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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베이빌론의 낮과 밤

박찬 기자
2021-03-26 15:10:51
[박찬 기자] 베이빌론의 목소리는 언제나 하고픈 걸 좇는다. 감정으로 묻고 목소리로 답하는 사이, 의미 없는 것은 지워져 비로소 필요한 것만 남았다.
얼마 전 공개한 신보 ‘Hardy’ 또한 그렇다. 사람, 사랑 그리고 삶이라는 문장은 음악 안에서 깊고 아득하게 젖어 든다. ‘혼자(With 이효리)’에서 독백으로나마 그 쓸쓸함을 채우는가 하면, 반대로 ‘너가 좋아하는 노래(Feat. 박재범)’ 안에선 사랑하는 이에 대한 찬사를 표하기도.
그런 면에서 베이빌론의 음악은 순간적 자각몽에 가깝다. 꿈인 것을 느끼면서도 깨고 싶지 않은, 여러 번 깨어나도 그 감정을 잊지 못할 그런 애틋한 꿈. 몽환 속 내던져진 꿈 한 자락은 각자의 곡선과 잔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새어나간다.
이번 화보 촬영에서도 그 다채로움은 빛을 발했다. 낮의 로망스와 밤의 로맨스를 섞어 놓은 모노 컬러, 83년 영화 ‘스카페이스(Scarface)’ 속 무드를 표현한 볼드 톤, 디지털 시대로부터 잠시 멀어진 듯한 아날로그 스캐닝까지 유연하게 비춰낸다. 매 순간 완연한 꿈으로 눈을 감던 그가 카메라 앞에 멈춰 선 지금.
Q. 이번 화보 촬영을 다소 아트워크적인 콘셉트로 꾸려봤다
“화보 촬영하는 내내 즐겁게 임했다. 생동감 넘치고 크리에이티브한 그런 느낌. 집중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흐르더라”
Q. 이효리와 함께 곡 작업을 하던 도중 소유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에 ‘잘자요 내사랑(Good Night MY LOVE)’을 선물했다고. 소유의 어떤 부분을 보고 잘 어울릴 거라고 예상했나
“원래 타미아(Tamia)의 ‘Officially Missing You’처럼 잔잔한 어쿠스틱 R&B 무드를 생각하고 제작한 곡이었다. 효리 누나와 함께 작업하던 도중 ‘이 노래는 소유 목소리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라고 느껴 곧바로 선물하게 된 거다”
Q. 얼마 전 정규 앨범 ‘Hardy’로 컴백했다. 신보 이름부터 톰 하디(Tom Hardy)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는 듯하다
“맞다(웃음). 물론 톰 하디에 대한 동경의 의미도 있지만 ‘Hardy’라는 단어 자체가 ‘단단한’, ‘강인한’이라는 뜻도 내포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앨범 이미지와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Q. 떠오르는 래퍼 래원부터 시작해서 ‘AOMG’의 박재범, ‘스타일 아이콘’ 이효리까지 피처링 스펙트럼이 상당하더라
“당연한 말이겠지만 매번 피처링 아티스트를 1순위로 겨냥해 제작하는 건 아니다. 곡을 만들다 보니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협업할 아티스트들이 떠올랐고, 정중하게 피처링 작업을 제의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티스트들의 장르, 성향 또한 훨씬 폭넓어진 것 같다”
Q. 그중 ‘혼자(With 이효리)’는 이효리가 직접 프로듀싱에 참여했다고 들었다. 어떤 계기로 함께 작업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효리 누나와는 발매 시점에 대해 따로 정하지 않고 곡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이 곡을 듣게 됐는데 새벽과 공허함에 대한 이미지가 무척 와닿더라. 효리 누나에게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 수록해도 될지 여쭤보자 정말 감사하게도 허락해주셨다(웃음)”
Q. 전반적으로 ‘고독’에 대한 성찰이 돋보였다. 가사 속 감정 이입에 상당히 공을 들였을 것 같은데
“그렇다. 원곡이 가져다준 느낌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려 녹음, 믹스, 마스터링 모두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Q. 발매된 곡에 대한 이효리의 반응은 어땠나
“다행히 많이 좋아해 주셨고, 앨범 활동에 대해서도 응원해주셨다(웃음)”
Q. ‘사랑하고(Feat. 강아솔)’에서는 본인의 파트를 과감히 제외하기도 했다. 강아솔만의 목소리로 노래를 꾸린 이유가 있을까
“나의 정규 앨범이지만 꼭 내 목소리가 담겨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내 목소리로 부르지 않더라도 아이덴티티가 하나로 이어진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곡이기 때문이다. 이번 협업을 위해서 아솔씨에게는 ‘영화 속 엔딩 크레딧처럼 이 앨범의 아웃트로를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제의했고, 성공적으로 곡을 꾸리게 됐다”
Q. 많은 이들에게 지코 ‘Boys And Girls’의 보컬 피처링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사실 베이빌론의 목소리는 이번 신보 속 ‘Chandelier’처럼 느리고 잔잔한 사운드에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곡의 무드에 대해서 딱 한 가지를 정하고 편식하지 않는 편이다. 하이 템포, 미디엄 템포, 슬로우 잼 템포 상관없이 다양한 분위기를 소화하는데 욕심이 있다”
Q. 그런 면에서 이번 앨범은 전체적으로 정적인 분위기였던 것 같다
“앨범의 주제가 새벽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잔잔하고 고요한 무드를 택했다. 이전보다 무게감 있는 그런 주제를 불러보고 싶었다”

Q. 그러면 ‘Boys And Girls’는 베이빌론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었을까
“무엇보다도 내 목소리를 많은 분께 전달 드렸다는 점 자체가 정말 감사한 부분이다”
Q. 지코와는 요즘 어떻게 지내나
“꾸준히 연락하며 잘 지내고 있다. 음악적인 영감을 주는 뮤즈, 페르소나다(웃음)”
Q. 이번 앨범에서 가장 뜻깊은 곡이 있다면
“아무래도 ‘혼자(With 이효리)’가 아닐까. 곡의 무드 자체도 잘 맞지만 효리 누나가 도와주셨다는 점이 정말 감사하다”
Q. 지금껏 정말 화려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행복해지고 싶어(feat. 수지)’에서는 수지와 함께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피처링 아티스트는 보통 어떤 과정을 통해 섭외하게 되는지
“아까도 말했듯이 피처링 아티스트 섭외는 음원 제작 과정에서 1순위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곡을 완성도 있게 만들고, 그것에 맞는 아티스트를 찾는 게 순서라고 할 수 있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런 면에서 대부분 긍정적으로 받아주시는 거고”
Q. 힙합 아티스트들 사이에서도 서로 친하게 지내고 멀리하는 무리가 있지 않나. 그런데 베이빌론은 정말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이뤄내는 듯하다. 팔로알토 ‘Good Times(feat. Babylon)’ 때도 그랬고, ‘BABO(feat. Nafla)’ 작업 때의 나플라도 그랬다. 성인군자 같은 사람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건 아닐 거다(웃음). 내 생각엔 그때마다 진심이 잘 전달되는 것 같다. 부담 느낄만한 뉘앙스를 최대한 피하고 편한 상태로 제의하는 편이다. 물론 곡 자체의 퀄리티도 완벽해야겠지만 말이다”
Q. 이외에 협업해보고 싶은 해외 뮤지션이 있다면
“H.E.R.이다. R&B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어떤 곡이든 정말 잘 소화하는 아티스트다”
Q. 누군가 ‘베이빌론은 어떤 곡이든 팝송처럼 부르는 가수’라고 말하더라. 그만큼 어떤 곡이든 자신의 영역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정말 감사하고 과분한 찬사다. 그런 피드백들이 발판이 되어 향후 활동에도 더욱더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Q. 그만큼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 있나
“평소에 노래를 많이 듣고, 그만큼 많이 불러본다. 레퍼런스를 많이 찾을 때도 무조건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내 것으로 흡수하려 노력하는 것 같다”
Q. 최근에 자주 듣게 되는 곡
“브루노 마스(Bruno Mars)와 앤더슨 팩(Anderson .Paak)의 ‘Leave the Door Open’. 들을 때마다 직접 불러보기도 한다(웃음)”
Q. DEAN, 크러쉬, 박재범 등 R&B 하면 생각 나는 아티스트가 한국에도 제법 많아졌다. 그중에서도 본인만의 차별적인 부분, 아이덴티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다들 너무 잘하는 아티스트지 않나. 정말 진심으로 리스펙트하는 분들이다.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느끼고 배우는 게 많은 것 같다.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차별화된 부분이 있다면 나만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이다”
Q. DEAN보다 더 일찍 데뷔했던 것 같은데 맞나
“맞다. 재범이 형, 크러쉬, 나, DEAN 순서대로 데뷔했다. DEAN은 무척 대단하고 노력하는 천재 아티스트다”

Q. 과거엔 어느 정도의 러프함이 깃든 스타일이었다면, 요즘에는 조금씩 그 힘이 풀린 느낌이다. 본인이 택하는 음악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변화를 겪는 건가
“무심코 어떤 곡을 들으며 ‘이런 부분을 표현해보고 싶다’라는 감정을 물 흐르듯이 느끼고, 앨범을 발매할 시점에 맞춰 내 곡의 감성으로 완성한다. 새로운 콘셉트와 새로운 무드에 대해 언제나 욕심이 있다”
Q. 대중음악의 특성상 트렌드의 영향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본인은 그것에 얼마나 의식하는 편인지
“사실 아예 신경 안 쓰는 것 같다. 70년대, 80년대 곡이어도 내 마음에 든다면 최우선으로 맞춰본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나의 느낌에 닿는 것이 먼저다”
Q. 베이빌론의 곡 중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
“R&B 장르에는 사랑에 대한 주제가 가장 잘 맞지 않을까 싶다. 슬로우 잼 템포, 달콤한 가사가 확실하게 어우러진 그런 느낌”
Q. 그러면 R&B 장르 속에서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다뤄본 적도 있나
“‘혼자(With 이효리)’도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인생에 대한 쓸쓸함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오리지널 톤은 어쿠스틱 포크에 가까웠지만 앨범에 수록되면서 R&B가 가미된 케이스다”
Q. ‘베이빌론’이라는 이름은 1983년 영화 ‘스카페이스(Scarface)’의 술집에서 따왔다고. 고전 영화를 즐겨보는 편인지
“고전 영화, 누아르 장르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알 파치노가 출연한 ‘칼리토(Carlito's Way)’, ‘대부(The Godfather)’처럼 뭔가 매니시한 성향의 영화가 끌리더라”
Q. 많은 음악 중에 왜 R&B를 택하게 되었는지
“듣기만 해도 좋았다. 아니, 더 나아가서 이런 음악들을 직접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돌이켜보면 고등학생 때부터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이나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의 곡을 들으면서 점점 빠지게 되었던 것 같다”
Q. 그러면 그 이전에는 음악을 할 거라는 생각이 없었나
“그렇진 않다. 이전에도 음악을 좋아했지만 R&B를 통해 조금 더 구체적인 주제 의식이 생겼던 것 같다(웃음)”
Q. 할아버지가 재즈 뮤지션이라고. 음악을 택하는데 가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그런 것 같다. 아버지는 베이시스트 일을 하고 계신다. 아무래도 가족들 영향을 조금씩 받아 이 길을 쭉 걷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Q. 보컬, 랩, 송 라이팅 등 다양한 역할을 홀로 해내지 않나. 솔로 뮤지션의 장점과 단점
“단점으로는 무척 고독하고 힘들다는 점. 감정을 쓰는 직업이다 보니 계속 그 상태로 지치지 않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장점으로는 더 자유롭게, 더 타협 없이 표현할 수 있다는 거다. 내가 원하던 발상과 주제 모두 말이다”
Q. 가수는 음악을 통해 감정을 전하지만 그 앞에서 수많은 난관에 부닥친다. 가수로서, 뮤지션으로서 발전해나가고 싶은 부분
“하고 싶었던 것들을 위해 자만하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는 것. 지금처럼 결과물을 바라고 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은 물론 당연한 거고(웃음). 계속 Keep Going 할 계획이다”
Q. 한 달 정도 쉴 시간이 주어진다면 뭘 하면서 보내고 싶은지
“나무가 울창한 숲속에서 명상해보고 싶다. 쉴 시간이 정해진다면 마음을 조금 더 정화할 수 있지 않겠나”
Q. 요즘 일과는 어떤가
“별다를 건 없다. 음악 작업하고, 강아지 산책하고, 스케줄 진행하고, 밥 먹고(웃음). 그렇게 계속 반복이다”
Q. 음악 외에 베이빌론이 갖는 가치관
“초심을 잃지 않고 언제나 감사하게 사는 것. 사람은 언젠가 죽지 않나. 작은 것 하나하나에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
Q. 그러면 오늘 촬영도 감사하게 느끼나
“물론이다. 이런 자리가 당연한 게 아니다. 나를 위해 도와주신 분들 한분 한분이 모두 내게 뜻깊은 존재다. 사실 그렇지 않나. 내가 잘나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타인의 배려 덕분에 살아갈 수 있는 거다”
Q. 다가오는 봄밤, 각별히 추천하고 싶은 곡이 있다면
“H.E.R.의 ‘Hold On’. 자주 듣는 곡이다”
에디터: 박찬
포토그래퍼: 박경철
의상: 존 바바토스
슈즈: 존 바바토스, 컨버스
주얼리: 민휘아트주얼리
스타일리스트: swey, 조정흠
헤어: 정샘물인스피레이션 이스트점 혜윤 디자이너
메이크업: 정샘물인스피레이션 이스트점 현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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