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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없는리뷰] ‘다크 워터스’, 웨스트버지니아에 흐르는 맑은 물

2020-03-14 22:52:52

|PFOA 논란 영화화한 ‘다크 워터스’…장르에 갇힌 범작
|변화 이끌어 내는 데는 숫자보다 의지가 중요해


[김영재 기자] 가수 존 덴버는 노래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즈(Take Me Home, Country Roads)’에서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州)를 천국에 비유했다.

“천국과 같은 웨스트버지니아 / 블루리지 산맥과 셰넌도어 강 / 그곳의 삶은 나무보다 오래되고 / 산들보다 어리고 바람처럼 자라네”. 자연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의 음색은 영화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는 흡사 사이렌의 노래로,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에서는 긴 여정의 마침표로 사용됐다. 우주에도 오지에도 온기가 꽃을 피웠다.

반면 11일 개봉한 영화 ‘다크 워터스(감독 토드 헤인즈)’에서의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즈’는 그 따뜻함을 찾을 길이 없다. 감독은 독성 물질에 오염된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존 댄버의 향가를 덧붙임으로써 화학 물질의 위험성과 기업의 비양심이 얼마나 큰 위기를 불러오는가를 극화한다. 그렇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현실 고발극이다.

롭 빌럿(마크 러팔로)은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다. 어느 날, 롭은 그가 어렸을 적 뛰놀던 곳이 이제는 듀폰에 의해 젖소 190여 마리의 무덤이 됐다는 사실을 접하고 조사를 시작한다. 듀폰이 독성 물질의 위험성을 알고도 ‘제품의 장기적인 가능성을 위해 위험을 감수’한 것을 알게 된 롭은 듀폰의 PFOA(과불화옥탄산) 유출을 폭로, 환경보호국의 조치를 촉구한다. PFOA와 질병의 상관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롭은 외로운 사투를 시작한다.

주인공 롭의 PFOA 언급이 나, 너,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 과불화화합물이 요리 중 음식물이 프라이팬에 눌어붙지 않는 데 사용되는 불소수지 PTFE(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테프론)의 가공 보조제라서다. 열에 강하고 방수 효과가 뛰어난 PFOA는 1950년대부터 여러 생활 및 공업 용품에 널리 쓰여 왔다.

하지만 PFOA는 화학적으로 안정된 구조를 가지고 있는 탓에 체내 반감기가 수년(3~5년)이나 되고, 암 유발은 물론, 호르몬 교란으로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고 알려졌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PFOA에 대한 규제를 점차 강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크 워터스’에 따르면 듀폰은 PFOA를 다루는 자사 근로자를 대상으로 역학 조사를 벌였으며, 1981년 출산 실험에서는 임신 여성 7명 중 2명이 회사 예상대로 얼굴 기형을 가진 아이를 출산했다.

사실 ‘<스포트라이트> 제작진의 충격 고발 실화’라는 문구에도 불구하고 ‘다크 워터스’는 실화극의 한계에 갇힌 범작에 불과하다. 롭이 PFOA로 인한 중증 질병 피해자 3535명에 대한 재판에서 총 6억 7070만 달러의 배상 판결을 받아 내기까지 관객 머릿속에는 오직 PFOA만이 잔존할 뿐이다. 위험성 전파의 역사적 사명을 띠기라도 한 듯 실화 전달에 치중한 나머지 배우도, 감독도, 그 누구도 ‘나’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것이다.

영화 ‘파 프롬 헤븐’ ‘아임 낫 데어’ ‘캐롤’ ‘원더스트럭’ 등으로 유명한 토드 헤인즈 감독. 그는 롭의 고뇌와 분노를 후면이나 사선에서 관찰하는 것으로 등장인물의 감정을 담담히 쌓아올리는 듯하나, 마지막에는 그 불길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롭의 포효 속에 작품도 함께 폭발시킨다. “우리 정부는 듀폰에 매수됐어요”, “국가 체계는 조작됐어” 등의 대사는 본작과 롭을 ‘정의의 투사’로 만들기보다 둘 모두를 촌스럽게 만드는 것에 부족함이 없다. 제작에도 참여한 배우 겸 환경 운동가 마크 러팔로는 그의 신념을 담아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아니라 세련된 실화극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갖고 작품에 임해야 했다.

한편, 배우 빌 캠프가 연기한 시골 농부 윌버 테넌트에는 주목이 필요하다. 화학 회사를 변호해야 하는 롭이 도리어 그 회사를 고소하는 역설의 중심에 바로 그가 있다. 중학교만 나온 농부라 무시받을지언정 부당한 일에 맞서는 그의 모습은, 보호란 “회사도 과학자들도 아니고 정부도 아니고 우리 스스로”의 몫임을 온 세상이 알게 한다. 특히 실존 인물 롭 빌럿의 용기도 본받아 마땅한 선의다. 출연부터 증언까지 여러모로 본작에 힘을 보탠 그는 “한 사람이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며, “단 한 사람, 하나의 작은 마을이 거대 권력을 상대로 싸웠고 결국 이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행동한 듀폰의 작태를 보면 국내외 여러 대기업의 파렴치함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결국 속도가 문제일 뿐 세상은 변화 중이다. 그 결과 웨스트버지니아 주에도 이제는 PFOA가 없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사진제공: 이수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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