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기자] “배우 신도현은 아직 낯설어요”
‘거제’를 위한 찬가(讚歌). 서울로 상경한 주인공이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나를 키운 엄마, 나의 고향, 나의 20년. 안녕”이라고 말하는 순간, KBS2 ‘땐뽀걸즈(극본 권혜지, 연출 박현석)’는 고향을 부정해온 한 인간의 회한과 반성의 노래로 그 끝을 맺었다.
“뭐 경연 대회도 아니고 학교 축제니까 몇 등 하고 뭐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너그들이 나중에 졸업하고 나서도 ‘아 참 그때 친구들이랑 참 재밌었지 좋았지’ 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추억할 수 있도록 하자. 알겠나?” 땐뽀반 아이들에게 춤은 그냥 춤이 아니다. 어른들은 먹고 사는 게 중요하다고 언성을 높이지만, 아이들 역시 “잘해봤자 쓸모도 없는 거 열심히 해서 뭐하는데? 어차피 우리 인생에 도움 되는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그들에게 춤은 이규호(김갑수) 선생님의 말처럼 미래에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지금의 행복이다.
등장인물의 말을 빌리자면, ‘땐뽀’는 가짜고 거제여상 출신은 진짜다. 그들은 진짜를 잊기 위해 춤을 췄다. 그 환상이 가짜든 뭐든 땐뽀반은 춤에서 진실한 행복을 느꼈다.
배우 신도현(23)은 그 행복을 느낀 여덟 땐뽀걸즈 중 하나 이예지를 연기했다. 친구들은 유도 유망주가 여상으로 전학 온 이유를 ‘뜻하지 않은 부상’에서 찾았지만, 실은 그가 운동을 관둔 이유는 경기 성적이 자꾸 떨어지는 데에서 오는 무서움이었다. 한 번의 좌절을 겪은 이예지는 땐뽀를 통해 그 생애 절정이 언제든 다시 올 것이란 믿음을 가진다.
bnt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신도현은 “‘내가 참 좋은 작품을 만났구나’라는 걸 촬영하면서 계속 느꼈다”고 했다. “시원섭섭해요. 촬영 장소가 거제도였어요. 서울과 거제를 오가며 촬영하는 게 실은 힘에 부쳤죠. 하지만 이젠 추억이 됐어요. 동료 배우들과 단톡(단체 카카오톡)을 하는데, ‘보고 싶다’ ‘너무 허전하다’ 같은 메시지를 아직 서로 주고받는 중이에요.”
“이번에도 오디션 봤어요.(웃음) 저번 오디션은 당연히 떨어질 거란 생각에 모든 걸 내려놓고 즐기는 마음으로 임했는데, 이번엔 달랐죠. 걱정이 컸어요. ‘내 외모가 학생물에 어울릴 만큼 어려보일까?’란 걱정도 있었고, ‘춤을 잘 출 수 있을까?’란 염려도 있었어요. 중학생 때 취미로 댄스 스포츠를 배웠어요. 감독님께서 그 점을 좋게 봐주신 거 같아요.”
대본 상의 이예지는 지금과 달랐다는 후문. 신도현은 “다른 분들은 예지를 두고 귀여운 운동 선수를 떠올리셨다. 다들 의외라고 말씀하시더라”고 했다. “근데 나중엔 ‘예지랑 진짜 비슷하다’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진짜 잘 뽑은 거 같다’는 소리도요.(웃음)”
신도현은 꾸미지 않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는 학창 시절에 이예지처럼 화장도 안 하고, 무기력해 보이고, 느린 구석이 있는 학생이었다. 이예지의 보이시한 면을 표현하기 위해 배우는 그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됐다. “감독님께서 자유롭게 연기하게끔 도와주셨어요. 원래 이 캐릭터랑 닮은 점도 많지만, 그 자유롭고 편한 연기를 통해 제 원래 모습을 많이 보여드릴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모르는 저의 모습을요.”
신도현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꿈은 딱히 없지만 영어를 좋아한 어린 신도현은, 둥지를 떠나보고 싶은 마음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셋째고, 늦둥이라서 많은 보호를 받고 자랐어요. 영어를 쓸 수 있는 곳에서 하고 싶은 걸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신도현에게 배우는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였다. ‘배우’ 대신 ‘연기’를 좇았다는 것. 그 한 뼘의 차이는 이 신인 배우를 아주 특별한 존재로 꾸며준다. “저는 연기를 배워보고 싶다고 느꼈을 뿐이에요. ‘저 화려한 직업을 갖고 싶다’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지금 그에게 가장 힘든 건 그 스스로를 배우답게 포장하는 일이다. 배우는 광대다. 하지만 광대 역시 사람이다. “지금은 배우와 연기 둘 다 좇고 있어요. ‘연기파 배우가 될 거야!’는 아니에요. 다만 ‘배우는 남의 시선에 자유롭지 않은 직업’이란 점이 아직 어렵게 느껴져요.”
신인 배우는 회사가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 그럼에도 그는 “독립 영화라든지 여러 가지 해보고 싶은 게 많다. 의견을 많이 제시한다”며 눈을 반짝였다. 영화 ‘소공녀’ ‘리틀 포레스트’ 등 사람 냄새 나는 작품을 신도현은 희망 중이다. 차기작은 MBC ‘더 뱅커’. 역할 비중은 여타 출연작과 비등하지만 거제 소녀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배우는 말했다.
“제게 배우의 기질이 있는지에 대한 확신은 아직 없어요. 지금도 인터뷰를 할 때나 영상을 찍을 때면 ‘안녕하세요 신도현입니다’ 해요. ‘배우 신도현’은 낯설거든요. 미래엔 제 스스로가 ‘배우 신도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신이 생겼으면 해요.”
약한 체력과 정신력을 붙잡고 쉬지 않고 달리기. 신인 신도현이 세운 지난해 목표였다. 기해년(己亥年) 세운 새 목표는 나이에 걸맞은 멋을 가지는 것이다. 남들이 숲만 보고 걸을 때 숲으로 가는 그 방법 자체에 매력을 느낀 배우는 살랑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 오늘도 잘 영글어가는 중이다. “올해는 제가 한 살 나이가 든 만큼 멋이 새로 들었으면 좋겠어요. ‘무조건 열심히 일하자’ 하며 몰아붙이기보단 여유를 가지고 싶어요. 저 스스로를 성숙시키는 시기가 됐으면 합니다.”(사진출처: VAST엔터테인먼트, KBS2 ‘땐뽀걸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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