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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준과 가위잡이’ 박호준 원장 “가위로 전하는 행복, 세계 향해 더 멀리 전파할 것” ①

이선영 기자
2010-01-28 14:08:40

대한민국 미스코리아 역사에 ‘미용실 원장님’이 안 계셨더라면 부풀린 사자머리와 미스코리아 특유의 미소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사람들은 여전히 ‘아름다움(美)’을 추구하고, 그 중심에는 ‘미용실’이 있다. 하지만 미용실이라고 다 같은 미용실이 아니다. 튀어야 살아남는 시대! 최근 뷰티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유행만큼이나 개성 있고 독특한 ‘미용실’과 ‘원장님’들이 화제다.

이 중에서도 ‘11개의 손가락을 가진 사나이’, ‘춤추는 가위손’이라 불리며 연 40회가 넘는 헤어쇼 공연을 직접 기획, 연출하고 공중파를 포함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국내 최초로 이색적인 헤어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미용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박호준과 가위잡이’의 박호준 원장의 인기는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다.

그는 이미 1997년 4월 세계최초 헤어퍼포먼스를 개발한 후, ‘SBS 리얼코리아’, ‘MBC 생방송 화제집중’, ‘SBS 별난 행운 인생대역전’, ‘KBS 톡톡이브닝’, ‘KBS1 이것이 인생이다’, ‘SBS 생활의 달인’ 등 무수한 방송에 출연해 일반인들에게도 너무나 친숙한 얼굴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제가 미용을 배우고 미용실을 오픈할 당시만 해도 헤어디자이너들의 위상은 매우 낮았어요. 미용인으로서 매우 안타까웠죠.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용에도 대중과 공감할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가 있어야 하고, 또 이를 대중에게 소개해 줄 수 있는 ‘스타 헤어디자이너’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때문에 그는 ‘박호준만의 독특한 헤어퍼포먼스’를 만들기 위해 무대 위를 평정할 만한 다양하고 현란한 테크닉과 미용의 신기술 등을 습득하고 연마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붇기 시작했다.

이렇게 피나는 노력으로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헤어쇼를 완성하게 된 박 원장은 어느 날 갑자기 동행인도 없이 혼자서 파리행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에 도착. 전 세계인들이 모인다는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앞에서 ‘세계 최초 헤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정말 겁도 없었죠.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아찔해요. 머나먼 이국땅에서 세계 최초로 헤어쇼를 공연하는 동안, 정말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열정이 샘솟는 것을 느꼈어요. 또 공연도중,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들의 열렬한 호응과 박수를 받을 때는 찌릿한 전율이 온몸을 흐르는 것 같았죠. 정말 대박이었어요”

박 원장의 말 속에는 당시의 감동과 현장감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패션의 도시 파리, 당시 그곳에서 박 원장의 세계 최초 헤어 퍼포먼스를 본 사람들과 현지 언론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 사건은 한동안 연일 화제가 되면서 이를 모방하는 사람들이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곧이어 전 세계 다양한 언론에서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박 원장과 그의 쇼’를 주목하게 되었다.

이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박 원장은 국내에서도 헤어쇼를 계속 이어 나갔다. 그러나 당시 각종 해외 언론들의 주목을 받으며 연일 화제의 중심이 되었던 그였지만 그의 쇼는 특별한 공연장이 아닌 압구정, 홍대, 강남 등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에서만 볼 수 있었다.


이는 헤어쇼를 상업화의 대상이 아닌 미용의 대중화를 위한 하나의 문화 콘텐츠이자 매개체로 생각하는 박 원장의 철학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각종 방송 등 언론매체를 통해 ‘미용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전파하는 일에 계속해서 앞장서 나갔다.

이처럼 대중들이 쉽게 미용을 접하고 즐길 수 있는 ‘미용의 대중화’를 전파하기 위해 매일 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박 원장의 열정이 대중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진 것일까? 대중들은 그의 열정과 노력에 큰 사랑으로 보답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1997년 세계 최초 헤어퍼포먼스를 마치고 돌아온 그가 기존에 자신이 운영하던 미용실을 신개념으로 업그레이드해서 재 오픈한 ‘박호준과 가위잡이’에는 일반인들뿐 아니라 박원장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연예인, 정치인, 기업인 등 유명인사들의 발길도 끊이질 않았다.

이렇게 '세계 최초 헤어퍼포먼스의 창시자'이자 ‘미용 대중화의 선구자’로 유명해진 박호준 원장. 이런 그가 처음 자신의 미용실을 오픈한 것은 약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박 원장은 현재 운영하고 있는 ‘박호준과 가위잡이’의 전신인 ‘박호준 개성연출’을 오픈했다.

하지만 그의 성공스토리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성공’이란 이름 뒤에 숨겨진 수많은 각고의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그가 있을 수 있었던 것. 그는 그야말로 ‘가위 하나로 어린 시절 불우했던 환경을 극복해 낸 집념의 사나이’였다.

>> 2편에 계속

한경닷컴 bnt뉴스 이선영 기자 goodluck@bn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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