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포없는리뷰] ‘증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2019-02-08 17:53:59

[김영재 기자] 2월13일 ‘증인’이 개봉했다. 개봉 후 첫 주말 맞이. 이번 주말 극장을 찾을 관객들의 선택으로 ‘증인’은?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3.2/5)

순호(정우성)는 변호사다. 그리고 변절자다. 현재 순호의 소속처는 대형 로펌 리앤유. 대표는 과거 순호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파이터’로 그 이름을 날린 것에 주목, 그의 바른 이미지를 회사에 덧씌우려 한다. 이에 순호는 대표 지시 아래 국선 무료 변호를 맡게 되고, 물증 없이 증언만 있는 재판에서 승소키 위해 사건의 목격자를 만난다.

그런데 목격자 말투가 어딘가 어눌하다. 증인이 다름 아닌 자폐 소녀인 것. 대화를 원하는 순호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하굣길에 찾아가 지우(김향기)를 만난다. 허나, 순호가 피고인의 무죄를 증명해야 하는 변호인이라면 지우는 살해를 목격한 유일한 목격자다. 증언대에 선 지우를 향해 순호는 칼을 빼든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세 치의 칼을.

또 자폐 스펙트럼 장애(이하 자폐)가 소재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은 지능은 떨어지나 전문가 못지않은 피아노 연주 실력을 자랑하는 서번트 증후군 환자를 극 전면에 내세웠다. 서번트 증후군은 자폐증이나 지적 장애를 가진 이가 특정 분야에서 우수성을 드러내는 것을 이르는 말. 서번트 증후군과 자폐는 별개인 것과 별개로, 배우 더스틴 호프만의 ‘레인맨’에 이어 또 자폐를 미화시킨 것이다.

영화 ‘증인(감독 이한)’은 자폐의 한 종류로 여겨지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내세운다. 그리고 그 증상이 시력 혹은 청력이 뛰어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넥타이 물방울 개수를 단번에 세는 지우의 포토그래픽 메모리만 보면 자폐인은 ‘슈퍼맨’이다. 영화는 순호의 각성을 위한 지렛대로 ‘슈퍼걸’을 사용하고, 순호는 지우를 향해 편견을 가졌음을 부끄러워한다.

왜 하필 자폐 소녀가 살해 사건을 목격한 것일까. 그건 순호가 자폐인에 대한 편견을 스스로 깨부수는 데에서 관객이 순호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순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자폐인이 초인(超人)은 아니다. 변호사는 증인 덕에 편견을 벗어냈을지 모르나, 관객은 ‘증인’ 탓에 편견을 안고 영화관을 나선다. 로펌 대표가 순호가 가진 호감을 이용하려 드는 것처럼 영화는 대중이 자폐인에게 가진 환상을 교묘히 이용한다.

그간 작가 김려령의 책 ‘완득이’와 ‘우아한 거짓말’을 스크린에 옮겨온 이한 감독은, 제5회 롯데시나리오공모대전 대상을 수상한 ‘증인’에도 전작과의 연속성을 부여했다.

과거 돈보다 정의를 중요시한 ‘민변’ 변호사가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지우를 이해하는 면은, 어쩌면 ‘완득이’에서 지적 장애인 민구 삼촌과 필리핀 노동자 완득 모(母)가 사회의 또 다른 약자 완득 부(父)를 장애 없는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과 겹치는 구석이 있다. ‘우아한 거짓말’에서 천지는 그의 우울증 증세를 숨기기 위해 ‘우울증 극복하기’란 책을 읽고, ‘증인’에서 지우는 정상인 행세를 스스로에게 강요한다.

유머도 전작과의 동일 요소다. 실로 많은 웃음이 지난달 21일 언론시사회에서 터져 나왔다. 전작에서 각각 배우 김윤석과 유아인이 웃음을 이끌었다면, 이번엔 박근형(길재 역)과 김향기가 그 배턴을 이어받는다. 특히 김향기의 자폐 소녀 연기가 다수 웃음을 불러 모으는데, 그 웃음은 일상에서 쉬이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불러일으키는 웃음이다. 우스꽝스러운 언행과 사고(思考)로 과거 큰 인기를 모은 ‘영구’나 ‘맹구’가 현재에 와서 ‘지적 장애인을 희화화시킨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받는 것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휴먼 드라마’에 그칠 뻔한 ‘증인’의 풍미를 배가시키는 건 의외로 법정 신과, ‘김은택 살인 사건’을 둘러싼 스릴러 요소다. “변호인은 지금 불필요한 질문으로 증인을 추궁하고 있습니다”, “재판의 본질과 무관한 변론입니다” 등 검사 희중(이규형)의 입에서 나오는 뻔한 대사가 오히려 변호사와 검사의 공방에 관객을 몰입시킨다. 흠도 있다.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정답이 보이는 허술한 트릭과 악인들의 흉계는 너무 뻔해서 재미없다. 반면 가정부 미란(염혜란)의 살해 용의 재구성, 등장인물이 거짓말 탐지기를 논할 때의 음악 완급 조절 등에서 언뜻 비치는 스릴은 이젠 타 장르에서도 이 감독을 보고 싶게 만든다.

영화 ‘의뢰인’에도 사건을 목격한 아이와 사건을 마주한 변호사가 등장한다. 직접 비교는 힘들다. 극 중 마크는 지우와 다르게 자발적으로 사건 현장에 뛰어들고, 하물며 자폐인이 아니다. 그와 맞서는 검사는 ‘증인’의 희중과 다르게 그를 궁지에 몰아넣는 정치 검사고, 무엇보다 마크의 곁에는 단돈 1달러에 고용된 변호사 레지나가 있다.

딱 하나 동일성을 띄는 게 있다면 주인공 마크가 구금실에서 마주한 요한복음의 한 구절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AND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

순호를 포함해 돈의 노예가 된 이들에게 진실이 뭔지 알려주고 싶은 지우는 그들의 진리다. 지우의 진실성이 악인을 벌하고 길을 잃은 어린 양에게 깨달음을 안길 때 관객은 감동은 느낄 것인가 아니면 뻔함을 느낄 것인가. 다행히 농익은 이 감독의 연출은 관객이 전자에 머물도록 할 듯하다. 2월13일 개봉. 12세 관람가.(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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