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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보통사람’ 장혁, 속으로 ‘나쁜놈’을 연신 외칠지라도

2017-03-23 20:14:03

[이후림 기자] “배역은 미워하되 배우는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배역은 미워하되 배우는 미워하지 말아달란 그의 첫 마디, 농담 반 진담 반의 호소에 ‘아차’한 순간이 있었다. 속으로 ‘나쁜놈’을 연신 외쳐대며 그 문턱을 넘어가려던 찰나, 비로소 장혁의 그 시기 좋은 한마디가 마음에 딱 들어맞았다. 영화 ‘보통사람(감독 김봉한)’ 속 장혁은 그를 충분히 미워하게 할 만큼의 악랄한 안타고니스트(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 최규남을 연기한다.

장혁이 맡은 캐릭터 최규남은 국가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냉혈한. 서울대 법학과 재학 중 최연소 사법고시 합격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엘리트 검사로 승승장구하다 안기부의 실세가 된 인물이다.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 책상에 놓인 종이와 그의 손에 들린 펜이 특히 눈에 띄었다. 그만큼 이번 영화에 애정을 가지고 진솔하게 임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그만의 독특한 포인트였다. 노력하는 진심이 느껴지는 말 한 마디, 행동 한 거지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귀를 기울이게 하는 능력을 가진 배우 장혁이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Q. ‘보통사람’ 속 최규남,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캐릭터다.

“촬영할 때는 감정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갔다. 감독님이 최규남은 하나의 긴 벽,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벽이었으면 좋겠다고 디렉션을 줬기 때문이다. 영화 속 두 신을 빼고는 그 외 모든 신에서 감정을 뺀 상태로 연기했다.”

“모든 영화 속 캐릭터가 스토리란 게 있지 않겠나. 최규남 역시 처음에는 가고자 했던 큰 축이 국가발전이었을 것이다. 본인만의 소신도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선의의 생각에서 출발한 건 아니었을까. 모든 인물에는 스토리, 곧 과정이 있으니까. 사람의 생각이란 게 깊지 않았던 부분이 깊은 곳으로 가면서 각이 계속 생기지 않나. 그런 부분에 있어서 규남의 생각이 국가발전 위주로 가다보니 소통이 되지 않고, 본인만의 시스템, 벽을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Q. 그렇다면 규남이란 인물에 공감해야 할 순간들도 있었을 텐데.

“어쩌면 그 사람은 그 시절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연기했다. 유아 시절에는 가지고 있는 생각이 바뀔 여지가 있지만, 그 후에는 바뀌지 않는다. 이 인물 또한 오래 전 만들어진 테두리 안에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굳어지게 된 것 아닐까. 그 기준을 가지고 연기에 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규남이란 캐릭터에 공감은 못하겠다. 그래서 오늘 VIP 시사회가 끝나고 불이 켜지기 전에 나왔다. 밝은 상태에서 나오기가 좀 민망하더라.(웃음) 이런 안타고니스트가 나도 처음이라 화가 났다. 그리고 먹먹했다.”


Q. 규남을 ‘보통사람’으로 규정하고 연기했는지 궁금하다.


“규남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시절은 군사 독재 체제 안에서 여러 통제나 규제가 많았던 시기다. 규남은 그 암울한 시대에 그 일을 하면서, 맡은 게 또 그러한 일이다. 일을 잘 하자고 결심을 한다면 결국 성과를 내야하는 것처럼 행위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 직업이 해야 하는 일들을 가지고 간 거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 공감은 못한다. 영화를 보면서도 불이 켜지기 전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도 내가 연기했지만 ‘아, 진짜 나쁜놈이다’란 느낌이 느껴졌으니까.(웃음) 배역은 미워하되 배우는 미워하지 말아 달라. 규남의 행위가 올바른 행위가 아니지 않나. 나는 다만 연기를 해야 되니까, 어찌됐든 캐릭터에 스토리를 만들어서 연기를 해야 하지 않겠나. 기계처럼 움직일 수는 없으니.”

Q.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일단 첫 번째로는 손현주라는 배우랑 같이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계기였다. 너무 좋아하는 형님이고 실제로 너무 친하다. 배우로서도 좋아하지만 사람으로서, 선배로서 나도 저런 선배가 되고 싶게 만드는 형님이다. 형은 항상 눈높이를 상대방에게 맞춰준다. 인상은 호랑이 인상인데 웃는 인상이다.(웃음) 항상 이야기하고 싶고, 같이 맥주 한 잔 하고 싶고, 시간 넉넉하게 가지고 작품을 함께 해보고 싶었던 열망이 있었다.”

“둘째로는 안타고니스트를 영화에서 한 번 보여줄 시기라고 생각했다. 악역이 이번 작품까지 세 번째인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악역이 감정적인 악역이었다면, 이번 역할은 무감정이라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색이 다른 역할이었고, 설득력 있게 이 역할을 해내고 싶었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Q. 영화 속 악역 연기를 하는 본인의 모습을 배우로서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솔직히 보기 좋았다. 배우가 항상 멋있는 것만 하면 정말 좋겠지만, 그것만 계속 고수하면 쓰임이 없는 배우가 된다. 여러 역할을 해봐야 그만큼의 수요가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작품에서 내가 캐스팅을 하는 입장이 아니고 관객이 찾아야지 연기를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최근 ‘보이스’가 종영했는데 배우로서 상반되는 역할을 비슷한 시기에 한다는 것이 운이 좋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Q. 영화가 사회적인 이슈에 상당히 맞닿아 있다. 관심도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신문을 자주 보려고 한다. 뉴스도 자주 보려 하는데 촬영을 들어가면 거의 보지 못한다. 사회적인 이슈 뿐 아니라 연예계 이슈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차를 타고 가다가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내가 ‘이 노래 되게 좋은데? 가수 누구냐, 야 이거 대박 터지겠다’고 말하면 매니저 동생이 ‘형, 이 노래 카라 거예요. 근데 형, 2년 전에 터진 거예요’라고 말하는 식이다.(웃음)”

“특히 사극 촬영을 들어가면 촬영기간이 거의 8개월 정도 된다. 그동안 잠도 못 자는데 거기서 언제 프로그램 보고, 이슈거리 보고, 언제 그걸 다 하겠나. 잠잘 상황도 안 되는데. 하지만 그 안에서 큰 이슈들이나 특별히 관심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다 알고 있다.”

Q. 실제 장혁의 80년대는 어땠나.

“내 80년대는 개인적으로는 자유로웠다. 그냥 친구들이랑 놀기만 하면 됐으니까. 내가 보이 스카우트를 했는데 캠핑도 가고 그랬다. 운동하고, 태권브이도 좋아했고 영화 ‘우뢰메’ 보기도 하고. 특히 영화 속에도 나오지만 공감하는 건 바나나다. 바나나 하나 때문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때 당시에 바나나 갖고 있는 사람은 정말 대단했다.”

“또 프로야구 재킷도 입고 싶었고, 나이키 운동화도 신고 싶었다. 그땐 운동화를 어머니가 재래시장에 데리고 가서 사주셨다. 헌 것도 계속 신고 다녔다. 그리고 88올림픽하면서 그때가 내가 6학년이었는데 친구들이랑 손잡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정말 무서웠던 건 오락실이다. 한창 원더보이, 보글보글이 유행하던 때였다. 오락실 특유의 냄새가 나는 지하에서 동전을 넣고 게임을 하다가 어느 순간 뭔가가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에서 제일 예의바르고 겸손한 느낌으로 가만히 손을 모아야한다. 귀가 살포시 잡혀진다. 엄마가 와서 가만히 잡혀가고 그랬다.(웃음) 그럼 그날은 죽는 거다.(웃음) 동생이 있는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은 다 경험했을 텐데 일요일이 되면 머리를 깎으러 이발소에 간다. 나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동생은 100원짜리 가위를 문방구에서 사서 내가 머리를 깎아준다. 그럼 900원이 남는데 그 돈으로 한 판에 50원씩 하는 오락에 쓴다. 엄마가 보면 머리는 깎았는데 애 머리가 좀 이상하게 돼 있고.(웃음) 그런 기억이 많이 난다.”

Q. 장혁이 생각하는 ‘보통사람’은.

“상식이 통하는 시대에 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 상식이 있다는 것은 기본을 지키자는 건데, 기본이 잘 지켜지는 나라일수록 행복지수가 높더라. 보통사람이라는 것은 그 시기에 정해져 있는 기본을 지키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절대 쉽지 않다. 그 기준은 다 다르니까. 노멀한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힘들다. 나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부 못하는 사람은 보통도 못 가는 경우가 많다.(웃음)”


Q. SNS에 영어가 많이 보이더라.


“영어 공부도 할 겸 그렇게 됐다. 근데 내가 쓰는 영어는 어려운 영어가 절대 아니다.(웃음) 짧은 영어라도 해외 팬들과 소통하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난 긴 문장을 절대 쓰지 않는다.(웃음) 대부분의 것들은 이모티콘으로 대체한다. 또 해외여행을 가면 ‘화장실이 어디냐’ 이런 것들은 하고 싶지 않나. 써 봐야지 느니까.(웃음)”

Q. 댓글도 찾아보는 편인가.

“쉽지 않다. 어지간하면 보지 않는다. 특히 작품을 할 때는 댓글들에 동요될까봐 못 본다. 설득이 되는 말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두 가지를 모두 포섭할 순 없지 않나. 어쨌든 내가 가고자 했었던 축이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까. 댓글들을 보면서 착안해서 갈 수도 있지만 아직 그러기에는 가고자 했던 축을 아날로그 식으로 가는 즐거움이 좀 더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상남자 외모와 달리 섬세하고 다정한 장혁의 생각이 녹아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질문 하나 짧고 대충 지나가는 것 없이 모든 질문에 타당한 의미를 부여한 것 같은 장혁의 자상한 대답이 잘생긴 외모보다 더욱 보기 좋게 빚어진 마음 같았다.

이러하니, 영화를 보고 난 뒤 원망스럽고 미웠던 마음은 슬며시 뒤로. 마구 솟아나는 미운 마음조차도 성실과 열심으로 맡은 바 최선의 결과를 맺은 장혁의 열매라고 해두자. 속으로 ‘규남이 나쁜놈’을 연신 외칠지라도, 그런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예상컨대 장혁 역시 상영관의 불이 켜지기 전 쓸쓸히 그곳을 도망쳐(?) 나오면서 함께 외쳤을 것이란 사실이다. “최규남, 너 이 나쁜놈!”

한편 영화 ‘보통사람’은 3월23일 개봉,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사진제공: 오퍼스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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