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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송소희 “국악에 대한 관심? 젊은 국악인들이 사명감 갖고 헤쳐 나갈 문제”

2018-11-20 15:32:35

[황소희 기자] 2008년 KBS1 ‘전국노래자랑’에 참가해 ‘청춘가’와 ‘창부타령’을 구성지게 불렀던 12살의 국악 신동 송소희가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이제는 특별한 수식어가 필요 없는 진짜 국악인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섰다.

진정한 국악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한다는 그. 다섯 살 어린 나이부터 소리를 시작한 송소희는 꼬마 아이의 모습에서 어엿한 숙녀로 성장해 흐른 세월만큼이나 더욱더 짙어진 목소리로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젊은 국악인으로서 부담감보다는 책임감, 그리고 사명감으로 전통과 현대의 접점을 만들어 가고 있는 그. 그가 만든 접점이 이어져 국악인으로 굵직한 한 획을 남기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국악인 송소희의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Q. bnt 화보 소감

“오랜만이다. 내가 화보를 많이 찍거나 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좀 낯선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bnt와는 화보 중 최초로 두 번째 찍는 것 같다. 그래서 괜히 마음도 편안했고 재미있었다”

Q. 요즘 근황

“올해에 ‘모던민요’ 앨범을 발매하면서 이 앨범을 중점으로 활동을 했다. 그리고 아직 대학생 신분이라 막 중간고사가 끝난 시점이고, 다음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지내고 있다”

Q. 조금은 생소한 ‘모던민요’에 대해 소개한다면

“전공으로 하고 있는 경기민요라는 소리를 재해석해서 에스닉 퓨전 밴드 두번째 달과 같이 콜라보레이션으로 앨범 발매를 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부분이 많아서 모던 경기민요라고 칭했고, 줄여서 ‘모던민요’라는 앨범명를 만들게 됐다”

Q. 소리, 민요, 국악 등 다양한 명칭이 있다.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면

“쉽게 말해서 국악이라는 큰 틀 안에 기악 파트와 목소리를 사용해서 내는 성악 파트가 있다. 나는 그중 소리 연주를 하는 사람이고, 그 소리 안에서도 여러 파트가 있다. 국악 하면 보통 떠올리는 판소리와 민요, 그리고 정가라는 소리 등 다양한 분야가 존재한다. 정리하자면 나는 국악에서 민요 파트의 소리를 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경기민요를 전공하고 있는 사람이다”

Q. 소리는 5살, 민요는 8살 때 시작했다고. 어린 나이부터 국악을 하며 고된 시간도 많았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해왔던 것 같다. 그때그때 좋은 분들도 만나서 주위에 도움도 많이 받았고, 개인적으로 노력도 했지만, 그것만큼이나 운도 좋았다. 다른 분들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비교적 수월하게 지금까지 왔던 것 같아서 그렇다 할만한 굴곡은 아직은 없었다”

Q. 그렇다면 슬럼프도 없었나

“국악을 하면서 당시에 자잘하게 힘든 것들은 당연히 있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게 슬럼프는 아니었던 것 같고, 되려 지금이 슬럼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지금은 음악적으로 큰 변곡점을 맞이하고 싶은 그런 순간이다. 이 지점에서 내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지도 고민이 많이 되고, 소리라는 분야에 대해 알면 알수록 부족한 게 너무 많이 보이니까 스스로 답답한 마음도 크다. 후회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지금까지 왔던 길에 대한 살짝 회의감도 들고 그래서 고민이 많은 시기라고 생각된다. 현재까지 삶 중에서 굳이 슬럼프를 꼽자면 아마 지금이 가장 큰 굴곡을 맞이하고 있는 구간이 아닐까 싶다”

Q. 현재 슬럼프라면,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그림이 그려지나

“생각의 끝에는 결국 기본적인 연습이라는 결론밖에는 안 나오더라. 그래서 기본에 충실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학 생활하면서 더 열심히 하려는 이유가 아무래도 대학교 안에서는 규격화된 기준이란 게 있기 때문에 그 기준에 도달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 않나. 그 단계를 넘기 위해서라도 강제적으로 기본에 충실하게 된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소리의 바탕을 익히는 것밖에는 없겠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Q. 소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

“엄마가 예체능 쪽으로 욕심이 많으셨고, 예술이라는 넓은 범위에 당신께서 꿈을 가지고 계시기도 했다. 그래서 나를 자연스럽게 그 길로 인도해줬다. 바이올린, 피아노, 미술, 여러 한국 악기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국악이라는 우리 음악도 접하게 됐다. 그중 민요가 가장 잘 맞았다기보다는 이상하게 그걸 끈기 있게 했다. 나 자신도 그렇지만 주위에서도 민요로 집중할 수 있게 많이 인도해줬던 것 같다”

Q. 다양한 장르와 분야에 걸쳐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있는데, 궁극적인 목표가 있나

“전통에 대해 크게 갈망하고 공부를 하고 있지만, 국악이나 한국음악을 하는 사람들끼리의 영역을 좀 벗어나서 좀 더 넓은 영역에서 한국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바람이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여러 가지가 변하듯이 음악도 변하고 있다. 그 안에서 한국음악의 좋은 점은 소신을 지키되, 다른 장르와 협업을 통해 알지 못했던 부분을 배우고자 한다. 이러한 접점을 찾아가고자 협업을 하는 것 같다”

Q. 계획 중인 또 다른 콜라보레이션이 있나

“작년부터 내가 기획한 기진맥진 프로젝트라는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첫 시작을 두번째 달이라는 밴드로 두 번째 아쟁 명인 이태백 선생님과 전통 콜라보레이션을 했고, 피아니스트 양방언 선생님과 정선 아리랑으로 세 번째 작업까지 했다. 이렇게 많은 아티스트분과 작업을 하면 정말 배우는 게 크다. 그래서 앞으로도 쭉 콜라보레이션을 할 계획인데, 구체적으로 다음 콜라보레이션 하고 싶은 아티스트를 정해 놓지는 않았다. 여러 음악을 들어보면서 이 아티스트와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다”

Q. 기진맥진 프로젝트, 이름이 독특한데 어떤 의미를 지녔나

“기운을 더해서 맥박을 올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자를 바꿔서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기진맥진의 뜻과 다르게 언어유희를 했다. 한 아티스트와 또 다른 아티스트 간의 만남으로 생성된 우리의 음악적인 기운을 통해 누군가의 맥박을 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이 프로젝트명을 정하게 됐다. 꿈보다 해몽이다. (웃음)”

Q. 다른 장르를 가진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을 하면 음악적 간극으로 인해 어려움도 있을 것 같다

“그 간극은 정말 그 모양과 색, 질감까지도 너무 달라서 조율하는 데 집중을 정말 많이 해야 한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이번에 두번째 달과 ‘모던민요’ 앨범 작업을 하면서 그 간극이 존재했다. 그분들만의 음악적인 색을 지키면서 나 역시 음악의 색을 지키고 그 안에서 우리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조율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분들은 내가 하는 민요라는 장르에 대해 이해하려고 굉장히 연구했고, 나 역시 곡마다 편곡된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소리의 색을 첨삭하는 식의 양보를 통해 서로의 간극을 좁혀 나갔다”


Q. 국악에 대한 관심이 낮고, 외면받는 현실에 국악인으로 어깨가 무거울 터

“젊은 국악인들에게 주어진 사명감이라고 생각한다. 가요의 인지도만큼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보다는 우리 나름대로 꾸준히 강요하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다. 부담감보다는 책임감이라고 할까”

Q. 소리꾼 송소희가 아닌, 평범한 22살 송소희가 가진 고민이 있다면

“없는 것 같다. 문제를 크게 부풀려서 생각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소리꾼 송소희로서의 고민만 있다. 음악적으로 정말 고민이 많은 시기라서 다른 것들은 고민이라고 안 보이는 것 같다. 인간 송소희로서 고민이라고 할 것까지의 무게감 있는 생각은 안 하고 있다. 내가 힘들어 봤자 얼마나 힘들다고. (웃음)”

Q. SNS를 보니 대학 생활도 알차게 보내는 중이더라. 가장 즐거웠던 경험은?

“즐거운 경험은 정말 너무나도 많다. 지금 딱 생각나는 건, 대학 생활하면 로망들이 있지 않나. 그중에서 내 로망 중에 하나는 팀플, 조별과제였다. 도대체 그게 뭐라고 많은 사람들이 골머리를 썩이며 싫어하는지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그런 것도 좀 알겠더라. (웃음) 그래서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친구들하고 같이 카페에서 서로 토론하면서 준비하고 자료 만들어서 수업 시간에 발표하고, 잘 끝냈을 때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되게 재미있게 준비했던 기억이 많아서 졸업하면 정말 많이 그리울 것 같다”

Q. 학교 다닐 때 킥보드를 애용한다고

“요즘은 추워서 킥보드 타고 등교하면 큰일 난다. (웃음) 나는 아무도 몰라본다고 생각했는데, 나 빼고 다 알고 있더라. ‘송소희 관종이다’고도 하더라. (웃음)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나에 대해 고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지 않나. 단아한 이미지로 생각을 했는데, 옷도 다양한 스타일로 입고 이어폰 꽂고 노래 들으면서 신나게 킥보드 타고 다니니까 사람들 눈에는 신선했던 것 같다. 많이 수군대더라. (웃음)”

Q. 대중에겐 한복 입은 모습이 익숙하지만, 평소에는 다양한 사복 스타일을 즐긴다고

“한가지 스타일을 고수하지 않는다. 정말 다양하게 그때그때 입고 싶은 걸 입는다. 보통 어떤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그 사람의 스타일에 따라 그 이미지를 많이 떠올리지 않나. 내 친구들은 나에 대해 그런 이미지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다양하게 입는 편이다. 요즘에는 베이직하고 차분한 옷을 많이 입는 것 같다. 한복은 250여 벌 정도 소유하고 있다. 한복 방이 따로 있을 정도다. 관리하기 그렇게 어렵지 않다. 내가 하지 않아서 그런가. (웃음) 차곡차곡 모아서 쭉 소장하고 싶다”

Q. 친구들이 평가하는 본인의 성격

“진지충이라고 하더라. (웃음) 진지한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친구가 어떤 관심사가 있는지,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그걸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대부분의 내 친구들은 그런 이야기보다는 그 상황에서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친구들이 좋아하는 옷, 연예인, 화장품 이런 주제에 대해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좀 괴리감이 있기는 하지만, 함께하면 늘 즐겁다. (웃음)”

Q. 주량은 어떻게 되나

“1학년 때 정말 무섭게 마셨다. (웃음) 스무 살 때 신세계를 접했던 것 같다. 주량으로 지기가 싫더라. 그래서 소주 한 병 먹는데도 두 병이라고 속이기도 했다.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한 병 반까지 마셨던 것 같다. (웃음) 1학년 때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보기도 싫어지더라. 특별한 날 아빠랑 마시는 것 외에 2학년 때부터 2년 동안 친구들이랑 술은 거의 안 마시니까 주량이 줄더라. 지금은 한 5잔 먹는 것 같다. 그래도 못 먹지는 않는다. (웃음)”

Q. 대학 졸업 후 계획

“일주일, 한 달, 상반기 혹은 일 년 정도까지 계획을 세운다.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편이 아니라, 졸업 후 계획은 없다. 사실 올해 끝자락에서 돌이켜보니까 바쁘게 살았던 것 같은데, 그렇다 할 작업물은 ‘모던민요’ 앨범 밖에는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없더라. 그래서 내년에는 그런 음악적인 굵직한 작업을 많이 해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고, 또 졸업반이기 때문에 졸업 연주회를 정말 멋지게 해서 학교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 또 의미 있게 단국대학교 동기들과 한 번 무대를 꾸려보고 싶은 바람도 있다”


Q. 아직도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했던 국악 신동 송소희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남다른 의미도 있을 것 같은데, 출연하게 된 계기는?

“’전국노래자랑’은 현재 모든 고민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민요를 제대로 시작하게 해준 동력이다.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의 음악 활동의 모든 계기는 엄마였다. 엄마는 지금의 송소희라는 인물을 만들어주셨다. 너무나도 감사하다”

Q. 걸음걸이를 교정하기 위해 아이돌 댄스를 배우기도 했다고

“춤에는 전혀 재능이 없다. 흥미는 있는데 적성에 맞지 않더라. 내적으로는 이렇게 과격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파워풀하게 췄는데, 안무 선생님은 조금 더 넓게 사용하라더라. (웃음)”

Q. 이상형

“도량이 넓은 사람이 좋다. 도량을 대체할 단어가 없는 것 같다. (웃음) 모든 일에 있어서 둥글게 대할 줄 알고 유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좋다. 나열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내가 원하는 조건 중 하나를 꼽으라면 이 부분인 것 같다”

Q. 또래에 비해 어른스럽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부터 배운 국악의 영향도 있겠지

“있다. 한국의 유교 사상이 있지 않나. 한국음악을 배우면서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먼저 배운다.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도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더구나 워낙 어렸을 때부터 활동해서 차디찬 어른들의 세계를 빨리 마주해서 그런가 쉽게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그런 면이 있기도 하다. (웃음)”

Q. 국악 신동에서 국악 소녀, 국악 여신까지 다양한 수식어를 보유하고 있다. 앞으로 송소희라는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길 바라나

“진짜 국악인이 되고 싶다. 그 나이에 잘하는 국악 신동, 혹은 여자애가 귀엽게 잘하는 국악 소녀를 넘는 이제는 그야말로 누가 봐도 정말 한국음악을 하는 소리꾼이구나 싶은 국악인이라는 수식어를 듣고 싶다. 그리고 그걸 들었을 때 스스로 당당하게 ‘국악인 송소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고 싶다”

Q. 2018년도 막바지에 달했다. 어떤 한 해를 보냈나

“‘모던민요로’ 정말 행복한 한 해를 보냈다. 그게 다인 것 같다. ‘모던민요’가 전부인 한 해였다”

Q. 2019년 목표와 활동 계획

“2019년 이맘때쯤에 음악적으로 굵직한 작업을 많이 해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학 생활의 마침표를 찍는 해이기 때문에, 그 마침표를 정말 멋지게 찍었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가능하다면 싱글로 자주 찾아뵙고 싶다. 다른 분야와 협업해서 여러 가지 색깔을 보여드리고 싶다”

Q. 마지막 팬들에게 한마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음악적으로 큰 변곡점을 맞이하고 이 순간이 내게는 소중하고 크게 와 닿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지금까지 함께해준 팬들에게 낯설겠지만 모든 과정을 믿고 응원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또 실제로 그렇게 해주고 있기 때문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에디터: 황소희
포토: 권해근
영상 촬영, 편집: 정인석, 안예진
의상: bnt collezione(비앤티 꼴레지오네), 더애쉴린, 아바몰리, 한복린
모자: 피스메이커
주얼리: 위드란(WITHLAN)
시계: 클라쎄14
슈즈: 바이비엘, 모노톡시
헤어: 순수 이야기점 찬아 디자이너
메이크업: 순수 이야기점 고우리 부원장
장소: 묘토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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