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인플루언서는 멋지다! 행복을 제조하는 그들의 스토리] 연중기획. 당당한 25세 청주 인플루언서 ‘오정화’. 팔로워 16만, 용인대 국악과 졸업반. 2년 휴학기간 인스타그램 집중운영, 현재 의류제작 앞두고 있어 “겸손은 저의 대명사입니다”

2022-01-25 11:29:17


(사진촬영 및 인터뷰 장소제공: 웰카페 청주강서점. 사진제공: 오정화)

[김기만 기자∙ 팀장] kkm@bntnews.co.kr
인플루언서 기획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20대들의 활약상이 눈에 띈다.
그들은 먼저 순수하고 톡톡 튀고 젊음과 피드 사진들을 잘 연결시킨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그래서인지 사진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아도 피드가 보기 좋고, 오히려 사진들이 많은 경우가 더 많다. 그 이유는 이들이 10대 시절에 싸이월드를 왕성하게 한 경험이 많아서 사진을 모으고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고 저장하고 하는 사진첩 개념도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정화(25세) 팔로워 16만.
그녀는 타고난 미모 덕에 이미 싸이월드 시절부터 방문자 수(투데이)가 많아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대학을 2년간 휴학하면서 많은 고민과 미래를 설계하면서도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한 덕분에 8월 졸업을 앞둔 대학생임에도 셀럽 대접을 받으며 많은 행사에 초청도 받는다고 한다.
인플루언서가 되면 장점이 많다.
행사 초대, 협찬, 광고 섭외는 물론 방송계에서도 주목을 한다. 국악을 전공한 그녀 역시 때때로 방송에서 출연 요청이 들어오며 KBS 방송까지 나간 적이 있다. 그리고 인플루언서의 장점은 학벌도 나이도 신체나 외모의 좋음과 안 좋음도 안 따지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외모가 뛰어나면 더 유리한 것 만큼은 사실이다. 그러나 20대들이 인플루언서로 진입을 잘하는 이유는 외모도 외모지만 팔로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사진이나 피드 글이 먹히는지를 더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20대 초반 10대 후반 젊은이들의 꿈이나 갖고 싶은 직업으로 인플루언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1.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오프라인에서는 대학생 온라인에서는 인스타그램을 운영 중인 ‘오정화, 요정화’ 입니다.
SNS에서는 뷰티, 의류 카테고리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라 전공하고 있는 분야도 이쪽 계열을 전공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러나 저는 현재 용인대학교 국악과 재학 중이며 판소리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2. 인플루언서가 된 계기는?
국악을 전공하는 제가 인플루언서로 성장하게 된 계기는 어릴 때부터 셀카 찍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저희 세대 그 당시 싸이월드가 유행이었는데 제 홈페이지에 제 사진을 올리는 것을 즐겨했습니다.
방문자 수(투데이)도 당시에 많았는데 하루하루 늘어나는 방문자 수에 기쁨을 느끼기도 했고 사진을 올리면 댓글이나 스크랩 등 저한테 관심을 주는 것이 사소한 행복이자 취미였습니다.
싸이월드가 점점 식어가는 시기에 자연스럽게 인스타그램으로 넘어오게 됐는데 첫 게시물을 업로드 했을 때에는 해시태그 사용법도 몰라서 해시태그 없이 셀카 사진 한 장 올렸는데 인스타그램을 먼저 시작한 친구가 댓글에 해시태그를 남겨줬어요
그러니 급작스럽게 좋아요도 많이 눌리고 팔로워도 늘어나면서 흥미를 갖게 되어 인스타그램을 집중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팔로워가 급증한 시기는 페이스북 ‘얼짱페이지’라는 곳에 올라가게 되면서 부터였습니다. 그러면서 협찬도 받으며 활발히 활동하니 점점 키워진 것 같아요
사실 아직은 인플루언서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끄러움이 크네요. 앞으로 더 성장하기 위해 노력중에 있습니다.

3. 인플루언서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구찌 뷰티브랜드에 초대를 받게 되었는데 첫 명품 뷰티 브랜드 초대에 립스틱 선물까지 받아서 좋아했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또 하나는 제가 류준열 님을 좋아했는데 류준열 님이 나오는 시사회를 초대받아서 맨 앞자리에서 류준열 님을 봤었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숙소 협찬도 종종 받는데, 아직 대학생인 제가 하루 숙박에는 부담되는 금액의 숙소에서 머물 수 있었다는 것도 기억에 남아요.
4. 국악 vs 인플루언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사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은 마음은 커요.
어려서부터 국악인을 꿈꿔왔고 국악 외에 다른 것을 한다는 게 두렵기도 했고 엄두도 나지 않았어요.
한때 국악과의 권태기도 크게 왔었어요. 권태기를 극복하자하고 학교를 다시 다니게 됐을 때 아 정말 열심히 해봐야지 다짐했는데 한번 떠난 마음이 다시 예전과 같은 마음이 된다는 건 어렵더라고요.
의지 차이겠지만 저는 사진 찍는 것도 굉장히 좋아하고 이것을 보여주는 것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의 활동이 현재 조금 더 애정이 가고 흥미로운 거 같아요
5. 국악을 하게 된 계기는?
제가 다닌 초등학교에는 방과 후 국악동아리가 굉장히 활성화가 되어있어요.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고요.
국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단지 경험하기 위해 들어가게 되었는데 희망 악기는 가야금이었으나 선착순에 밀려나서 못하고 국악 관악기인 소금을 하게 되었는데 소금의 악기 크기도 작고 소리도 예뻐서 그때부터 국악의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저를 국악의 세계로 이끌어준 고마운 악기에요
그 이후에 소금을 하면서 다른 날에는 해금이라는 악기를 문화센터에서 배우고 그러면서 MBC 어린이합창단 활동도 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노래에도 흥미가 많았어서 학교에서는 국악 중창단도 했었습니다.
예술만 하다 인문계 중학교를 입학하니 공부는 저와 맞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요.
전공을 고민하던 중 우연히 부모님 지인을 통해 판소리 권유를 받았어요. 초등학교 때 노래하던 모습을 기억하시고 권유해주신 거 같아요. 당시 판소리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노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 판소리 할래요!를 당차게 외쳤는데 그때부터 저의 국악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 같아요.
중학교에서 방송반 활동도 하고 축제 때에는 판소리를 뽐내기도 했는데 무대에 섰을 때 제 자신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고등학교는 꼭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해야겠다 마음먹고 중학교 3학년 때는 내신성적에 집중하며 예술고 성적에 맞춰 성적도 열심히 올렸어요.
그렇게 예술고로 진학을 하여 수상 경력도 쌓고 국악과가 있는 대학교로 가기 위해 방학에는 산에 들어가 합숙도 하며 (산공부) 열심히 대학입시 준비를 했어요.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공중파 프로그램(KBS1 이야기가 있는 풍경)에 1일 리포터 개념으로 출연도 했었고 이외 여러 무대에서 공연도 했으며 큰 추억과 경험을 많이 쌓았어요.

(얼짱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이 가장 많았던 사진 2장)

6. 학교생활은 어떠했나요? 휴학도 2년?
사실 용인대학교가 제가 원하던 학교는 아니었어요. 그러다 보니 입학은 했지만 새내기의 설렘, 학교생활의 설렘이 덜했던 거 같아요.
한 학기를 다녀보니 국악에 대한 애정도 식어가고 열정도 사라져가고 학교생활도 재미가 없더라고요. 아마 이 시기부터 국악에 권태기가 왔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2년 정도 쉬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또래 친구들 보다 졸업이 늦어졌지만 휴학을 후회하지 않아요. 쉬는 동안에는 인스타그램을 키웠기 때문이에요.
점점 국악에 애정이 식다 보니 조금 더 늦어지면 학교마저 다니기 싫어질까 봐 복학한 이후에는 최선을 다 해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현재는 청주에서 용인을 통학하며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국악과 권태기가 왜 왔을까 생각해봤어요. 저보다 국악을 일찍 시작한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수도 있지만 몇 년 동안 국악의 길만 보고 성장한 저는 잠시 국악을 떠나고 싶었나 봐요.
더불어 졸업을 앞두면서 취업에 대한 고민이 커졌고 ‘지금까지 내가 해온 건 국악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길로 성공할 수 있을까?’, ‘이 직업에 과연 내 모든 열정을 쏟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아직까지도 판소리가 싫지 않아요. 판소리는 우리 소리잖아요. 그래서 자부심도 있었고 무대에서 노래하며 관객들과 소통하는 게 행복이었고요. 먼 미래에는 꼭 우리나라 소리를 알리는 소리꾼이 되어야겠다는 꿈도 있었어요.
하지만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여러 경험을 하다 보니 제가 너무 작은 우물에 갇혀있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악만 보고 성장했으니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진짜 일이 무엇인지를 찾고 싶어 졌어요.
25살 많은 나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인생은 단 한 번 뿐이잖아요. 하고 싶은 거 전부 경험하고 싶어요. 후회 없이요.

7. 현재 갖고 있는 계획은?
현재 의류 제작을 앞두고 있어요.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입혀주는 대로 입지 않고 저는 제가 원하는 대로 입었어요. 그렇게 코디한 모습을 이모들이 보시면서 패션 쪽으로 가는게 어떻겠냐 패션 공부 해봐라 하셨는데 초등학교 때 국악에 반해서 쭉 국악을 해오니 의류 쪽으로 눈 돌릴 생각을 못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항상 마음속에 작은 꿈으로만 있었는데 그 꿈 안에는 언젠가 한 번은 내가 제작해서 내 옷을 입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러던 중 마침 올해 좋은 기회가 생겨서 옷을 제작해보려고 합니다.
작은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시작과 경험을 앞두고 새해부터 설레는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8. 앞으로의 꿈은?
정해진 꿈은 아직 없어요. 저는 프리랜서가 좋아요. 틀에 박혀서 하나만 하고 싶지 않고 이것저것 많은 경험을 하고 싶어요.
아직은 그렇게 많은 경험 후에 이 길이라면 평생을 받쳐도 후회 없겠다하는 일에 제 인생을 받치려고 합니다.
조금 늦더라도 조급해하지 않고 길게 보려고 합니다.
9.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항상 어느 순간이든 겸손을 잃지 않을 거예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는데 ‘정화님은 정말 겸손하신 거 같아요’. 이 말을 자주 들어요.
스스로 이런 말 하기에 부끄럽지만 사실이니까 자신 있게 말해요. 겸손이란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겸손한 사람이 될거에요.
저는 단 한 번도 어디가서 ‘ 인플루언서인데~ ’ 이러면서 저를 내세우거나 이를 이용한 적 없어요. 저의 온라인 활동을 스스로 공개하지도 않아요. 앞으로도 이 마인드를 오래오래 지킬 수 있게 노력하려고요.
끝으로 저를 항상 예쁘게 봐주시고 많은 관심을 주시는 팔로워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하고 싶어요.
외국 분들도 많은 관심을 주시는데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해서 왕성한 소통과 겸손을 겸비한 인스타그래머가 될게요.
감사합니다.

- 오정화 인플루언서 인터뷰 후기.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한 SNS 활동이 갖는 폭발력 중 하나가 바로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를 찾게 되고 자신이 나가야 할 방향이 뭔지를 알게 된다는 점이다.
세상이 변해서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스타들이 브랜드사들의 중요한 홍보 포인트가 되어 버려 이런 현상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브랜드 홍보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오정화처럼 건강과 뷰티를 기반으로 자기 자신을 발전시켜온 인플루언서의 경우 그녀가 좋아하는 의류 사업이던 아니면 이너뷰티 사업이든 진짜 본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분야라면 인스타그램 만한 실현 가능한 플랫폼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진촬영 및 인터뷰 장소제공: 웰카페 청주강서점. 사진제공: 오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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