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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순수의 시대’ 신하균, 당신의 첫

2015-03-05 22:27:01

[bnt뉴스 최송희 기자 / 사진 김치윤 기자] 일단, 놀랍다. 데뷔 16년 차 배우에게도 처음이 있다니. 아니 그보다 먼저 신하균에게 처음이 있다니 말이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그의 필모그래피를 들여다보다가 “그동안 사극을 찍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의뭉스러운 물음에도 그는 차분하고 담담하게 웃으며 그런다. “기회가 안 닿았죠 뭐.”

최근 영화 ‘순수의 시대’(감독 안상훈) 개봉을 앞두고 신하균은 한경닷컴 bnt뉴스와 만났다. 처음에 대한 기대, 처음의 떨림을 품은 16년 차 배우라니. 주고받는 말들 사이에 자꾸만 웃음이 묻어났다. “‘순수의 시대’가 배우님의 첫 사극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시금 물었더니 그는 “일부러 안 한 건 아니었다”고 답했다.

“어쩌다 보니까 기회가 없었어요. 사실 작품이라는 게 제가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하고 싶은 장르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은 넓지 않아요. 시기라는 게 있고 시간도 한정돼 있죠. 그런 찰나에 ‘순수의 시대’를 만나게 됐고 제가 해보지 않은 장르에, 보여드리지 못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좋았어요. 총체적으로 새로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순수의 시대’는 조선개국 7년, 왕좌의 주인을 둘러싼 ‘왕자의 난’을 배경으로 한다. 신하균은 극 중 정도전의 사위이자 전국 총사령관인 김민재 역할을 맡아 기녀 가희(강한나)와 위험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린다.

사극이라는 배경을 지우더라도, 김민재는 지난 신하균의 필모그래피와는 다른 질감을 가진 캐릭터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강직한 인물이 순수한 사랑에 빠지게 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게 되는 모습은 이제까지 우리가 알던 신하균과는 다른 인상을 남겼던 터였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본질적인 건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대신 준비할 게 많았죠. 이번 캐릭터 같은 경우는 표현을 많이 하지 않고 대사도 적다 보니까 다른 느낌들로 채워야 했어요. 또 사극이기 때문에 검술, 승마 같은 것도 배웠었죠. 달랐어요. 많은 게. 한복도 그렇고 상투도 그렇고요. (웃음)”

그의 말마따나 ‘순수의 시대’ 속, 신하균의 외적인 모습들은 숱한 화제를 낳았다. 한복을 입고 상투를 틀어 올린 신하균이라니. CG를 연상케 하는 신경질적인 근육이라니. 연일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를 달릴 법했다.

“평소에 전 운동을 잘 안 하거든요. 산보 정도 해요. 산보. (웃음) 그런 근육질의 몸매는 제가 선호하는 몸도 아니고요. 그런 걸 선호했으면 늘 그렇게 했었겠죠. 몸을 만드는 동안에는 하루하루 변하니까 신기하고 재미도 있었어요. 그런데 영화에서 필요한 만큼만 하는 거였고, 제 라이프 스타일과는 안 맞아서 유지까지는 힘들죠. 술도 못 마시잖아요. 사람들과 관계도 못 맺어요.”

아쉬워하는 기색도 없었다. 촬영이 끝나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그의 신경질적인 근육을 두고 “팬분들이 아쉬워하겠어요”라고 거들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다시 몸을 만드는 작품이 있다면 하실 거예요?” 기자의 물음에 웃으며 고개까지 도리질 친다.

“다시 못해요. (웃음) 살 빼는 건 어렵지 않죠. 체중조절도 그렇고. 그런데 이렇게 극단적으로 할 일은 없지 않을까요? 아니 그보다 먼저 또 이런 몸을 보여준다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한 번 보여줬으니 이제는 다른 걸로….”

산보를 즐기는 배우에게 얼마나 고된 훈련이었을지. 신하균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느낄 수 있었다. 말을 마치며 묻어나는 웃음마저도 그랬다.


사실 김민재라는 인물은 외적인 고생 말고도, 내적으로도 많은 고민과 피로를 안아야 했던 인물이었다. 욕망과 야망의 시대를 살고 있고, 모든 관계가 적대적인 인물이었으니. 신하균에게 “장인, 아내, 아들까지 복잡하고 괴로운 관계였네요”라고 말을 건넸다.

“모든 작품에서, 저는 관계를 먼저 생각해요. 캐릭터에 접근할 때, 시나리오를 보고 정서적으로 맞는 부분이 있으니까 선택하게 되는 거죠. ‘순수의 시대’에서도 주변 인물들, 아내, 아들, 왕과 정도전 등 관계가 수립돼야 김민재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작업을 통해 캐릭터가 더 입체적이고 디테일하게 보여지니까요. 적대적 관계, 우호적 관계 하나하나 머릿속에 들어와야 느낌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이번 영화에서도 다른 영화처럼 그 정도 느낌만 가지고 가려고 했어요.”

불현듯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민재는 수동적인 인물이었고, 많은 적대적 관계 속에 억눌려 있었다.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면 실제로도 외롭거나, 씁쓸해지곤 했겠어요” 물었더니 단박에 “아니라”고 답한다.

“안 그래요. ‘빅매치’에서는 아예 혼자 한 걸요. 대립 관계라고 해도 감정을 계속하고 이야기 하는 현장의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 교감하는 부분들이 재밌죠. ‘빅매치’는 벽에 대고 혼자 연기를 해야 하니까. 그게 더 어렵고 외로웠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쉬는 시간이 없잖아요. 혼자 하면 쉴 수도 없어. (웃음)”


감정의 교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우. 그는 상대배우를 비롯해, 관객과의 감정까지 살필 줄 알았다. 앞선 시사회에서 “관객들이 촉촉이 감성으로 젖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순수의 시대’ 속에서 김민재의 감정을 순순히 따라가기엔 감정들이 뭉덩뭉덩 잘려있기도 했다.

“설명이 안 되는 부분들이 있긴 하죠. 가희와 처음 만나는 장면 이전에 숨은 이야기들이 더 있어요. 기생답지 않게 똑똑한 발언을 하는 장면이며, 그가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죠. 아이를 보듬어주는 장면이나 춤을 추는 장면에서 어머니를 떠올리는 장면들이 쌓이고 쌓여서 감정을 만들어나갔어요. 집에 들이고 나서 가희에 대한 감정으로 질투를 느끼기도 하거든요. 생략된 부분이 있어서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

데뷔 16년. ‘복수는 나의 것’을 지나 ‘지구를 지켜라’ ‘공동경비구역 JSA’ ‘박쥐’ 등, 우리에게 신하균은 늘 범상치 않은 사람이었다. 너무도 강렬한 인상 탓에 늘 그에게 ‘처음’이란 것은 없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는 늘 처음을 찾아 나섰고 전작의 흔적을 하나씩 지워갔다.

“영화를 볼 때 제가 신하균이라는 건 누구나 알죠.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5분, 10분이 지날수록 신하균이 아니라 작품 속 인물로 보여 지길 바라요. 끝까지 ‘저건 신하균이야’라는 생각이 든다면 작품에 방해가 되잖아요. 작품의 인물로 보여 지는 게 제가 해야 할 몫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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