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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버티고’ 천우희, “너무 이겨내려고만 했던 건 아닐까”

2019-10-25 13:42:30

[임현주 기자] 배우 천우희가 영화 ‘버티고’를 통해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지금까지 현실과 떨어진 캐릭터를 했다보니까 주변 선배님들이 많이 말씀했어요. ‘네 나이 대에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요. 저 역시 서른에 접어들면서 현실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 일상에 담을 수 있는 것들이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 이젠 나도 공감할 수 있는 모습들을 해보자’ 했어요.”

영화 ‘한공주’(2014)에 이어 ‘곡성’(2016) ‘우상’(2019) 등을 통해 강인함을 연기했던 배우 천우희가 이번 영화 ‘버티고(감독 전계수)’를 택한 이유다. 개봉을 하루 앞둔 10월15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서 만난 천우희와 영화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그리고 인간 천우희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버티고’는 현기증 나는 일상, 고층 빌딩 사무실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서영(천우희)이 창밖의 로프공 관우(정재광)와 마주하게 되는 아찔한 고공 감성 영화다. 극중 서영은 IT업체의 계약직 디자이너로, 사내연애를 하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집안일까지 뜻대로 되지 않는 지난한 일상을 간신히 버티며 살아간다.

천우희는 서영을 떨리는 눈빛, 목소리, 동작 하나하나에 응축된 감정을 담아 표현해냈다. 어쩌면 답답했을 수도 있겠다.

이에 천우희는 “제 3자가 봤을 때 노련하고 쉽게 할 수 있는 건데 그것조차도 힘든 사람이 있을 수도 있거든요. 서영이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나름의 배려와 노력을 했다고 생각해요”라면서, “남에게 함부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요. 그 사람이 아니고서야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 입장이 돼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니까”라고 소신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자라서 30대라서가 아니라 요즘 세상 살기가 너무 팍팍한 것 같아요.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은데 특히나 그 관계들 속에서 본인이 책임져야하는 자리들이 많은 것 같아요. 딸로서, 직장의 직급으로서, 결혼을 했다면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 위치에서 해내야 하는 게 버거울 때가 많지 않나. 힘겨운 자리들을 버텨내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이 갔어요. 또 사회의 압박감이나 공허함 속에서 너무 외롭고 고독할 때가 많은데 그런 점들도 공감됐어요”라고 밝혔다.


극중 서영처럼 천우희 역시 ‘인간관계’는 어렵다고 털어놨다. “관대하지만 아직도 익숙하지 않아요. 물론 대중 앞에 서야하고 현장에서도 중심에 서야할 때가 많지만 인간관계에 트러블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저 또한 어렵고 아직도 모르겠어요. 다퉈보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하면서 조금씩 더 현명해지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쭉 찾아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싶어요.”

연기할 땐 불나방이 돼지만, 그 외적인 부분에서는 쑥스러움이 굉장히 많다는 천우희. 실수하는 것 역시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인 그가 드라마 ‘멜로가 체질’과 ‘버티고’를 만나 자신이 한 꺼풀 벗겨질 수 있었다고.

“지난해 의욕도 떨어지고 스스로 의심이 많이 들 때였어요. 버티려고 버티는 건지 상황에 놓이니까 버텨지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지금까지 스스로 강하고 단단한 사람,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간 일을 하면서 지칠 때마다 너무 이겨내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싶더라고요. 주저앉아도 보고 이야기도 해보면서 그 흐름에 맡기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아플 땐 아파하고 힘들 땐 힘들어하는 게 맞는 것 같더라고요.”

외유내강했던 천우희에게 힘들었던 2018년. 그를 지치게 만든 배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와 관련해 천우희는 “‘우상’ 촬영 기간이 조금 늘어나기도 했고 ‘한공주’에 이어 이수진 감독님과 두 번째 작품이니까 욕심과 책임감이 컸어요. 그 책임감을 7개월 동안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더 잘해내고 싶었는데 못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실망도 했고 모든 것을 소진했다고 느낄 때였어요. 평소엔 ‘다음에 더 잘해야지’ 하고 넘어가는데 그때는 그럴 여력도 없더라고요. ‘이 부족함을 사람들이 보면 어떡하지’ 걱정도 됐고 두려웠어요”라고 털어놨다.

이어 “1년 정도 일을 쉬었거든요. 당시엔 힘들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올해 에너지를 받으며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제 기준에 못 미치면 절대로 안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제는 여유도 생기고”라며 웃었다.


실제로 만난 천우희는 인간적이었고 배려심이 깊었다. 스스로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자부할 정도로 함께 지내는 사람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서른이 넘어서 제가 제 밥벌이를 하니까 좋더라고요. 부모님께 용돈드릴 수 있는 것도 좋고 후배들한테 밥 한 끼 살 수 있어서 좋아요. 조금씩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좋고요. 어려운 것보다 좋은 것을 바라보려고 해요. 배우의 좋은 점은 많은 사람들이 먼저 찾아와 준다는 거예요. 물론 상처도 받고 하지만 충분히 좋은 사람도 많고 기회도 많은 것 같아요.”

‘멜로가 체질’ 진주에 이어 또 다른 서른의 얼굴 서영으로 분한 천우희의 감성 연기는 현재 상영 중인 영화 ‘버티고’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사진제공: 나무엑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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