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곱물음표] ‘생일’ 전도연, 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 (인터뷰)

2019-05-11 23:53:42

[김영재 기자] 4월3일 개봉작 ‘생일’ 순남 役

배우 전도연(46) 대표작은 영화 ‘밀양(2007)’이다. “한자로 비밀 밀(密), 볕 양(陽). 비밀의 햇볕” 밀양에 내려와 아들을 잃은 신애의 슬픔을 아주 절절히 표현해냈다. 하지만 ‘밀양’은 전도연 최고의 기쁨이자 또 최고의 절망이었다. 배우는 ‘밀양’을 일종의 ‘출발선’으로 생각했으나 대중은 그의 ‘결승점’을 봤다고 지레 짐작한 것. 결국 전도연에게 ‘밀양’은 넘어서야 할 높은 산이 됐고, 이에 그는 그것을 떨쳐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 왔다.

하지만 그 심경에 변화가 생긴 듯하다. 영화 ‘남과 여’ 이후 약 3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생일(감독 이종언)’이 그 증거다. ‘세월호 침몰 사고’ 그 이후를 다루는 본작에서 전도연은 바다에 아들을 잃은 엄마 순남을 연기했다. 겨울이 지나 다시 봄이 오듯 다시, 엄마다.

“그때는 날이 선 채로 연기했어요. 제가 알지 못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만들어야 했거든요. 느끼고 있어도 그게 자꾸 가짜 같았어요. 느끼는 시늉을 하는 거 같기도 했고요. 근데 이제는 알겠는 거예요.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 엄마가 됐으니까요. ―전도연은 지난 2009년 1월, 결혼 1년 10개월 만에 딸을 출산했다.― 때문에 순남이 느끼는 슬픔과 한 아이의 엄마인 저 전도연의 슬픔을 구분하려 했어요. 감정의 검열이랄까요? 거기에 집중했죠.”

영화 ‘접속(1997)’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전도연은 그 인물이 된다”고 했다. 등장인물을 의심하기보다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이가 전도연이다. “저라는 한 사람이 연기하는 이상 신애와 순남의 슬픔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어요. 그래서 둘을 서로 다르게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이야기가 다르잖아요. 상황은 같더라도 이야기가 다르니까, 그냥 ‘생일’의 순남으로만 봐주시길 바라며 순남의 감정에 충실했어요. 그리고 ‘밀양’의 신애가 등장한 신과 ‘생일’의 순남이 등장한 신의 비교를 물으신다면 사실 힘들어요. 어떤 분은 그 눈물의 차이를 설명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손에 땀을 쥐며 대답해드렸죠.(웃음) 어려워요. 하나서부터 열까지 왜 이렇게 쉽지 않은지 모르겠어요.”

요새 전도연은 힘들다. ‘생일’ 탓이다. 세월호 이야기는 허투루 다루기 힘든 대한민국의 트라우마다. “선택도, 촬영도, 개봉 전 과정도 모두 다른 영화에 비해 쉽지 않아요. 말 한마디 조심스러워요. 어렵고요.” ‘생일’은 이종언 감독의 입봉작이고, 두 사람은 ‘밀양’에서 스크립터와 배우로 그 인연을 맺었다. 호칭을 바로 감독님으로 바꿀 정도로 “존중이 생길 만큼 좋은 글”이었다. 허나 감독의 용기에 응원을 보내는 것과 출연은 서로 별개였다.

“사고 당시 제 생각은 ‘당연히 구조되겠지’였어요. 일말의 의심도 없었어요.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배가 가라앉을 거라곤 저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보면 외면하고 피하는 편이에요. 때문에 ‘작게나마 무언가 해야지’가 아니라 그냥 모른 척했어요. 하지만 외면한다고 해서 그게 정말 모르는 일이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미안함 등이 계속 마음에 남았죠. 그래서 처음 ‘생일’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미안함이 너무 컸어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란 생각도 들었고요.”


전도연은 쿨하다. 또 진솔하다. 즉 진실하고 솔직하다. 당시 세월호 사건을 외면했다는 자기 고백은 작품 출연의 당위를 지탱하나, 어쩌면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말. 하지만 그는 ‘다름’과 ‘틀림’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다. 또 거창한 것보다 있는 그대로를 말하기 좋아한다. 그럼 이런 질문은 어떨까. ‘생일’ 출연 후 전도연의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가 “음…”이라며 대답을 생각한다. 5초의 머뭇거림 후 나온 대답은 “사실 없어요”. 대답이 멋쩍은지 배시시 웃는다. “이 영화로 뭔가 큰 책임감이나 의무감이 생기지 않았냐고 물으시곤 해요. 하지만 생길 수가 없어요. 제가 연기를 한 건 맞아요. 그러나 그로 인해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싶어요. 아직 이 이야기는 진행형이잖아요. 저는 그 과정의 일부고요. 저 역시 관객 분들과 생각이 같아요. 집에 가면 가족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에요.”

‘생일’에는 소위 ‘메시지’가 없다. 전도연이 인정했듯 이 영화에 “강요”는 없다. 마치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는 듯하다. 감독의 관조적 시선은 작품이 관객에게 질문하는 대신, 관객이 그 자신에게 질문하게 만든다. ‘나는 곁에 있는 이에게 위로를 건넨 적 있는가?’라는. 아들 생각에 집이 떠내려가라 우는 순남. 그를 타이르는 이는 남편 정일(설경구)이 아니다. 옆집에 사는 우찬 엄마(김수진)다. 이웃사촌이라고들 하나 결국 남이다. 그럼에도 이웃의 위로에 순남은 힘들고 놔버리고 싶은 마음을 거두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유가족 시사회에 무대 인사를 갔어요. 안에 못 들어가겠더라고요. 감히 그분들께 ‘제가 순남을 연기했는데 영화 어떻게 보셨어요? 뭔가 위로를 느끼셨나요?’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냥 너무 죄송했어요. 근데 어머님들께서 손수 수놓으신 지갑에 노란 리본을 묶어서 제 손에 쥐어주시더라고요. 그리고 감사하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되게 큰 돌덩이 하나를 내려놓은 듯한 마음이었어요. 유가족 분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지갑 덕에 오히려 제가 더 위로받고 위안 받은 거죠. 오히려 그분들께서 저를 힘내라고 응원해주신 셈이에요.”

‘해피 엔드(1999)’와 ‘생일’의 공통점은 출연 고사를 번복했다는 것. 특히 ‘생일’은 과거 선택을 아쉬워하는 일 없는 전도연조차, 만일 출연을 거절했다면 결국 후회했을 거라고 단언하는 영화다. ‘생일’의 매 과정은 힘들었으나 매번 그는 성장한다. “제작보고회에 끌려가듯 갔어요. 근데 그 힘든 게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가서야 알았어요. 모두가 힘들어하고 조심스러워 하는 문제더라고요. 한 걸음 나아갔죠. 유가족 분들과의 만남도 막상 가보니까 내가 왜 피하고 싶었을까 싶더라고요. 역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어요.”

이 인터뷰는 되도록 ‘생일’과 전도연에 초점을 맞췄다. JTBC ‘뉴스룸’에서 앵커 손석희가 그랬듯, 당분간 배우를 엄마 순남으로 남겨두고 싶기 때문이다.

그 전도연이 “앞을 살아가야 하는 가족들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용기가 났다”며 왜 ‘생일’에 출연했는가를 말한다. 어디든 ‘생일’에 대해서는 그 한 발을 내딛기조차 힘들었다고 한 전도연의 고백은 우리의 고백이기도 하다. 전도연처럼 발걸음을 떼자. 용기를 낸 그가 오히려 위로를 받았듯, 우리 역시 오히려 위안을 받을지 모를 일이니. 4월3일 개봉. 전체 관람가. 손익분기점 200만 명. 순제작비 62억 원.(사진제공: 매니지먼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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