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포없는리뷰] ‘왓칭’, 꼭 그렇게 더 넣어야만 속이 후련했나

2019-04-26 14:43:36

[김영재 기자] 4월17일 ‘왓칭’이 개봉했다.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2.1/5)

한 샌드위치 매장이 있다. 선택지가 다양한 것이 그곳의 장점. 소비자는 빵, 채소, 소스의 유무 및 종류를 기호대로 골라 나만의 샌드위치를 만든다. 그러나 욕심이 문제다. ‘나만의 것’에 대한 집착이 본맛을 해치는 것이다. 욕심에 토핑 등을 더 넣는 순간, 샌드위치는 이 맛도 저 맛도 아니게 된다. 삶은 경험 덩어리다. 밥 한 끼에도 교훈은 있다.

영화 ‘왓칭(감독 김성기)’은 그 좋은 경험을 관객에게 안기는 영화다. 할리우드 영화 ‘P2’를 리메이크한 본작은 나만의 것을 향한 집착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여러분은 어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계신가요?”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영우(강예원)는 상사에게 야근을 명 받는다. 내년 보고 건을 갑자기 금주 내로 끝내라니. 결국 이브까지 야근을 면치 못한 영우는 모두 잠든 후에 나 홀로 주차장 행이다. 그런데 손끝이 짜릿하고 정신이 혼미하다. 눈을 떠보니 경비원 준호(이학주)는 그가 전선에 감전됐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하지만 웬걸. 옷이 영우 옷이 아니다. 차 시동이 안 걸리기까지 한다. 견인차는 안 오고, 게다가 자꾸 “누나” 하는 경비원은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죽을 만큼 나가고 싶다. 그러나 문은 모두 잠긴 상황. 이에 밥 한 끼 먹자, 친해지자 하는 준호는 그와 있는 시간만큼은 즐겁게 있어 달라고 영우에게 부탁하는데….


먼저 이 영화는 주인공 묘사부터 실수다. 원작과 ‘왓칭’의 줄거리는 큰 부분에서 같다. ‘P2’ 역시 이브에 주차장에 갇힌 주인공이 그를 흠모하는 사이코패스로부터 쫓기는 영화. 하지만 원작 주인공 안젤라는 그가 쇠사슬에 묶인 것에 관해 “무슨 짓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나를 풀어주는 게 좋을 걸” 하며 알파벳 F로 시작하는 욕설을 경비원 토마스에게 쏘아댄다. 직접적이고 상식적이다. 쇠사슬에 발이 묶인 것 물론, 옷은 그도 모르게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홀터넥 원피스로 환복된 상황. 좋은 말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영우는 다르다. 그는 직원의 흠결을 엄히 다스리지 못하고, 또 직장 내 성희롱을 고발하기보다 속앓이하는 인물. 결국 이 무른 피해자는 사이코패스 앞에서도 착한 척을 하려 든다. 정신을 잃은 사이 내 옷을 갈아입혔다? 화를 내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그는 빤한 거짓말도 알아채지 못한 채 옷은 나중에 돌려주겠다며 예의를 차린다. 또한, 자신의 몸을 만진 준호가 화났냐고 묻자 “화난 거 아니에요” 하며 또 불편한 상황을 방지한다. 준호 악행에 분노하기보다 “부탁”만 하는 영우는 몸은 성인이되 정신은 아이다.

결국 주인공의 무른 면은 그가 각성하는 데 있어 장애물이 되고 만다. 원초적 공포에 물든 영우가 준호 곁을 벗어나자마자 “우리 절대 안 죽어”란 당찬 말을 내뱉는 모습은 너무 급작스럽기에 일순간 몰입이 흐트러지는 부작용을 낳는다. 심리 역전에 이득은 아무것도 없다. 애초에 영우를 우유부단하고 인정 있는 이로 묘사한 것이 패착인 것이다.

여주인공이 주차장에 들어서기까지 원작은 약 7분 30초가 소요되고, ‘왓칭’은 약 20여 분이 소요된다. 그 20분간 ‘싱글 맘 영우’ ‘이혼녀 영우’ ‘착한 영우’ 등을 소개하는 일은 불필요한 전사(前史)고, 반전 힌트를 제공하는 것 외에는 불필요한 초반이다.


특히 ‘왓칭’은 낯선 이에게 몸이 구속 당한 데 대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설전도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했다. 원작에서 빨리 풀어달라는 안젤라의 말에 토마스는 대답 대신 고향 와인 이야기를 지껄인다. 이에 답답한 듯 안젤라는 고개를 살짝 좌우로 저으며 원하는 게 뭐냐고 질문한다. 주인공의 이 같은 피드백은 쉽게 지나칠 수 있기에 더 매력적이다.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그 표정을 분노에서 온화로 금세 바꾸는, 회유가 통하지 않자 젖은 눈과 함께 현 상황에 무기력을 느끼는, 상황 타파를 위해 거짓말하고 그것이 상대에게 통하는 것을 느끼자 당당해지는, 남자친구 이름을 지어내기 위해 시선을 왼쪽 위를 향했다 대답하는, 거짓말이 들킬까 걱정되는 마음에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가족 언급에 부들부들 떨며 결국 눈물 한 방울까지 보이는, 이런 안젤라의 심리 변화는 사람 내장이 뱃가죽 밖으로 터지는 등의 이 고어한 스릴러 영화가 연기 역시 볼만한 영화임을 슬그머니 알린다.

하지만 리메이크작은 그것이 없다. 주인공은 바보같이 행동할 뿐이고 결국 진실 앞에 우네부네한다. 10일 언론시사회에서 김성기 감독은 영우의 약한 면에 관해 “상대를 자극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답했으나, 그 행동은 애초에 그가 무른 사람인 탓이다. 만일 안젤라와 영우의 성격을 일치시켰다면 문제는 없었을 터. 결국 각색이 문제다.


“서스펜스 강화에 도움 안 되는 신을 버리며 밀도와 스릴을 최대한 높였다”는 연출자의 변(辯)처럼 ‘왓칭’은 쫓기는 자와 쫓는 자의 공방이 나름 구현된 스릴러물이다. 허나 ‘P2’만 못하다. 여러 각색이 원작의 본맛을 덜 느끼게 함은 물론, 특히 CCTV에 대한 위험성을 일깨우는 ‘왓칭’만의 반전이 한밤의 주차장 탈주극과 무리하게 결합됐다. 이에 원작에 대한 존중도, 스릴러 영화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재미도, 그 무엇도 없는 ‘왓칭’이 탄생했다.

물론 좋은 각색도 있다. 준호 역이다. 준호는 그 외로움이 누구보다 큰 인물. 그가 영우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사랑에 빠진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알 수 있다. 먼저 평소보다 말이 많아진다. 그리고 ‘예쁘다’는 말을 쉽게 한다. 같이 먹는 밥 한 끼를 갈구하기까지 한다. 말끝마다 종결 어미 ‘-거든’을 붙이며 영우를 누나로 집착하는 준호는, 그래서 ‘왓칭’을 어느 순간 짝사랑남과 그 사랑을 거부하는 여자의 사랑 이야기로 전환시킨다.

그 마음을 오해했으나 결국 남자의 진심을 알고 사랑에 빠지는 “멜로 영화”를 좋아하는 영우. 그에게 지금은 그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멜로 영화의 실황이다. 특히 “(나이가 많든 애가 있든) 그런 건 상관없어요. 난 영우 누나한테만 집중하니까”란 대사는 만일 그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뭇 여성 관객의 맘을 두드렸을 순정남의 진심이다.


기자가 선호하는 샌드위치는 뭘 더 넣지 않은 에그 마요네즈 샌드위치다. 속이 꽉 찬 나만의 것도 좋지만 때로 최선은 기본이다. 욕심을 덜어내야 만족이 찾아온다.

각색 후 그 단순명료함이 실종된 ‘왓칭’은 욕심에 이것저것 더하고 빼는 일과 좋은 영화 만들기는 일체 관계가 없음을 보여주는 리메이크의 나쁜 예다. 각색은 원작을 각 문화나 시류에 맞게 변주하는 ‘영화적 환복’이지 욕심 채우기가 아닌 것이다. 욕심을 비우거나 인정하는 일. 그 솔직함이 ‘왓칭’엔 필요했다. 4월17일 개봉. 15세 관람가.

(사진제공: 리틀빅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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