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포없는리뷰] ‘변산’이 청춘 영화면 ‘동주’는 브로맨스다

2018-07-09 11:47:55

[김영재 기자] 7월4일 ‘변산’이 개봉했다. 개봉 후 첫 주말 맞이. 이번 주말 극장을 찾을 관객들의 선택으로 ‘변산’은?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3/5)

영화 ‘변산(감독 이준익)’은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오랜만의 현대극입니다. ‘동주’ ‘박열’은 모두 시대극이었죠. 일제 치하의 한반도를 다뤘고요.

“뼛조각 하나” 일본 땅에 남지 않게 해달라는 독립 투사 송몽규와,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면” 죽음은 삶의 부정이 아니라고 한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를 다루는 감독의 품새는 가히 2005년에 준하는 모양이었습니다. 2005년은 그가 ‘진정한 천만 영화’란 별칭을 가진 역작 ‘왕의 남자’를 세상에 내놓은 때입니다.

감독은 스스로를 “박리다매 감독”이라고 표현하지만, 단언컨대 그처럼 준수와 완벽을 오가며 다작을 하는 감독은 흔치 않습니다. 흔히 ‘대가(大家)’란 호칭으로 유명한 충무로 거장들은 영화를 몹시 완벽하게 찍으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들이 작품을 촬영함으로써 개선될 충무로 인프라가 후엔 선순환으로 돌아올 것이 뻔한데도요.

다작과 거장이 혼합된 이준익 감독의, ‘변산’은 그의 장기인 이종 교배가 또 한 번 발휘된 영화입니다. 전작 ‘즐거운 인생’에서도 감독은 이종 교배를 언급했던 바 있죠. 영화 ‘풀 몬티’의 비루함과 ‘코요테 어글리’의 성공 스토리를 합친 결과물이 ‘즐거운 인생’이었다면, ‘변산’은 젊은 층의 문화 힙합과 고향의 정서 가득한 전라북도 변산면을 교배했어요. 회귀한 주인공의 이야기란 한 줄은 은근 이준익 대표작 ‘라디오 스타’를 떠올리게끔 합니다.

록을 하는 1988년도 ‘가수왕’ 최곤과 불가피하게 고향에 내려간 고시원 래퍼 학수(박정민), 이보다 일치율 높은 평행 이론이 또 있을까 싶죠. 하지만 ‘변산’은 감독이 전작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신작입니다. 또한, 청춘 영화가 아닙니다.

학수는 랩 하는 청춘이에요. 유명 랩 서바이벌 ‘쇼미더머니’에 연속 6회 참가한 그는 재도전을 멈추지 않는 “끈기의 결정체”죠. 아직 재능을 만개하지 못한 사람이 늘 그렇듯 그의 식사는 “유통 기한 넘어간 차가운 햄버거”고 잠자리는 “두 평짜리 고시원”입니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전화 한 통이 옵니다. 변산에 내려간 학수는 “가지가지 하는” 그의 동네에서 잊고 싶은 고향 친구들을 만납니다.

시쳇말 ‘빡센’이 절로 나오는 현실의 배경은 친구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가족이야말로 학수가 변산을 부정하고픈 고향의 ‘흑역사’죠. 예고편에 나온 것처럼 ‘맞서든가 버티든가 꺼지든가’입니다. “컴 온!” 트라우마가 그를 부릅니다.


6월20일 언론시사회에서 느낀 ‘변산’의 첫인상은 물음표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변산’은 홍보 면에서 잘못된 길을 걷고 있어요. 영화의 태그라인은 ‘당신의 청춘은 개완(‘개운’의 전라도 사투리)한가요?’인데, 이 영화는 앞서 언급했듯 청춘 영화가 아니에요. 물론 랩을 껍데기로 하는 학수가 성장과 성숙을 거치는 과정과, 그를 짝사랑한 선미(김고은) 사이의 감정 교류는 이 영화를 청춘 영화로 해석 가능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라디오 스타’나 ‘즐거운 인생’이 어디 주인공의 세대로 지칭되는 영화던가요. 물론 ‘청춘 영화’는 장르화 된 부문이지만 젊은 세대가 떼로 나온다고 무조건 ‘청춘 영화’라고 지칭하는 데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준익 감독 역시 제작보고회, 언론시사회, 여러 인터뷰에서 ‘변산’과 청춘의 연관을 거부했어요. 젊은 층이 우리나라 7080세대의 음악을 함께 즐겼으면 하는 바람에서 ‘음악 3부작(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곳에)’을 만들었다고 강조한 것과는 다른 모양새입니다. 그는 “걷어내야 할 프레임”이란 강한 표현을 사용했고, 실제로 청춘을 걷어내면 ‘변산’은 다른 면의 영화입니다.

‘변산’의 주인공은 청춘이자 과거를 등진 사내입니다. 후자에 집중해야 돼요. 그 앞에 등장하는 첫사랑 미경(신현빈), 악연 용대(고준)와 원준(김준한), 짝사랑 선미 등은 가족으로 인한 그의 트라우마를 부추기거나 치유하는 일종의 장애물 혹은 그 반대죠.

‘동주’와 ‘변산’이 묵직하되 결국 그 시대 사람의 단면만을 비춰야 했다면, ‘변산’은 가볍지만 보다 입체감 있게 등장인물을 그려내 보는 맛을 더합니다. 배우는 자신의 신에서 사력을 다한다는 이준익 감독의 말처럼 박정민, 김고은을 비롯한 젊은 배우들은 모두가 제 몫을 다해요. 극장은 시쳇말로 빵빵 터지고요.

언론시사회서 이렇게 많은 웃음이 나오는 영화는 오랜만이에요. 동일 신에서 여러 번 터지는 웃음을 제외하고 시사회서 ‘변산’은 총 스물세 번의 웃음을 불러 모았습니다. 물론 실소도 포함해서요. 절반은 사투리가 만들어낸 웃음이고, 절반은 욕이 불러온 웃음이고, 그 나머지는 상황이 빚어낸 웃음입니다. 거북한 웃음이 아니란 점이 ‘변산’의 강점입니다.

‘충무로 블루칩’ 배우 박정민이 연기하는 학수의 랩은 젊은 관객이 고향의 정서에 물들 수 있게 하는 ‘입구’입니다. 래퍼 영화를 떠올릴 때 가장 흔히 생각나는 ‘루즈 유어셀프(Lost Yourself)’ 같은 킬링 트랙은 없어요. 왜냐하면 박정민은 에미넴이 아니니까요.

래퍼 도끼가 ‘쇼미더머니’ 2차까지 갈 실력이라고 평한 박정민의 랩은 스토리텔링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더불어 학수가 부르는 랩은 절반 정도가 삽입곡 형식으로 사용돼 관객이 랩에 집중하기보다 그가 맞닥뜨린 상황에 집중하게끔 합니다. 한국말로 부르는 랩인데도 자막이 있어요. 덕분에 록 세대가 랩에 집중할 수 있는 다른 ‘입구’가 마련됐습니다.

‘박열’이 청춘 영화라면 ‘동주’는 브로맨스 영화예요. 지역 ‘변산’과 청춘의 ‘힙합’을 교배하면서까지 만든 첫 번째 ‘입구’와, 학수의 랩에 자막을 달면서까지 만든 두 번째 ‘입구’가 그 이유고요. 세대를 아우르려는 감독의 노력은 ‘소재는 트라우마 주제는 청춘도 꼰대도 결국은 하나’란 것을 위한 디딤판입니다.

갯벌 신이 나와요. 청춘에 방점을 찍은 이는 주인공들이 왜 갯벌에서 저 짓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테고, 다르게 이해한 이는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을 겁니다. 영화관에서 전자를 경험한 기자와 부디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랍니다.(사진제공: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