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B:인터뷰] 이윤정-이재-이승혁 트리오의 유유자적 음악 유랑기, 밴드 넘넘(numnum)

김치윤 기자
2021-09-03 20:52:26
[김치윤 기자] 스트리밍(Streaming) 시대에서 뮤지션 개성의 중요성은 더 부각된다. 피지컬 매체 시대에 비해 접근이 쉬워졌다. 이로 인해 다양한 음악을 접하겠다는 의지는 상대적으로 곡을 끝까지 듣고, 앨범을 통채로 들으려는 인내심을 압도하게 됐다. 뮤지션의 개성은 생존의 문제와 밀접하게 닿아있다.
세기말에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삐삐밴드 이윤정의 새 밴드 넘넘(numnum)은 이런 점에서 확실한 매력을 뽐낸다. 무엇보다 사운드의 품이 넓다. 약간 과장하면 현재 음악의 트렌디한 요소는 모두 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21세기형 포스트 펑크’라는 레이블 EMA의 설명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지난 달 발표했던 싱글 ‘뉴스(NEWS)’는 힙합리듬과 일렉트로니카 사운드가 두드러졌다. 특히 ‘warp! warp!’는 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각종 이펙트로 변주한 이유정의 목소리와 신스사운드가 전면에 나선다. 상대적으로 작년에 발표했던 EP ‘넘넘’(2020)은 상대적으로 록적인 어프로치가 강했다. 3인조로 시작을 알린 첫 번째 EP ‘넘’(2019) 첫번째 트랙 ‘괴물 잡으러 갈꺼야’는 걸그룹 인트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상큼한 매력을 뽐낸다.
이런 넘넘의 음악은 유연하고 쿨한 작업방식과 맞닿아 있다.
“이승혁이 비트를 만들어서 트랙을 넘기면 이재가 그걸 받아서 베이스로 작업하고 내가 멜로디를 붙이곤 한다.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둘이 만드는 트랙들이 대부분이 너무 좋다. 주는 걸 다 하고 싶지만 내가 소화가능한 걸 판단한다. 작업 과정에서 제일 재밌는 건 상대방이 싫은 부분을 말하면 고집 안 부리고 재빨리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는 거다. “마음에 안 들어? 그래 그러면 이것도 들어봐봐” 이런 식으로(웃음). 빨리 진행되는 편이다.”(이윤정)

“우리가 아직 모르는 공통분모가 있는 건지 신기하게 막힘없이, 술술 나오는 편이다(웃음). 지난 앨범까지 트랙을 만들 때 첫 번째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그 곡을 프로듀싱했다. 그런데 그 경계가 허물어지며 서로의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켜나가는 식이 되고 있다 .이번 ‘NEWS’ 앨범부터 앞으로는 프로듀서 크레딧에 밴드 이름이 올라갈 것 같다.”(이재)

넘넘이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들려주던 밴드에 확실한 인장을 심어주는 건 이윤정의 보컬이다. 특유의 낭랑하고 찌르는 듯한 목소리는 삐삐밴드, EE, 넘넘 등 26년차 뮤지션의 한결 같은 상징이다. 톤의 느낌과 개성을 선호하는 요즘 트렌드에 어울린다. 이런 이윤정 목소리에 아직도 ‘기술적으로 더 잘 부르는’ 것에 관련된 질문이 여전히 나온다고 한다. 번짓수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행위다.
“난 보컬리스트보다 퍼포머라고 하는 게 어울린다. 내가 쓴 가사를 토대로 음악을 목소리로 연기한다는 마음으로 부른다. 매 곡 가상의 시나리오를 만들고, 이를 담아내려고 한다.”(이윤정)

째깍째깍’ ‘최강바보’ ‘간다’ 등 넘넘 앨범 타이틀은 여전히 이윤정의 하이톤이 업템포 록사운드와 어우러지는 곡들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넘넘의 넓은 스펙트럼에서 이윤정은 예상 밖의 매력적인 저음도 구사한다. 베이스가 만들어내는 그루브함과 블루지한 기타가 스타일리쉬한 ‘hedgehop’에서는 바닥까지 뚝 떨어지는 듯한 저음, ‘울렁울렁’ ‘Wawa’ 등에서는 주술을 거는 듯한 몽환적인 중저음에 빠져들게 한다.

“개인적으로 트릿팝을 좋아한다. 우울하고 처지는 분위기를 좋아해서 이재가 만든 ‘hedgehop’을 처음 들었을 때 진심 마음에 들었다.’(이윤정)
삐삐밴드는 펑크밴드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일렉트로니카적인 요소가 비중이 더 컸다. 이윤정은 삐삐밴드 탈퇴 이후 신디사이저에 대한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넘넘에서 기타와 프로그래밍을 맡고 있는 이승혁과도 EE 활동을 할 때 프로듀서로 만났고, 지금 밴드로 다시 일렉트로닉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쪽 계통이 내 얇은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악기처럼 사용되는 걸 좋아한다. 여러가지 용도로 쓰여지고 싶다. 이번 ’NEWS’에 실린 ‘warp! warp!’도 그런 시도를 적극적으로 했다. 내 목소리 가지고 이승혁, 이재 둘이서 정말 신나게 이것저것 시도를 많이 해 보더라. 이승혁은 나의 그런 특징을 잘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녹음할 때 난 거의 원테이크다. 준비는 되게 많이 해간다. 저녁에 아이를 재우고 혹여나 밖에서 들릴까 방에서 이불 뒤집어쓴 채 마이크 꼭 붙잡고 밤새 이것저것 시도하며 연습하고, 아침에 애 학교 보내자마자 녹음실 달려가서 불렀는데 바로 오케이 하더라. ‘어 뭐지? 더하고 싶은데, 준비 많이 했는데’ 싶어서 다시 하겠다고 하니까 이승혁이 ‘누나는 노래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 여러번 할 필요없다. 지금이 최고다. 이런 느낌은 의식한다고 안 나온다’고 해서 바로 부스에서 나왔다(웃음).”(이윤정)

“언니의 생 목소리를 가지고 이펙트로 세심하게 작업을 했다. ‘NEWS’ 다음에 나오게 될 EP에도 그런 시도를 할 예정이다. 후반작업 때 실험처럼 여러가지 시도를 할 곡들이 있다.”(이재)
구사하는 음악의 폭넓은 수용성은 이윤정에게서 주로 시작된다. 인상 깊게 들은 곡을 멤버들에게 들려주고, 관심이 있는 걸 두루두루 나누는 편이라고 한다. 이승혁, 이재 두 명은 소위 ‘재료’가 보이면 곡 작업을 시작한다. 그래서 이윤정은 정말 밴드의 이름이나 앨범제목을 잘 기억못한다.. 음악에서 받은 인상이 밴드 자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잘 발전하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그정도로 이윤정은 다양하게, 많이 듣는데 집중한다. 넘넘에서 베이스를 맡는 이재도 이윤정의 그런 성향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2015년에 삐삐밴드가 재결성되면서 언니를 알게 됐다. 당시 난 안기연주 자체가 즐거운 상태였지 음악에 대한 뚜렷한 버전은 없었다. 그 때 언니가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을 추천해줬는데 정말 좋았다. 어플도 알려줬다. 지역별로 요즘 핫한 음악을 추천하는 거였다. 또래 대중들이 어떤 음악을 하는지 추천 받았는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됐다. 유명한 명곡을 찾아듣는 것도 좋지만, 동년배 음악을 파악하는게 좀 더 도움이 됐고, 음악적 센스가 생기기 시작했다."(이재)
이윤정의 보컬이 쨍한 인상을 준다면, 이재의 베이스는 넘넘의 기둥을 꽉 잡아준다. 곡에 맞게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스킬도 좋고, 무엇보다 적당히 튀면서 그루브를 잃지 않는 밸런스가 압권이다. 베이스로 아이디어 스케치를 시작해서 타이틀이 된 ‘째깍째깍’ ‘간다’ ‘WAWA’ 등은 그런 이재 베이스의 특징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내 기준에서 명곡은 곡의 핵심을 베이스리프가 담당하고 잇거나, 노래처럼 흥얼거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좋은 베이스리프를 완성시켜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 실용음악과를 한 학기 다니고 그만뒀다. 학교에서 테크닉이 정말 뛰어난 사람들 많이 보면서 느꼈다. 나는 내가 가진 능력을 그런 쪽보다는 좋은 베이스라인, 곡을 만드는 데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이 바닥의 원조 폴 메카트니처럼 말이다.”(이재)
명곡 중 베이스가 돋보이는 곡이 많지만, 상대적으로 베이스는 기타, 드럼, 키보드 등 다른 악기에 비해 개성을 드러내기가 더 어려운 악기다. 기본적으로 드럼과 함께 음악의 기반을 잡아주는 역할이라 자칫 튀려고하면 음악전체 밸런스가 무너질 수도 있다.
“이미 만들어진 곡 위에 베이스 얹느냐, 아니면 처음부터 베이스 라인을 확실하게 잡고 만드드냐 차이가 크다. ‘hedgehop’ ‘재각째깍’ 등이 그런 식으로 베이스를 먼저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간다’는 베이스와 드럼의 조화가 완벽한 데이빗 보위 ‘let’s dance’에 영감을 받아서 만들었다.”(이재)

20대(이재), 30대(이승혁), 40대(이윤정)가 모여 자유분방하고 쿨한 작업방식으로 음악여정을 시작한 넘넘은 이미 여러 군데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국내에선 잔다리 페스타와 DMZ 피스 트레인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그밖에 일본의 Lovecity와 캐나다의 sled island 등 해외에서도 독보적인 성향의 무대로 많은 이슈를 낳았다. 이번 ‘NEWS’ 같은 경우는 2020년 ‘반스 뮤지션스 원티드’ 아시아권 우승을 차지하며 그 혜택으로 만들게 됐다. 확실한 주목을 받고 있지만, 넘넘의 목표는 원초적이고 소박하다.
“즉흥적인 걸 놓치지 말자고 살아가는 편이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생각나는 걸 그때그때 표현하고자 하는 성격이다. 30대 중반까지는 확실한 메세지를 던지려는 데 집중했지만, 이제는 메모장에 꾸준히 적어놓은 일상의 단편들을 음악이란 매개체로 전달하려 한다. 이승혁, 이재를 만나 넘넘이란 팀으로 간결하고 유연하게 그런 욕구를 만나서 해소를 하고 있다. 넘넘으로 어떤 뚜렷한 목표를 이루려고 하기보다는,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걸 좋은 호흡으로 풀어낼 것 같다.”(이윤정)

“하고 싶은 걸하고, 즉흥적인 성향이 있는 편이다. 이윤정, 이승혁과 함께 그걸 자연스럽게 풀어내 누군가가 좋아해주면 엄청하게 좋을 것 같다.”(이재)
(사진제공: EMA)
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