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G기자의 사만모②] 지현정, 요가라는 이름의 나침반

2020-07-03 15:14:38

[김강유 기자 / 사진 bnt포토그래퍼 윤호준] 사.만.모. 서울패션위크 취재 10년 차 기자가 ‘사심으로 만난 모델’들을 소개한다.

이번 인터뷰는 세 가지 파트로 질문을 나눠서 진행, 전체 기사를 2면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면에는 ‘패션모델 지현정’에 대한 인터뷰를, 두 번째 면에는 ‘요가강사 지현정’과 ‘서른다섯 지현정’에 대한 이야기를 싣는다.

[G기자의 사만모①] 지현정, 도약을 위한 백스테이지로 (기사링크)
[G기자의 사만모②] 지현정, 요가라는 이름의 나침반 (기사링크)

#삶의_중심에_놓인_작은_매트 ‘요가강사 지현정’

톱모델 지현정을 요가강사 지현정으로 바꾼 요가의 매력은 ‘내면으로의 방향성’이었다.

“요가는 자꾸 안으로 들어가거든요. 저는 외적으로 보이는 게 너무 중요한 직업이었는데 요가는 반대로 내 안으로 집중해요. 사실 어렸을 때였다면 별 관심이 없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계속 무언가를 하다보면 ‘그래서 그 다음은 뭔데’라고 생각하는 게 사람 심리잖아요. 보이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살다가, 갑자기 ‘그래서 그 다음은?’ 하다보니까 내적인 것에 포커스를 많이 맞추기 시작하면서 그 시기가 요가를 시작한 시기랑 맞물린 것 같아요.”

“처음엔 되게 단순하게 시작하게 됐어요. 몸매 관리도 해야 하고 해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되게 좋아했었어요. 그러다가 퍼스널 트레이너 분이 저한테 요가를 추천해 주셨어요. 제가 말랐는데 생각보다 무게를 잘 들어요.(웃음) 그게 수축하는 걸 잘 하는 사람인거예요. 긴장을 잘 하는 사람인거죠. 그런데 반대로 이완을 너무 못하는 거예요. 이완 운동을 시키면 잘 못하고, 지구력이 필요한 것도 못하고. 생각보다 몸이 심리적인 거랑 맞물려있거든요. 그런 것들이 심리적으로 유연성과 지구력이 떨어지는 거라고 말씀 하시면서 저한테 요가를 추천하셨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죠.”

올해 초, 단신으로 발리에 다녀온 것도 요가 수련을 위해서였다. 요가를 위한 해외 방문을 자주 하는 편인지 물었다.

“아직은 요가하려고 해외를 가본 건 딱 한 번밖에 없었어요. 그 전에는 여행 간 김에 이것저것 경험해본 정도였죠. 사실은 한국의 요가 시장이 아직은 다양하지가 않아요. 무조건 트렌디한 게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다양성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해요. 저도 아직 요가 시작한지 얼마 안 됐으니까, 다양하게 경험을 해보고 나중에는 그 안에서 제가 정말 원하는 그 한 길을 찾고 싶은데 한국에서는 그게 좀 힘들어요. 그래서 많이 가보고 싶은 것 같아요.”

해외 수련은 어떤 것들이 다른 걸까. “일단은 선생님들이 요가를 진행하는 스타일들이 다 다르고, 되게 창조적인 것들이 많아요. 근본적인 뿌리와 전문성은 기반에 두고 창조적인 것들이 많아서 그런 것들을 좀 경험해보고 싶어서 가고 싶은 것도 있죠. 그리고 요즘 더 심화해서 수련을 하고 싶을 때 한국에 있으면 집중이 잘 안 될 수밖에 없어요. 친구들은 자꾸 놀자고 연락 오고, 가족들도 있고, 일도 있고, 이러다보니까 정신이 분산되잖아요. 그런데 수련을 하겠다하고 해외에 가면, 수련 외에는 할 게 아무것도 없어요.(웃음) 정말로 정말 수련만 하거든요. 그래서 하나에 집중하려고 가는 부분도 확실히 많아요. 나를 시험해보는 것도 있고요.”

“친구들이 가끔 놀리기도 해요. 요가 유학 간다고.(웃음) 뭐, 디자이너들도 유학 가고, 다 유학 가잖아요. 우리나라도 충분히 빠르지만, 요가 같은 경우는 해외가 좀 더 빠른 부분이 확실히 있어요. 그리고 경험을 많이 쌓고자 가는 게 더 많죠. 예를 들어 제가 강사로서 요가 시퀀스를 짠다면, 외국 강사들은 어디에 포커스를 두고 시퀀스를 짜는지, 그런 것들을 보면서 영감을 얻으려고 가는 것 같아요.”


이쯤에서 먼저 밝히자면, 기자는 요가에 대해 기본 상식조차 없었던 ‘요알못’이었다. 평소 요가라고 하면 명상하는 자세, 혹은 유연성을 기르는 운동 같이 단순한 이미지였다.

“요가가 사실 엄청 다양해요. 많은 사람들의 인식에 요가가 되게 한정적이에요. 예쁘게 앉아서 명상하고 가볍게 스트레칭하고 이런 것만 생각하시는데, 사실 요가의 매력은 균형이에요. 요가는 진짜 ‘올 어바웃 균형’이거든요. 그 균형이 몸으로 가면 유연성과 힘의 균형이에요. 고난이도 동작들은 힘이 없으면 아예 못해요. 그런데 한 쪽 면에만 이렇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게 저는 좀 아쉽죠. 저는 이런 선입견 같은 것도 조금 깨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선택한 게 ‘아슈탕가 빈야사(Ashtanga Vinyasa Yoga)’라는 스타일을 수련하거든요. 굉장히 역동적이에요. ‘아슈탕가 빈야사’가 포기하시는 분들도 되게 많지만, 오래 지속적으로 마니악하게 이어가시는 분들도 많아요.”

“저는 아직 초보예요. ‘아슈탕가 빈야사’는 시작한지 1년 반 정도 됐어요. 동작과 동작 사이가 계속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균형을 계속 찾아가면서 흘러가는 게 되게 매력 있어요. ‘아슈탕가 빈야사’는 그런 역동적인 매력이 있어서 남자 분들이 되게 좋아해요.”

인터뷰를 위해 요가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 ‘요알못’ 기자에게는 수련, 수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수련, 수행이라고 하는 이유는, 사실 요가가 생각보다 되게 깊이가 있어요. 요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명상이에요. 명상으로 정신수양을 하기 위해서 그 전에 몸을 먼저 준비시키는 단계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요가 동작인거죠. 그걸 아사나(Asana)라고 하는데, 아사나 수련을 하고 나서 몸이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명상으로 가는 거예요. 사실 몸을 움직이면서도 명상을 할 수 있어요. 이렇게 명상으로 가는 과정이다 보니까 수련, 수행이라고 하는 거죠.”

“사실 요가는 매일 하는 게 제일 좋아요. 몸을 움직이는 것이 내 몸 상태, 마음의 상태를 끊임없이 체크하면서 지나가는 수련을 하는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매일 해야만 그 매일의 내 차이도 느끼고 나를 더 알 수가 있는 거죠.”

지현정의 요가 영상을 보면 생각보다 수련하는 시간이 길었다. 한 시간이 넘어가는 수련이었다.

“사실 그냥 선택이에요. 그냥 저는 한 시간 반을 목표로 하는데, 매일 한 시간 반을 못 할 수 도 있어요. 매트에 올라섰을 때 내가 그 한 시간 반을 다 소화해낼 컨디션이 아니면 십분만 하고 내려오기도 해요. 삼십분만 하고 내려오기도 하고. 하다보면 또 점점 괜찮아져서 한 시간 반을 채우기도 하고요.”

“그게 생각보다 되게 플렉서블한데, 외국사람들은 그게 되게 열려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선생님에 대한 그런 게 남아있으니까, ‘선생님이 리드를 하시면 다 해야 된다’ 이런 압박이 좀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다 하게 되는 경우도 되게 많죠. 저도 그게 힘들어요. 스스로를 너무 밀어붙일 때가 많아서 그것도 여전히 수련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요가를 알아보며 단어에 대한 생소함도 컸다. 요가에서는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언어에 관심이 많은 기자이지만 복잡해질 수 있는 설명은 차치하고, 지현정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물었다.

“저는 아힘사(Ahimsa)라는 단어를 되게 좋아해요. 사실 그 단어의 힘으로 수련하는 게 되게 커요. 한국말로 하면 아힘사는 비폭력이라는 뜻이에요. 저도 처음에는 그냥 비폭력이라고만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숙 선생님 수업을 들어갔을 때 되게 임팩트 있게 들은 게 있어요. 비폭력이란 것은, 나의 외부적인 환경, 혹은 사람이나 동물에게 비폭력을 해야 된다고 얘기를 하지만, 사실 나한테 먼저 그걸 실천해야 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나를 수련하면서 내 몸이 준비가 안됐고 내가 너무 힘든 데 ‘넌 해야 돼’ 이렇게 밀어붙이는 것도 어떻게 보면 되게 폭력적인 것이거든요. 그런 순간이 생각보다 살면서 되게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 성격이었어요. 뭔가 완벽해야 된다는 압박? 그런 것 때문에 너무 저를 폭력적으로 대했던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 그렇고 신체적으로도 그렇고.”


지현정은 최근 글로벌 브랜드들과 인스타그램 IGTV을 통해 실시간 요가 클래스를 진행했다.

“반응이 제가 생각한 것 보다는 괜찮았던 것 같아요. 좋은 편이었어요. ‘내가 뭔가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에 관심이 많을까’하는 의문이 늘 있는 편인데, 봐주신 분들이 많았다는 게 되게 놀랍긴 했었어요. 제가 뭐 어떤 신박한 걸 보여준 것도 아니고, 단지 요가를 지도한 것뿐인데.”

시청자들의 실시간 반응에 대해서는 자리에 함께한 에스팀 정지혜 피디가 답을 했다. “콘텐츠를 진행한 끌로에 계정이 글로벌 계정이라 영어로 진행을 했지만, 중간 중간 한국어를 섞어서 했어요. 그런데 실시간 방송에 들어오신 한국 분들이 글로벌 계정의 라이브에서 한국말이 들리니까 신기했던 거죠. 그래서 서로 ‘한국말 들려요’ ‘여기 한국사람 계세요’ ‘네, 여기 있어요’ 하면서 댓글로 서로 찾고 그러시더라고요.(웃음)”

지현정이 시간대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시간이 되게 애매했어요. 저희 시간으로는 오후 4시쯤이었고 파리 시간으로는 아침 9신가 그랬어요. 평일이었는데도 만 명이 넘었어요. 실시간 뷰가 만오천 정도 나왔던 것 같아요.”

짧게 생각해도 글로벌 브랜드의 실시간 소통 콘텐츠는 흔한 기회가 아니다.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걸까.

“끌로에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한국은 좀 덜한데, 해외는 지금 ‘집콕’해야 되는 상황이 많잖아요. 그러다보니까 끌로에가 그런 사람들을 타깃으로 한 콘텐츠를 정기적으로 만들고 있었더라고요. 확실히 하이패션 브랜드들은 빨라요. 제가 하기 전에도 이미 올라와있는 콘텐츠가 되게 많았어요. 그런데 끌로에 쪽에서, 이걸 한국 사람들이랑 하고 싶어서 기획 중인데 저랑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저는 되게 놀랐죠. 사실 요가가 패션 콘텐츠가 아니잖아요. 영역이 많이 확대 됐다는 것도 인지하게 됐어요.”

정지혜 피디가 말을 보탰다. “솔직히 코스 같은 경우에는 이번에 요가복 라인이 나오면서 같이 하게 된 경우인데, 끌로에는 딱히 그런 것도 아니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진짜 그 생활을 보여주는 콘텐츠였어요.” 지현정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전제가 본인의 집이었어요. 집에서 해야 된다고.”

요가 강사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냥 지금은 제 수련하고, 기회가 있을 때 이렇게 이벤트적으로 수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아직은 저도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당분간은 이렇게 하고 싶어요. 정기적인 수업보다는 한 번에 많은 사람을 만나는?(웃음) 하던 일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그런 이벤트적인 수업이 저는 사실 좀 더 편해요. 무대 체질?(웃음) 습관이 돼서 그런가 봐요. 불편하지 않고 더 재밌어요.”

“어릴 때부터 고질적인 문제가 꿈이 없어요.(웃음) 다른 사람들이 바로바로 말하는 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저는 어릴 때도 꿈이 없다가 모델이 됐는데, ‘넌 톱모델이 꿈이지?’ 하면 ‘아니에요’ 그랬죠.(웃음) 지금도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한 단계 한 단계 밟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모델 지현정과 요가인 지현정, 상반된 두 모습 사이 속에서의 ‘균형 잡기’는 어렵지 않을까.

“이게 되게 어려워요. 요가라는 말이 ‘통합’이라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교육을 받을 때, 내 일상과 매트 위에서의 나와 통합을 하라고 계속 얘기를 해요. 그런 훈련이기도 하고요. 근데 이게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자아가 되게 분리돼있거든요.(웃음) 혼란이 가끔 와요. 모델은 되게 외부적인 게 중요하고, 요가는 계속 내부로 들어가라고 하고. 저는 그걸 통합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모델과 요가, 각각의 활동 중에서 의미 있었던 순간을 꼽아달라고 했다.

“저는 모델에 있어서 제일 임팩트 있는 부분은, 제가 되게 낀 세대예요. 필름 카메라 세대에 데뷔를 했거든요. 너무 늙어 보이는 거 같은데?(웃음) 그 필름 카메라 시대를 겪은 것 자체가 저는 되게 저한테 엄청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다 모든 게 너무 빨라지고 쉬워졌다고 볼 수 있는 부분들도 많잖아요. 그 당시에 같이 일했던 분들의 그 고집과, 그분들의 일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해야 하고 완벽해야 되는 그 시기를 겪은 게 저한테 되게 큰 힘이 많이 된 것 같아요. 그 힘을 가지고 20년을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요가에서 제일 의미 있는 순간은... 되게 자주 느끼는 순간이긴 한데, 요가가 나를 만나는 작업이라고 했었잖아요. 근데 저는 외부에 엄청 포커스가 맞춰져 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걸 잘 못 겪어봤죠. 그러다가, 동작이 생각보다 마음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들이 되게 많아요. 그 중에 ‘전굴’이라고 앞으로 숙이는 동작을 할 때, 한 번 제가 진짜 눈물이 왈칵 쏟아진 적이 있었어요.”

“그때 잠깐 요가가 너무 하기 싫은 거예요. 그래서 한 달 정도 아예 수련을 안 하다가 꾸역꾸역 가게 됐었죠. 그때 딱 그 ‘전굴’ 동작을 하면서 제 정강이랑 얼굴이 가까워지는 순간, ‘아 내가 이렇게 나를 외면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왈칵 눈물이 쏟아져서 정강이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던 적이 있었어요. ‘내가 이렇게 좋았던 걸 하기 싫어했었구나’ 그랬죠. 저한테는 되게 의미 있는 순간이었어요. 아직도 다 기억나요, 그 시간대의 빛이랑, 입고 있던 옷이랑.”


#잘_하고_있어 ‘서른다섯 지현정’

이제 ‘톱모델’이니 ‘요가강사’니 하는 수식어는 버리고 ‘그냥 지금 지현정’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다. 요즘 그의 하루는 어떤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을까.

“사실은 별로 안 바빠요. 코로나도 그렇고, 모델들에게 워낙 여름은 비시즌이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이것 때문에 잠시 우울할 때도 있긴 하지만, 제 루틴을 만들려고 되게 노력하는 편이에요. 어릴 때는 모델 일 하면서 진짜 ‘온앤오프’가 너무 확실해서 일할 때 엄청 치열하게 일하고 집에 와서는 미친 듯이 뻗어서 누워있고를 반복했어요. 지금은 이렇게 슬로우한 내 라이프를 어떻게 잘 이끌어나가야 될까 고민하고 있어요. 나이적인 부분에서도 그렇고 상황적인 부분에서도 그렇고, 저의 숙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루틴은 7시 쯤 일어나서 아침에 수련하러 갔다가 돌아와서 간단하게 밥 먹고, 집 정리하고 청소하는 걸 되게 좋아해서 청소를 해요. 요리하는 것도 좋아해서 청소 마치면 요리해서 점심 먹고, 먹은 걸 치우다 보면 또 집안일을 할 시간?(웃음) 취미생활도 좀 해요. 영어 공부하는 걸 좋아해서 유튜브 보면서 영어 공부도 짬짬이 하고, 책 읽는 것도 되게 좋아하고, 그렇게 오후 시간을 보내는 편이에요. 그리고 다시 4~5시부터 저녁 요리를 시작해요. 저녁 먹고 다 치우고 이제 잘 준비를 할 시간이 되면 넷플릭스를 켜죠.(웃음) 어릴 때부터 영화 보는 걸 진짜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영화나 시리즈나 다큐 같은 걸 한 편 보고 그렇게 12시, 1시 정도에 잠들어요. 되게 심플한 라이프인데 나름 되게 바빠요. 엄청나게 바빠요.(웃음)”

책과 영화를 좋아한다는 지현정. 사실 그의 SNS에도 문화생활의 흔적은 많이 있었다.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질문 중 하나인 ‘인생작품’을 물을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영화는 너무 많은데... 어릴 때 팀 버튼을 너무 좋아했었어요. 그래서 ‘가위손’의 광팬이었는데,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진짜 많잖아요. 그런 일반적이지 않은, 정말 상상력으로만 만들 수 있는 세계와 캐릭터들이 저를 되게 많이 자극해서 모델 일하는데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하이패션도 창의적인 게 많아서 도움이 많이 됐죠.”

“책은 사실 몇 년 전에 본 책이긴 한데, 에크하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꼽을게요. 그 책은 저한테 되게 의미 있었던 게, 시기도 되게 중요하잖아요, 그런 것들은. 근데 제가요가를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 패션모델이랑 요가를 하는 것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던 그 시기에 제가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되는지 잘 안내해준 책인 것 같아요. 패션모델은 에고(ego)를 엄청 높여야 하고 요가는 그걸 자꾸 버리라고 하는데, 이 에고라는 개념 자체를 이 책을 통해서 많이 알게 됐죠. 나의 에고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조절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이 책을 보고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공연은 ‘향연’이요. 정구호 선생님이 연출하신 공연인데, 한국의 전통무용 공연이에요. 정말 너무 인생 공연이었어요. 제가 생긴 거랑은 굉장히 다르게 전통적인 걸 되게 좋아해요.(웃음) 제 꿈이 한옥에서 요가원을 해보는 거였어요. 어, 이게 목표네요.(웃음) 한옥에 제 요가 공안, 요가 스튜디오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런 창의적인 게 저한테 늘 필요한데, 제가 갖고 있는 미적인 부분을 되게 많이 자극해준 작품이었어요. 동양적인 절제미와 패셔너블함이 공존하고, 무엇보다 군무가 압권이에요, 진짜. 정말 ‘강추’하고 싶어요.”

“공연은 하나 더 있어요. ‘슬립노모어(Sleep No More).’ 뉴욕에서 하는 공연인데 대박, 정말 너무 쇼킹했어요. ‘맥베스’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공연인데, 첼시에 있는 호텔 건물 전체를 공연장으로 다 써요. 공연장이 보통은 되게 일방적이잖아요. 관객은 앉아서 보고 있는. ‘슬립노머어’는 건물에 들어가면 전부 세트장이고, 배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자기의 위치에서 연기를 하고 있어요. 한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동시간의 다른 공간 다른 배우의 연기는 못 보는 거죠. 배우들이 갑자기 싸우고 뛰어가면 제가 쫓아가기도 해야 돼요.”

“그리고 관객들은 전부 하얀색 마스크를 써야 해서, 배우들이 관객의 감정표현을 절대 볼 수 없어요. 그래서 배우가 연기를 할 때 바로 옆에 앉아서 볼 수도 있고, 좀 괴기하긴 한데.(웃음) 배우가 남기고 간 메모도 들춰 볼 수 있고, 전화기 같은 소품들도 만져볼 수 있어요. 왜 사람들은 다 그런 환상이 있잖아요. ‘저 영화 안에 들어가 보고 싶어’ 이런. 그 환상, 갈증을 해소 시켜주는 그런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두 번 봤어요. 뉴욕 가면 또 볼 거예요.(웃음) 근데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못 보는 경우가 많아요. 같이 본 친구와도 본 장면이 달라요. 중간에 헤어졌거든요.(웃음) 또 배우가 외국인이니까 얼굴도 헷갈리고 캐릭터도 헷갈려요.(웃음) 너무 재밌었어요.”


그의 SNS에는 인상적인 구절들이 많았다. 그중 유독 기자의 시선을 붙잡았던 글이 있었다. ‘나를 꾸미는데 불같은 열정을 쏟았던 20대’ 서른다섯의 지현정은, 절반을 지나왔고 절반이 남은 30대를 어떻게 설명해줄까.

“진짜 나를 찾는 30대를 보내고 싶어요. 모델이다 보니까 필터처럼 씌워진 이미지가 되게 많잖아요. 근데 20대에는 그게 전 줄 알았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이 나라고 생각했었죠. 저는 사춘기를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데, 30대 들면서 오히려 사춘기처럼 ‘나는 뭐지’ ‘나는 뭘 좋아하지’ ‘나는 뭘 하고 싶은 거지’ 이런 나를 찾는 과정을 이제 와서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되게 늦었죠.(웃음) 이걸 30대에는 좀 또렷이 하고 싶어요. 물론 그게 30대에 다 찾을 수 있는 건 아니고 평생의 여정이긴 하겠지만, 30대에는 제대로 큰 그림을 그려서 그걸로 중년과 노년을 좀 매끄럽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나름 바쁜 생활을 보내며 ‘나’를 향한 삶을 지내고 있는 그에게, 가정을 꾸리는 결혼 계획에 대해 물었다.

“사실 어릴 때는 제가 진짜 일찍 결혼할 줄 알았거든요. 그때는 결혼은 무조건 해야 된다는 주의였어요. 애도 낳아야 되고. 근데 나를 찾는 과정을 30대에 하다보니까 너무 바쁜 거예요.(웃음) 사실 아직도 여자는 결혼을 하면 묶이는 부분이 있다고 해야 되나? 그런 부분이 있어서 결혼에 대해서 강하게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 점점 약해지는 상황이긴 해요. 비혼주의는 전혀 아니지만 아직은 준비가 안 됐고, 게다가 저는 경험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은 미루고 있는 상태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 하겠지, 아님 말고’ 약간 이렇게.(웃음) 결혼하면 결혼하는 나름의 매력이 있듯이 지금 이 나름대로의 매력이 또 있잖아요.”

결혼에 대한 생각이 바뀐 만큼, 이상형도 바뀌었을 듯싶었다.

“완~전 달라요.(웃음) 완전 그냥 다른 사람이라고 보면 돼요.(웃음) 20대 때의 이상형은 아티스틱한 남자들을 좋아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끼고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싫어요.(웃음) 막 너무 싫은 건 아니지만, 뭔가 20대 때는 제가 외부적인 것에 포커스를 맞췄다보니 그런 외적인 것만 보고 사람을 판단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옷 잘 입는 것도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의 이상형은 자기 라이프스타일이 뚜렷한 사람. 그리고 건강한 사람이 좋은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몸도 그렇고. 본인을 잘 관리한 모습이 좋아요. 그런 걸 1순위로 보고, 활동적인 사람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요. 제가 활동적이기 때문에. 액티비티 너무 좋아하는데 게임만 하고 그러면 싸우게 되잖아요.”


[사만모] 코너의 공통 질문 두 가지만이 남았다. 첫 번째 공통 질문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지현정의 일상 속 ‘소확행’이다.

“너무 많은데.(웃음) 음... 방금 빤 이불이요. 방금 빤 이불에서 딱 깨어났을 때, 너무 행복해요.(웃음) 그리고, 그냥 온전히 저만을 위해서 요리하는 것. 그게 막 팬시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 위해서 요리하는 게 아니라 나한테 대접하듯이 요리하는 것. 그때 아주 뿌듯해요. 먹을 때 엄청 맛있진 않은데(웃음) 그 하는 과정이, 나를 위해 이렇게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게 되게 좋아요. 청소하는 시간도 무척 좋아해요.(웃음)”

“어떻게 보면 어릴 때부터 이런 게 뚜렷해서 부모님이 좀 힘들어하셨어요. 저는 사람이랑도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고 제 공간 영역이 너무 중요한 사람이어서, 그 공간을 어떻게 컨트롤하고 어떤 환경을 만드는지가 너무 중요해요. 어릴 때 괴팍하다는 얘기 진짜 많이 들었어요.(웃음)”

두 번째 공통질문이자, 공식적인 마지막 질문은 ‘누군가’에게 전하는 한 마디다. ‘누군가’는 인터뷰이가 직접 선택하는 질문이다. 가족이 될 수도, 친구가 될 수도, 내 자신이 될 수도 있는.

“저에게도 그렇고, 모두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잘 하고 있어’ ‘괜찮아’ 처음에 ‘괜찮아’라는 말을 요가하면서 처음 들었는데 울 뻔 했잖아요.(웃음) 왜냐면, 혼나는 일상을 사는 경우가 생각보다 되게 많잖아요. 일 못한다고 혼나고, 공부 못한다고 혼나고, 집에 가면 결혼 안한다고 혼나고.(웃음) 그런데 괜찮다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진짜 없어요. 얘기해주는 경우도 되게 상투적인 경우가 많죠. 너무 다 기본적으로 깔려 있잖아요, 경쟁해야 된다는, 잘해야 된다는 게. 나에게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면 되게 힘이 돼요. 너무 자주하고 잘못하면 게을러지기도 하는데, 가끔, 그냥, 잘 하고 있다고.”


의상협찬: 잉크(eenk)
요가복: 지현정 개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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