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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혜은, 그녀에게 몰입할 차례

2018-08-14 11:20:59

[마채림 기자] 다채롭다. 화려하면서도 수수하고, 열정적이면서도 차분하다. 배우로서 그가 전하는 이미지뿐만 아니라 김혜은의 삶 자체가 다채로운 느낌이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해오던 성악. 어머니의 크나큰 기대를 안고 그는 서울대학교 성악과에 진학했다. 모든 것이 탄탄대로일 것 같았으나 돌연 성악을 내려놓고 인생 2막을 계획한 김혜은.

그렇게 MBC 기상캐스터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성악밖에 모르던 그가 각고의 노력 끝에 결국 우리나라 일류 대학에 입학했듯, 그는 또 날씨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기상캐스터로 활동하는 내내 오직 날씨 방송 멘트에만 집중했다는 김혜은은 실제로 어버이날에 ‘어머니의 마음’을 한 소절 부르며 시작한 적도 있다고. 경위서를 쓸지언정 자신의 방송을 보게 하기 위해 남들과는 조금 다른, 특색 있는 멘트를 하려 노력했던 거다.

그런 그가 2004년 MBC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 카메오 출연을 계기로 연기에 눈을 뜨게 된다. 이후 김혜은은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종횡무진하며 ‘성악가 김혜은’, ‘기상캐스터 김혜은’, ‘아나운서 김혜은’ 등의 수식어를 깨끗하게 지워냈다. 배우가 아닌 김혜은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 걸 보면, 그는 이미 연기를 향한 충분한 몰입을 보여준 듯하다. 이제는 우리가 그녀에게 몰입할 차례다.

화보 촬영 소감 부탁드린다.

“몇 년 만에 너무 좋았던 촬영이었다. 나이 들면서 사진 찍는 것에 되게 자신이 없었는데 자신감을 충전한 것 같다”

요즘 작품 활동하느라 바쁠 것 같은데 화보 촬영까지 했다.

“해야 한다. (웃음) ‘미스터 션샤인’ 촬영 마쳤고 OCN 드라마 ‘손’을 촬영 중이다. 이어 JTBC 드라마도 예정돼 있다. 드라마만 찍다가 오늘처럼 시원한 곳에서 옷 갈아입고 다른 화장해가면서 찍는 게 사실은 힐링이다”

올해 드라마 ‘라디오 로맨스’부터 ‘너도 인간이니?’, ‘미스터 션샤인’까지 연달아 출연했는데, 다작 비결이 있다면

“작품을 했던 감독님들, 작가님들이 찾아주신다. 요즘 들어 가장 중요하게 느끼는 건 나의 가치를 잘 알아주는 사람들과 연합해 잘 해나가는 게 인생의 관건이라는 것. 지금 회사 매니저들이 열심히 해주는 모습을 보면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명성을 높이려고 하기보다는 곁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기운을 내야 하며, 서로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것 같다. 사람이란 절대 혼자 잘나서 무언가를 해내는 게 아니다. 행운아처럼 좋은 팀을 만나, 그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하며 행복하게 지내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다”

‘미스터 션샤인’ 촬영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너무 좋았다. 팀의 분위기가 그 작품의 성패와 직결된다 생각하는 편. 현장이 너무 가기 싫고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잦으면 경험적으로 작품도 잘 안되는 것 같더라. 서로 기분 좋게 칭찬하는 분위기의 현장에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작품 들어갈 때 대충 느낌이 온다. 작품보다는 함께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 같다”

이번에도 그런 부분을 고려해 출연을 결정한 건가

“‘미스터 션샤인’은 두말할 나위 없이 해야 할 작품이었다. 최고의 작가, 최고의 감독이 연출하고 최고의 배우들이 임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함께할 수 있는 게 굉장히 감사한 일이고 영광이었다”

호흡이 잘 맞는 배우는 누구였는지 궁금하다.

“극 중 아들로 나왔던 변요한. 젊은 친구들이 좋다. 요한이는 되게 잘 자란 친구다. 건강한 영적 에너지가 느껴진달까. 인간적으로도 배우로도 너무 훌륭하다. 연기 호흡은 말할 것 없이 좋았다. 요한이가 연기를 잘 하니 엄마로서 잘 맞춰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할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 모자 사이로 호흡을 맞춰갈수록 실제 엄마 마음이 우러나더라. 연기 도중 애드리브로 이마를 때리기도 했다. 그 장면을 감독님이 쓰셔서 인상 깊었다”

연기 활동하면서 늘 탄탄한 몸매를 유지해왔는데 관리 노하우가 있다면

“드라마 ‘밀회’ 때 비앤티 화보를 찍었던 것과 비교하니 그때와는 바뀐 것 같더라. 나이가 드니 다이어트를 해도 예전처럼 살이 쫙 빠지지 않는다. 주연 같은 경우 한 작품 마친 뒤 쉬는 시간이 있지만 나 같은 경우 작품 활동을 연이어야 해서 운동할 시간이 전혀 없다. 그래서 현장에서 운동을 하는 편이다. 요즘처럼 더울 땐 어렵지만 평소 맨손 운동이나 스트레칭을 즐긴다”

운동이나 자기관리도 부지런해야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 부지런한 편인가

“마음이 부지런해야 한다. 남들에 비해 가만히 있지 못하는 건 확실하다. 작품 속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관련 캐릭터들을 다 찾아본다. 그럴 땐 그것만 보고 있다. 그땐 옆에서 뭘 해도 안 들릴 정도다. 남들은 너무 몰입하는 모습에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걸 딸이 닮았더라. 평소 내 모습을 모르고 있다가 딸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하곤 속이 뒤집어 질 때가 있다. ‘너 엄마 말 안 듣니’라고 말하다가도 ‘얘가 날 닮았구나, 짜증 낼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나마 몰입이 가장 안 되는 게 운동이다. 워낙 몸 쓰는 걸 안 좋아하기 때문. 스포티한 사람이 아니라 운동을 하더라도 필라테스, 요가를 선호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지금 어떻게 배우를 하고 있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어떻게 연기를 시작하게 됐나

“지금 생각해봐도 배우가 꿈인 적은 없었다. 다른 사람보다 미래와 비전, 본질을 생각하는 편이다. 겉치레보다 알맹이를 보려 하는 쪽이라고 할까. 기상캐스터로 방송국에 있어 보니 45세 이후가 가늠이 안 되더라. 세월을 이기지 못해 시들어가는 아나운서의 모습을 시청자들이 호의적으로 봐줄지도 미지수였다. 열심히 가꿈에도 불구하고 설 수 있는 자리가 좁아지는 선배들을 너무 많이 봤다. 슬픈 일이다. 5년 정도 있으니 그런 것들이 보이더라. 세월을 이기는 사람들은 방송국에서 배우 밖에 없는 것 같았다. 나문희, 김해숙, 김혜자 선생님들을 MBC 분장실에서 뵐 때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대체 불가 배우지 않나. 70세에도 대본을 보는 모습이 참 멋있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배우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내게 연기 제의가 들어올 줄은 모르고 지냈다. 기상캐스터로 9시 뉴스데스크를 하고 있었는데 MBC 홍보실에서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 카메오 제의가 들어왔다며 나보고 출연하라고 하더라. 한 회 촬영을 한 게 계속 회차가 늘어났다. 일단 주어진 걸 잘 해내야 되니 연기학원을 등록했다. 해보니 연기가 재미있었고 또 내 안에 보이지 않았던 비전이 보이는 것 같았으며 매너리즘에 활력을 불어넣어 줬다. 그러면서 연기를 쉬지 않고 하게 됐다. 연기란 인간에 대한 성찰이다. 캐릭터를 찾아내려면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평생 가치를 두고 도전해볼 만한 직업인 것 같다는 생각이 깊게 다가온다”

연기를 통해 성장했다는 의미인가

“연기를 하며 많은 걸 얻었다. 이번 OCN 드라마에서 악한 역할을 맡았는데 절대 악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선도 알아야 하고 선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악이 뭔지 알아야 이걸 대립시켜, 갈등을 붙여서 반전을 일으킬 수 있다. 너무 많은 공부가 필요한 작업인 거다. 악한 역할이라고 피해 다닐 것이 아니더라. 나에 대한 공부였다. 아마 이미지를 쫓았으면 배우를 안 했을 테지, 기상캐스터로 고상하게 살았을 거다. 배우가 평생 할 만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건 직업의 가치에 많은 의미를 뒀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도전, 도전, 도전이다. 어떤 역할이든 쉬운 게 하나도 없다”

한 역할을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그에 관한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영화 ‘범죄와의 전쟁’서 맡은 역할을 위해 그쪽 업계 분들을 만나 공부했다고 들었다. 경우에 따라 그분들이 자신의 생활을 보여주는 걸 거부하거나 어려워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려움은 없었나

“그런 쪽으로는 너무 운이 좋았다. 사람 복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범죄와의 전쟁’ 촬영 시절 만났던 언니와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며 종종 술도 마신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인생에 대한 선입견이 굉장히 많았던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기독교를 믿다 보니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이 굉장히 뚜렷했고 어느 정도 이상을 넘어가지 않으려고 하는 게 심했다. 할아버지가 목사님인데다가 몇 대째 크리스천인 집에서 자라 인물을 접근에 벽이 많더라. ‘범죄와의 전쟁’ 여사장 역할을 하면서 그런 삶을 살았던 언니를 만나게 됐는데 당시 언니는 역술인이었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고맙게도 언니는 자기가 겪었던 지하세계를 거리낌 없이 나눠줬다. 얘기해줘서 너무 고마웠고 언니 덕분에 힘을 받을 수 있었다. 영화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안 보이는 사람의 진심이 나를 움직이게 한 거다. 언니의 인생을 더욱 멋지고 힘 있게 표현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생겼다. 그 인생에 몰입하게 됐다. 감사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혜은 씨가 그런 마음을 가지니 좋은 분들이 다가와 주는 것 같다.

“아니다. 어찌 좋은 일만 생기겠나. 사람을 만나는 건 내 권한 밖이다. 그렇기에 ‘누구를 만나는가’, ‘어떤 일을 하는가’는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어떠한 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이다”

평소 연기 연습이나 자기계발은 어떤 식으로 하는 편?

“꾸준히 연기 연습을 하고 있다. ‘왜 나는 이 부분이 표현이 안 되지’, ‘나는 이 감정인데 왜 이렇게밖에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들 때면 나보다 연기를 먼저 시작하신 선생님들을 찾아다닌다. 얼마 전 연극배우 길해연 선생님을 찾아가 ‘선생님 저는 왜 이렇게밖에 안 나올까요’ 여쭤보며 조언을 들었다. 캐릭터 분석이 필요할 때면 내게 처음 연기를 제안했던 지인분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요즘에는 올드해지고 딱딱해지지 않기 위해 동생들과 대화를 많이 나눈다. 모든 것에는 트렌드가 있기 때문에 젊은 친구들이 대사하는 걸 참고해야 한다. 실제로 젊은 친구들에게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 ‘밥 사줄게’, ‘맛있는 거 사줄게’라며 자주 만난다. (웃음) 유독 연기적인 의사소통이 잘 되는 후배들이 있다”

어떤 분들과 자주 만나는지 궁금하다.

“(변)요한이와도 현장에서 배우로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나눴다. 그 밖에 드라마 ‘너도 인간이니?’를 같이 했던 공승연, 박환희와도 자주 밥 먹는 사이다”

얘기를 들어보면 배우라는 직업과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일상의 시작과 끝이 연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과도한 몰입이라는 생각이 들 법 하다.

“조금 그렇다. 어쩔 수 없는 게 스케줄이 12월까지 드라마 세 편을 끝내야 되기 때문에 그렇게 안 살면 안 되고, 안 살면 시청자들이 외면하는 배우가 된다. 내 직업이니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거라 생각하지만 같이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엄마로서, 아내로서 점수가 낮을 수밖에 없다. 뭘 했다 하면 과도하게 몰입하니까. 그런데 이게 또 천성인 것 같다. 연기 생각을 안 하면 내가 불편하고 그것에 빠지는 게 행복하다. 또 그런 내 모습을 닮은 딸이 태어났다. 거슬러 올라가면 어릴 때부터 대학교까지 성악만 하며 지냈다”

“기상캐스터를 하는 동안에는 지금처럼 24시간 멘트만 생각했다. 기사 쓸 때 리드멘트가 중요하다고 하지 않나. 리드에서 끝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데다 날씨의 경우 1분 안에 모든 걸 보여줘야 하니 별궁리를 다 한다. 게다가 데일리라 정말 피 마르는 거다. 바람이 많이 불었던 날에는 ‘오늘 치마 날리지 않으셨어요?’라고 시작했었다. 어버이날에는 ‘꽃 사기 좋은 날씨’라고 말하기도 했고 아침뉴스에서는 노래도 불렀다. 그래서 혼나기도 했지만 남들이 안 하는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으면 내 방송을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출근길에 나를 보게 하려면 차별화가 필요했다. 시청자들도 내가 노래 한 소절 부르는 걸 기분 나빠할 리 없지 않나. 그런데 아직도 그런 기상캐스터가 없다. 차별화된 멘트를 하려면 종일 그 생각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업에 몰두하는 게 결과적으로는 좋지만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상당할 텐데

“당연하다. 살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는 건 불가능하니 극복에 무게를 둔다. 뭘 해도 스트레스지 않나. 다 고통스럽고 피해 가고 싶지만 그러지 않고 정면승부하는 쪽으로, 능동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사고로 해결하며 살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은 가려서 만나야 하는 것 같다. 나이를 먹으니 피해야 할 사람, 함께해도 좋은 사람이 구분되더라. 내가 진짜 도와줘야 하는 사람인지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인지 구별이 안 가 예전에는 의심도 많았다. 사람을 세 번까지는 보는 편이다. 나이가 든 건지 초반에 느낀 직감이 확실할 때가 많더라. 앞으로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인지 멀리해야 할 사람인지 대충 감이 온다”

그렇다면 가장 기피하는 부류의 사람은?

“돈을 중시하고 돈밖에 모르는 사람. 업계에 그런 분들이 많지만 잘 피해 다닌다. 돈만 보고 일하고 싶지 않다. 액수가 많다고 해서 그쪽을 선택하지 않는 편. 일하는 동안 행복할 수 있을지, 그 가치를 본다. 함께하는 사람들을 보고 ‘기쁘게 같이 갈 수 있는가’를 본다”

연기를 하며 숨겨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달라진 혜은 씨의 모습에 남편이 놀랐던 일화도 들려줬는데

“요즘은 (남편이) 열렬히 지지해준다. 특히 ‘미스터 션샤인’은 감동하며 보고 있다. 이 작품에 합류하게 돼 행운이라고, 영광이라 생각하라고 말하더라. 음악, 영상, 연기력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드라마다. 드라마 ‘밀회’ 때도 남편이 울면서 보더라. (남편이) 워낙 음악을 좋아한다. 내가 출연한 작품에 호응해줄 때 힘이 난다. 남편이 봤을 때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할만한 작품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내 남은 (가정)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나. (웃음) 앞서 말했듯 OCN 드라마 속 악역을 소화하면서 악한 것을 감추기 위해 악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악의 본질과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 사기꾼들의 특성에 대해 공부하게 되더라. 언제 그런 생각을 해보겠나. 악한 역할을 한다고 악해지는 게 아니니까. 악하면서도 선한 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공부를 하니 너무 재미있었다”

꼭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무엇?

“멜로. 중년이 할 수 있는 멜로를 해보고 싶다. 통상적인 로맨틱한 멜로가 아닌 중년들이 하는 사랑의 가치를 말해줄 수 있는 스토리를 원한다. 선남선녀의 사랑만이 아름다운 건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로’인 장르를 해보고 싶다. 이미 중년이 넘어가면 외모가 수려한 사람은 없다. 예쁘고 아름다운 청춘들이 얼마나 많은가. 중년 이후부터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연기력으로 얼굴을 책임질 수 있는 배우와 만나, 가치 있는 사랑을 말하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

어떤 엄마, 어떤 아내인 것 같나

“연기에 집중할 수 있게 내버려 두는 남편과 살고 있다. (웃음) 딸에게는 내가 자존심이다. 그만큼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어느 날 촬영 후 힘들어 쉬고 있는 내게 딸이 말하더라. ‘엄마, 한 1년 쉬고 싶어? 그런데 엄마 쉬기에 너무 아까워. 정말 죽을 만큼 힘들면 얘기해. 내가 쉬게 해줄게’라고. 딸은 자기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말에 ‘네가 소속사 대표냐?’라고 물어보려다 말았다. (웃음) 딸은 나보고 ‘그냥 할머니’가 아니라 ‘배우 할머니’가 돼야 한다며 비전을 심어준다. 엄마가 악역을 하는 것도 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성숙한 아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워낙 다양한 역을 맡다 보니 딸아이 학교 학부형들끼리 내 배역을 운운하며 안 좋은 이야기를 했다더라. 그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 직업을 하지 말아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 역할로 인해 우리 딸까지 감내하게 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게, 아직도 그런 문화적이지 못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아이가 자랄 때까지는 배우를 하지 않고 피해있을까 생각도 했다. 딸에게 ‘네가 하지 말라고 하면 엄마는 영원히 배우를 안 해도 된다’고 말하니 딸이 반대하며 ‘그건 일부분이고 잘못된 사람들의 생각인데 그것 때문에 엄마가 엄마의 인생을 포기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말하더라. 많이 울었다. 생각하는 게 참 튼튼한 아이라 고맙다. 엄마의 꿈을 응원하고 엄마처럼 살고 싶다고 말해주는 아이다. ‘미스터 션샤인’의 김태리 역할을 보며 우리 딸이 저 캐릭터처럼 자라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딸은 배우에 뜻은 없고, UN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남편과 함께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딸도 그 영향을 받았나 보다.

“딸이 나보다 더 끼가 많다.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한다. 꿈은 UN에 가는 거지만 취미로 인스타그램에 춤추는 것, 노래하는 걸 올린다. 그렇게 자라고 있다. (웃음) 커봐야 알 것 같다”

성악, 기상캐스터에 이은 세 번째 직업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 직업을 유지할 계획인가

“그렇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흔들림이 없다. 왜냐면 이 직업은 지루할 틈이 없다. 늘 새 인물을 만나 나와 다른 것 투성이인 배역을 연기해야 하니... 세상에 안 힘든 게 있나 싶다. 다 힘들지 않나. 연기하는 나를 보며 좋아하는 딸의 모습 자체가 계속 연기를 해야 하는 이유다”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나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돈도 많이 벌어야 할 것이고 마음도 더 풍요로워져야 배우로서 이야기할 거리가 많이 생길 거다. 가진 재산을 떠나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이 있지 않나. 그렇게 늙고 싶다. 연기는 더 잘하고 싶다. 나이가 들고 유명세가 생길수록 사회적 책임이 생기는 것 같다. 내가 이 나이에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달까. 어깨가 무거워지는 게 정상이라 생각한다. 나이 든다는 게 그런 게 아닐까. 돕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그러니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나이 들어서 자꾸 남에게 손 벌리고 타인을 도울 능력이 없다면 너무 서글플 것 같다. 언젠가 건강이 안 좋아져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게 될지 모르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열심히 관리도 해야겠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많이 웃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

에디터: 마채림
포토: 권해근
의상: 르이엘, 프릭스, 홀리넘버세븐
주얼리: 트라비체
시계: 미사키
헤어: 모아위 미호 부원장
메이크업: 모아위 파니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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