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포없는리뷰] ‘PMC’, 한풍을 만난 한국 영화

2019-01-06 23:35:13

[김영재 기자] 12월26일 ‘PMC’가 개봉했다.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3/5)

냉전 시기 북한에서 만든 남침용 땅굴, 이곳에 남북(南北) 비밀 회담 장소가 있다. “랩터 16. 회담장 내 열둘 확인. 신원 확인 시작하겠다”. 예상치 못한 낯선 이의 등장에 블랙 리저드 캡틴 에이헵(하정우)의 어조가 빨라진다. “맥, 이거 우리가 아는 사람 맞죠?”

주치의를 대동한 북한 최고 지도자 킹(선욱현)의 출현. 에이헵은 작전을 변경해 수배자 킹을 작전 목표로 삼고, 비무장지대(DMZ) 지하엔 전례 없는 총성이 공기를 메운다.

“저들은 적이 아니라 사냥감이야.” 사상자 없이 사냥감을 포획한 사냥꾼 에이헵은 의기양양하다. 그에게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다. 작전에 성공했고, 곧 돈까지 손에 쥘 예정.

그러나 킹과 함께 포로로 잡힌 의사 윤지의(이선균)의 한마디에 상황은 반전된다. “우리가 여길 제 발로 온 거 같네?” 정전, 총격전, 그리고 북한이 핵공격을 선포했다는 뉴스까지. 용병 에이헵의 운수 좋은 날은 금세 인력거꾼 김첨지의 ‘운수 좋은 날’로 탈색된다.

배우 하정우를 보면 과거 충무로를 주름잡은 한석규가 떠오른다. 앞서 한석규는 ‘은행나무 침대’ ‘초록물고기’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쉬리’ 등으로 일명 ‘흥행보증수표’로 자리매김했다. 하정우의 행보는 한석규 못지않다. ‘암살’ ‘신과함께-죄와 벌’ ‘신과함께-인과 연’으로 ‘천만 흥행’을 세 번이나 이뤄냈고, 그를 스타덤에 올린 ‘추격자’ 이후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터널’ ‘아가씨’ 등 다수작에서 출중한 연기력까지 입증했다.

이번엔 글로벌 군사 기업(PMC) 용병이다. 영화 ‘PMC: 더 벙커(감독 김병우/이하 PMC)’에서 하정우는 캡틴 에이헵을 연기했다. 한 쇼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된 배우의 대본이 아직 선하다. 빈 곳 하나 없이 깨알 같은 글씨로 고칠 점 등을 빼곡히 적어낸 대본은 대중이 그의 성실성과 열정을 인지하도록 도왔다. 이번에도 노력하는 배우는 하루에 4~5시간씩 한 주의 닷새를 영어 대사 익히는 데 사용했다. 그 전엔 한 달이 넘는 미국 체류 기간 등을 가졌다. 타투, 카고 팬츠, 투 블럭 헤어 등 겉모습도 크랭크인 전까지 고민했다.

게다가 ‘PMC’는 영화 ‘더 테러 라이브’를 만든 김병우 감독 두 번째 연출작. 흥행을 이어온 성실한 배우와, 데뷔작으로 그 연출력을 인정받은 감독의 재회에 큰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하정우는 ‘PMC’서 그의 두 발과 입을 봉인 당한 모양새다. 에이헵은 벙커 폭격으로 인해 부상을 입는다. 이에 그는 귀에 심어진 폭탄 때문에 라디오 부스를 떠나지 못한 ‘더 테러 라이브’ 윤영화 앵커처럼 회담장 스위트룸에 발이 묶인다. 움직일 수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거동이 불편한 에이헵은 윤지의 등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자처한다.

19일 언론시사회에서 하정우는 “설정 자체가 그렇다”고 했지만, 하정우의 액션물을 기대한 일부 관객에게 ‘PMC’는 ‘더 테러 라이브’를 한 번 더 본 듯한 기시감만 안긴다. 좋은 기시감은 아니다. 윤영화가 기득권층에게 복수하고자 기폭 장치를 누른 방송사 건물이 종(縱)이라면 남침 땅굴로부터 건설된 벙커는 횡(橫)이다. 더불어 ‘PMC’는 회담실, 스위트룸, 복도, 의무실 등 ‘더 테러 라이브’ 때보다 많은 공간을 오간다. 하지만 스위트룸에서 ‘망부석’처럼 원군을 기다리는 에이헵의 존재만이 감독과 배우의 멋진 과거를 회상하게 도울 뿐, 나머지 공간은 연출자의 장기가 드러나지 못한 채 무개성한 흐름에 휩쓸려 사라진다.

무엇보다 대사 ‘말 맛’이 좋은 하정우가 외국 용병과 영어로 소통한다는 건 ‘PMC’의 또 다른 아쉬움이다. 액션 영화의 서사를 따라가야 하는 불리한 조건에 영어 대사를 그대로 옮겨야 하는 두 번째 핸디캡까지 겹친 것. 입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음에 불편을 느낀 배우처럼, 관객 역시 하정우의 밀고 당기는 리듬감 있는 말을 구경하지 못해 불편을 느낀다.

분명 14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PMC’는 고작 3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 ‘더 테러 라이브’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다. ‘옴짝달싹 못하는 주인공은 귀에 부탁된 폭탄을 풀고 테러범을 잡아낼 수 있을까?’와 ‘부상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주인공이 드론으로 다른 주인공이 탈출하도록 돕는다’ 사이엔 큰 차이가 있기 때문. 할리우드 영화에 한국적 감성이 묻어난 것도 문제다. 극 중 에이헵은 두 남자에게 각각 “미안해”와 “고맙다”를 전한다. 에이헵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에서 관객은 등장인물을 너무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한 과욕을 만난다.


감독은 작품 군데군데 생명을 언급한다. 등장인물은 생(生)을 입 밖으로 꺼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먼저 에이헵은 “내일이면 아빠가” 되는 인물. 곧 아이가 나올 듯한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우리 아기 태어나면 그 일 그만두는 거다?”란 물음으로 배우자의 죽음을 걱정한다. 자녀가 태어난다는 기쁨에 들뜬 남자가 생사가 걸린 전쟁터 앞에서 아내의 출산 소식을 듣는 셈. “각자도생”을 언급하는 그는 일련의 사고를 겪으며 그 생각을 변화시킨다.

에이헵 반대편에는 윤지의가 있다. 심폐소생술 신으로 극에 본격 등장하는 그는, “사람 살리는 데 뭐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네?”란 말로 구명(救命)의 당연성을 알린다.

불편한 신은 극 중반에 있다. 종반부 각성과 대비되는 신이다. 에이헵은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다른 이의 목숨을 강제로 취한다. 물론 그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감독은 그가 행동 전 고민을 거듭하는 신과 의무병을 요청하는 대사를 부여한다. 그러나 에이헵이 나쁜 수단으로 좋은 목적을 이루는 데 골몰했다는 잘못은 변함이 없다. 살아서 나가고 싶다는 사람에게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까 조금만 참으라고 하는 그의 모습은 악마다.

‘PMC’는 대자본이 투입된 상업 영화다. 그 안에서 주인공이 악마성을 내보인다는 건 감독과 배급사의 용기 있는 결정이다. 하지만 그 결정이 의미를 부여 받기 위해선 결말이 지금과 달랐어야 했다. 영화가 끝나기 전 카메라는 주인공을 비춘다. 그리고 그는 씩 웃음 짓는다. 어떤 의미의 웃음이었을까? ‘PMC’의 메시지는 짧고 단순하다. ‘혼자만 살겠다는 이기주의는 곧 더 큰 화를 부른다.’ 각자도생의 반대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일 테다. 그렇지만 감독은 그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 잘못을 범했다. 이기주의가 화를 부르는 비극을 그리는 대신, 이기주의에서 이타주의로 변신한 주인공의 난데없는 브로맨스를 그린 것이다.

‘더 테러 라이브’에 이어 또 한 번 음악 감독을 맡은, 프로듀서 이준오의 음악은 ‘PMC’의 유산이다. 귀를 때리는 기괴하고 신경질적인 음악은 등장인물이 내면에서 느끼는 고통을 보다 실체적이고 더 과장되게 전달한다. 마지막 액션 신에서도 음악은 큰 역할을 한다. 음악에 홀린 관객은 스스로 이성의 빗장을 풀고 활강에 몸을 맡긴다.

한편, 영화 ‘PMC: 더 벙커’는 개봉일부터 28일까지 사흘간 약 50만 명을 동원했다. 더불어 30일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누적 관객수 101만 3952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주말 박스오피스 1위는 외화의 몫이었다. ‘아쿠아맨’이 주말 양일간 66만 9523명을 기록한 것에 반해 ‘PMC: 더 벙커’는 개봉 첫 주임에도 48만 7723명을 모으는 데 그친 것.

‘마약왕’ ‘스윙키즈’에 이어 상대적 흥행 적신호가 켜진 ‘PMC: 더 벙커’까지. 연말 극장가에 몰아닥친 흥행 한풍(寒風)에 한국 영화가 추위에 떨고 있다.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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