력 중 하나다. 특히 김성철은 인간의 칠정 중 미움(惡)과 사랑(愛)을 오가는 연기에 마지막에는 욕망(欲)과 슬픔(哀)을 동시에 녹여냄으로써 앞으로 더 자주 그를 만나고 싶은 기쁨(喜)을 선사한다.
104분. 12세 관람가.(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