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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없는리뷰] ‘비스트’, 켄타우로스의 귀환…‘세븐’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2019-07-12 11:35:12

[김영재 기자] 6월26일 ‘비스트’가 개봉했다.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2.6/5)

배우 이성민, 유재명, 전혜진이 한 데 뭉쳤다. 하지만 영화 ‘비스트(감독 이정호)’가 기대된 이유는 무엇보다 이정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서다. ‘베스트셀러’에서는 장르를 이종 교배하는 “모험”을 했고, ‘방황하는 칼날’에서는 청소년 범죄를 향한 주목을 이끌어 냈다. 특히 딸을 잃은 아버지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하는 과정을 담담하고 뜨겁게 그려낸 그 연출력이 대단했다. 이에 오락과 드라마를 섭렵한 그가 제목부터 ‘누가 진짜 괴물인가?’를 묻는 ‘비스트’에서는 또 어떤 발전을 보여줄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됐다.

인간의 악마성은 이번에도 어김없다. 그러나 답보가 제일 눈에 띈다. 그때 그 패착이 그대로 재현돼서다. 게다가 무리한 각색은 갑자기 영화 ‘세븐’을 떠올리게 한다.

실종 여고생이 토막 사체로 발견된다. 이에 진급을 목표하는 민태(유재명)와 그 자신을 시시포스에 비유하는 한수(이성민)가 살인범을 쫓는다. 사실 민태에게 한수는 눈엣가시다. 만일 한수가 범인을 잡는다면 강력반 팀장은 한수 몫이 되기 때문. 한편, 민태에게 동아줄 하나가 내려온다. 바다에서 차를 한 대 건졌는데, 거기서 총 맞은 시체 한 구가 나온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총 맞은 시체 구경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 용의자 춘배(전혜진)의 증언을 토대로 민태는 한수가 해당 사건에 연관됐음을 직감하는데….


영화 ‘오르페브르 36번가’가 원작이다. 배우 다니엘 오떼유와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각각 왜곡된 정의를 좇는 레오와 권력을 욕심내는 드니를 연기했고, 이는 한수와 민태에 그대로 적용됐다. 반면 전개는 상당히 각색됐다. 후반부는 전혀 다르기까지 하다.

‘그해 프랑스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은 영화’란 평답게 원작의 정서는 15년이 지난 지금에 봐도 무척 쓸쓸하고 처연하다. 요즘 개봉하는 고만고만한 느와르에 비하면 이쪽이 조금 더 나을 정도. “난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아” 하는 레오와, “난 뭘 얻으려는 게 아니야. 단지 내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하는 드니를 보면 형사가 아니라 사람이 보인다. 냉기마저 감도는 전반의 차가움은 영화 ‘히트’와 유사하고, 좌절, 부활, 복수는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 크리스토 백작’을 연상시킨다. 사필귀정이 원작이 고하려는 바다.

우선, 각색으로 ‘비스트’만의 특징을 추구한 것은 좋은 시도다. 원작에서는 “전 경찰이 특별하다고 생각했죠. 나쁜 것들 위에 존재하는”이란 한 줄로 등장할 뿐인 인간의 양면성과 매사의 이면이 리메이크작에서는 꽤 여러 번 등장한다. “해서는 안 될 죄”를 저지른 신부, “우리가 아는 그런 여고생이 아”닌 아이, “악당인지 경찰인지 헷갈”리는 한수, “응급 처치를 했으면 살 수도 있었”는데 그것을 거부한 경찰 등 등장인물은 저마다의 선입견을 반전시킨다. 그래서 제목이 ‘비스트’인가 보다. 제시문까지 있다. “누구나 마음속에 짐승 한 마리씩 키우고 있다잖아. 그게 언제 나타나는지가 문제일 뿐이지.”

하지만 짐승의 조명만으로 박수 받기를 바랐다면 그것은 욕심이다. 게다가 한수는 안티히어로다. 손등이 까질 정도로 사람을 패고 다니는 악질 경찰―마침 영화 ‘악질경찰’의 추락 신이 ‘비스트’에도 똑같이 등장한다.―인 그가 살인을 방조하는 일은 누구든 예상 가능한 뻔한 수순이다. 다시 말해, 한수가 짐승(비스트)이 되는 일은 심심한 전개다.

또한, 등장인물이 그 야수성을 발휘하는 모양이 어딘가 답답한 구석이 있다. 민태의 경우를 보자. 민태가 한수를 꺼려하는 이유는 그가 물증보다 심증을 우선해서다. 그런 민태가 한수의 살인 방조를 밝혀내기 위해 영장도 없이 불법 수사를 벌인다. 중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네가 잡고 싶은 게 범인이야? 정한수야?” 하는 과장의 질타는 민태가 한수보다 하수임을 강조함에 그친다. 영화의 2/3가 그렇게 맥없이 지나간다.


하이라이트는 후반부다. 그때부터 “민태가 한수 뒤를 쫓게 되면서 벌어지는 관계의 역전과 그 서스펜스”는 해체되고 ‘호러’가 온다. 스릴러와 호러가 뒤섞인 ‘베스트셀러’의 재림이다. 이야기의 굴절이 세로로 치닫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래서 ‘비스트’는 ‘스릴러 스페셜리스트’ 이정호 감독의 귀환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 서사 중 극히 일부만이 이 공포를 지탱한다. ‘시기(민태는 그 자신보다 뛰어나기에 한수를 시기한다)’ ‘분노(한수는 폭력성을 제어 못하고 사람을 패고 다닌다)’ ‘탐욕(경찰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해야 하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은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양 사라지고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의 원작은 느와르에 인과율을 녹여낸 ‘오르페브르 36번가’다. 하지만 후반에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진실은 ‘세븐’의 그것과 유사하다.

‘식욕’ ‘탐욕’ ‘나태’ ‘색욕’ ‘교만’ ‘시기’ 그리고 ‘분노’. ‘세븐’에서 살인마가 일곱 죄악을 완성하기까지 “무관심이 미덕이 되는 사회에서” 더는 살고 싶지 않은 노(老) 형사와 그 사회를 개선하는 일에 뜻이 있는 신참 형사는 서로의 다름을 발견하고 또 인정한다. 하지만 개도를 약속했음에도 불구, 마지막에 신참은 ‘분노’한다. ‘세븐’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한 주인공과 살인마의 악행이 평행선을 달리다 끝내 맞물려서다. 모든 영화가 그렇다. 처음과 끝이 서로 유기적이다.

반면 ‘비스트’는 어떤가. “상업적이고 장르적인 느낌의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는 이 영화는 적당히 어둡고 오락적이다. 근데 전후가 따로 논다. ‘표절’로 시작해 ‘귀신’으로 끝난 감독의 데뷔작과 아주 판박이다. 이에 어떤 관객은 연쇄 살인마가 날뛰는 후반의 강렬함에 압도되겠으나, 다른 이는 반인반마 켄타우로스를 보는 듯한 이질감에 고개를 저을 터. 지난달 26일 개봉한 ‘비스트’는 개봉 당일 박스오피스 6위로 데뷔해 27일부터 30일까지 줄곧 7위를 유지했고, 7월11일까지 총 20만 394명을 극장에 동원했다.

원작에서 두 형사는 “18개월간 7회에 걸쳐 9명의 운송 직원을 죽이고 2백만 유로를 훔”친 ‘은행 강도 사건’을 두고 서로 대립한다. 반면 이정호 감독은 강도를 연쇄 살인마로 각색, 잔혹성을 또 한번 스크린에 끌어들인다. ‘또’를 언급한 이유는 그가 매 영화마다 살인 사건을 등장시켜서다. 물론 이는 장르적 특성이다. 그럼에도 의문은 여전하다.

흥행이 욕심났을 것이다. 상업 영화니까. 만일 “메스로 사람을 토막”내는 사이코패스의 악행에 보다 집중했다면 그 결과가 달라졌을까. 지금 이정호 감독은 비스트가 된 인간의 양면성과,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을 상업성 사이에서 방황 중이다.

130분. 15세 관람가.

(사진제공: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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