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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옥’ 마흔셋 이선균의 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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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재 기자]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시곗바늘을 되돌려 때는 10월10일. 영화 ‘미옥(감독 이안규)’ 제작보고회에서 사회자는 “김혜수 씨의 또 하나의 강렬한 변신”이라는 말로 취재진의 주의를 배우 김혜수에게 집중시켰다. 또한, 사회자 등장에 앞서 재생된 ‘원 앤드 온리(ONE & ONLY) 김혜수’ 영상에서 배우 이선균은 “김혜수라는 배우가 왜 한국 영화의 중심에 있는지 많이 깨닫게 된 것 같다”라고 말해 ‘미옥’은 김혜수가 주인공인 영화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기도.

이번에는 시곗바늘을 앞으로 돌려 때는 11월6일. ‘미옥’ 언론시사회가 끝난 후 영화를 관람한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선균의 연기를 화두로 삼았다. ‘미옥’ 포스터에서 핏빛으로 물든 은발의 김혜수는 역할의 처연함을 드러냈지만, 정작 영화에서 제일 돋보이는 인물은 이선균이 연기한 임상훈이었기 때문. 취재진은 이선균과의 인터뷰에서도 “‘미옥’이 임상훈의 영화더라”라는 여는 말로 극에서 도드라진 임상훈 역의 비중을 배우에게 알렸다.

이에 이선균은 “나도 그렇게 될 줄 몰랐다”라며 답을 전한 후 영화에서 임상훈이 차지하는 비중과 관련한 물음이 등장할 때마다 난처한 기색은 물론 침울함까지 전달해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홍보와 작품의 괴리 때문에 어려움을 느끼는 배우 이선균을 11월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길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입술에 잡힌 물집을 가리키자 그는 “내일 촬영 있는데 큰일났다”라며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진행형 배우의 면모를 뽐냈다.


‘미옥’은 범죄 조직 2인자 나현정(김혜수)과 그를 위해 조직의 해결사가 된 임상훈(이선균) 그리고 출세를 눈앞에 두고 이들에게 덜미를 잡힌 최대식(이희준) 세 사람의 물고 물리는 전쟁을 그린 누아르. 이 안에서 임상훈의 존재감은 가히 대단하다. 폭력에 휩싸인 이 로맨티시스트는 한 손에는 장미를, 다른 한 손에는 망치를 든 채 외사랑을 전개한다.

이선균은 “사건 중심의 대본이 아니었다”라며 씁쓸한 웃음을 건넨 뒤, “90분으로 줄이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 원래는 아픈 이들의 이야기가 중점이었다. 상훈이 판을 뒤엎는 인물이다 보니까 중심에 서게 된 것 같다”라고 임상훈이 돋보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현재 ‘미옥’의 홍보는 포스터든 예고편이든 초점 전체가 김혜수에게 맞춰진 상황이다. 김혜수의 ‘걸크러시’를 기대한 누군가에게는 임상훈의 활약이 못마땅할 수도. “홍보를 ‘여성 누아르’로 하고 있어요. 김혜수 선배님이 전면에 나오시고요. 그런데 (나)현정이 주체적 인물이 아니니까 저라도 불만족할 거 같아요.” 또한, 그는 “개봉 전이라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라는 말로 임상훈에게 쏠리는 관심을 경계했다.


이 가운데 취재진은 로맨스 장르에 능한 그의 연기가 어떤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이선균은 “관객 분들은 그 주인공이 김혜수 선배님이길 바라실 텐데...”라는 귓가에 또렷이 들리지만, 한편으로는 혼잣말에 가까운 대답을 전해 듣는 이를 당황케 했다. 주인공 나현정 못지 않은 아우라로 임상훈이 활약한 ‘미옥’ 완성본이 이선균에게 얼마나 당황스럽게 다가오는지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침울하게 보인다며 배우를 걱정하자 이선균은 “걱정이 돼서 그런다”라고 심려를 물리적 단어로써 드러냈다. 더불어 그는 임상훈의 부각에 관해 말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공감하자 “모두가 상훈이 돋보이는 것을 이야기한다. 다른 누아르를 기대하고 오셨다가 이 점에 대한 반감이 크실 것 같아서 걱정된다”라고 또 다시 단어 ‘걱정’을 사용했다.

사실 기자는 ‘이선균의 걱정’에 걱정을 느꼈다. 영화 ‘차이나타운’에서 김혜수가 영화를 품고 배우 김고은이 그 속을 뛰어 놀았다면, ‘미옥’ 역시 김혜수는 다시 한 번 너른 공간을 만들고 이선균은 그 안에서 연기를 맘껏 펼쳤다. 그뿐이었다. 임상훈이 돋보인다는 이유로 김혜수가 연기하는 나현정이 색을 잃은 것이 아니며, 김혜수의 연기가 퇴색된 것도 아닌데 이선균이 이를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은 이해가 힘든 광경이었다.

영화가 편집 속에 축약되면서 등장인물 간의 관계라는 배우의 의도했던 바가 드러나지 않은 것은 문제지만, 분명 이선균의 걱정은 과도했다. 그의 언급처럼 김혜수를 바라보고 극장을 찾은 이가 느낄 당황은 실제로 드러날 결과다. 그러나 이는 홍보 방향성의 문제일 뿐 배우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이선균은 어깨를 당당히 펴도 되지 않았을까.


이선균은 다른 등장인물이 내근직이라면 임상훈을 “현장을 뛰는” 외근직에 비유했다. 개 농장을 안식처이자 일터로 두고 있는 임상훈이 등장할 때마다 김회장이 임상훈 냄새를 싫어하는 등의 현실적 묘사를 원했다고. 하지만 사실적이지 않은 스타일을 추구하는 이안규 감독의 특성과 타협해 지금의 임상훈이 완성됐단다. 이안규 감독과의 작업이 어땠는지 묻자 그는 “감독님이 연극 연출을 전공하셔서 영화가 약간 연극적이다”라고 했다.

“약간 연극적이라는 게, 감독님의 대사를 보면 느껴지는 것들이 있어요. 김회장이 마지막에 하는 대사 등을 보면 극적이에요. 그런 느낌 안 드세요? 무대에서 하는 표현 같은 느낌이에요. 의상도 마찬가지에요. 저 혼자 느꼈던 부분이긴 하죠. 영화에 등장하는 공간도 그렇고, ‘영화에 연극을 접목하고 싶어하시는구나’라고 느꼈어요.”


배우 인터뷰의 단골 질문은 ‘역할과 본인은 얼마나 닮았는가?’이다. 이에 결핍과 콤플렉스를 앓고 있는 임상훈을 연기한 이선균의 두 가지는 무엇인지 물었다. 이선균은 “평탄하게 자라서 큰 결핍은 없다”라며, “콤플렉스는”이라고 말한 뒤 침을 삼켰다. “어쩌면 목소리 같아요. 옛날부터요. 이거를 장점이라고 이야기하는 분도 계시지만, 단정 지어지는 게 문제죠. 콤플렉스긴 콤플렉스였던 거 같아요. 지금도 그렇고요.”

조심스러운 질문을 덧붙였다. 예고편에서 임상훈을 연기한 이선균은 ‘저희는 안 될 일 하지 않습니다’라는 대사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와 관련 누리꾼 중 누군가는 해당 대사의 톤을 비판하기도. 배우는 저마다의 고유 톤과 발성을 가진다. 이선균과 함께 공연한 김혜수도, 그의 배우자이자 동료 배우인 전혜진도 개인의 톤을 가지고 있다. 이선균은 자신의 특색에 부정을 느끼는 이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는지 궁금했다.

“받아들여야지 뭐 어떡하겠어요. 조심해야 될 부분이라고 봐요.” 개인이 가진 속성이기에 조심할 부분이 아니지 않냐고 반문하자 이선균은 “신경을 써야 되는 부분이다. 모니터할 때 다시 한 번 체크하고. 그렇게 해야 된다”라고 비판을 수긍하는 자세를 보였다.

짧은 시간 동안 인터뷰 현장에서 만난 이선균은 그간 그가 맡아온 극중 역할과 큰 차이 없는 면모를 드러냈다. 자세히 덧붙이자면 영화 ‘끝까지 간다’, JTBC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MBC ‘파스타’ 모두 역할의 색은 제각각이지만 결국 원류는 인간 이선균인 것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까칠한 답을 들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선균은 조심을 언급했다. 항변 아닌 수긍을 한다는 것. 여전히 스니커즈가 어울리면서 동시에 중년의 연륜을 갖춘 이선균은 대중의 의견을 수렴할 줄 아는 배우였다.


임상훈은 ‘미옥’에서 사랑을 표현한다. 그리고 로맨스는 이선균의 첫째 장기였다. 그는 한때 MBC ‘태릉 선수촌’부터 시작해 ‘커피 프린스 1호점’ ‘파스타’ 등에서 로맨스 장르의 대명사로 활동했던 바 있다. 그러나 이선균과 낭만적 사랑의 연관은 언제부턴가 단절된 것이 사실.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에서 그는 현실적 사랑에 집중했던 바 있다.

“나이가 드니까 그렇죠. (웃음) 영화는 이제 멜로나 로맨스 장르가 흥행이 안 되니까 투자가 거의 안 돼요. 제작이 안 되니 그런 소재나 주제는 텔레비전 드라마 쪽으로 갈 수 밖에 없고요. 주인공은 예쁘고 잘생긴 친구들이 거의 다 하고, 저는 현실적인 찌질남 가끔씩 하고 있고, 그런 거죠.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러운 거 같아요.”

이선균의 답은 로맨스 장르에 한정됐으나, 어느덧 불혹을 넘긴 배우의 처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줄을 남겼다.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고 있다’라는 문장이 그것. 아마 ‘미옥’의 세 주역 중 임상훈의 처연함이 유독 세게 다가오는 것은 나이테를 인정하는 배우의 진심이 은연중 연기에 묻어났기 때문일 테다. ‘미옥’은 김혜수의 영화기도 하고, 이선균의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11월9일부터 상영 중이다. 91분. 청소년 관람불가. 손익분기점 200만 명. 총제작비 66억 원.(사진제공: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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