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J기자의 설] 순하디순한 ‘82년생 김지영’ (스포일러 포함/리뷰)

2019-11-07 10:00:52

|원작보다 순해진 ‘김지영’…과연 한발 더 나아간 걸까?
|보면 볼수록 육아와 출산에 대한 고민만 깊어 가는


[김영재 기자] 간혹 생경한 경우를 마주친다. 이를 테면 배우가 “내가 연기할 것은 시나리오”라며 원작을 안 봤다고 실토하는 때가 바로 그 경우다. 나무라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연기법이고, 그들을 존중한다. 하지만 못내 아쉽다.

반면,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에는 그 아쉬움이 없다. ‘베스트셀러 원작’이라는 소개대로 이 영화는 조남주 작가가 쓴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원작을 소품 취급하는 영화는 그 원작이 안 유명한 경우가 대개다. 아이디어만 가져다 쓴 것이다. 하지만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출간된 지 3년여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유명한 동명 소설이 원작이고, 그 책과의 연관은 이 작품이 헤쳐 나가야 할 고된 관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이 오간다. “원작을 읽고 어떤 감상을 가졌습니까?” 기자는 언론시사회에서 배우 공유와 정유미에게 다음을 질문했다. “캐스팅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용기 있는 배우’였습니다.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나, 그 원작이 젠더 갈등을 논함에 있어 늘 필수로 등장하는 작품이라서입니다. 출연 이유가 궁금합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파괴력은 주인공이 “1982년 4월 1일, 서울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키 50센티미터, 몸무게 2.9킬로그램으로 태어”난 가장 보통의 여성인 것에서 출발한다. 책에 따르면 1982년생 여성 중 가장 많은 이름이 ‘김지영’이라 하니 여성의 스피커가 되겠다는 의지가 시작부터 한껏 묻어나는 책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노골적이다.

책 겉면에는 다음의 홍보 문구가 적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그 공포, 피로, 당황, 놀람,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 대체 어떤 문제가 “김지영 씨”를 괴롭힌 것일까. 책에는 약 스물다섯 개의 어려움이 등장한다.

남동생만 위하는 집안 분위기, 남자 짝꿍의 장난, 남학생부터 번호 매기기, 남학생에게만 허용된 면티와 운동화, 바바리맨 잡고도 근신 처분 받은 여자애들, 여학생 희롱에 거리낌 없는 일부 남성들(오빠·선생님·업주·손님), 남학생에게만 직책 맡기는 동아리, 이별한 여자를 “씹다 버린 껌”에 비유하는 남자, 여성보다 남성을 선호하는 기업 풍토, 마수걸이로 여자 손님을 기피하는 할아버지 택시 기사, 거래처 상사가 신체 접촉을 가하면 어떻게 반응할 거냐고 묻는 남자 면접관 및 외모 충고에 19금 유머까지 서슴지 않는 50대 남자 부장, 취업 문제로 시무룩한 딸에게 “얌전히 있다 시집이나 가” 하는 아버지, 처가살이 하는 남편은 칭찬하나 시집살이 하는 아내는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여직원이 커피 심부름 등 귀찮고 자잘한 일을 도맡는 직장 분위기,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회사 핵심 부서에 누락된 여직원들, 현저한 연봉 차 탓에 지영보다 더 많은 돈을 저축한 남편, 아이에게 어머니 성(姓)과 본(本)을 물려줄 수 있게 됐다지만 아직 그것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회, 아이 없는 이유를 꼭 여자의 결함으로 귀결시키는 어른들, 아이 낳기를 가볍게 여기는 남편, 임신했으니 늦게 출근해도 되겠다며 부러워하는 남자 동기 및 “배불러까지 지하철 타고 돈 벌러 다니는 사람이 애는 어쩌자고 낳”냐고 질타하는 20대 여성, “남편이 일하고 아내가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 등으로 인해 “능력이 없거나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여자가 일을 그만두게 되는 현실,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 한다며 살림의 “난이도를 후려 깎”는 할아버지 의사, 화장실에 몰카 설치한 20대 보안 요원과 그 사진을 공유한 남자 직원들 및 왜 자신을 성범죄자로 만드냐며 따지는 유포자들과 해당 사건을 “조용히 덮으려고만 하”는 남자 대표, 여성은 퇴직 후 5년 넘게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할 뿐더러 “재취업하더라도 직종과 고용 형태 면에서 모두 하향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 커피 마시는 애엄마에게 “맘충”이라며 손가락질하는 남자 직장인들.

무엇이 눈에 띄는가. 단연 ‘남자’다. 그것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또 그가 가족이든 남이든 지영은 세상 모든 남자로부터 차별을 받는다. 여성학자 김고연주는 이를 “여성 혐오”라 칭한다. 하지만 그 여성 혐오가 남자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문제다. 이쯤 되면 주인공이 어떤 난관을 겪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된다. 대한민국 여자의 어려움을 환기시키겠다는 원래 의도는 남자를 향한 날선 시선으로 변질, 오히려 ‘남성 혐오’만을 양산한다.

《아이들은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남자에 대한 환멸과 두려움을 가슴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아 갔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6) 中》.


영화는 어떨까. 우선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기 힘들다’는 기조는 그대로다. 어린 은영(이나윤)이 지도에 스티커를 붙인다. “나는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남들은 잘 모르는 데뿐이다. 동생 지영(김하연)이 묻는다. “왜 이렇게 모르는 데 가려고 해?” 은영이 답한다. “거긴 한국 사람들이 없잖아.” 원작을 고대로 옮겼다. “시집살이보다 더 힘든 게 처가살이야!”도 버젓하고, 남자 동기보다 진급이 느린 소위 ‘유리 천장’도 등장한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원작의 ‘복붙’인 줄 알았는데, 그 어조가 살짝 누그러진 모양새다. 본인이 첫 손님이냐고 묻는 여자 손님에게 상인은 “요새 누가 그런 걸 신경 써요?”라는 말로 넉살을 떤다. 은영(공민정)은 지영에게 그가 교대에 간 이유는 IMF 때문이라며 “양보”를 꺼낸다. 원작에서 은영은 그 양보를 하기에 앞서 “애 키우면서 다니기에 그만한 직장 없다”는 엄마의 말에 왜 벌써부터 여자의 잣대로 직업을 결정해야 하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영화에서는 그 부분이 삭제됐다. ‘여자라서’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모양새다.

세탁기를 요술 방망이쯤으로 보던 할아버지 의사도 사라졌다. 정확히는 성(性)이 자취를 감췄다. 지영은 “의사 선생님”이 그에게 집안일은 기계가 다 해주는데 왜 아프냐고 물었다며 속상해 한다. 원작의 결은 유지하고 대신 남녀 대립은 숨기는 선택이다.

이 밖에 지영이 어린 시절에 겪은 차별에 대해 고작 “혜택” 한 단어로 갈음하는 점, ‘남자는 바보고 여자는 우월하다’ 식의 묘사가 대거 순화된 점, 같은 여성인 전 직장 동료 혜수(이봉련)조차 지영의 집안일을 ‘일’로 생각하지 않는 점, 여자가 출산과 육아로 겪어야 하는 고통 및 그로 인한 비관이 상당수 삭제된 점 등이 원작과의 차이점이다.

후반에는 책에 없는 ‘화해와 공존’까지 삽입해 지금 관객이 한 편의 문학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업극 하나를 마주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던가. 오빠들 뒷바라지에 꿈을 이루지 못한 지영 엄마 미숙(김미경)을 위한 신이 눈길을 끈다. 원작에는 없던 신이다. 때문에 장면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을 터. 그럼에도 그 부담을 이겨내고 어머니 세대의 마르지 않는 눈물에 손수건을 건네는 모습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구세대까지 잘 아우른 것. 덕분에 벚꽃과 함박눈으로 연계된 여성의 연대에도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은 결국 ‘육아’에 대한 영화다. 바깥을 멍하니 바라보는 지영을 딸 아영(류아영)이 “엄마” 하고 부르는 도입부조차 그것을 위한 포석이다. 남편 대현(공유)의 산후우울증 언급에 지영은 괜찮다면서 그의 증상을 분명히 말한다. “가끔 옛날 생각 많이 나고 해질 무렵이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기는 하는데 자주 그런 건 아니야.”

집에 아이를 맡기고 회사 생활에 전념하는 김 팀장(박성연)은 상사로부터 엄마가 안 키운 애들은 반항기가 심하다는 모욕을 듣는다. “애는 엄마가 옆에 딱 있어야 돼”라는 말은 아직 사회에 만연한 ‘주부는 여자의 몫’이 얼마나 부끄러운가를 주지시킨다. 그 다음 대목이 재밌다. 사회에서는 팀장님 소리 듣지만 집에서는 좋은 엄마·아내·딸이 아니라고 하는 김 팀장에게 지영은 “그래도 멋있다”며, “나도 팀장님처럼 결혼하고 아이 낳더라도 잘해 나갈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지영은 그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한다.

물론 육아는 여자만의 몫이 아니다. ‘멋진 사회인’과 ‘좋은 엄마’ 모두를 손에 쥐고 싶은 마음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 ‘투잡’의 결과가 양쪽 모두 기대 이하라면? 왜 우리는 ‘육아도 일도 포기 못 한다’를 답이라 여길까.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가게를 여느라 그 투잡에 힘겨워하는 이가 있다면 십중팔구는 하나만 하라고 그를 다그칠 테다.

물론 직장과 육아의 양립이 불가능한 작금을 탓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변화는 눈 깜짝할 사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지 않나. 육아 휴직 하나 썼다고 승진에서 밀리는 이 미개한 현실을 우리는 살아 내야 한다. 변화를 촉구하되, 그 과실은 다음 세대 것이다.

마침 책에서 작가는 모성애의 신성시를 터부시한다. 마찬가지로 왜 우리는 육아(출산)에 필요 이상의 신성을 부여할까. 그 무엇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인데 말이다. 딩크족에게 개인주의를 열거하는 사회라면, 모름지기 사회를 위해 아이를 낳으라는 사람에게는 그 이기주의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사회다.

지영 엄마와 대현 엄마(김미경)의 말다툼에서 드러나는 ‘왜 육아는 꼭 여자의 몫인가?’에도 생각이 필요하다. 여성 진영은 묻는다. 같이 대학 나왔는데 왜 육아는 여성이 전담하냐고. 물론 두 사람이 번갈아 육아 휴직을 쓰는 것이 정답일 터. 하지만 남자 쪽이 연봉이 더 높고, 지영도 그것을 알고 있다. “내가 나가서 오빠만큼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번 돈 아영이 어린이집이랑 시터 월급 주고 나면 모자랄 수도 있어.” 여자라서 양육까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남녀 중 더 경제성이 높은 이가 사회 활동에 뛰어드는 것이다.

또 남자가 여자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 데는 단순히 그가 남자라서가 아니라 업계·경력·능력 등 여러 사항이 복합적으로 작용된 경우가 다수다.

한편, 지영은 ‘여자’ 정신과 의사에게 다음을 토로한다. “그런데 또 어떤 때는 어딘가 갇혀 있는 기분이 들어요. 이 벽을 돌면 출구가 나올 거 같은데 다시 벽이고 다른 길로 가도 벽이고. 처음부터 출구가 없었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면 화가 나기도 하고요.”

만일 지영이 그만의 출구(글쓰기)―책은 지영이 끝내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끝난다.―를 찾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낙오자일까? 김도영 감독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빌릴 수밖에 없는 지영이 마지막에는 본인의 생각을 말하는 성장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지영의 타개책은 제도권 내 일반적 대책이 아니다. 오직 주인공만 거머쥘 수 있는 왕관이다. 이 같은 이유로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지영의 성장극이기보다 ‘여성은 일반적 방법으로는 현실을 타파할 수 없다’를 알리는 잔혹극에 가깝다.

전화가 울린다. 주말 객석이 울음바다가 됐는데, 시사회 때는 반응이 어땠냐는 전화다. 뼈대는 유지한 채 더 나은 결과물을 내놓았다는 해석이 뒤따를 테다. 첫 관객인 조남주 작가 역시 “한발 더 나아간 이야기”라는 과찬을 안겼단다. 그렇지만 남성을 적(敵)으로 대하는 그 태도에도 불구, 원작은 현실의 적나라한 묘사가 매력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 너무 순하기만 하다. 원작을 재조립한 뒤 약간의 각색―특히 남편 대현 역은 각색뿐 아니라 공유에 힘입어 새 인물이 됐다.―만 곁들인,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모방작이랄까.

과연 이 영화로 어떤 토론의 장이 열릴 수 있을까. 영화만큼은 성(性)을 깨부수고 새 장을 열기를 바랐건만, 자본의 성(城)은 그것 말고 다른 것을 원한 듯하다.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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