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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Talk] 피에르 발망 “의상은 움직임의 건축”

2014-07-02 11:01:33

[최원희 기자] “어떠한 구조가 돌을 이용해 표현된다면 또 다른 어떤 구조는 모슬린으로 만들어진다. 의상은 살아있는 신체를 대상으로 하는 움직임의 건축물이다”

크리스티앙 디오르, 가브리엘 샤넬과 같이 50년대 패션계를 수놓았던 디자이너들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피에르 발망은 건축적이면서도 우아한 실루엣을 표현해낸다. 수많은 톱스타들은 물론 패션 디자이너들도 수없이 배출해낸 그의 디자인 세계는 모험적이면서도 여성스럽다.

1945년 파리에서 하우스를 오픈한 이후 82년까지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옷을 디자인했던 그는 ‘졸리 마담’이라는 단어로 5년 동안 컬렉션을 발표하며 현재 브랜드의 대표되는 패션 스타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졸리 마담 컬렉션은 발망의 패션 미학을 완성한 컬렉션”_미국 하퍼스 바자 에디터 카멜 스노우

1914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피에르 발망은 신사복점을 경영하는 아버지와 숙녀복점을 경영하는 어머니의 슬하에서 성장했다.

부모님의 부티끄에서 옷감과 드레스를 가지고 놀던 그에게 있어 패션 디자이너는 숙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파리 국립 미술대학교에서 건축학과를 전공하던 발망은 건축을 공부하는 동안 자신의 노트가 패션 스케치들로 채워져 가는 것을 보면서 그 중 몇 개를 디자이너 로베르 피게에게 보냈고, 이 중 3개의 디자인이 채택되어 팔리며 상상의 세계를 현실화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34년 에드워드 몰리뉴의 보조 디자이너 제안을 받게 된 그는 본격적으로 패션계에서 이력을 쌓아갔다.

후에 발망은 를롱 하우스에서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함께 일하며 쿠틔르를 오픈하기로 약속했지만 디오르의 망설임으로 45년 먼저 하우스를 오픈했다.

둥근 어깨,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스커트의 폭, 하이 칼라까지. 하우스 오픈 이후 52년부터 57년까지 5년 동안 꾸준히 선보인 ‘졸리 마담’ 컬렉션은 발망을 대표하는 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엘레강스하고 럭셔리한 패션”


건축을 공부하면서 소재의 중요성, 형태의 중요성, 실용성 등을 익힌 그는 건축과 의상 사이에서 정도를 표현해내며 구조적인 옷을 디자인했다.

부드러우면서도 날렵하고, 글래머러스하면서도 우아한 이 스타일은 케더린 헵번, 덴마크 왕비 마르그레테, 태국 왕비 시리키트를 매혹시키며 더욱 명성을 떨치며 세계적인 디자이너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1982년 그의 죽음 후 디자이너 에릭 모르텐센, 에르베 피에르, 오스카 드 라 렌타까지는 졸리 마담 룩을 재현하지만, 이 후 브랜드는 잠시 암흑기를 가져야 했다. 디자이너의 부재, 무분별한 라이선스 판매 등 이미지가 하락한 것.

“좋은 패션은 진화가 아닌 혁명이다”


2005년, 하우스는 이름을 ‘발망’으로 바꾸고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스토퍼 데카르넹을 영입하며 다시 한 번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브랜드가 화려했던 시절의 엘레강스한 우아함과 동시에 구조적인 시크한 디테일을 이용해 수많은 셀러브리티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

발망 재킷, 바이커진, 파워숄더는 빠르게 퍼져나갔고 이는 ‘발마니아’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탄생시키며 브랜드의 인기를 입증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그는 발망을 떠나고 현재는 올리비에르 루스테잉이 브랜드를 이끌며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색을 입혀내고 있다.
(사진출처: 피에르 발망 공식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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