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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살아있다’ 유아인, 학대를 멈추고 나를 이완하다

2020-07-09 10:06:49

|정통적이고 신선한 좀비물 ‘#살아있다’서 오준우 役
|다른 곳서 다르게 움직이는 나 보고파
|수년간 번민 “편안한 인생은 가치 없다고 여겨”
|진지한 유아인 지루한 나머지 이제는 깨고 싶어
|소통에 집중하며 과거와 다른 삶 추구할 것


[김영재 기자] 본명 엄홍식이 아이디인 배우 유아인(33)의 인스타그램에는 해시태그(Hashtag)가 없다. 왜 해시태그를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그는 설명했다. “저 해시태그 안 하기로 유명해요. 그 목적을 모르겠어요.” 한편, 지난달 24일 개봉한 영화 ‘#살아있다(감독 조일형)’에서 그가 연기한 보통의 청년 오준우는 해시태그가 꼭 필요하다. 사람을 공격하는 감염자 무리가 밖을 배회하는 가운데, 별안간 집에 갇힌 그는 해시태그로 ‘#살아남아야 한다’를 적는다. 아비규환에 빠진 도시지만, 아직 ‘사람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SNS 활용법조차 상반된 두 청춘. 그렇다고 서로 별개의 존재는 아니다.

“그간 제 또래 청춘을 연기하며 항상 이질감을 느꼈어요. 현실적인 것을 추구하지만, 무엇인가 표상 같은 인물을 연기한다는 자각이 있었죠. 반면에 준우는 특별하지 않기에 더 진짜 같은 인물이에요. 그의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절대 현실의 연장선이 아니죠. 하지만 그 비현실 속 준우가 제 현실이 가장 많이 반영된 인물입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로2길 한 카페에서 만난 유아인은 “‘이젠 가벼워지고 싶다’가 아닌, ‘충분히 가벼운데, 너무 드러내지 않았다’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살아있다’는 전염병으로 통제 불능에 빠진 도시에서 홀로 아파트에 고립된 이들의 생존과 소통, 탈출을 다룬 일명 ‘생존 스릴러’다. 영화 ‘부산행’, 넷플릭스 ‘킹덤’에 이어 ‘#살아있다’까지 좀비는 더는 낯선 소재가 아니다. “장르의 정통성을 계승하면서도 신선한 시도가 슬쩍슬쩍 엮인 지점에 끌렸어요. 등장인물을 다루는 시선도 새로웠고요. 젊고 감각적인 터치가 있는 작품이에요.” 엄청 좋아한다며 영화 ‘마녀’가 언급됐다. 리얼리즘이 업계 전반을 지배하는 충무로에서 ‘마녀’는 그와 정반대의 장르로 그해 여름 슬리퍼 히트를 기록했다. “워낙 진지한 작품만 해 왔잖아요. 때문에 독특한 장르물에 대한 호기심, 관심, 도전 의식 같은 것이 있어요. 다른 곳에서 다르게 움직이는 나를 보고 싶은 바람도 있고요.”

영화 ‘베테랑’ ‘사도’ 그리고 ‘버닝’의 종수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유아인은 “숙제가 큰 작품”에 매진했다. 삶을 진지하게 다루고 메시지도 있는 작품이 최우선이었다. 배우(스타)는 누리는 것이 너무 큰 직업이고, 미답(未踏)의 경험을 전달하는 대리자다. 유아인이 말했다. 그렇기에 그는 ‘편안한 인생은 가치 없다’ 아래 수년을 번민했다. “‘안 괜찮고, 안 편하다’라는 생각으로 지난 몇 년간 저 자신을 가혹히 다뤘어요. ‘배우라면 다른 결, 다른 층위 혹은 다른 차원에서의 느낌이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저를 지배했죠.”

하지만 그 모두는 과거가 됐다. “지금은 그런 기준이 많이 흐려졌어요.” 왜 흐려졌냐고 물으니 “지루해서?”라는 대답과 함께, 공기가 자못 들어간 특유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배우 유아인의 한정된 이미지를 깨고 싶었어요. 뭐… 진지할 만큼 진지했으니까요. ‘시킨 것도 아닌데, 혼자 너무 진지했다. 좀 풀자.’ 뭐, 그런 생각을 했죠.” 유명 감독에 목매는 시절과도 안녕을 고했다. 그는 “명감독이 명배우를 만들 듯 좋은 배우도 신인 감독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번 촬영에 임했다”며, “물론 그 시도가 원활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직 숙제가 남았지만, 꽤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말했다.

“열심히 살았어요. 워낙 욕심쟁이였고요. 나만의 차별점을 형성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고, 이른 나이에 더 빨리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의 목표는 ‘나’보다 세상과의 ‘소통’이 먼저다. “예전에는 저로서 소통하고 싶고, 저로서 솔직해지고 싶고, ‘난 어떤 태도와 어떤 자세의 인물일까?’에 고민이 컸다면, 지금은 소통 그 자체에 더 무게를 두고 있어요. 보다 실질적이고 원활한 소통이요. 요즘은 그 소통을 원동력 삼아 저를 더 잘 써먹고 싶은 마음이죠. 지난 순간과는 다른 결로 삶을 이끌고 싶어요.”

유아인은 스타다. 많은 이가 그를 사랑해 마지않는다. 하지만 기인(畸人)이라 부르며 자의식 과잉을 지적하는 쪽도 상당수다. 그런 그가 가벼워졌단다. 학대를 멈췄단다. 물에 뜨려면 몸에 힘을 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허우적거리다 곧 가라앉고 만다. 데뷔 17년 차 유아인이 세상에 다시 몸을 던진다. 근육이 이완되면 이완될수록 그 헤엄은 더 멋지고 매혹적일 터. 기인도 아니고, 스타도 아니며, 오직 배우로서 유아인이 완성할 유영이다.

(사진제공: United Artists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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