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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기자의 설] ‘왕이 돌아왔다’ CJ ENM…2019 韓 투자배급사 결산①

2019-12-24 19:43:13

|지난해 ‘신과함께’로 한 방 맞은 CJ ENM
|‘극한직업’ ‘기생충’ ‘엑시트’ ‘나쁜 녀석들’ 연달아 대흥행
|장인의 최선일까? ‘백두산’을 향한 의문


[김영재 기자]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이하 뉴)가 ‘킹콩을 들다’로 첫 한국 영화를 배급한 때가 2009년이니 올해로 딱 10년째다. 그간 한국 영화 시장은 CJ ENM, 롯데컬처웍스 롯데엔터테인먼트(이하 롯데), 쇼박스, 뉴까지 총 네 투자배급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4강(强) 구도를 형성해 왔다. 녹록지 않은 그 10년 동안 CJ ENM은 총 7편, 롯데는 총 2편, 쇼박스는 총 5편, 뉴는 총 3편의 자사작이 ‘천만 영화’에 등극했다.

하지만 지난해 위기가 닥쳤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18년 한국 영화 투자 수익율은 -17.3%, 즉 적자였다. 2011년까지 내내 적자만 기록하다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늑대소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내 아내의 모든 것’ ‘건축학개론’ 등 여러 흥행작에 힘입어 흑자를 기록한 2012년 이후 첫 적자였다. 개봉하는 족족 관객은 한국 영화를 외면했다. 추석 및 연말 대목에는 대작 총 7편 중 오직 ‘안시성’만이 손익분기점(BEP)을 넘으며 한국 영화계 장르가 순식간 호러가 됐다.

2018년 총 관객수는 2억 1639만 명. 2013년 처음으로 ‘2억 관객(2억 1332만 명)’을 돌파한 이래 박스오피스는 늘 2억 1천만 명 선을 유지 중이다. 또 인구 1인당 관람 횟수는 4.18회로 여전히 전 세계 최고 수준. 하지만 2017년 대비 한국 영화는 관객수가 3.3% 감소했고 점유율은 0.9%p 하락했다. 다만 점유율 50%대만큼은 유지했다. 8년 연속이다.

한편, 그 빈자리는 외화가 차지했다. 2위(‘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3위(‘보헤미안 랩소디’), 4위(‘미션 임파서블: 폴아웃’), 6위(‘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 7위(‘앤트맨과 와스프’), 9위(‘블랙 팬서’)까지 할리우드 영화 총 6편이 전체 흥행작 상위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힘들어도 해는 바뀐다. 무술년이 가고 기해년이 왔다.

CJ ENM은 2019년 제일 성공한 투자배급사다. 투자·제작·배급작을 두 편 모두 성공시켰고 그 중 한 편은 ‘명량’에 이어 누적 관객수가 두 번째로 많았다. 봉준호 감독은 황금종려상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CJ ENM 일곱 번째 ‘천만 영화’를 안겼다. 두 남녀의 “따따따 따 따 따 따따따”는 누가 출연하고 연출하든 관객은 재미에 리트머스처럼 반응한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CJ ENM은 11월까지 한국 영화로 총 4702만 명을 극장에 동원했다.


▶롯데에게 석패…0.8%p 차로 왕좌에서 내려와

무엇이 문제였을까. 한국 영화 배급사별 시장 점유율 기준, 2015년부터 지난해―2018년 7월1일 CJ오쇼핑이 CJ E&M을 흡수 합병해 통합법인 CJ ENM이 출범했다―까지의 CJ ENM을 요약하는 단어는 ‘악화일로’였다. 2015년에는 총 4565만 8523명(관객 점유율 40.5%)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지만, 그 이후가 쭉 내리막이었다. 2016년에는 총 3196만 7113명(관객 점유율 27.5%)을, 2017년에는 총 2861만 1098명(관객 점유율 25.1%)을, 2018년에는 총 2767만 5291명(관객 점유율 25.1%)을 동원했다. 3년 새 15.4%p가 깎였다.

2018년에는 순위마저 하락했다. 2003년부터 15년째 전체 영화 시장 점유율 정상을 지켜 왔으나, 롯데에게 전체 영화 시장 점유율과 한국 영화 시장 점유율 모두 1위를 빼앗긴 것. 2018년 8월, 경쟁사는 ‘신과함께-인과 연’으로 총 1227만 6350명을 동원하는 동안 CJ ENM의 ‘공작’은 고작 497만 5517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손익분기점보다 약 27만 명을 더 모았을 뿐이고, 여름 시장만 놓고 보면 명명백백한 롯데의 승리였다. 특히 ‘골든 슬럼버’(설), ‘협상’(추석), ‘PMC: 더 벙커’(연말) 모두 흥행에 실패, 깊은 상흔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J ENM이 완전히 꼬꾸라진 것은 아니었다. 2018년 한국 영화 시장 점유율 기준, 두 회사의 차이는 고작 0.8%p에 불과했다.


▶‘천만 영화’가 무려 두 편…이병헌·봉준호로 웃음꽃 활짝

그런 CJ ENM이 2019년부터 눈에 띄게 달라졌다. 먼저 설 연휴를 겨냥하고 개봉한 ‘극한직업’(1626만 5618명)이 2019년 첫 ‘천만 영화’에 등극하며 CJ ENM의 흥행 갈증을 해소시켰다. 각본의 말맛이 좋았고―이병헌 감독이 각본까지 도맡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충일 작가의 초고를 배세영·허다중 작가가 각색했고 마지막으로 이병헌 감독이 최종 감수를 맡았다―, 특히 류승룡의 활약이 대단했다. 가히 왕의 귀환이었다.

2월에는 신을 향한 물음표에 불씨를 댕긴 ‘사바하’(239만 8519명)가 손익분기점을 못 넘었다. 5월에는 ‘걸캅스’(162만 9528명)가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페미니즘 영화로 의심 받기도 했으나 결국 성(性)과 무관한 유쾌하고 통쾌한 영화로 호평 받았다.

그리고 ‘기생충’(1008만 4602명). 제 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계급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봉준호 감독 품에 생애 두 번째 ‘천만 영화’를 안겼다. 또, 봉준호 감독은 제 40회 청룡영화상에서 ‘기생충’으로 감독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의 가장 창의적인 기생충이 되어 한국 영화 산업에 영원히 기생하는 창작자가 되겠다”고 소감을 남겼다. 지난해 넷플릭스 영화 ‘옥자’로 CJ CGV를 비롯한 국내 3대 멀티플렉스 체인과 대립각을 세운 그가 ‘살인의 추억’ ‘마더’ ‘설국열차’에 이어 ‘기생충’으로 CJ ENM과 다시 손발을 맞춘 점은 모두가 미래라 외치는 OTT(Over the Top) 사업이 실은 그 미래에 도달하기까지 아직 여러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는 실제 예다.

‘엑시트’(942만 5294명)도 대단했다. ‘극한직업’ ‘걸캅스’를 잇는 2019년 CJ ENM의 세 번째 코미디 영화 ‘엑시트’는 조정석·임윤아의 젊음과 전진으로 대표되는 작품의 속성이 서로 맞아떨어지며 깜짝 흥행을 일궈냈다. 또한, 비록 ‘천만 영화’에는 약 58만 명 차이로 미달됐으나, CJ ENM으로서는 지난해 롯데에게 받은 여름의 치욕을 제대로 갚았다. 같은 날(7월31일) 개봉한 롯데 ‘사자’(161만 1163명)의 손익분기점은 350만 명에 달한다.

9월에는 ‘나쁜 녀석들: 더 무비’(457만 3371명)가 지난해 추석의 아픔을 달랬다. 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나쁜 녀석들: 더 무비’가 손익분기점 255만 명을 훨씬 넘는 성적을 기록한 까닭은, 물론 타 투자배급사 추석 영화가 미진한 완성도로 관객의 외면을 받은 탓도 있지만, 추석 연휴에는 대개 가족 단위 관객이 극장을 찾는 점과 남녀노소가 공통으로 선호하는 마동석이 주연을 맡은 점이 연쇄적으로 작용했다. 투자배급사가 극장업까지 겸업하는 수직계열화도 여러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실례로 개봉 후 일주일 내 발생한 최다 스크린 수 기준, ‘나쁜 녀석들: 더 무비’는 총 1511개 스크린을 차지했고 그에 비해 같은 날(9월11일) 개봉한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총 990개 스크린이 최다였다.

쇼박스 투자배급으로 제작된 1편에 이어 CJ ENM이 투자배급을 맡은 ‘신의 한 수: 귀수편’(215만 5441명)은 약 15만 명 차이로 손익분기점에 미달됐다.


▶‘백두산’으로 화룡점정…전대미문 개봉 하루 전 공개

12월 CJ ENM의 선택은 ‘백두산(감독 이해준, 김병서)’이다. 남북을 배경으로 백두산의 마지막 폭발을 다루는 영화로, 무엇보다 출연진 면면이 대단하다. 이병헌·하정우·마동석·전혜진·배수지 등 주연급에 해당하는 다섯 배우가 한 데 뭉쳤다.

하지만 악재도 있다. 언론시사회가 개봉을 하루 앞두고 열린 것. 18일 언론시사회에서 이해준 감독은 “당초 예상보다 후반 작업이 많이 필요했다. 완성도를 위해 개봉 하루 전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며 양해를 구했다.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의 탄생’이라는 호평도 존재한다. 하지만 ‘신과함께’ 시리즈로 이름을 날린 덱스터스튜디오의 여러 CG 신과는 별개로, 러닝 타임을 의식하게 하는 ‘완급 조절 실패’ 및 극중 두 주인공의 무리한 코미디 요소 등이 대작의 앞날을 마치 화산재로 뒤덮인 한반도처럼 어둡게 만든다.

과연 총제작비가 300억 원에 달하는 ‘백두산’은 ‘극한직업’으로 2019년을 신명나게 시작한 CJ ENM에게 화려한 피날레를 안겨 줄 수 있을까. 영화계 안팎의 이목이 집중된다. 만약 ‘백두산’이 흥행한다면 2019년 CJ ENM은 총 6편의 흥행작을 배출하게 된다.

(사진출처: CJ ENM, bnt뉴스 DB)
(자료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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