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뷰] ‘죄 많은 소녀’ 전여빈, 괴물로 남아라

2018-09-25 14:01:25

[김영재 기자 / 사진 김치윤 기자] 9월13일 개봉작 ‘죄 많은 소녀’ 영희 役

영희(전여빈)의 일상은 평범했다. 생리 때문에 양호실에서 쉬는 것도, 딸이 무슨 꼴을 당하든 “처신 똑바로 하고 다녀” 하는 무심한 아빠와 함께 사는 것도, “안 좋은 생각을 전염시킨다고” 오해 받는 것도 그저 2학년 7반 이영희가 겪어야 할 통과 의례로 다가왔다.

하지만 친구 한솔(고원희), 경민(전소니)과 공연을 본 어젯밤 이후 일상은 악몽이 됐다. 담임 선생님(서현우)은 교무실로 그를 불러 경민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말하라며 “솔직”을 강요하고, 김 형사(유재명)는 한솔의 일방적 진술에 기초해 그를 가해자로 가리킨다. 경민과 “공감대가 없”다고 진술한 친구들은 값싼 정의감에 불타 영희에게 폭력을 가하기까지 한다. 일상은 무너지고, 영희는 세상이 그에게 지운 죄를 조금이라도 덜고 싶을 뿐이다.

분노 등 행복의 정반대 감정만 표현해야 하는 영희 역은, 영화 ‘죄 많은 소녀(감독 김의석)’의 전체다. 관객은 그가 죄 없음을 몸으로 외치는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 영화를 보셨던 분들은 (이번 캐스팅을) 아주 반대하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전여빈이 말한 그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그는 신인 배우 이서영 역을 연기했다. “저, 두 분 중에 나이가 어느 분이 많으시죠?”란 대사로 극중 문소리의 심기를 건드린 전여빈의 연기는 눈여겨볼 신인 배우의 등장을 알리는 일종의 팡파르였다. 하지만 서영과 영희는 물과 기름의 관계. 그럼에도 전여빈은 영희를 희망했다. “이 역할을 감내하는 게 아주 어려울 일이 될 거란 생각은 있었지만,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해낼 수 있다. 해내고 싶다’란 자신감이 있었어요. 배우로서 영희를 감당하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컸습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죄 많은 소녀’로 신인 배우에게 수여되는 ‘올해의 배우상’을 품에 안은 그는, 수상 인터뷰를 통해 “곁에 없는 아빠나 할머니가 많이 생각이 나는 작품이었다. 같이 계시진 않지만 고맙다는 말씀을 굉장히 전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상실’은 전여빈과 ‘죄 많은 소녀’를 잇는 단어다. 11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전여빈은 상실과 진실 사이서 숨구멍을 내놓고 있는 영희에 몰입한 그때를 회상하며 상실에 관한 그의 생각을 꺼냈다. 그리고 가족을 잃은 경험을 꺼내며, 그래서 “함께하는 순간에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경히 여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가 영희를 연기한 데는 스물아홉까지 도전이 통하지 않으면 배우를 내려놓겠다는 각오뿐 아니라 타인을 상실한 경험 역시 중히 작용했다. 찢긴 감정을 더 찢어가며 연기한 배우의 공(功)으로 관객은 그 상실을 은막 바깥에서 안전히 체험한다.


-지금까지 ‘죄 많은 소녀’는 몇 번 정도 봤나요?

“6번 봤어요. 볼 때마다 꽂히는 초점이 달라져요. 계속 달라요. 계속 다르고, 마지막 봤던 건 언론시사회 날 저녁에 작게 특별 시사가 있었어요. 괜찮을 줄 알았거든요? 되게 덤덤할 줄 알았어요. 근데 아프더라고요. 영화 보는데 마음이 아파서 그날 제일 제대로 못 봤어요. 오히려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아프게 느껴졌어요.”

-김의석 감독은 공감을 캐스팅 이유로 밝혔습니다.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까 그 마음을 더 이해하고 싶었어요. 같이 마음이 아팠고요. 제가 감독님의 이야기에 공감을 했다고 생각해주신 게 저는 오히려 감사하더라고요. 사실 감독님께 ‘저를 왜 영희로 뽑으셨어요?’ 이런 질문을 했던 적은 없어요. 그 질문 자체가 되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오디션에서 저도 마음 속 이야기를 허물었어요. 그때 나눈 모든 대화가 우리가 영화를 함께할 수 있게 된 이유라고 생각했어요.”

이야기는 허구지만, ‘죄 많은 소녀’의 토대는 실제 친구를 상실한 김의석 감독의 기억이다. 때문에 작품은 특이한 방식으로 오디션이 진행됐다. 1차 오디션은 조감독과 카메라가 함께하는 카메라 테스트였다. 하지만 2차 오디션부터 감독은 오디션 참가자에게 특기를 묻는 대신 본인을 소개했다. “원래 오디션이라고 하면 여러 질문을 던지잖아요. 그런데 감독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이 책을 왜 썼는지 얘기해주셨어요. 덕분에 영화가 보다 진실하게 다가왔고, 영화의 무게를 점점 자연스럽게 체화했던 거 같아요.”

-‘여배우는 오늘도’ ‘예술의 목적’의 전여빈과 ‘죄 많은 소녀’의 전여빈은 확실히 다릅니다. ‘죄 많은 소녀’ 출연을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오만한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배우로서의 저에게 한계를 안 두려고 굉장히 노력해왔어요. 작품에 참여하는 건 캐릭터를 구축하고 만나는 능동적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배우가 수동적 입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당시 제게 다가온 그 작품을, 그 인물을, 그 캐릭터를 구현해내기 위해선 그 연기가 최선이었어요.”

전여빈은 타인의 의견에 관해, 그것이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건 아니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건 내면의 소리란다. 그럼에도 날카로운 지적을 해주는 주위 좋은 사람들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균형을 강조했다.

이날 그는 대답의 정석을 보여줬다.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좌우를 갖춘 것. 이유는 ‘죄 많은 소녀’의 무게였다. “GV 때 감독님과 약간 장난치면서 얘기했는데, 관객 분들 눈에는 그게 원망처럼 보이셨나 봐요. 그 이후로 우리 영화나 감독님께서 오해 받는 상황에 조심하게 됐어요. 영화가 너무 무거우니까 표현을 잘못하면 그게 오해로 이어지더라고요.”

-촬영 전에는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오디션 했을 때도 세네 시간을 얘기했는데, 영희를 맡겨주시고 난 다음에는 또 얼마나 많은 대화의 시간이 있었겠어요. 시나리오를 한 장 한 장 뜯어가면서, 대사를 하나하나 읊어가면서 하루에 대여섯 시간을 같이 읽었던 기억이 나요. ‘이 한 줄은 그리움이다’ ‘이 한 줄은 원망이다’ ‘이 한 줄은 찾지 못해서 헤매는 기억이다’. 디테일하게 얘기를 나눴어요.”

-김의석 감독과의 유대감이 커 보입니다.

“저희는 진짜를 만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어요. 영화를 찍는 그 하루하루가 한계를 뛰어넘는 일의 연속이었죠. 찢긴 감정을 더 찢어야 했어요. 감독님은 최고의 동료였어요. 영화 들어가기 전부터 ‘여빈 씨 이 영화 들어가게 되면 너무 힘들 거예요. 너무 많이 외로울 거예요. 하지만 우리 동료 모두가 여빈 씨가 해낼 수 있길 누구보다 원할 거고 누구보다 응원할 거예요. 그러니까 혼자란 생각 절대 하지 말아요’ 해주셨어요.”

-언론시사회에서 출연진이 ‘치열(熾烈)’이란 단어를 다수 언급했어요.

“모두가 그 마음 자세였어요. 감독님께서 왜 이 얘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등을 스태프 한 분 한 분께 다 얘기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스태프 분들도 저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어떤 부정의 기억을 갖고 계셨을 거예요. 그래서 현장이 굉장히 비장했어요. 분위기 조장이 아니라 저마다 사명이 있었어요. 서영화 선배님 말씀처럼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하는 것만이 서로를 가장 위하는 현장이었죠. 누구도 누구를 구해줄 수 없는 현장이었어요.”

-연기 소감을 밝히며 “우리는 인간을 바라보려고 했다”고 말했어요.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은 상실이라는 것을 ‘죄 많은 소녀’를 통해 알아차렸어요. 상실의 파장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우리는 그것을 직선적으로 얘기하고 있지 않아요. 애써 에둘러 얘기하죠. ‘음, 우리는 왜 아픔을 피하는 걸까? 아픈 그대로를 얘기하면 될 텐데. 더 편해질 수 있을 텐데’란 생각을 했어요. 사람이 사는 데 희망은 중요해요. 동력이죠. 근데 아픔을 애써 숨기기 위한 포장지 같은 희망은 오히려 사람을 좀먹는 희망이에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을 잊게 하죠.”

그가 생각하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감정이다. 배우의 대답에는 머릿속에서 계산한 대답 대신 가슴에서 꺼낸 나름의 결론이 묻어났다. “감정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봐요. ‘감정은 너무나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는데 왜 우리는 웃는 얼굴만 보려고 할까?’란 의문이 생겼어요. 진짜 얼굴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인정해야 하고요.”


-연기를 스물아홉까지 도전하고 성과가 없으면 다른 일을 좇으려 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당신에게 ‘죄 많은 소녀’는 기적 같은 작품일 듯해요.

“네, 맞아요. 벼랑 끝에서 만난 기적적인 작품이었어요. 이 작품 다음에 운도 좋았어요. 스물여덟에서 아홉으로 넘어갈 때 이 영화를 마무리 짓고, 그 다음에 갑자기 드라마 쪽에서 연락이 와서 오디션을 보고, 광고계 쪽에서 연락이 와서 광고도 하고, 개봉 예정이 없는 장편 독립 영화 세 편이 개봉하고, 예상에 없는 일이 계속 일어났어요. 정점이라고 해야 할까요? ‘부국제(부산국제영화제)’에 우리 영화가 나갔고, ‘뉴 커런츠상’과 ‘올해의 배우상’을 받았고. 다시 도약해도 된다는 용기를 주는 기회였어요, ‘죄 많은 소녀’는.”

‘죄 많은 소녀’ 전까지 전여빈은 무대가 없는 배우였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만, 대중은 그를 모르는 상황이 지속됐다. 사실 처음부터 슈퍼 스타를 꿈꾼 건 아니었다. 배우를 꿈꾼 스물한 살 전여빈은 “단번에 배우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다. 무수한 노력과 시간을 쌓아야 “배우로 발현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다.

“정말로 동기 친구들한테 스물일곱 살 때쯤에는 배우 일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애들이 너무 늦은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그때쯤 되면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연기를 펼칠 수 있을 거라고 답했던 기억이 나요.”

그럼 준비 기간으로 6년을 염두에 둔 건지 묻자 그는 “6년? 잘 모르겠다. 계속 과정일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답했다. “아직도 연기가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들의 인터뷰를 봤어요. 근데 그게 척이 아니라 진심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런 낮은 마음이 표현하는 사람에겐 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자신감도 물론 필요하죠. 근데 자기 자신을 부족하다고 여기는 그 마음도 되게 중요한 거 같아요. 상반된 마음이지만 그 마음들이 조화를 이룰 때 조금 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란 희미한 확신이 있었어요.”

그는 단어 ‘방향’을 사용할 때 “방향? 방향? 방향이라는 말이 웃기지만”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낮은 톤을 가진 그의 목소리가, 적확한 단어를 찾지 못해 잠시 헤매는 화자를 만났을 때 발생하는 일상성은 무명 전여빈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시곗바늘을 되돌렸다. “힘들진 않았어요. 다만 스태프 할 때 선배님들 지켜보면서 담이 왔을 뿐이에요. 맨날 한의원 가고 그랬어요. 목을 돌리지 못했죠. 무대를 보면 애간장이 탔어요.”

그가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무대를 선망한 그때 그 마음이 무의식중에 발현되고 있었다. “‘나도 저 무대에 같이 서고 싶다’란 마음이었어요. 저 사람이 무대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부럽던지요. 애가 끓으니까 울면서 일한 적도 있어요. 저도 말하고 싶고 몸짓하고 싶은데 하지 못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저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어요.”

-배우는 왜 되고 싶었어요?

“입시에 굉장히 매달렸어요. 하지만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어요. 가학적으로 저 스스로를 입시란 틀에 몰아붙인 시간이었어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잃어버렸던 거 같아요. 감정이라든가, 그냥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것을 아예 멈춰버렸던 거 같아요. 연기를 시작하면서 세상에 서는 방법, 세상을 만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했어요. 세상을 느끼는 방법,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요. 그러니까 어느 순간 제가 존재하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나 여기 있어.’ 한마디로 그거였던 거 같아요. ‘나도 여기 살아 있어.’”

원래 그의 꿈은 의사였다. 돌아가신 할머니와 생전에 나눈 약속이자 그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공부에 매진한 전여빈은 안타깝게도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그가 배우에 대한 사명감을 갖게 된 계기다. 전부터 마음을 치유해주는 사람을 꿈꾼 전여빈은 그가 받은 위안을 발판으로 그 역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동시에 그 자신도 치유할 수 있는 길을 꿈꿨다. “어렸을 때 생각이에요. 남을 치유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물론 누군가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다면 더없는 영광일 거예요. 지금은 거대한 말을 지향하기보단, 보탬이 되는 이야기에 함께하고 싶어요.”

-치유는 거대하고 추상적이죠. 연기 역시 추상적입니다. 배우 기주봉 씨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건넸다고 들었어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리딩 하려고 모인 자리였어요. 차 한 잔 하고 걷는 도중에 선배님께 ‘연극 스태프만 했지 배우로 제대로 선 기억이 없습니다. 저도 하고 싶습니다’ 말씀드렸죠. ‘어 여빈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어’ 해주셨어요. 그 말이 큰 힘이 됐어요. 가벼운 말씀이 아니라 진짜 염원이 담긴 말씀이었어요.”

-길에 놓인 전여빈의 뜻은 뭐죠?

“뜻은 음, 사실 배우라는 명사 안에 저라는 사람을 가두고 싶지 않아요. 예전에 동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요. 동사가 중요한 거 같아요. 그 사람의 지금이 중요한 거 같아서 저의 뜻은 동사예요. 삶을 잘 가꾸는 것, 주변 사람과 제가 만나는 환경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아나가는 것이 제 뜻이에요.”

-개인적인 질문을 해볼게요. 관객 입장에서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요?

“(웃음) 두루두루 좋아해요. 요즘 마음이 많이 간 작품은 에드워드 양 작품이었어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재밌게 봤고, ‘하나 그리고 둘’도 좋게 봤어요. 폴 토마스 앤더슨 ‘매그놀리아’도 되게 좋아해요. 밝은 것도 좋아해요. 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죠. ‘신과함께’도 재밌게 봤어요. 근데 앞에 말한 작품이 마음에 많이 남았던 거 같아요. 어떤 이상한 연대감이 생기더라고요. 사람을 향한 시선을 놓지 않는 감독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고요. 좋아할 수 있는 영화를 많이 만났으면 해요. 멋진 영화나 드라마가 세상엔 많으니까요.”

-드라마 ‘라이브’에 출연했어요. 그토록 소원한 노희경 작가를 만났습니다.

“네, 맞아요. 굉장히 기뻤어요.”

-기분이 어때요? 말한 대로 이뤄지는 현재를 걷는 기분이요.

“기분이 좋아요. 사실 입시에 크게 실패하고 난 다음부터 소망하는 것이 꼭 이뤄져야 한다는 마음을 안 가졌어요. 집착하지 않았죠. ‘안 되면 뭐 어때?’가 컸어요. 그 목표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인생을 지나가니까요. 그 인생 자체를 느끼려고 사람이 조금 변했어요. 기뻐할 것은 기뻐하지만, 그것 또한 지나가는 거니까 잘 보내주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지금 다가오는 것을 느끼죠. 계속 감각이, 감각이 살아있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다른 상업극에도 진출한 ‘전여빈’이 작은 역으로 소비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아요. 소비되는 배우는 없는 거 같아요. 저는 소비가 아니라고 봐요. 물론 독립 영화 주연 배우가 상업 영화 가서 작은 역할을 하는 게 소비로 느껴질 수 있어요. 근데 그 사람은 배우로서 연기하고 있는 거예요. 나름의 사정과 생각이 있을 거고요. 저는 배우니까 소비라는 단어를 절대 쓰지 않기로 했어요.”


언론시사회서 전여빈은 떨었다. 출연진과 스태프를 대신해 ‘죄 많은 소녀’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주는 부담감이 이유였다. 다행히 그는 이날 인터뷰에선 떠는 것 없이 그의 말을 충실히 전했다. 배우 전여빈을 사물에 비유해 달라는 부탁에는 “물이 되고 싶다”고 답했고, 외모 언급에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얼굴이다. 배우로서 딱이다”며 크게 웃었다.

어떤 용기에 담기냐가 형태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물(水)은 배우가 희망할 수 있는 최고의 사물이다. “못생겼다”, “평범하다”, “너무 좋은 얼굴이다”, “매력적이다”, “예쁘다” 등이 혼재된 그의 얼굴은 배우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얼굴이다.

그는 “인생 자체가 추상이다. 계속 질문해야 하고 꿈꿔야 한다. 추상적인 것에 대해서 계속 궁금해 하고 답변을 말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추상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렇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물처럼, 누구든 될 수 있는 얼굴을 지닌 배우 전여빈은 앞으로 연기라는 추상에 어떤 질문을 던질까. 무엇을 꿈꿀까.

세상은 그를 향해 ‘괴물 신인’을 부르짖는다. 호들갑이다. 그게 맞는다면 이미 세상은 아수라장이지 않겠는가. 수없이 많은 ‘괴물 신인’이 등장해왔다. 하지만 세상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많은 수의 ‘괴물 신인’은 그들의 괴물성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과연 전여빈은 괴물로서 세상을 뒤흔들 수 있을까. 인생도 추상이고, 연기도 추상이다. 추상 위에 추상으로 탑을 쌓아올려 ‘괴물 배우’로 진화할 미래의 전여빈을 보고 싶다.

영화 ‘죄 많은 소녀’는 친구의 죽음에 가해자로 몰려 스스로 학교를 떠났던 영희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15세 관람가. 총제작비 3억 원.

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