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J기자의 설] 2018 韓 영화 결산..대마불사? 영화계 지켜낸 중저예산

2018-12-28 11:37:01

[김영재 기자] 이번 설(舌)은 2018년 한국 영화 톺아보기로 이야기를 꾸려본다. 겨울에서 다시 겨울까지. 1년 중 총 네 번의 성수기가 오가는 동안 한국 영화는 겨울의 실패, 여름의 성공, 가을의 실패를 경험했다. ‘신과함께’ 시리즈, 두툼한 허리 그리고 신인 여배우의 발견은 2018년 한국 영화가 그 면을 세울 수 있는 배경이다.

레드 오션(Red Ocean)은 한국 영화 시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1년 중 최다 관객이 몰리는 8월 전체 관객수는 ‘명량’ 신드롬에 힘입은 지난 2014년 3222만 명을 기록한 이래 3000만 명 선을 유지 중이다. 성장이 멈춘 건 1년 전체도 마찬가지. 2018년 전체 관객수(11월 말 기준)는 1억 9400만 명으로, 이는 지난해 대비 99%에 불과하다.

잔치가 끝났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미래가 없어진 작금의 한국 영화 시장은, 철저한 각오가 없다면 ‘이익 창출’마저 어려운 치열한 경쟁에 돌입한 지 오래다.

그러나 2018년 한국 영화계의 ‘철저한’ 도전은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승부수 ‘신과함께’ 시리즈가 전부였다. 만약 ‘신과함께’ 시리즈가 없었다면 2018년 박스오피스 상위 5편은 모두 할리우드 영화의 차지가 됐을 터. 지난해 개봉한 ‘신과함께-죄와 벌’은 2018년 초까지 그 기세를 이어가 587만 명의 관객을 모았고, 후속작 ‘신과함께-인과 연’은 총 1227만 4846명의 관객을 모아 2017년 천만 영화 ‘택시운전사’를 8만 8519명 차이로 제쳤다.

역대 흥행 2위와 12위에 그 이름을 올린 ‘신과함께’ 시리즈의, 제작자 원동연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신과함께’를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로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납득이 가는 신파 ‘그것만이 내 세상’의 깜짝 흥행(341만 9259명) 후 설 연휴를 맞아 대형 배급사는 자사가 제공/배급을 맡은 영화를 일제히 극장가에 내걸었다.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골든슬럼버’ ‘염력’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가 그것.

하지만 한국형 프랜차이즈의 정석을 걸어온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244만 4136명)은 판타지 요소와 코미디 장르의 상충, 기존 주인공을 배제한 여주인공의 강조 등이 단점으로 지적받으며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염력’(99만 104명)은 ‘돼지의 왕’ ‘사이비’로 대한민국 사회의 이면을 파고드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 연상호 감독의 두 번째 실사 영화였다. 그러나 정유미의 악역 변신이 눈길을 끌었을 뿐, ‘용산 참사’가 떠오르는 사회 비판극은 우연히 초능력을 손에 얻는 아빠 염동력자의 활극과 어우러지지 못했다. ‘골든슬럼버’(138만 7508명),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41만 6303명) 역시 관객이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 비판으로 흥행에 실패했다.

이에 2월 전체 관객수는 전년 대비 2,4% 증가한 데 반해, 한국 영화 관객수는 전년 대비 21.5% 감소한 699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흥행 상위 10위권에 한국 영화 6편이 올랐음에도 할리우드가 충무로를 압도하는 구도가 발생한 것.


여름 성수기에는 다섯 편의 한국 영화가 개봉해 관객의 선택을 기다렸다.

마수걸이는 ‘인랑’(89만 8945명)의 몫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인랑’을 원작으로 하는 김지운 감독의 ‘인랑’은 여름 성수기의 불쏘시개는커녕, ‘본격 SF 얼굴 대잔치’란 별칭으로 조리돌림 당했다. 감독은 개인의 집단화에 집중해 탈 집단 사고를 주인공 임중경(강동원)에게 투영했으나, 집단화에 무너진 개인의 자유주의를 말하고자 한 그 의도가 너무 깊숙이 숨겨진 것이 패착이었다. 줄다리기에 실패한 ‘인랑’은, 미래 재평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인랑’으로 인한 공백은 할리우드의 침공을 불렀다. 할리우드 자본으로 한국 스태프가 만든 묘한 영화 ‘마녀’와, 충무로 기대주 박정민-김고은이 뭉친 ‘변산’이 분전했으나 7월 한국 영화 관객수는 전년 대비 147만 명 감소한 539만 명을 기록했다.

반면 8월은 양상이 달랐다. 1위 ‘신과함께-인과 연’부터, 2위 ‘공작’(497만 4516명), 4위 ‘목격자’(252만 4720명), 6위 ‘너의 결혼식’(282만 969명), 8위 ‘극장판 헬로카봇: 백악기 시대’(87만 9400명)까지 박스오피스 상위 10편 중 5편에 한국 영화가 이름을 올렸다. 8월 한국 영화는 전년 대비 3.8% 증가한 2220만 명을 모았고 점유율은 73.4%를 기록했다.

신파를 덜어내고 저승 삼차사 강림(하정우), 해원맥(주지훈), 덕춘(김향기)의 전사에 집중한 ‘신과함께-인과 연’은 1편보다 200만 명을 덜 모았으나 ‘본편보다 나은 속편’이란 호평을 받았다. ‘군도: 민란의 시대’ 이후 절치부심한 윤종빈 감독의 ‘공작’은 1990년대 북파 공작원의 실화를 다룬 작품. 국군정보사령부 출신 장교가 북파 공작원 사실을 숨긴 채 김정일을 만났다는 실화의 각색이 ‘구강 액션’ 연출을 만났다. 남북 평화 분위기가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 ‘공작’은 27만 명 차이로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안시성’(544만 186명), ‘명당’(208만 7476명), ‘협상’(196만 7721명), ‘물괴’(72만 3622명), ‘원더풀 고스트’(45만 374명). 9월24일부터 26일까지 이어진 2018년 추석 연휴를 겨냥한 한국 영화다. 9월 전체 관객수는 전년 대비 409만 명 증가한 1681만 명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3만 명 차이로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은 ‘안시성’만이 흥행에 성공했을 뿐 나머지 네 편은 모두 흥행에 실패해 제로섬 게임의 폐해를 극명히 보여줬다. 특히 ‘협상’은 주인공의 전사, 멋진 총격 신, 반전 등의 흥행 공식이 아주 뻔히 쌓여가는 전개로 흥행 배우 손예진과 현빈을 기용했음에도 줄곧 박스오피스 중위권에 머무는 수모를 당했다. 더불어 ‘물괴’는 대중과 평단의 혹평 속에 상영관이 대폭 축소되는 비운을 겪었다.

반면 추석 연휴 사흘 동안 전체 관객수는 전년 추석 연휴 대비 3.3% 증가, 이번 연휴가 여느 때와 같은 성수기였음을 보여줬다. 특히 이번 추석 연휴 한국 영화 관객수는 역대 최고치(2008년 이후 추석 연휴 3일간 관객수 기준)를 경신했다.


12월에는 총 세 편의 한국 영화가 관객을 기다린다. 16일에는 ‘써니’ 등을 연출한 강형철 감독의 신작 ‘스윙키즈’, 송강호의 연기 변신이 화제를 모은 ‘마약왕’이 개봉했다. 26일에는 하정우가 ‘더 테러 라이브’ 김병우 감독과 재회한 ‘PMC: 더 벙커’가 개봉했다.

먼저 ‘스윙키즈’는 음악을 잘 다루는 감독의 신작답게 탭 댄스를 소재로 내세웠다. 1951년 거제 포로 수용소를 배경으로 우연히 탭 댄스에 빠져든 북한군 로기수(도경수)와 댄스단 스윙키즈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도경수의 탭 댄스 도전 등이 화제를 모았으나 홍보와 동떨어진 과격한 결말 등이 흥행 걸림돌로 지적 받는 중. 그럼에도 비틀즈, 데이비드 보위, 정수라 등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절묘한 선곡은 ‘스윙키즈’만의 장점이다.

‘마약왕’은 마약을 수출하면 애국이 되는 1970년대가 배경인 작품. ‘내부자들’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최고 흥행을 기록한 우민호 감독은 “송강호가 없었다면 ‘마약왕’도 없었을 것”이란 신뢰로 두 사람의 시너지를 기대하게 했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하다. 매끄럽지 못한 편집, 송강호의 열연만 돋보일 뿐 나머지 유명 배우는 그 존재감이 희석된 연출 등을 이유로 개봉 첫 주 토요일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외화 ‘아쿠아맨’에게 넘겨줬다.

‘PMC: 더 벙커’는 관객이 고대해온 하정우의 액션 영화. 오직 돈을 보고 움직이는 글로벌 군사 기업 용병 에이헵(하정우)이 DMZ 지하 30m 비밀 벙커에서 북한 엘리트 의사 윤지의(이선균)를 만나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난해 겨울 개봉한 ‘강철비’를 잇는 또 하나의 남북(南北) 등장 영화다. 김병우 감독은 “남북 관계는 이 영화의 배경 중 하나의 장치다. ‘설명하려고 애 쓰는 순간 영화가 산으로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이 영화는 지하 벙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서울 시내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다. 때문에 현실과 다르더라도 극을 보는 데 무리는 없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인내가 있어야 더 맛있는 과실을 딸 수 있다는 것을 알린 ‘리틀 포레스트’(150만 6269명), 색다른 호러 영화 ‘곤지암’(267만 5575명), 순제작비 기준 약 4배 차이 골리앗 ‘공작’을 쓰러뜨린 다윗 ‘목격자’, 달콤하나 끝은 쌉싸름한 어른의 사랑을 다룬 ‘너의 결혼식’, 피해자는 있지만 신고도 시체도 수사도 없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암수 살인을 본격적으로 다룬 ‘암수살인’(378만 9321명), 아동 학대에 대한 다수의 관심을 환기시킨 ‘미쓰백’(72만 2182명), 한정된 공간이 배우의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역설이 인상적인 ‘완벽한 타인’(528만 1117명), ‘범죄도시’가 떠오르는 마동석 주연의 맨몸 액션 ‘성난황소’(159만 3085명) 등이 중저예산 영화의 한계에 굴하지 않고 흥행을 일궈냈다.

‘창궐’(159만 9290명), ‘인랑’ 등 100억 원 이상이 투입된 고예산 영화가 흥행에 참패했음에도 한국 영화계는 허리가 충실한 덕에 점유율(1월~11월) 51.4%를 기록했다.


한편, 10년이 지나도록 여성 감독의 숫자가 전체 10%를 넘지 못하는 한계에도 불구, 2018년 기준 총 22편의 여성 감독 연출작 중 4편에 불과한 상업 영화 ‘리틀 포레스트’, ‘덕구’(31만 5663명), ‘탐정: 리턴즈’(315만 2872명), ‘미쓰백’은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얻어 여성 영화인의 약진을 예고했다. 2017년의 경우 여성 감독이 연출한 상업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은 흥행작은 ‘부라더’와 ‘해빙’뿐이었다.

또한, ‘죄 많은 소녀’ 전여빈, ‘마녀’ 김다미, ‘버닝’ 전종서의 등장은 그간 남성에 한정되거나 최적화된 서사에 피로감을 느껴온 관객이 변화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했다.

가해자로 몰린 억울함을 몸 안의 장기가 모두 으스러지는 고통으로 호소한 영희 역의 전여빈은 그의 한계를 시험한 끝에 제19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신인여자연기자상을 받았다. 김다미는 몇 개월에 걸친 오디션 끝에 박훈정 감독이 선발한 ‘마녀’의 적임자다. 기억을 잃은 목장 소녀 자윤이, 일명 ‘웃음의 반전’을 통해 그 순수성을 벗었을 때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평단의 반응은 뜨겁다. 첫 주연작으로 김다미는 제39회 청룡영화상, 제55회 대종상영화제, 제27회 부일영화상 등에서 신인상을 싹쓸이 중이다.

이창동 감독 약 8년 만의 신작 ‘버닝’에서 종수(유아인)을 미궁에 빠뜨리는 해미를 연기한 전종서 역시 주목이 필요하다. 거장이 그려낸 이 젊은이의 이야기에서 배우는 재즈 선율이 어우러진 낙조를 바라보며 해미의 자유로운 영혼을 눈에 보이듯 그려냈다. 그는 제71회 칸영화제 월드 프리미어를 앞두고 열린 ‘버닝’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앞으로 당당히 보여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당찬 신인의 당당한 포부다.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NEW, 롯데엔터테인먼트,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이앤씨미디어그룹, 리틀빅픽쳐스, CGV아트하우스)

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