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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비지의 뒤풀이

박찬 기자
2020-08-11 16:01:17

[박찬 기자] 이미지를 깬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선입견이 떠오르고, 열리고, 굳혀지다 보면 그저 검푸른 한계점으로 남는다. 그 불안정한 과정 아래서 무너지고 절망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쉽사리 부서지지 않고 오히려 저만치 앞서가는 이들도 있다. 짊어지는 것과 떼어놓는 것. 그 차이는 명료하고 각별하다.

누군가는 래퍼 비지(Bizzy)의 그 날을 보고 웃었을지도 모른다. 수백, 수천 번의 연습 끝에 선보인 무대지만 결국 그르쳤고 때 묻은 길로 새어 나갔다. 생방송 직후, 나흘의 시간 동안 자신을 되돌아본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맞이한 음악과의 조우 속에 비지는 솔직하고 당당했다. 무엇보다도 ‘행복’에 대한 믿음이 생겨난 모습이다.

“음악을 할 때 가장 마음이 놓이고 성공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누군가의 방식이 아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비지. 그런 그에게 음악이란 무언가 쌓아 올리고 발전시켜나가는 ‘건축’과 같다. 이제는 불안했던 과거마저 추억으로 웃어넘기는 비지가 꽤나 행복해 보였다.

Q. 화보 촬영 소감

“그야말로 ‘인생샷’을 남겨준다는 bnt지 않나. 얼마 전 우리 소속사 신인 아티스트 비비(BIBI)도 bnt와 좋은 그림을 만들었기 때문에 기대하고 있었다. 절친 양동근도 TV에서 영정사진을 소개했었는데 그것도 bnt 촬영본이더라(웃음). 사실 오랜만의 화보 촬영이라 조금 긴장도 됐지만 현장 스텝 분들이 잘 이끌어주셔서 금방 적응했다. 일이라기보다는 정말 논다는 느낌(웃음)? 재밌었다”

Q. 평상시 패션과 가장 가까운 콘셉트

“개인적으로 가장 마지막에 입었던 캐주얼 웨어가 가장 편했다. 평소에 작업실이나 의정부 동네를 다닐 때 정말 편하게 입는다. 특히 요즘 같은 여름에는 민소매 상의에 슬리퍼만 신으면 끝이다(웃음). 옷 입을 때 교복 입는다고 할 정도로 항상 똑같은 옷만 입는데 오랜만에 차려입고 촬영해서 정말 재밌었다.

Q. 근황

“요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다들 예민해진 것 같더라. 그래서 우리 ‘필굿뮤직(FEELGHOOD MUSIC)’에서 ‘필굿쨈스(Feel Ghood Jams)’ 프로젝트로 JK 형이 1번으로, 내가 2번으로, 비비가 3번으로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기부 프로젝트 음원을 냈다. 곡 제목은 ‘좋은 게 다 좋은 거-everything is everything’인데 ‘조금이나마 내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다”

“요즘 시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예전에는 효도를 물질적인 요소로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사실 우리 아버지가 무뚝뚝했기 때문에 항상 서운하고 화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말수가 없다는 걸 알지만 일부러 전화를 먼저 드린다. 주말에 아버지와 소주 한잔하는 게 내 스트레스 해소법이 됐고, 최근에 아버지가 웃을 일이 없어지신 것 같아서 최고로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 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출연했다. 초심을 되찾고자 무대 위에서 처음 노래 불러본 거다(웃음)”

Q. 무대 위에서 랩이 아닌 노래를 하는 느낌, 낯설었을텐데

“‘무대라는 곳이 이렇게 낯설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인데 나를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아버지가 보면서 ‘이건 누구지?’라고 물어보시는데 내가 나왔을 때는 조용해지시더라(웃음). 이후에 가면을 벗고 내가 출연했다는 걸 확인했을 때 조금 놀라신 것 같다. 워낙 표현이 서투르신 분이라 갑자기 ‘소주 더 마셔야겠다’라는 말로 상황을 회피하셨지만 나는 안다. 그게 나에 대한 칭찬이라는 것을. 아버지와 그 방송을 본 지 3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기분 좋다”

Q. 방금 말했던 ‘필굿쨈스’는 어떤 곳인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힘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시작하게 된 기부 프로젝트다. 프로젝트 제목 중 ‘쨈(Jam)’은 우리끼리 화합적인 활동을 뜻한다”

Q. 그러면 기부 프로젝트를 위해서 곡을 작업한 건가

“맞다. 물론 우리가 언제나 생각했던 주제들이긴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서 한마음 한 뜻으로 작업해봤다”

Q. ‘좋은 게 다 좋은 거-everything is everything’에서는 ‘모든 일이 다 좋을 수만은 없다’라는 생각에서 만들게 됐다고. 비지에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당연히 하고 싶은 일은 무대에 오르고 음악을 작업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천 가지 넘게 하는 것 같다(웃음). 예를 들면 편하지 않은 사람과 악수를 해야 할 수도 있는 거고 심지어 청소를 해야 할 수도 있지 않나. 정말로 간절히 원하는 게 있다면 하기 싫은 일이라도 모두 받아들이고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Q. MV 장소가 정말 광활하다.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장소를 섭외하기 굉장히 힘들었다. 많은 분들이 외국에서 촬영했냐고 물어보신다(웃음). 그곳이 사실 촬영 허가를 받기 힘든 인천국제공항 근처 부지인데 지인분들의 도움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재밌는 점은 거기까지 중국집 배달이 왔다는 거다(웃음). 정말 ‘배달의 민족’ 답지 않나. 석양 지는 장면을 찍기 위해 대기하다가 짜장면이 다 불어버리고 나서야 먹게 됐다”

“촬영 중 바다에 들어가는 장면이 있었는데 감독님이 전신 다 입수할 수 있냐고 물어보시더라. 그래서 고민 없이 들어가 버렸다(웃음). 너무 즐거운 촬영이었다. 예전에는 ‘일하면서 즐겨라’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그 의미를 이해하는듯하다. 일하면서 그 안의 재미를 찾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Q. 최근 ‘수고했어-Celebrate(Feat. lllson a.k.a 더블케이)’라는 음원도 내지 않았나. 조금 더 자전적인 성향이 강해진 것 같다

“예전 ‘무브먼트’라는 음악 가족이 있었다. 그중에서 친한 동생 더블케이와 함께했다. 음악 활동을 하면서 고생한 서로를 위로해주는 곡이다. ‘너도 오랫동안 활동하느라 고생했다’ 이런 느낌. 예전에는 모두가 공감할만한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면 요즘에는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싶어지더라. 일기장을 보여주는 것처럼 그런 진실한 음악”

Q. 4월에 타이거 JK, 비비와 함께 펭수와의 협업을 이뤄냈다. ‘펭수로 하겠습니다’로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석권했는데 소감은

“처음에 펭수를 봤을 때 장난스럽게만 여겼는데 계속 함께하다 보니 왜 사람들이 펭수에게 위로를 받는지 이해 갔다. 보통 사람한테 상처받으면 자연에서 위로를 받지 않나. 그런 것처럼 펭수는 우리를 위로해주는 존재다.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고민 상담해줄 수 있는 친구라고 할 수 있다(웃음)”

Q. 뉴질랜드 유학 중 음악 공부를 위해 부모님 몰래 아르바이트까지 했다고 들었다. 어떤 종류의 일을 하며 지냈나

“나이트클럽에서 병 모으는 일도 하고, ‘천원샵’이라고 불리는 ‘달러 스토어’, 레스토랑 웨이터까지 정말 다양한 곳에서 근무했다. 그때는 아버지가 더 무서우셨다. 내가 처음으로 100점을 맞아온 음악 시험지를 ‘딴따라 될 거냐’라고 화내시며 찢어버리셨던 적도 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몰래 음악학교를 야간으로 다녔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낮에는 호텔경영학과를 공부하고 끝나자마자 음악학교에서 미디를 다루고 이론을 공부했다. 1년 동안 아르바이트한 돈을 모아서 직접 음악학교 교습비를 충당했던 거다”

“아버지는 내가 인사성도 바르고 밝은 편이라서 호텔경영학 전공을 쭉 이어나가길 바라셨다. 나는 그 전공이 싫지는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글 쓰고 음악 만드는 게 너무 좋았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창작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반에서 뭔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 친구들 반응이 좋았다(웃음)”

Q.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월세방의 물과 전기가 끊긴 적도 있다고. 그런 생활을 각오하고 한국에 왔던 건가

“모든 부모님들이 다들 그러겠지만 처음에는 음악에 대한 반대가 무척 심하셨다. 한국에 온 후 부모님이 3개월 동안만 최소한의 지원을 해주셨고 그 이후로는 독자적으로 생활해야만 했다. 피시방이나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했지만 핸드폰, 월세방의 물, 전기마저 끊긴 적이 있다. 그만큼 음악이 좋았고 부딪혀보고 싶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많이 무모한 선택이긴 하지만(웃음)”


Q. 2002년 스모키 제이의 컴필레이션 앨범에 ‘We Movin'In’을 수록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때를 기억하자면

“당시 동근이가 MBC ‘뉴 논스톱’에 출연할 때인데 처음에 서로 낯을 많이 가려서 친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내가 예전에 DJ 출신이고 음악에 대해 넓게 아니까 동근이한테 들려주고 추천해주다 보니 친해지게 됐다. 동근이는 원래 랩 스타일이 빠른 편이었다. 서로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음악적인 관계가 성립됐다. 스모키 제이는 동근이의 프로듀서였는데 자연스럽게 소개받으며 음원에 참여하게 된 거다”

“취미로 음악을 할 때는 밤새우면서 정말 재밌게 할 수 있었지만 이게 직업이 되다 보니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더라. 보통 때는 괜찮아 보이던 내 목소리가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그런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주변에 친구들과 형들이 있어서 극복할 수 있었다. 내가 친형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형들이랑 주로 친했던 것 같다. 스모키 제이 형, 하늘이 형, 지누 형, JK 형도 그렇고(웃음)”

Q. 타이거 JK에 대해서는 ‘공연 중 처음 소리를 지르게 만든 래퍼’라고 칭했다. 그토록 꿈꾸던 아티스트와 이렇게 오랫동안 동행하게 될 줄 알고 있었나

“전혀 몰랐다. ‘노래방에서 5000번 이상 불렀던 곡을 그와 함께 무대에서 부르고 있다’ 일기장에 처음으로 JK 형과 공연하고 쓴 내용이다. ‘난 널 원해’라는 곡을 그만큼 좋아하고 꿈꿔왔던 거다. 그전에도 타이거 JK라는 아티스트를 알고는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음악을 접한 계기는 원주민 친구들의 추천 때문이었다. 나는 뉴질랜드에서도 마오리족 친구들과 친했는데 그중 한 친구가 ‘Your People’이라고 하면서 드렁큰타이거 음반을 추천해주더라. 그렇게 다가오니 너무나 뿌듯하고 자부심이 생겼다. ‘나도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라는 동기 부여와 함께 충격을 받은 느낌. 남자가 남자 좋아하기 정말 쉽지 않은데 동경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소룡을 우러러보는 것처럼 내게 타이거 JK도 그런 의미다.

Q. 그때는 정말 우러러봤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가족처럼 편해진 관계지 않나. 가까워진 만큼 타이거 JK의 결점도 눈에 보일 텐데

“결점 없는 사람은 사실 없지 않나. 나는 그럴 때마다 초심을 돌이켜본다.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소소한 일상생활에 목마른 것처럼 사람은 뺏겨봐야 소중한 걸 깨닫는다. JK 형과 무대에 오랫동안 무대에 함께 섰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하다고 생각할 때쯤 욕심도 부릴 것 같고 간사한 마음이 생길 것 같아서(웃음)”

Q. 많은 팬들이 오랫동안 타이거 JK와 함께하는 걸 보고 ‘드렁큰타이거’에 합류할 거라고 예상했다. 본인도 그럴 계획이 있었는지

“그런 말이 가끔 나올 때가 있지만 나는 ‘드렁큰타이거’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내리려 하지 않는다. 그냥 JK 형과 좋은 음악, 좋은 무대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뜻깊게 생각한다. 나의 소속은 ‘필굿뮤직’이고 그 외 타이틀에 대해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JK 형은 인터뷰 때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 왼쪽 팔이다’, ‘드렁큰타이거는 비지 없이는 안 돌아간다’라고 말씀하는데 나는 그냥 그런 JK 형의 돌발적인 행동 자체가 좋다(웃음). 정말 재밌는 형이고 앞으로도 기대된다”

Q. 이후 ‘무브먼트’ 크루에서 7년 넘게 피쳐링하며 데뷔 앨범을 준비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EP ‘1st EP Album : Bizzionary’에 대한 애정이 상당할 듯한데

“지금 들으면 마음에 드는 곡도 있지만 오글 거리는 곡도 있다(웃음). ‘Bizzionary(몽상가)’라는 챕터를 이젠 내려야 하지 않나 생각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이제 ‘Still Bizzionary(아직도 몽상가)’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EP를 계획하고 있다”

Q. 특히 단체 곡 ‘Movement 4(꺼지지 않는 초심)’에서는 YDG, Sean2slow, 미쓰라진, 최자, 개리, 도끼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피쳐링이 돋보인다. 그중 협업을 가장 원했던 아티스트가 있다면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곡이다. 그 친구들이 워낙 사장님들도 되고 성공했지만 아직도 연락하고 지낸다(웃음). 아마 무브먼트 멤버들 중에 모두와 다 잘 지내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 멤버들중에서 특히나 연락이 잘 안 되는 친구들이 있다(웃음). 동근이나 JK 형, 도끼도 그렇고. 그런 사람들끼리는 또 연락을 잘 안 한다”

“그 당시에는 느꼈던 감정을 최대한 재밌게 풀이해내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만큼 가까운 사람들과의 작업이 편했고, 밤새 술 마시면서 대화했던 동근이나 JK 형과 작업을 이뤄낼 수 있었다”

Q. 정규 앨범 자체가 귀한 시대다. 새로운 EP ‘Still Bizzionary’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아무래도 나와 가장 많이 교류하는 친구들과 피쳐링을 이루지 않을까. 물론 이름값이 높은 아티스트와의 협업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대화가 잘 통하는 게 우선이다. 얼마 전에 원재가 안부 전화가 왔을 때 가족 관련된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 부분을 음악으로도 풀이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Q.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집합체였던 무브먼트에 비해 지금의 ‘필굿뮤직’은 소수 정예이지 않나. 음악적으로, 문화적으로 다양한 영향을 받았던 그때와 지금은 큰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인스타그램에서의 여담이 있다. 덩치가 엄청나게 크고 애견 관련 일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2년 전에 내 팬이라고 하면서 DM을 보냈다. ‘형님 저는 아직도 이 무브먼트 추억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라며 ‘이 추억을 10년 더 연장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말하더라.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말이 너무나 내 가슴에 와닿았다. 내게도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이기 때문에 그때 그 친구들에게 한번 연락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동근이한테도 말은 해봤는데 ‘그러면 그냥 해보면 되겠네’라고 무심하게 말하더라(웃음). 원래 그런 스타일이다”

Q. 20대의 무브먼트, 40대의 지금.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나

“영원함에 대한 갈망이 크다. 그래서 음악을 사랑하는 듯하다. 음악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안정적인 삶이 아니지 않나. 그렇지만 방황을 해도 음악 안에서 떠돌았다. 굉장히 진부한 이야기지만 작곡을 하다가 힘들면 DJ를 하고, DJ를 하다가 힘들면 랩을 하고 이런 식으로 내 음악을 이어갔다. 내가 지금까지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다”

Q. 무브먼트 시절 동료 중 타이거 JK, YDG 외 소통하는 아티스트

“미래 형수, 더블케이, Sean2Slow, 도끼 등 다 연락한다(웃음). 시간이 흐른 만큼 변한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 만나면 그때 그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그런 것들이 추억 아닐까.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들 보면 겉으로는 변했어도 술 취하면 금방 옛날 모습 나오지 않나. 무브먼트 친구들도 똑같다(웃음). 추억이라는 건 굉장히 아름다운 것 같다. 아무리 힘든 일이어도 되돌아보면 아름답게 변한다”

Q. 2017년 Mnet ‘SHOW ME THE MONEY 6’에서 타이거 JK와 함께 프로듀서 팀을 이뤘다. 합류 당시 타이거 JK의 인지도에 기대어 간다는 소리가 많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연했던 계기

“사실 이전부터 들었던 말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리 기대어간다고 해도 그쪽에서 영 말이 안 된다고 하면 나를 섭외하지 않았을 거다(웃음). 처음에 기사 나왔을 때는 더블케이와 같은 팀으로, 그 이후에는 스윙스, 동근이랑도 연결됐었다. 그러다가 결국에 JK 형과 ‘쇼미더머니6’에 나오게 된 거다”

“한동안 복싱에 빠진 적이 있다. 왼손잡이다 보니 복싱할 때 정말 큰 메리트가 있었고 그걸 보면서 큰 쾌감을 얻었다. 그 이후로 ‘꼭 복싱 선수를 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하루에 6시간씩 복싱을 하던 순간 ‘폐기흉’이 발생했다. 과거 정말 힘들었을 때 돈이 없어서 꽁초를 핀 적이 있을 정도로 담배에 대한 갈망이 컸다. 그렇게 나이 들면서 마구잡이로 피다 보니 발병 확률이 증가한 거다. 해외 스케줄 때문에 검진을 하면서 그 소식을 알게 됐고 응급실로 가서 2차례의 수술을 했다. 그 당시 의사가 ‘담배 피지 말고, 무대 올라가지 말고, 비행기 타지 말라’라고 하더라. 내가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들을 한 번에 다 잃어버리게 되자 정말 힘들었다. 병원에서 2달 동안 입원하고 나서 MFBTY 공연은 앰뷸런스를 불러놓고 강행했다. 그러면서 내 인생이 관점이 바뀌게 됐다. 조그만 것에 대해 감사하고 투정 부리면 안된다는 것. 그때 ‘쇼미더머니’ 제작진들에게 제안이 왔다. JK 형은 내가 몸이 성하지 않으니까 무대에 못 설 거면 심사라도 하라고 조언해줬고, 그 계기로 프로듀서 팀에 합류했다”


Q. 마지막 생방송 파이널 무대에서 우원재와의 합동 무대 중 가사를 실수했다. 누구보다도 본인에게는 힘든 날이었을 것 같다

“파이널 무대인 만큼 원재한테 ‘조금 더 유명한 아티스트를 무대에 올리자’라고 계속 말했는데 굳이 나랑 같이하고 싶다고 말하더라. 그렇게 5일, 6일 동안 잠을 안 자면서 가사를 쓰고 무대를 준비했다. 사실 거기에 나오는 친구들에 비해 내 인지도가 낮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악착같이 연습했던 것 같다. 리허설을 준비할 때도 너무 몸에 붙어서 절대 틀리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사고가 난 거다.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부담감으로 번져나갔고 결국 일을 그르쳤다”

“공연이 끝나고 ‘큰일 났다’라고 곧바로 느꼈다. 문제는 자책이 너무 심했다.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고 원재한테 수도 없이 사과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촬영 뒤풀이도 하고 좋은 분위기였지만 나는 그때부터 잠수 타고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정말 이민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핸드폰도 끄고 나흘 정도 소파에 누워있었다.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 차트에 내 이름이 계속 뜨는데 ‘제발 순위에서 내려와라’라는 바람만 계속 되뇌었다. SNS로는 수만 개의 욕을 먹었다. ‘너 때문에 원재 떨어졌다’라고.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못된 일을 해서 미움받아본 적이 많지 않기 때문에 더욱더 두려웠던 것 같다”

Q. 파이널 무대에서 좋은 컨디션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타이거 JK와 함께 ‘쇼미더머니6’ 최대 수혜자 우원재를 발굴해냈다. 이러한 긍정적인 부분들이 폄하되는 것 같지는 않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원재가 ‘시차(We Are)(Feat. 로꼬 & GRAY)’라는 곡을 낼 수 있었던 건 이런 드라마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내가 실수했던 것들이 이슈가 되고 그런 관심을 오히려 최상의 음원으로 발산시켰다. 사실 1위 한 행주가 관심을 받아야 하는데 원재가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웃음)”

Q. 행주도 당시 엄청난 실력이었지 않았나

“행주는 워낙 옛날부터 알던 친구였다. 그때 마음껏 즐기라고 조언했는데 정작 내가 실수해버렸다(웃음). 나는 예전에 음원 활동을 하던 친구들에게도 기회가 가는 건 맞지만 프로그램 기획 의도가 ‘새로운 사람’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블랙 나인(BLACK NINE)이나 원재같은 친구들이 더욱 눈에 띄었던 거고”

Q. 주노플로도 그런 느낌인가

“주노플로는 일단 워낙 기본기가 뛰어난 친구다. 프로그램 내에서도 많이 올라갔기 때문에 나름대로 좋은 성과를 얻지 않았나 생각한다”

Q. 호평이 많았던 프로듀서 팀인데 한 번의 실수로 인해 저평가받는 것 같아 아쉽다

“외할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너무 슬퍼서 무덤까지 따라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4년 동안은 외할머님에 대해 말도 못 꺼냈지만 이제는 그 추억을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렇게 추억해야 외할머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서. 원재와의 그날도 똑같다. 이제는 그날의 실수도 아름다웠던 추억이다. 내가 이겨냈다는 점에 뿌듯하다. 사실 그대로 음악을 접을 수도 있지 않나. 음악으로서 극복한다는 건 내게도 큰 숙제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1주일 후부터 JK 형과 공연을 강행했는데 몇백, 몇천 번은 넘게 불렀던 ‘난 널 원해’를 틀리게 되는 거다. ‘쇼미더머니’ 콘서트를 돌면서 문제의 그 곡 ‘MOVE(feat. Bizzy)’를 계속 부르게 되지 않나. 아무래도 그날 실수했다는 것 때문에 주위에서 MR을 깔고 가자고 제안하더라. 물론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추억이 많이 쌓였던 것 같다(웃음)”

Q. 그러면 우원재에게도 당일 문자 메시지를 받았나

“나흘 동안 핸드폰을 꺼놨기 때문에 나중에서야 발견했다. 지금껏 도와주고 이끌어줘서 고맙다는 말이었다. 20년 넘게 음악 생활하면서 많은 동생들을 봐왔지만 원재는 정말 진국이다.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근본 있고 진정성 있다. 내게도 느껴지는 진정성이 사람들에게도 느껴지는 것 같다. 음악을 잘해도 싸가지 없어 보이고 비호감일 수 있는데 원재는 그렇지 않다.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게 제일 힘들지 않나. 나이는 훨씬 어리지만 형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배울 점이 많다. 작사 능력도 남다르다. 한 편의 시를 보는 것처럼 잠시 사색에 잠기게 된다. 다른 친구들의 가사가 자기 자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원재는 진지하고 깊이감 있는 내용이다”

Q. 우원재는 이영지 ‘GO HIGH(Feat. 우원재, 창모, The Quiett)(Prod. CODE KUNST)’ 중 ‘Shout out to the JK 형과 비지 형도’라는 말로 항상 응원한다는 마음을 표했다. 이후에도 자주 서로 북돋는 사이인지 궁금하다

“그때마다 ‘이런 거 안 해도 되는데 정말 고맙다’라고 문자 보낸다(웃음). 내 입장에서 얼마나 기특하겠나. 고민이 많거나 힘들 때도 언제나 먼저 연락해준다. 3년이 지난 이 시점에 새로운 곡을 함께 작업할까 검토 중이다. 원재는 이미 준비됐다고 하지만 무슨 얘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Q. 이후 발매한 싱글 ‘워럽형’ 중 수록곡 ‘그날’에서는 그때의 심정을 언급했다. 언젠가 음악으로서 그때 그 감정을 풀어보고 싶었는지

“곡을 만들고 싶다기보다는 그때 그 감정을 무언가로 남겨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때마침 수록곡이 하나 비어서 채워야 할 가사가 있었는데 그날에 대해 다뤄보면 어떨까 싶었다. 정말로 부끄러워서 이 나라를 뜰 생각이었지만 끄적 끄적거리게 되더라(웃음). 지금 들으면 오글거린다”

Q. 주목하고 있는 뮤지션

“노래 부르는 동생 중에 트웰브(twlv)라는 친구가 있다. 목소리가 굉장히 섹시해서 기회가 되면 곡을 한번 받아볼까 생각 중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지 않나(웃음). 같은 회사 식구 비비도 주목하고 있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해석하는 게 정말 독특하고 신비로운 친구다. 작곡만 잘하는 게 아니라 그림도 잘 그리고 심지어는 연기도 잘한다. ‘2018 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 참석했을 때는 황정민 선배님이 ‘비비는 꼭 연기해야 한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물론 그 말을 전해주니 비비는 ‘에이 거짓말’이라고 답하더라(웃음)”

Q. 비비와는 나이 차가 무척 많이 나지 않나. 본인을 어떻게 대할지 궁금하다

“내게 ‘형’이라고 부른다(웃음). 비비가 고등학생 때 ‘필굿뮤직’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부터 부모님과 직접 연락할 정도로 편하게 지냈다. 애가 워낙 털털해서 정말 옛날부터 동네에서 편하게 밥도 같이 먹을 정도였고”

Q. 상대적으로 어린 힙합 뮤지션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이 시점. 비지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30대 후반, 40대 초반 친구들이 힙합을 들으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 않나. 내 음악이 또래 친구들에게는 여전히 반응이 좋다. 나는 그거면 되는 것 같다. 누구라도 좋으니 그들을 위한 힙합을 하고 싶다. 같이 늙고 느껴간다고 해야 할까(웃음). 예전에는 가사 쓸 때 가진 것을 자랑하고 누군가를 욕했다면, 요즘에는 가족에 대한 가사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 ‘아버지의 술주정이 이해가 가네’ 같은 가사. 이제 그걸 이해하는 입장이 됐고 가사로 썼을 때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럴 때 뿌듯함이 가장 느껴진다”

Q.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고 표현한다는 것, 어렵지는 않나

“정말 진솔한 가사라면 처음 듣는 사람도 이끌 수 있다. 그게 힙합이라는 장르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솔직한 내 감정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지가 가장 관건이다. 요즘에는 색다른 방식으로도 접근해본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가사를 써보기도 하고 새로운 시놉시스를 많이 받아보기도 한다”

Q. 본인에게 음악 작업은 무언가 쌓아 올리고 발전시켜나가는 ‘건축’과 비슷한 느낌인가

“좋은 비유다. 가끔은 재개발이 될 수도 있는 거고(웃음). 순서에 맞춰 세워 올리지만 어느 부분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는 거다”

Q. 살면서 점점 발전하고 있는 것과 퇴보하고 있는 것

“발전하고 있는 건 넓은 시야. 아기들은 말을 못 하지 않나. 그런데 어른들은 그 애가 말을 못 해도 배고픈지, 아픈지 알 수 있다. 그게 다 연륜에서 나오는 건데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슬플 때 너무 안 슬퍼지려고 하며, 기쁠 때 너무 안 기쁘려고 조절한다. ‘삶의 밸런스’를 맞추며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간다”

“퇴보하고 있는 건 발걸음 속도(웃음). 예전에는 노란 불에 달렸지만 이제는 멈춘다. 도전보다는 안정을 꿈꾸게 된다”

Q. 이상형

“무엇보다도 편안한 사람. 그게 가장 중요한 나이가 돼버렸다(웃음). 예전에는 외모도 많이 따지고 자극적인 성격을 좋아했다면 이제는 진정성 있는 사람을 찾게 된다. 그렇게 편안하고 익숙한 사람과 온종일 소파에 앉아 있고 싶다. 음악 같은 친구라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내가 잠시 방황하더라도 언제나 옆에 있어 주는 그런 사람”

Q. 활동 계획

“최근 아버지와 귀농 생활을 시작했다. 동두천 너머 텃밭이 있는데 적색 상추, 가지 등 다양한 채소가 있다. 무언가 함께하니 아버지와 대화할 거리도 자연스럽게 많아지더라. 이전에는 물질적인 지원만 해드리면 효도일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전혀 아니다. 옆에 있을 때 대화도 많이 하고 챙겨주는 것, 그게 효도의 시작이다”

“다양한 소재, 새로운 방식으로 곡 작업을 하고 있다. 또 한 가지의 목표가 있다면 나를 아껴주는 팬들, 무브먼트 팬들을 위해 다시 한번 그 추억을 연장해주고 싶다”

Q. 팬들에게 한마디

“팬분들이 ‘일당백’ 느낌이다(웃음). 오죽하면 JK 형도 내 팬들이 최고라고 말할 정도다. 어디 가서 기죽지 말라고 촬영장 스텝, 회사 식구들 전부 챙겨준다. 나는 이걸 한 번도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 없고 항상 감사하게 여긴다. 기쁠 때보다 슬플 때 함께할 수 있는 아티스트로 남고 싶다”

Q.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는 이유

“음악을 할 때 가장 마음이 놓이고 ‘성공’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내가 음악을 계속할 수 있게 도와주는 ‘필굿뮤직’ 식구들의 힘이 크다.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서 이렇게라도 마음을 전한다”

에디터: 박찬
포토그래퍼: 김연중
의상: COS, YEO
슈즈: COS
헤어: 코코미카 시연 원장
메이크업: 코코미카 경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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