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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불한당’ 설경구, 17년 기다린 뤼미에르 行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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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재 기자] “요즘 고민은 연기...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설경구(50)는 대배우다. 예술을 몸으로 행하는 직업의 대표 격인 배우와 한자 클 대의 결합은 자칫 거창하게 다가올 수 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다. ‘제37회 대종상 영화제’ 신인 남자 배우상을 안겼던 영화 ‘박하사탕’을 시작으로 한국 영화계 다섯 번째 ‘천만영화’인 ‘해운대’까지.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금빛이 넘실댄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설경구는 배우로서 스크린에 서있었지만, 인상적 연기의 관람은 힘들었다. 혹자는 힘이 빠졌다고 표현했다.

2017년 5월. 기억 너머의 설경구가 돌아왔다.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감독 변성현/이하 불한당)’에서 그는 조직의 1인자를 노리는 재호를 연기했다. 최근 이삼 년 동안의 출연작들을 살펴보자면 설경구가 영화의 주재료가 되는 것 대신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양념 식으로 소모됐던 게 사실. 이번 영화는 다르다. 느와르 장르가 힘을 보탰지만, 그럼에도 과거의 ‘연기 야수’가 돌아왔다. 반가운 재회다.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먼저 2일 언론시사회의 관람 소감을 물었다. “언론시사회가 끝나고 무대 세팅할 때 잠깐의 시간 동안 어벙벙했다. ‘다 즐기지 못했다’라는 생각을 했다. ‘왜 조금 더 갖고 놀지 못했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불어 영화의 평들을 읽어봤는데 다들 너무 철학적인 면까지 들어가시더라. (웃음) 철저한 상업 영화로 찍었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고민까지 탐구하시니까 ‘이거 너무 기대치 올라가면 안 되는데’라는 고민이 스쳤다. 고민거리가 던져지는 영화는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불한당’은 모든 것을 갖기 위해 불한당이 된 남자 재호(설경구)와 더 잃을 것이 없기에 불한당이 된 남자 현수(임시완)의 범죄 액션 드라마. 주목할 점은 극의 기둥이 되는 언더커버라는 소재다. 영화 ‘무간도’ ’신세계’ ‘프리즌’, JTBC ‘무정도시’ 등 소재의 장르화를 선언하는 것이 부족치 않은 상황. 이 가운데 등장한 ‘불한당’이라는 또 하나의 언더커버 영화는 어쩌면 관객들에게 반복의 지루함을 전달할 수도 있다. 그는 감독을 믿었다고 말했다.

“기시감을 걱정했다. 똑같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설정 자체가 비슷한 영화들이 많지 않은가. 크게 이야기하면 언더커버라는 소재 말이다. 교도소에 잡입을 했다든지, 조직에 잡입을 했다든지. 선이 똑같은데, 어떻게 차별화를 시킬 것인지가 문제였다. 그런데 변성현 감독님께서 자기 확신이 뚜렷하시더라. ‘나는 다른 영화 만들려고 한다. 느와르보다도 감정에 더 집중할 것이다. 스타일이나 미장센 확실히 보일 것이다’. 근데 그게 막 지르는 말씀이 아니셨다.”

“감독님께서 자기 확신이 없으면 말씀을 안 하는 분이시다. 자신이 없으면 자신이 없다고 말씀하는 분이시다. 무엇이든 정확히 표현하는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믿음이 가더라. 사실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있긴 했다. (웃음) 모험을 했다. ‘믿어보자’라는 생각 속에. 그때 ‘프리즌’이라는 영화가 크랭크인 시점이었고, 그렇게 되면 우리 영화랑 개봉일 차이도 얼마 안 되는 상황이었다. ‘프리즌’ 봤는데 전혀 다른 영화더라.”


설경구가 연기한 재호는 교도소에서 현수를 만나 브로맨스를 쌓아간다. 현수 역은 임시완이 맡았다. 연기 경력 25년 차의 배우로서 이제 갓 6년 차의 후배 배우와 듀엣을 공연하는 것이 낯설거나 어렵진 않았을까.

그는 “임시완은 내가 이끌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워낙 철저히 준비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걱정 0.1%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 걱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임시완 자체가 워낙 열성적 사람이다. 촬영 전에 뭔가 새로운 것이 생각나면 새벽 세네 시에 전화해서 연기를 했다고 들었다. 그래도 옛날에 비해서 많이 죽은 거라고 말하더라. 되게 열정적이다”라고 후배를 칭찬했다.

임시완은 2012년 스물 다섯의 나이로 MBC ‘해를 품은 달’을 통해 정식 연기를 시작, 올해로 서른에 접어들었다. 20여 년 전, 신인 설경구는 어떠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했던 작품은 영화 ‘송어’다. 그 전에는 단역이나 조연을 하면서 사오 회차 잠깐 나온 것이 전부였다. 그 이후에 이창동 감독님이랑 찍을 때는 내가 열정을 보이기 전에 나를 열정적으로 몰아부치시니까 ‘수동적인 열정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이 나를 열정으로 만드신 셈이다. 성격 자체가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다. 좋은 감독님을 만났다.”

추억에 젖은 듯 그는 과거의 회상 속에 ‘불한당’ 촬영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초반에 ‘박하사탕’ 때가 서른두 살인가 그랬다. 그때 참 열정적으로 술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촬영 여부와 상관없이 마시는 바람에 혼나기도 했다. ‘송어’ 때 박종원 감독님께 많이 혼났다. (웃음) ‘불한당’도 술자리 재밌게 가졌다. 촬영이 며칠 비거나 할 때는 늘 현장에서 얘기하고 그랬다. 임시완이 처음에 몸 만든다고 술을 잘 못 먹어서 언제 먹을 수 있나 그 계산만 했다. 시간 계산. 임시완이 술자리를 즐기는 스타일이라면 나는 마시는 스타일이다.”


앞서 설경구는 ‘불한당’ 출연 이유로 변성현 감독의 스타일과 미장센에 관한 믿음을 언급했고, 그의 믿음은 잭팟으로 돌아왔다. 그는 ‘정성을 담은 그림’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해가 구름으로 들어가는 중에 복도에서 재호를 칼로 죽이려고 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복도가 밝아지고, 다시 어두워지고. ‘그게 어떻게 돼?’라고 물었는데, 결국 그 장면 때문에 하루 조명 세팅을 다시 했다. 정성을 담아서 찍었고, 좋은 그림으로 나왔다. 이외에도 좋은 장면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한 커트, 한 커트가 정성을 담은 그림 같았다.”

언론시사회에서 화제의 중심이자 웃음의 중심은 변성현 감독의 한 마디였다. 그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렸다”라고 말했다. 취재진을 웃게 만든 것은 느와르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생뚱맞은 연관이 아닌 실제로 그것이 적확하게 들어맞는 재호와 현수의 관계 때문이었다. 조금 더 진했다면 느와르와 퀴어의 혼재가 가능했을 정도. 감독의 몫일까, 아니면 두 주연 배우의 열연 덕일까. 감정의 증폭은 ‘불한당’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감독님께서 언론시사회에서 말씀하셨던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멜로 영화 이야기를 그때 들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촬영 전에 들었으면 정말 헷갈렸을 듯하다. ‘이 영화를 어떻게 풀어야 하지? 뭐지?’라며 고민했을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감독님 입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출연진끼리 ‘허걱’ 했다. ‘허? 이게 뭐야? 그럼 누가 로미오고, 누가 줄리엣이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당황했다. 사실 촬영하면서 중반 가기 전에 그런 느낌을 조금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교도소에서 처음 보는 신참이 나를 의식하는 것 아닌가. 서서히 현수가 재호 눈에 들어왔고, 사랑보다는 재호가 40대 중반까지 살면서 유일하게 믿고 싶은 한 놈이 현수였다는 생각이다. 그걸 굳이 표현하자면 사랑인 것이고.”


설경구의 2000년대 초중반은 유독 빛났다. 당시 작품들 중 유독 눈에 띄는 영화가 있으니 바로 ‘역도산’. 재일 한국인이자 일본에서 프로레슬링의 기초를 닦은 인물을 연기하는 것에 있어서 고충이 많았을 테다. 그리고 그때의 치열함은 이번 영화에서도 묘하게 반복된다.

그는 “역도산은 징글징글하게 준비했던 영화다. 일본어 대사도 문제였다”라며, “한국에서 두 달 일본어 딱 외워서 일본 배우들이랑 리딩을 하는데, 나카타니 미키가 나를 보더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더라. 진짜 지옥 같았다. 리딩 다음 달에 찍어야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니. 끔찍했다. 거기다 차승재 대표님이 ‘일본 사람에게 후시(녹음) 부탁하면 돼. 괜찮아’라고 말씀하시니까 더 싫었다. 다른 사람 목소리라니. 악몽이었다”라고 말했다.

근황을 물으니 “칸 갔다와서 바로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를 크랭크 인 한다”라는 답이 나왔다. ‘불한당’은 ‘제70회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인 ‘미드나잇 스크리닝(Midnight Screenings)’ 초청작이다.

“칸은 17년 전에 가보고 처음 가본다. 그래서 잘 기억이 안 난다. (웃음) 집에 그나마 사진이 있긴 하다. 이창동 감독님이랑 같이 그때 칸 뤼미에르 극장을 배경으로 찍었던 사진이다. 감독 주간, 비평가 주간은 뤼미에르 극장이 아니고, 다른 극장이다. 주목할 만한 시선도 뤼미에르 극장에서 레드 카펫하고 다른 극장 들어가서 상영을 한다. 미드나잇과 경쟁만 제대로 주인공이라고 하더라. 뤼미에르의 주인공이라니. 캬! 여기서 레드 카펫 한번 밟아보는 데 17년 걸렸다. 제대로 한번 밟고 싶다.” 25년 차 배우의 설렘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인터뷰 막바지에 요즘 고민을 물었다. 주조연작들의 숫자가 약 30편에 수렴하며 대중의 기대가 여전한 중견 배우에게 일적인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나는 속을 갉아먹는 스타일이다. 계속 긁는다”라며, “연기다. 연기. 열심히 하려고 한다. 이제는 연기를, 고민하면서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더 고민하면서”라며 배우의 진중함을 드러냈다.

슬럼프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을 정도로 그간 설경구는 흥행이라는 면에서 방황의 길을 걸어왔다. 더불어 냉정히 말하자면 흥행뿐 아니라 연기도 마찬가지였다. 다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화자가 설경구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절로 고조된다. 영화는 5월17일부터 상영 중이다. 120분. 청소년 관람불가. 손익분기점 230만 명. 제작비 60억 원.

+α. 설경구와 ‘칸 영화제’의 인연은?

설경구와 ‘칸 영화제’ 사이의 빨간 실은 2000년부터 시작됐다. 80년대 격동의 현대사를 그린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그 시작. 이후 이창동 감독의 2002년작 ‘오아시스’가 국제 비평가 협회 특별 초청작으로 선정됐고, 또 역시 제작자 이창동 감독과의 인연으로 특별 출연한 2009년작 ‘여행자’가 비경쟁 부문 특별 상영작으로 결정됐다. 이번 ‘불한당’은 ‘칸 영화제’와 그의 네 번째 인연인 셈. 돌이켜보면 한국 영화계의 황금기로 회고되는 2000년대 초반, 그것도 이창동 감독의 페르소나로 분했던 설경구의 입지는 대단했고 또 대단했다. 아마 설경구를 향한 아쉬움은 과거의 영광이 너무 컸기에 따르는 부수물일 것이다.(사진제공: 호호호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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