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인터뷰②] ‘대군’ 신이, 여배우로 살아 온 20년 “항상 위만 보고 있었다”

2018-03-17 14:10:00

[김영재 기자 / bnt 포토그래퍼 윤호준] 신이가 돌아왔다.

“벗으라면 벗겠어요.” 배우 신이가 SBS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탄생시킨 명대사다. 신이는 작품에서 주인공 이수정(하지원)의 친구이자 스타를 꿈꾸는 연예인 지망생 방민희를 연기했다. 해당 대사로 스타덤에 올랐냐고 묻자 그는 “스타덤은 무슨 스타덤”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드라마 파급력이 대단했죠. 첫 드라마였어요. ‘색즉시공’을 하고, ‘위대한 유산’을 하고 난 다음이었죠.”

‘발리에서 생긴 일’의 방송 년도는 2004년. 대학교 복학생조차 스스로를 화석이라고 자조하는 세상에서 무려 14년 전의 기억이다. 하지만, 2018년 현재까지도 검색창에 ‘벗으’만 입력해도 ‘벗으라면 벗겠어요’가 완성된다. 1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유행어의 자생력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배우 신이로부터 출발했다.

물론 그를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유행어가 전부는 아니다. 영화 ‘색즉시공’ ‘B형 남자친구’ ‘간 큰 가족’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 ‘가문의 부활-가문의 영광3’ 등에서 신이는 대체할 수 없는 감초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감초 배우가 신스틸러로 변화하는 시간 동안 배우는 대중의 곁에서 사라졌다.

지난해 생애 첫 일일드라마에 도전한 신이는 배우 생활 20주년을 맞는 2018년 또 한 번 처음에 도전한다. TV조선 ‘대군-사랑을 그리다’에서 그는 상궁들의 우두머리 장상궁 역으로 생애 첫 사극에 몸을 맡긴다. 그 시절 욕심이 많고 세상이 그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 배우는 이제 그때의 자기 중심적 사고를 많이 내려놓았다고 담담히 말했다. bnt뉴스가 야망 대신 세월의 성숙함을 갖춘 신이를 만났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인터뷰①] ‘대군’ 신이, 생애 첫 사극 도전 “부귀영화 원하지 않아” (기사링크)
[인터뷰②] ‘대군’ 신이, 여배우로 살아 온 20년 “항상 위만 보고 있었다” (기사링크)


그의 첫 경험은 ‘대군-사랑을 그리다’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그는 MBC ‘훈장 오순남’을 통해 첫 일일드라마에 도전했다. 주인공 오순남(박시은)의 ‘절친’ 소명자를 연기한 신이는 ‘그때의 신이가 돌아왔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영화가 드라마보다 더 힘들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훈장 오순남’을 통해 생각이 달라졌죠. 영화는 하루에 한두 신만 찍는다면 일일드라마는 제 신만 30신을 찍어요. 전체는 100신을 찍고요. 주인공들은 이미 난리났죠. (웃음) 100신 중에 80신은 본인 거니까요. 일일드라마에 몸담고 있는 배우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았어요. 배우 자체로 봤을 때는 일일드라마 배우가 최고 같아요.”

사극도 첫 경험, 일일드라마도 첫 경험. ‘처음’이 계속되는 배경에는 배우가 지닌 외양의 변화가 있다. 그는 2014년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 출연해 “(변화로)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면 여러 역할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라고 밝혔다. 돌이켜보면 그는 앞서 언급한 방송 외에도 tvN ‘현장토크쇼 택시’, JTBC ‘이승연의 위드 유2’ 등 다수의 토크쇼에 출연해 그의 고민을 토로했던 바 있다.

“저를 옛날의 신이로 알아주길 바라는 게 있었어요. 빨리 설득시키고 싶었죠. 이젠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게 제가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냥 주어진 역할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신이란 배우가 다시 각인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그때는 ‘나 사실 신이인데 잊지 않으셨죠?’라고 어필을 하려고 했어요. 어리석은 일이었죠. ‘나를 빨리 봐주세요’라는 생각에 출연했던 거 같아요. 작품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방송에 출연한 신이는 “조연을 할 때는 주연이 되고 싶었고 주연하고 있을 때는 톱스타가 되고 싶었다. 항상 위만 보고 있었다”라는 말로 전성기를 회상했다. ‘색즉시공’을 연출한 JK필름 대표 윤제균 감독은 “대체 불가능한 배우”라는 말로 신이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도. 무엇이 배우 신이가 계속 위를 보게끔 만들었을까.

“욕심이 많았어요. 세상이 제 위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고요. 위를 봐야 잘 될 거라고 믿었어요. 그때의 전 조금 불행했습니다. 왜냐하면 충분히 잘 되고 있었지만 즐기지 못했거든요. 위를 좇으며 불쌍하고 불행했어요. 이제는 많이 내려놨죠. ‘대군’을 하는 지금이 그래서 즐거워요. 예전에 선배님들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역할은 없다.’ 저는 ‘그런 게 어딨어요. 역할은 무조건 커야죠’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야망이 컸죠. 좀 더 성숙했어야 됐어요.”

신인 배우 신이는 신문 공고를 보고 ‘색즉시공’ 오디션에 지원해 약 100여 명이 경합한 공개 오디션에서 박경주 역을 거머쥐었다. 서울 말씨를 쓰는 경상도 사람 연기는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으며 인기의 척도 KBS2 ‘개그콘서트’까지 등장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은 ‘색즉시공’이에요. 원래는 서울에 사는 대학생이었는데 대본 리딩을 하면서 제가 경상도 애로 바꿨어요. 경상도 애가 서울 말씨를 쓰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보통 배우들은 초반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죠.”

‘색즉시공’은 대중이 신이를 발견한 작품이자 냉정히 말해서 그를 한계에 가둔 작품이다. “그때는 코믹 역할만 맡는 것이 스트레스였어요. 지금은 ‘왜 즐기지 못했지?’라는 생각에 뭐만 주면 재밌게 하고 싶고 그래요. 예전엔 스태프들이 웃든 말든 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이제는 아니에요. 최근 ‘대군’ 촬영 중에 코미디 신을 찍었는데 스태프들이 웃더라고요. 기쁨을 느꼈어요. ‘역시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란 생각도 들고요. 앞으로 코미디를 계속 하고 싶어요.”


대구가 고향인 신이는 서울로 올라와 10평 남짓 자취방에서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지속했다. 목표는 오로지 연기. 국립극단 연습 단원으로 연극 ‘태’ ‘도덕적 도둑’ ‘수궁가’ 등에 출연한 그는 “잘 될 것이란 큰 믿음” 하나만 가지고 힘들어도 힘든 것 없이 노력했다. 그리고 1998년작 영화 ‘여고괴담’ 단역으로 그의 연기 생활을 본격 시작했다. 이후 20년이 흘렀다. 2018년을 살고 있는 신이에게서는 도전자로 세상을 바라본 20년 전 신이가 어렴풋이 겹쳐 보인다.

“시간 진짜 빠르네요. 디너쇼라도 해야 되는데. (웃음) 더는 도전 안 하고 싶어요. 안정을 찾고 싶고요. 그런데 선생님들 보면 계속 도전하시더라고요. 명예나 부에 상관없이 연기가 좋아서 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많이 배우고 있어요. 특히 금보라 선생님. 정말 연기를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하시는 분이세요. 한번은 여쭤봤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나 이거 너무 좋아서 하는 거야. 나 금보라야. 연기자 금보라.’ 저도 나이가 50이 됐든 60이 됐든 쭉 연기하고 싶어요.”

혼자만의 성에서 갇혀 살던 신이는 항상 ‘홀로’였다. 홀로 해결하고, 홀로 고민하고, 홀로 책임지고. “욕심이 많고 못됐다”라는 말로 과거 자신을 질타하는 신이는 겸손 아닌 자조(自照)를 전달했다. 신이가 돌아왔다. 그리고 달라졌다.

사람이 변하는 때는 인생 최고의 고난을 만났을 때다. 갓 날개를 펼친 신인 신이는 당시 인터뷰에서 문소리 같은 진솔함이 묻어나는 연기자를 꿈꾼다고 했다. 이제 신이는 문소리 대신 금보라를 꿈꾼다. 이유는 배우 금보라가 가진 당당함과 자신감 그리고 주위의 인정이다. “당당하다는 건 자신감이 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어디에서나 인정받는다는 뜻이기도 하죠.”

멘토 금보라처럼 ‘생활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신이는 더 이상 ‘홀로’가 아니다. 언제나 위를 바라보던 야망의 배우는 이제 모두의 성에서 인기 말고 연기를 좇는다. 60대 배우 신이는 어떤 모습일까.

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