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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보결은 날기 시작했고, 그는 이미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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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야기 ‘하이바이,마마!’서 오민정 役
|계모 향한 사회적 편견 없어졌으면 해
|첫 엄마 연기? “부담스러웠지만, 의미 있는 도전”
|노력과 열정에 기회와 운, 깨달음이 필요한 것이 배우
|지금 고보결은 좋은 사람에 있다


[김영재 기자] 말에는 힘이 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더욱이 말에는 그 말을 이루는 개개와 전혀 별개의 힘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 계모(繼母) 역시 그렇다. 이을 계에 어머니 모가 더해져 ‘엄마를 잇는 엄마’라 불리는 계모. 하지만 한 인간이 계모로 지칭된 순간, 자애로운 엄마는 곧 음흉하고 괴팍한 새엄마로 고쳐 생각된다.

“어떤 분께서 계모의 심경을 토로하시는 영상을 봤어요.” 배우 고보결(32)이 말했다. “참 마음이 아팠죠. 여러 힘든 부분이 있는데, 게다가 타인의 시선까지. 힘들어하시는 그분의 모습을 보고, ‘사회적 편견이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당신이 연기한 오민정은 어떤 엄마입니까?” 기자가 물었다.

“오민정은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엄마예요. 그게 겉으로 잘 안 드러날 뿐. 서툴지만 노력하는 엄마라 표현하고 싶어요.” 고보결이 답했다.

tvN에서 지난달 19일 인기리에 종영한 주말드라마 ‘하이바이,마마!’. 사별의 아픔을 딛고 재혼한 남편 앞에 아내이자 엄마 차유리(김태희)가 다시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뭉클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생(生)과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일깨우는 드라마로 호평받았다. 고보결은 아내와 사별한 남자에게 ‘빛’이 된 여자 오민정을 연기했다.

차유리도 고보결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장화 홍련’ ‘신데렐라’ ‘콩쥐 팥쥐’ ‘심청전’ ‘백설공주’를 어린이집 책장에서 소거하고는, 그 책들을 “애들의 상상력을 가두는 책”이라 불렀다. “‘새엄마는 나쁘다, 괴롭힌다’ ‘친엄마 없는 애들은 다 불쌍하다’ 뭐, 이런 사고방식을 애들한테 세뇌시키는 거잖아요.” 다음 말이 ‘대박’이다. “계모는 다 싸잡아서 나쁜 년 만들고.” 진짜 계모에게는 죄가 없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이 사회가 계모를 오용하는 것에는 뿌리 깊은 차별의 시선이 담겼다는 점을 짐짓 모른 척한 것뿐이다.

설령 계모에게 죄가 있다 한들 그 죄는 동화 속 계모의 전유물이다.

“엄마 역은 처음이었지요?” 기자가 물었다. 아직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인 상황. 배우와 기자가 한데 모인 카페 지하층은 근처에 지하철이 지나다니는지 이따금 공간이 둥둥 울렸다. 기자의 시선이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린 고보결에게 향했다.

“처음에는 엄마 역할이 부담스러웠어요.” 그가 대답했다. “하지만 의미 있는 도전이었어요. 엄마에 감정을 이입해 보니 저 자신이 한층 성숙해지더군요.”

민정은 동네에서 ‘오만정’으로 불린다. 다섯 살짜리 애가 미술, 영어, 발레까지 종일 학원만 다니느라 엄마한테 오만 정(情) 다 떨어지겠다고 해서 오만정이다. 혼자 아이 돌보기 힘드니까 학원 ‘뺑뺑이’ 돌린다고 오해받는 새엄마 민정.

사실 민정은 세상 그 누구보다, 어쩌면 친엄마 유리보다 더 많이 딸 조서우(서우진)를 사랑하는 계모다. 진짜 서우 엄마를 하겠다며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그만둔 민정은 친엄마가 아니고 새엄마라는 주위의 수군거림에 “그러나 세상엔 나의 노력과 열정만으론 이룰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그런 자리가 있었다”고 말한다.

“딸이 고사리손으로 엄마 민정 손등에 밴드 붙이는 신이 좋았어요.” 기자는 감상을 공유했다. “남편도 친엄마도 동네 언니도 모두 미안하다고만 하는데, 아이는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그저 엄마 아프지 말라며 입바람을 호 불어줘요.”

“저도 그 신이 좋았어요.” 고보결이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호 해주는 순간 민정이가 ‘엄마가 아파 보여?’라고 묻는데, 많이 아프고 힘든 걸 혼자 견디고 감내하려고 한 것을 내 자식이 알아준 순간이잖아요? 감정이 참 울컥하더라고요.”

분명 모든 계모가 다 착한 엄마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유리의 말대로 민정은 사고 이후 선인장처럼 상처투성이가 된 남편을 본인이 피가 나는지도 모르고 안고 있는 아내고, 딸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엄마다. ‘우리 서우 엄마가 그쪽이어서 다행이다.’ 엄마를 잇는 엄마로서 이만한 칭찬이 또 있을까. 세상은 열 달 배 아파 아이를 낳은 엄마의 낳은 정이 기른 정보다 끈끈하다고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분법적 사고가 통용되지 않는 시대다. 아이들은 다 안다. 부모가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진심이 먼저다.

민정은 진심으로써 딸과 친엄마 모두를 감복시켰다.

“‘그때의 난 인생에서 주어지는 어떤 자리든 노력과 열정 하나면 가지지 못할 게 없다고 자만했다’, 기억하죠?” 기자가 대사 하나를 읊었다. 민정이 서우 양육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말한 뒤 배경으로 흐르는 내레이션이다. “배우로서 느끼는 바가 있는 대사였을 듯합니다. 때론 노력과 열정이 만능이 아닌 경우도 있으니까요.”

“정말 비슷하죠.” 고보결이 끄덕였다. “뭣도 모르고 배우 하겠다고 달려든 처음에는 노력과 열정만 믿었는데, 그것만으로 안 되는 부분이 또 있더라고요. 기회도 따라야 하고, 운도 따라야 하고요. 시기에 맞는 깨달음도 필요하고요.”


‘천상여자(2014)’를 시작으로 ‘실종느와르 M(2015)’ ‘프로듀사(2015)’ ‘풍선껌(2015)’ ‘디어 마이 프렌즈(2016)’ ‘끝에서 두 번째 사랑(2016)’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2016)’ ‘도깨비(2016)’에서 조연으로 얼굴을 알렸고, ‘7일의 왕비(2017)’를 통해 첫 정극 주연을 맡았다. 이후 ‘하이바이,마마!’ 권혜주 작가의 전작 ‘고백부부(2017)’로도 눈도장을 찍었다. 서울예술대학교를 수석 입학한 것도 모자라 조기 졸업까지 했다. 존경하는 배우는 송강호, 김혜자 등. 연기를 처음 시작한 것은 순전히 아버지 때문이었다. ‘뽀뽀뽀’에 출연한 조카가 부러운 나머지 중학교 2학년 딸을 연기 학원에 데려간 것. 놀랍지만 실화다.

음료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말인즉, 인터뷰가 곧 끝난다.

“당신의 강점은 뭐죠?”

“진심을 담은 연기요.” 간결하나, 묵직했다. “제가 지향하는 건 연기에 진심을 싣는 거예요. 그게 제 강점이 됐으면 해요. 물론, 그렇게 되려면 무엇보다 경험과 감정을 잘 쌓아야겠죠. 다양하게, 많이 느끼고 싶어요. 꼭 좋은 재료가 될 테니까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습니까?”

“항상 하는 고민이죠.” 고보결이 답했다. “제가 전에 출연한 ‘마더’에 ‘새들이 이집트를 향해 날기 시작하면, 그들은 이미 이집트에 있다’라는 말이 나와요. 꼭 저를 두고 하는 말 같았어요. 좋은 사람,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둘 다 놓치지 않고 잘 해내고 싶고요. 그렇게 뚜벅뚜벅 걷다 보면, 그 길 위를 걷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할 거 같아요.”

‘새들이 이집트를 향해 날기 시작하면, 그들은 이미 이집트에 있다. 그들은 내면에 이집트를 갖고 있으며, 그렇게 자신의 내면을 향해서 날아간다.’ 작가 막스 피카르트의 저서 ‘인간과 말’에 나오는 말이다. 소설가 배수아는 해당 구절에 관해 “(작가는) 내 안에 이집트를 가져야 하며, 그것을 발견하고 느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을 작가로 조성하는 일, 이것은 작가의 일생의 일”이라고도 했다. 지금 고보결은 그를 배우로 조성하고 있다. 고보결 일생의 일이다. 혹 대중은 그와 이집트에서 조우할 수도 있겠다.

고보결이 언급한 좋은 사람은 모두의 이집트이기도 하니 말이다.

시간이 다 됐다는 관계자의 채근과 함께 지난겨울을 오민정으로 살아온 그와의 만남은 끝이 났다. 준비도 없이 봄과 작별한 5월의 어느 날처럼, 불현듯 끝난 찰나의 만남.

배우에게는 두 개의 자아가 있다. 본인 그리고 배역. 엄마에게 두 번의 안녕을 고하는 제목 ‘하이바이,마마!’를 따라 그들에게도 두 번의 안녕을 건네 본다.

오민정에게는 바이(Bye)를, 고보결에게는 하이(Hi)를.

다음번 찰나에는 그에게 어떤 ‘하이바이’를 건넬 수 있을까. 그를 만난 4월이 가고, 5월이 왔다. 사람들은 아직도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싸매고 다닌다. 시간은 흐르되, 풍경은 여전하다. 아마 고보결도 그럴 것이다.(사진제공: HB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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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전체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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