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어떤 노래 히트시켰나?

2014-05-15 00:48:45
1958년 8월 29일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아홉 형제 중 일곱째로 태어난 마이클 잭슨. 그가 지난 6월 25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그는 수 많은 노래들을 불렀고 전세계를 열광케 했다. 과연 그는 얼마나 많은 노래를 불렀고 또 히트시켰을까?

마이클 잭슨은 어릴 적부터 음악신동이었다. 그가 처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6살 때. 형제들로 구성된 ‘잭슨 파이브’의 당당한 리드 싱어로서였다. 그는 벌써 이때 7장의 플래티넘 싱글을 기록했다. 플래티넘 싱글이란 100만 장 이상의 앨범이 팔렸다는 의미. 당시 마이클 잭슨이 불렀던 노래 중에 우리에게 친숙한 노래로는 밴(Ben)과 마리아(Maria) 등이 있다.

1970년대 들어 잭슨은 솔로로 전향한다. 1971년 갓 투 비 데어(Got to be there)로 솔로활동을 시작한 그는 1979년 오프 더 월(Off the wall)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글로벌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 음반은 1천 만장 이상이 팔렸다.

그를 황제의 자리에 등극하게 한 노래는 1982년에 부른 노래 드릴러(Thriller)였다. 앨범에 수록된 9곡 중 무려 7곡이 빌보드 차트 10위 안 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 노래로 그는 전 세계적인 스타에 오르게 된다. 음반 드릴러의 판매고는 4천 1백만 장.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특히 ‘빌리 진’이라는 노래에 발맞춰 춤추었던 이른바 ‘문 워크’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댄스의 역사에도 한 획을 긋는 계기가 되었다. 1987년도에 불렀던 ‘배드’ 역시 2천 만 1백만 장을 판매하였다.

1990년대 들어서도 그의 인기행진은 멈출 줄 몰랐다. 1991년도에 발매한 데인저러스 또한 2천 1백만 장을 판매했다.

그러나 그의 한계는 여기까지였을까?

1993년 어린이 성적학대 사건으로 무려 2,330만 달러의 합의금을 물어주고 난 마이클 잭슨의 음악세계는 이후 주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구촌 음악세계에 기여한 그의 흔적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최연소의 리드 보컬(5세)이었고 최연소 빌보드 차트 1위(11세)를 기록했으며 흑인 최초로 롤링스톤지 표지에 등장(13세) 했다.

1984년에 발매한 드릴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당시 1억 4백 만장)이 되었으며 동시에 1주일 내 100만 장의 음반 판매 기록과 37주간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라는 대기록을 작성한다.

그는 가수로 활약을 하는 동안 그래미 어워드 19회, 빌보드 어워드 40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22회, 기네스 월드 레코즈 13회, MTV어워드 13회, 월드 뮤직 어워드 15회, BRIT어워드 7회 수상 등 모두 200회에 가까운 메이저 음악상 수상을 기록했다. 이 또한 당시의 상식을 벗어나는 대 기록이었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그러나 댄스 곡으로만 안주하지는 않았다. 1995년 발매된 앨범 히스토리(History)에 수록된 유 아 낫 어론(You are not alone)은 서정적인 멜로디와 보이스로 큰 인기를 모았으며 감성적인 목소리가 어우러진 힐 더 월드(Heal the World) 또한 수 많은 팬들이 사랑했던 노래였다.

그는 또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 잼(Jam), 블랙 앤 화이트 (Black and White), '리멤버 더 타임(Remember the time), 윌 유 비 데어(Will you be there) 등의 노래를 통해 아직도 우리 가슴 속에 살아있다.

한경닷컴 bnt뉴스 연예팀 star@bn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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