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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감독 양윤호 “나는 스스로가 증명할 뿐, 믿어달라고 강요할 수 없다”

2018-06-05 18:50:14

[오은선 기자/사진 조희선 기자] 영화 ‘유리’로 칸에 다녀온 것은 물론 ‘바람의 파이터’, ‘아이리스’ 등 액션 영화로도 많은 사랑을 받은 감독 양윤호. 첫 영화 ‘가변차선’에 대한 만족도를 묻자 “100% 만족하지 못했지만, 10년 후 우연히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곳에서 ‘가변차선’을 다시 본 뒤 ‘그 당시 저 정도의 영화라면 잘 만들었네’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겸손함과 자신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더불어 그의 영화 ‘바람의 파이터’는 지금도 투어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기존 3부작으로 기획한 만큼 후속작을 기대하는 이도 굉장히 많다.

양윤호 감독은 영화감독을 넘어 동국대학교 교수는 물론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기도. 특히 그는 인터뷰 내내 최근 주관한 ‘춘사영화제’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Q 최근 춘사영화제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그렇다. 올해는 춘사영화제를 아시아로 넓혔다. 추후 세계적으로 시스템화할 수 없을까 해서 주관사 선정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내년에는 인도가 출품하기를 바란다. 이번에 인도를 초청했었는데, 일정이 겹쳤다. 인도를 초대하고 싶은 이유는 많다. 우선 내가 어릴 때 인도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보기도 했고, 극장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이번 춘사영화제에 말레이시아 작품이 출품했는데, 그 관계자가 “말레이시아에서는 한국 영화를 쉽게 볼 수 있다”고 하더라.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극장의 다양성이 떨어진 것 같다. 일 년에 한두 개 정도는 인도나 말레이시아 작품을 상영해도 좋을 것 같다. 아쉽다.

또 이번 마켓에서 느낀 점이 있다. ‘사랑’이라는 공통적인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등 모든 영화가 풀어내는 내용이 다르더라. 우리가 다루는 사랑이라는 주제 자체가 다르게 느껴졌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라도 다양한 영화가 상영되는 게 좋을 것 같다”

Q 춘사영화제의 방향과 목표가 궁금하다

“아시아에 봄 영화제가 별로 없다.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아시아의 봄 마켓을 열고 싶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가을을 맡고 있지 않나. 춘사영화제는 서울에서 봄을 맡겠다. 춘사영화제는 본래 민족영화제다. 그런데 아시아로 확장을 하면서 민족보다는 봄 축제, 페스티벌 느낌으로 가고 있다”

Q 춘사영화제만의 심사 방법이 있다면

“춘사영화제는 공정하다. 외압이 전혀 없다. 평론가 등 덕망 있는 분들의 예심으로 각 부문상의 5배수에서 7~8배수까지 뽑는다. 좋은 영화가 거의 다 들어온다. 독립영화도 많다. 본심에서 영화감독들이 심사를 한다. 이번에는 ‘춘사 아시아 어워즈’를 새로 만들었다. 마켓 위주로 평가를 하려고 한다. 봄 마켓을 더욱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아시아인이나 아시아 영화에게 상을 준다”

Q 양윤호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영화감독을 꿈꾸게 된 계기가 있다면

“그냥 커뮤니케이션하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커뮤니케이션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또 영화 ‘오발탄’ 유현목 감독님이 내 스승님이다. 그분에게 예술영화를 많이 배웠다. 그러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김호선 감독님에게는 대중영화에 대한 것을 많이 배운 것 같다”

Q 첫 영화 ‘가변차선’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원래 단편 시나리오를 많이 썼었다. 부조리극을 좋아하기도 하고,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많이 봤다. ‘가변차선’의 큰 모태는 ‘고도를 기다리며’다. 과거에 버스를 타고 고가도로를 지날 때 가변차선을 지우는 인부들을 봤다. 그들이 중앙 차선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고 있더라. 놀랍고 인상 깊었다. 위험한 장소에서 도시락을 먹는 저 사람들이 궁금하다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상을 많이 받은 영화지만, 100% 만족하진 못했다. 그 뒤 10년 정도 지나 우연히 ‘가변차선’을 상영한다는 안내판을 봤다. 단편영화 걸작선으로 상영 중이더라. 10년이 지나고 봤을 때는 ‘그때의 나이에 저 정도면 괜찮았던 것 같다’라고 평가할 수 있게 되더라”

Q 작품 중에 ‘바람의 파이터’가 유명하다

“‘바람의 파이터’는 지금도 투어하자는 이야기가 많다. 원래는 3부작이다. 처음에 정지훈(비)이 촬영을 했었는데, 음반 작업과 겹치면서 주인공을 양동근으로 교체했다. 이 작품은 일단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원작이 있는 영화로, 보는 사람마다 영웅을 다르게 꼽겠지만, 난 최배달이었다. 내가 첫 기획부터 한 것이라 어느 시점에는 모두 마무리를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Q ‘크리미널 마인드’와 ‘아이리스’가 닮았다는 평가가 있더라

“솔직히 말해서 ‘크리미널 마인드’는 내게 후회가 남는 작품이다. 보통 감독은 본편을 찍기 전에 작품의 방향을 확실히 잡는다. 롱텀 드라마의 경우에는 찍어가면서 방향을 확실히 잡고 정리가 끝나는 경우도 있다. 찍기 전에 알면 가장 좋지만, 찍어가면서 초반에 끝내야 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일명 ‘톤’을 잡는 것이다.

‘아이리스’ 때에는 30대 초반까지 관객으로 생각했다. 큰 흥행보다는 마니아층을 생각했다. 카메라의 흔들림, 다양한 구도 등으로 따졌을 때 안방에서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맥시멈으로 중반까지 잡았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그걸 잘 받아주셨다. ‘크리미널 마인드’는 톤을 잡았어야 할 타이밍에 함정에 빠진 것 같다. 한쪽은 ‘아이리스’와 비슷하게 가길 원했고, 다른 쪽은 범죄심리드라마 쪽을 원했다. 그러면서 작가도 혼선을 느꼈다. 정리를 제대로 못 한 것이 조금 치명적이었던 것 같다. 찍어가면서 정리를 했지만 많이 아쉽다. 또 한국식 드라마의 강점은 ‘투 비 컨티뉴’다. 하지만 장르물은 한 회에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사반장’도 한 에피소드로 끝나질 않나. 만일 다시 한다면 한 에피소드마다 끝나는 이야기로 구성할 것 같다”

Q 특히 작품 중에 대중적이지 않은 것이 많은데

“‘가면’의 경우 흥행을 못 할 것으로 생각했다. 공모작에 당선된 작품을 각색한 것인데, 트렌스젠더 이야기다. 대중적이지는 않았다. 이 작품을 하면서 고민도 많이 하고 취재도 많이 했다. 젠더바를 실제로 방문해보기도 하고. 극 중 몇몇 대사나 상황은 촬영이 끝날 때까지 풀기 힘들었다. 무언가 인간에 대한 미묘한 지점들이 참 많았다. 대중적인 재미를 위해 수사로 풀어나갔을 뿐이다. 또 마지막 장소를 찾는 것도 힘들 때도 많다. 촬영하면서 제작부를 전국에 보낸 적도 있다. 괜찮은 곳 있으면 사진 찍어서 보내라고. 촬영이 끝나가는데도 장소를 결정하지 못하던 중 우연히 어떤 초등학교에 갔는데, 그곳으로 마지막 장소를 결정하게 됐다. 촬영 막바지에 결정한 것이다. 마지막 대사 또한 마지막 날 결정했다. 찍고 있으면서도 많은 고민을 하게 한 작품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유리’의 경우도 고생을 많이 했다. 영화가 철학에 도전한다고 만든 영화였다. 불교 이야기에 예수 행보를 따라가는 내용도 있어서 더 복잡했던 것 같다. 영화는 관념 세계다. 관념 세계를 그려내기가 어려웠다. 화재영화 ‘리베라 메’는 기술적인 부분에서 힘들었다. 당시에는 불, 폭파 관련된 기술이 없었다. 이 기술을 직접 만들어가면서, 굉장히 많은 실험을 해가면서 촬영했다. 어떤 배우가 “감독님은 불이 좋으면 오케이다. 연기보다 불을 보시는 것 같다”라고 하기도 했다(웃음). 다치기도 정말 많이 다쳤다. 새벽에도 응급실에 가기도 했다. 화상을 입으면 성형외과를 가야 하더라. 처음에는 응급실로 갔다. 하지만 동아대학교 최효진 교수님이 성형외과 의사들을 불러서 해주시더라. 꼬매기도 하고 바로 치료를 했더니 흉터가 크게 남은 사람이 없었다. 정말 감사했다. 그래서인지 큰 사고는 없었던 것 같다”

Q 목표 및 좌우명이 있다면

프리랜서들은 ‘내가 나를 믿는다’가 어렵다. 내가 나를 믿어도, 남이 나를 믿어주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가 가장 슬프지 않을까 생각한다. 배우들도 그렇고 이런 것들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하지 않나. 하지만 나는 스스로가 증명할 뿐이다. 내가 증명하지 않는 이상 믿어달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프리랜서는 그렇다.

또 많은 고민과 시도를 했는데 나중에 뒤돌아보면 ‘이렇게 되라고 짜여있던 것이었구나’라고 느낀 적이 많다. 그래서 특별히 어떤 것에 많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다 같이 돌아가는 어떤 그림 안에 있는 것이다. 마지막 그림을 보고 나서는 ‘아 이런 것이었구나’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후배들에게도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나 하나 때문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다양한 이유로 결정이 되는 것이다”라고. 그러니 자책할 필요도, 누구를 원망할 이유도 없다.

Q 인상 깊었던 배우가 있다면

양동근이 아역배우 출신이다. ‘짱’때 오디션을 봤다. 그 당시 20살이었던 것 같다. 아역과 어른 사이의 텀이 있었는데, 백댄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양동근은 연기 천재다. 믿을만한 연기자다. ‘바람의 파이터’때 본인도 모르게 메소드 연기법을 알고 있더라. 메소드 연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이미 하고 있었다. 선천적으로 재능도 있고 메소드 연기도 할 수 있는 완벽한 배우다. 아마 연기자로 크게 성공할 것 같다.

또 최민수는 나와 두 작품을 했다. 감독인 내 입장에서는 믿을만한 연기력, 최민수만의 연기 때문에 함께 했던 것 같다. 김혜수도 대학교 때부터 멤버다. 좋은 작품 나오면 캐스팅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다.

과거 대규모 오디션에서 김래원을 뽑은 적이 있다. 정말 높은 점수로 뽑혔다. 그런데 캐스팅 된 배우들을 모아 대본 리딩을 하는데, 김래원이 거의 기성 연기자의 연기를 하더라. 대부분이 신인 연기자였는데, 그 사이에서 너무 튀었다. 말 그대로 ‘와 정말 잘한다’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바꾸게 됐다. 많은 오해가 있을 수도 있는데, 정말 너무 잘해서 바꾸게 됐다. 김래원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Q 추후 계획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판권을 사 온 것이 있어서 진행하고 있다. 그 외 영화 기획단계에서 참여한 작품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방향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북관 대첩에 관한 내용을 보고 있기도 하다.

20대 때부터 많이 무겁게 살아온 것 같다. ‘유리’라는 작품으로 인해 칸도 다녀왔다. 그 후 대중영화를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과거에 무거운 것을 다뤘다면 지금은 점점 대중적인 것을 다룬 것 같다. 장단점이 많은데, 대중영화는 커뮤니케이션이 주다. 불특정다수, 나와 정말 생각이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대중영화다. ‘유리’같은 영화는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나누는 것 같다. 지금 대중영화 쪽에 조금 더 가까운데, 아마 정말 나중에, 그 이후에는 조금 더 무거운 내용, 독립영화 쪽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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