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터뷰] 봄, 밤 그리고 정예인

박찬 기자
2021-04-01 10:25:50
[박찬 기자] 꿈꾸듯 완연하게. 봄과 밤이 맞닿는 순간, 정예인의 입가에도 말간 꽃이 물들었다.
봄밤이 가져다주는 공기는 실로 다채롭다. 흘러간 인연을 되짚어보는 아련함, 잊혀진 관계에 대한 미언, 은신한 기억들 모두 같은 움직임으로 일렁인다. 그런 면에서 봄과 밤은 서로를 엮어낼 존재다. 봄은 밤이 갖지 못한 향을 피워내고, 밤 또한 봄이 미처 보지 못한 잔상을 드리운다.
러블리즈 정예인의 화보 촬영을 기획하며 든 생각은 그가 계절감이 명확한 얼굴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번 ‘봄, 밤’ 콘셉트를 자신 있게 꺼내든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누구보다도 무연한 눈매를 갖춘 그인 만큼 3월의 공기, 낯선 공간에서의 빛깔을 인상 깊게 그려낼 거라 믿었다.
해가 뜨기 전과 해가 지고 난 뒤. 사뭇 달라지는 분위기 앞에서 정예인은 망설이던 것도 잠시 그 낯선 세계 속으로 유유히 빠져들어 갔다. 수줍게 짓던 미소는 어느샌가 단단하게 차올랐고, 이윽고 봄과 밤 그 여정 속에서 해사함을 맞이해나가기 시작했다.
Q. 오늘 가장 마음에 든 콘셉트
“의자에 앉아서 여러 과일과 함께했던 콘셉트. 컬러풀한 니트 톱&밤색 와이드 팬츠 착장도 마음에 들었고, 잠시나마 발랄해진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웃음)”
Q. 평소에는 화려한 원피스보다 캐주얼한 착장을 좋아하는 듯 보인다
“맞다. 원피스, 스커트보다는 팬츠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스키니 핏이 아닌 와이드 핏으로. 점점 내 몸에 편한 옷을 찾게 되더라”
Q. 미니 7집 ‘Unforgettable’에서 데뷔 후 첫 단발머리를 드러냈다. 주변에서 잘 어울린다는 말을 많이 들을 것 같은데
“감사하게도 훨씬 낫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전부터 봐온 친구들의 경우는 너무 잘 어울리지만 다소 인상이 세 보인다고 말하더라. 칭찬을 꽤 많이 받아서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진작 미리 잘라볼걸’ 후회도 든다. 무려 23년을 긴 머리로 살았으니까 말이다(웃음)”
Q. 왜 긴 머리를 쭉 고수했던 건가
“일단 내가 긴 머리 스타일을 선호했고, 그룹 내에서도 그런 내추럴한 이미지가 굳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발머리는 사실 안 어울릴 줄 알았다”
Q. 러블리즈 안무는 언뜻 보면 소녀다운 느낌이지만 의외로 강도가 세다는 평이 많다. 체력 증강을 위해 기울였던 노력
“안무 선생님과의 레슨. 수업을 시작하기 전 노래를 네 곡 정도 틀면서 계속 뛰게 만드는데, 마지막 한 바퀴는 무릎을 높이 올리며 뛰어간다. 그리고 그 뒤에 바로 안무 연습에 들어가게 되는 거다. 이런 과정으로 쭉 연습해오니 안무 자체는 너무 쉬워질 수밖에 없다”
Q. 러블리즈 곡 중에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곡
“‘Hi~(안녕)’가 아닐까. 살랑살랑거리는 것처럼 보여서 쉬워 보이지만 그만큼 강약 조절이 쉽지 않은 곡이다”
Q. 러블리즈 최초로 MBC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 메달을 안겼다고. 평소에도 액티브한 활동에 관심이 많은 편인지
“어렸을 때 무용을 해서 어느 정도 몸을 쓸 수 있지만 사실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외부 활동이 쉽지 않은 만큼 무용을 다시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촬영 내내 내가 낑낑댔던 이유도 힘들어서가 아니라 근육통 때문에 그런 거다(웃음)”
Q. 그룹 내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그 합류로 인해 러블리즈의 어떤 면을 채워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
“가장 먼저 그룹의 평균 나이대를 낮춘 점(웃음)? 또 하나로, 평소에 말할 때는 목소리가 낮고 허스키한 편이지만 노래 부를 때는 러블리즈 이미지에 어울리는 보이스 톤이라고 생각한다”

Q. 합류하는 과정에서 부담감은 없었나
“사실 부담 느낄 새도 없었다. 연습생 생활을 너무 짧게 보낸 후 데뷔하다 보니 정신없었던 것 같다”
Q. 오디션 당시 태연의 ‘들리나요’를 선곡했다고 들었다. 요즘엔 어떤 뮤지션을 보고 동기부여를 얻는 편인가
“선우정아 선배님 음악을 자주 듣고 있다. 내 실력으로는 절대 맞닿을 수 없지만 가끔 선우정아 님의 곡을 커버하기도 한다. 그만큼 정말 아끼는 뮤지션이다”
Q. 멤버 서지수와의 닮은 꼴로 유명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외모를 극찬해온 만큼 닮은꼴이라는 칭호가 나쁘지 않겠다
“당연히 그렇다. 연습생 시절 지수 언니를 처음 봤을 때 ‘저렇게 예쁜 사람이 연예인 하는 거구나’ 생각했다. 그에 비해 나는 정말 부족하게 느껴지더라. 닮았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 기쁘고 감사했다”
Q. 닮았다는 말에 서지수의 반응은 어떤가
“지수 언니도 좋아한다(웃음)”
Q. 데뷔 당시엔 소속사 관계자들도 둘의 이름을 헷갈렸다고 들었다
“그때는 그랬는데 점점 나이를 먹다 보니 이젠 서로 다르게 커가는 듯 하다. 언니가 조금 더 고양이상에 가깝다. 나는 강아지상이나 사슴상(웃음)”
Q. Mnet ‘컴백전쟁: 퀸덤’ 촬영 당시 ‘친절한 금자씨’에 맞춘 퍼포먼스로 큰 화제를 낳았다. 이 무대를 통해 주변의 시선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에서 리듬 체조를 선보인 이후로 큰 관심을 받은 순간이다. 많은 분들이 내가 무용했었다는 걸 잘 모르시더라. 그래서인지 더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강점을 알아봐 주셨다는 점에 더없이 감사했다”
Q. 굉장히 오랜만에 무용 연습을 하느라 힘들었겠다
“물론이다. 정말 힘들었다. 그때는 특히 일본에 오갈 때라서 4일밖에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 주어진 시간 안에 팀 안무와 연습을 병행해야 했던 만큼 쉽지 않았다”
Q. 본인의 의사로 퍼포먼스를 준비하게 된 건가
“맞다. 팀 대표로 내가 선정돼 무대 위 음악, 안무, 댄서, 의상 모두 직접 기획했다”
Q. 방송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Obliviate’로 한 번에 날려 보냈다는 의견이 많다. 멤버들 스스로도 더욱더 노력했을 듯한데
“이제 와서 말하지만 멤버들 모두 걱정 많았다. 그동안 청순하고 아련한 무드의 곡만 보여주다가 갑자기 성숙한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았나. 어색해 보이지 않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다행인 건 팬분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는 거다(웃음)”
Q. 활동 시점마다 다른 음원과 다른 공연을 보여주는 것, 그 몰입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사실 내 성격 자체가 귀여움, 깜찍함과는 거리가 멀다(웃음). 데뷔 초엔 그런 무드에 나 자신을 이입하기 쉽지 않았지만 ‘Ah-Choo’ 때부터는 서서히 자연스러워지더라. 이후 ‘Obliviate’ 활동을 준비하면서부터는 이미지 트레이닝하거나 무대 영상을 참고하는 등 여러 방안으로 사전 연습을 진행하게 됐다. 아무래도 이런 콘셉트의 무대는 처음이었으니까”
“비결이 있다면 거울 앞에서의 표정 연습을 자주 하는 것. 조금 더 익숙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멤버들 모두 꾸준히 하는 편이다”

Q. 러블리즈 활동을 하면서 들었던, 가장 기억나는 찬사가 있다면
“정확히 그 문장이 기억나진 않지만, 우리 음악을 들으면 첫사랑처럼 아련한 느낌이 든다는 댓글이 유독 인상 깊었다. 사실 아이돌 음악 시장에서 그런 음악을 보여주는 그룹이 별로 없지 않나. 가볍고 신나는 곡을 들려주는 것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감수성 짙은 곡을 보여줬다는 것에 자부심이 있다. 그래서 ‘Obliviate’ 활동이 더욱더 고민됐던 것 같다. 그동안 보여줬던 강점과 무드를 어느 정도 배제했으니까 말이다”
Q. 과거 무용을 준비하던 도중 발목 부상으로 그만두게 되었다고. 이후 실용 음악 학원에 다녔던 이유는 그런데도 무대에 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인지
“워낙 노래를 못했기 때문에 가수로서의 꿈은 없었다. 많이 발전해서 이 정도인 거다(웃음). 당시엔 다리를 다쳐서 무용도 못 하고, 검정고시 때문에 학교도 못 가는 상황이었다. 심심하던 찰나 ‘실용 음악 학원이라도 다녀보자’라는 마음을 갖게 됐고 새로운 문이 열리게 됐다. 가수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Q. 본인은 노력파에 가까운 편인가
“노력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나. 매번 주어진 목표 앞에서 노력하곤 하지만 어마어마한 시간을 쏟아붓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매번 아쉬움이 남는 듯하다(웃음)”
Q. 아이돌이란 직업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일은 아니지 않나
“개인적으로 아이돌이라는 직업은 열정 그 자체를 담는다고 생각한다. 열정이 없으면 못 하는 직업이라고 해야 할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는 있어도 오랜 시간을 버틸 순 없다. 연습량도 정말 많고, 센스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특히나 요즘엔 더 다양한 모습을 요구하기 때문에 열정이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점이다”
Q. 본인은 그 과정에서 열정이 넘쳤다고 생각하는지
“돌이켜 보면 그랬다. 무대 앞에만 서면 재밌고 행복하다는 그 열정 하나로 달려온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활동 자체에 의욕이 사라진다”
Q. 가장 애틋하게 생각하는 곡
“‘Candy Jelly Love’. 데뷔곡이다 보니 정말 질리도록 많이 들었다(웃음). 파트가 두 줄밖에 없지만 내가 녹음했던 곡들 통틀어서 가장 많이 연습한 곡이다. 그만큼 애틋한 감정도 있고”
Q. 최근 꾸준히 이어가는 취미가 있다면
“주변 사람들도 안 믿지만 요즘 소크라테스의 ‘파이돈’을 읽고 있다(웃음). 철학적인 내용이 많아서 연기 공부에 적지 않은 배움을 가져다주더라. 어릴 땐 책을 억지로 읽곤 했는데 이젠 독서를 통해 깨우치게 되는 부분이 많다”
Q. 정규 1집 ‘Girls' Invasion’으로 데뷔하고 어느덧 6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의 활동을 되돌아보며 본인에게 뿌듯했던 점과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뿌듯했던 점은 큰 사고 없이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 물론 중간 중간에 여러 구설수가 있긴 했지만 팀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점에 감사하다. 아쉬웠던 점은 조금 더 준비를 갖춘 상태에서 데뷔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연습생 생활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부족함이 많았다”
에디터: 박찬
포토그래퍼: 천유신
의상: COS, 데이즈데이즈, MSGM by 한스타일닷컴, 미 이세이미야케
슈즈: 데이즈데이즈, 올세인츠
주얼리: 민휘아트주얼리, 바이가미
스타일리스트: swey, 조정흠
헤어: 블로우 김은희 디자이너
메이크업: 블로우 임정현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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