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G기자의 사만모①] 지현정, 도약을 위한 백스테이지로

2020-07-03 15:13:54

[김강유 기자 / 사진 bnt포토그래퍼 윤호준] 사.만.모. 서울패션위크 취재 10년 차 기자가 ‘사심으로 만난 모델’들을 소개한다.

몸매 관리 등의 이유로 요가를 수련하는 모델들이 많지만, 패션모델과 요가는 얼핏 상반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패션모델이 수많은 조명과 관객들 앞에서 당당한 캣워크를 선보이는 ‘화려하고 동적인’ 이미지라면, 요가 수련은 나만을 위한 매트 위에서 잔잔한 음악과 함께 명상하는 ‘차분하고 정적인’ 이미지다. 화려함에 지친 심신을 요가 수련을 통해 정화시키고자 함일까, 야노 시호, 장윤주, 한혜진 등 많은 톱모델들도 여러 방송을 통해 요가 사랑을 내비쳐왔다.

그리고 요가를 좀 더 전문적으로 수련하며 요가 강사로의 활동을 시작한 톱모델 지현정이 있다. 지현정은 지난달 끌로에(CHLOE), 코스(COS) 등의 글로벌 브랜드들과 함께 SNS를 통한 요가 클래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끌로에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외출이 제한되어버린 상황 속에서, 다양한 국가의 셀러브리티들과 함께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들을 선보이며 소통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의 콘텐츠로 지현정과 요가를 선택한 것. 이번 지현정의 요가 클래스는 끌로에가 지금껏 선보인 콘텐츠들 중에도 한 손가락에 꼽을 만큼 상위권의 시청수를 기록했다.

가장 대중적인 대한민국의 톱모델로 장윤주(80년생, 97데뷔), 송경아(80년생, 97데뷔), 한혜진(83년생, 99데뷔)을 꼽지만,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서 동시대를 함께한 또래 모델 김원경(81년생, 99데뷔), 이현이(83년생, 05데뷔), 박세라(85년생, 04데뷔) 등도 패션계에선 손꼽히는 톱모델들이다. 그리고 이번 [사만모]의 주인공 지현정(86년생, 02데뷔) 역시 이들과 함께 성장한 톱모델 중 하나다.


SNS는 인터뷰를 준비하는 인터뷰어에게 아주 중요한 정보처다. 잘 정돈된 인터뷰이의 SNS는 그의 최근 소식은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나 생활패턴까지도 읽어낼 수 있다. 기자 역시 지현정의 인터뷰를 준비하며 그의 SNS를 여러 차례 ‘정독’했다. 상당수의 질문이 그의 SNS 정보를 기반으로 했다.

인터뷰 며칠 전, 지현정의 SNS에는 단발로 변신한 그의 모습이 올라왔다. 갑작스런 변신에 놀란 것은 잠시였고, 그 순간 인터뷰의 첫 질문이 정해졌다. 그는 가벼운 농담으로 그 첫 질문의 답을 시작했다.

“심경의 변화?(웃음) 농담이구요(웃음). 긴 머리를 되게 오래 유지를 했었는데, 제가 원래는 머리 스타일 바꾸는 걸 되게 좋아해요. 탈색을 한 적도 있고, 숏컷을 한 적도 있고, 정말 많은 머리를 했었는데, 긴 머리를 오래 유지하다가 좀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사회적인 분위기도 좀 어둡고 그러다보니까, 한편으로는 ‘머리를 가볍게 다듬고 마음도 좀 가벼워지자’라는 그런 다짐 같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가볍게 건네 온 농담의 꼬투리를 잡아봤다. 그는 올해 초, 발리에서 요가 수련을 하고 왔다. 해외에 있는 동안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아, 심경의 변화요?(웃음) 그런 건 있었어요, 사실 요가 수련하는데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발리에서 엄청 더웠는데 머리도 너무 길어서. 요즘에 수련을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어서 그게 머리 스타일 바꾸는데 영향을 많이 미치긴 한 것 같아요.”

SNS에서도 읽어냈던 부분이지만, 확실히 최근 지현정의 생활패턴은 ‘요가’로 집중되고 있었다.

“네, 맞아요. 아무래도 수련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그런 것도 있고, 새로 시작한 일에 대한 설렘 같은 것도 있잖아요. 배워야 되는 것들도 많고. 그래서 점점 요가 위주의 라이프 스타일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인터뷰는 특별하게 세 가지 파트로 질문을 나눠서 진행, 전체 기사를 2면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면에는 ‘패션모델 지현정’에 대한 인터뷰를, 두 번째 면에는 ‘요가강사 지현정’과 ‘서른다섯 지현정’에 대한 이야기를 싣는다.


#이제_곧_데뷔_20년차 ‘패션모델 지현정’

패션모델에게 런웨이는 단순히 일을 하는 ‘워킹로드’가 아니다. 지현정은 데뷔 이후 매 시즌 꾸준히 런웨이에 오르고 있다. 어느덧 대선배가 되어버린 그의 런웨이는 어떤 느낌일까.

“사실 두 가지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내가 후배들의 자리를 뺏고 있나’라는 생각도 들 때가 있어요. 후배들한테 많은 기회를 줘야 되는데 그 사이에서 이렇게 나이 많은 언니가 모델로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미안한 마음도 사실은 조금 있죠.”

“그리고 한편으로는 정반대로 계속 하고 싶다.(웃음) 계속 하고 싶다는 마음에, 매번 패션위크 때마다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그냥 이제는 내 자리를 내줘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아직도 내 자리가 굳건하게 있는 건지. 그것에 대한 고민은 사실 저 뿐만 아니라, 어떤 영역에서든 활동을 길게 한 분들이면 다 그런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패션쇼를) 할 때 마다 그런 고민이 좀 있죠.”

지현정이 속해있는 에스팀의 김소연 대표는 KBS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출연하며 평소 볼 수 없었던 패션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지현정도 김소연 대표의 다이어트를 돕기 위한 요가 선생님으로 출연했던 바, 방송 비하인드에 대한 질문을 건넸다.

“모델들끼리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저희가 방송 경험이 그렇게 많지는 않잖아요. 게다가 모델들이 생각보다 되게 털털하거든요. 그러니까 혹시나 방송에 나가서 말실수는 하지 않을까, 우리 대표님 얼굴에 먹칠을 하진 않을까, 그런 고민을 저희들끼리 술 한 잔 하면서 했었어요.(웃음)”

“그런 고민이 있었는데, 사실 실제 촬영할 때는 그냥 진짜 저희 놀듯이 찍은 것 같아요. 원래 저희 성격대로 했고, 그리고 진짜 그렇게 다 나올지는 몰랐고.(웃음) 끝나고 나서는 진이 다 빠졌죠.(웃음) 방송 후엔 주변에서 왜 이렇게 오랜만에 나왔냐고 하더라고요. 사실 저도 되게 하고 싶었어요.(웃음)”

‘되게 하고 싶었다’는 그에게 욕심나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도 있는지 묻자 짧은 대답과 함께 유쾌한 웃음소리가 돌아왔다. “예능은 근데, 제가 그렇게 생각보다 재밌는 성격은 아니어가지고. 왜 웃어, 왜 웃어,(웃음)” -지현정의 대답에,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에스팀 정지혜 피디가 웃음을 터트렸다-

한바탕 웃음소리가 지나고 질문을 이어갔다. 예능이 아니더라도 해보고 싶은 방송이 있어 보였다.

“뷰티 프로그램은 좀 해보고 싶어요. 예전에 어릴 때 간간히 출연했던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관리하는 법도 잘 몰랐고, 누가 해주는 데로 수동적으로 했던 편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나이가 좀 생기니까 저만의 루틴이나 팁 같은 것들을 얘기 하고 싶은데 말할 때가 없어서.(웃음) 뷰티 쪽은, 아무래도 제가 요가도 하고 있으니까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을 것 같아요, 예능보다는. 웃기는 데는 자신이 없어요. 너무 대단한 분들도 많으시잖아요. 앉아서 얘기하는 건 괜찮은데 갑자기 일어나서 춤추고 이런 건 잘 못할 것 같아요.(웃음)”


지현정은 SNS를 통해 계속 집에만 있게 되면서 메이크업을 잘 안한다고 밝혔었다. 뷰티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말한 그에게 메이크업을 하지 않을 때 관리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메이크업을 안 할 때 제일 중요한 건 안색이에요. 제가 30대잖아요, 20대 때는 안색 걱정 안 해도 되거든요.(웃음) 밤새도록 술을 마셔도 입술도 핑크색이고 안색도 좋으니까. 근데 나이가 먹을수록 메이크업은 내려놓고 싶고, 내려놓자니 내 얼굴 안색은 엉망이고.(웃음) 그래서 먹는 거랑 몸을 움직이는 것에 포커스를 많이 두는 것 같아요. 식단관리와 규칙적인 습관을 통해 안색을 관리하는 거죠.”

“사실 제가 메이크업을 안 하는 이유도, 너무 메이크업을 많이 해서 청개구리 같은 마음도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 안색을 제일 잘 볼 수 있는 게 맨 얼굴이니까 매번 건강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일부러 안 하는 것도 있어요. 메이크업을 매일 해버리면 심리적으로 메이크업한 모습이 자기인 줄 알아요. 어릴 때는 저도 사실 그렇게 느꼈었고. 그런데 그렇게 되면 맨 얼굴로 거울을 보고 싶지 않더라고요. 제 스스로가 싫어지기도 하고. 그래서 맨 얼굴을 고수하고, 또 그렇게 관리하는 것 같아요.”

식단을 통해 안색을 관리한다는, 톱모델이자 요가강사 지현정의 식단 관리는 어떤 스타일일까.

“저는 사실 여러 가지로 많이 해봤는데, 사람들을 만날 때는 식단 관리가 안돼요. 그건 아예 포기했어요.(웃음) 사람들 만나면 그냥 먹고 싶은 거 양껏 다 먹고, 혼자 있을 때 식단 관리를 하는 편이에요. 왜냐면 오히려 집에서 안 좋게 먹는 경우가 되게 많거든요. 저는 혼자 있을 때는 조금씩 자주 먹으면서 소화 기능을 높이고 컨디션도 높이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채식을 하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탄수화물을 섭취한다면 저탄수화물, 감자나 고구마 같은 거 먹으려고 하는 편이죠. 이게 사실 되게 간편하고 심플해요. 배달 음식 시키면 그걸 씻어서 버리기까지가 제 일이잖아요. 그런데 감자, 고구마, 계란 삶아놓으면 다 먹어버리면 되니까.(웃음) 계란 껍질 밖에 안 나와요.(웃음)”

“세 끼에서 다섯 끼 정도로 나눠서 먹는 편이에요. 우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공복으로 요가 수련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간단하게 쉐이크를 만들어 먹어요. 귀찮기도 하고 소화도 잘 되니까요. 아침은 그렇게 아보카도나 바나나 같은 걸로 쉐이크 만들어서 10시 쯤 먹어요. 그리고 12시에서 1시 정도에 점심을 가볍게 먹고, 3~4시 정도에 과일 같은 간단한 간식을 먹어요. 저녁은 6시에서 7시 정도에 조금 일찍, 헤비하게 먹어요.”

“7시 이후에 먹는 건 웬만하면 피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제가 예전에 위궤양을 되게 심하게 앓았었어요. 그 이후로 위가 안 좋아져서 꾸준히 규칙적인 식생활이나 규칙적인 운동을 계속 병행하려고 하는 편이죠. 사람이 한번 아파보면 정신을 차린다고,(웃음) 그렇게 되더라고요.”

“발리에 갔을 때 아유르베다 식이라고, 인도의 한의학 같은 대체의학이 있더라고요. 사람마다 체질이 진짜 다른데, 아유르베다 식으로 제 체질을 분석해보면 저는 공복을 길게 유지하면 안 되는 체질이에요. 어지럽고 살도 더 빠지고 힘들어져요. 그래서 저녁을 최대한 헤비하게 먹으라는 권고를 받았어요.”

지현정의 식단에 대한 루틴은 완성 단계에 있는 듯 했다. 식단 컨트롤에 대한 스트레스는 많이 없는 편인 걸까.

“사실 제가 옛날부터 자극적인 음식을 진짜 좋아해요. 이렇게 얘기하면 여자들이 싫어할 수도 있는데, 어릴 때는 살이 안 찌는 체질이었어요. 지금은 좀 바뀌었지만.(웃음) 안 찌는 체질이다보니까 ‘난 괜찮아’ 하고 느끼한 거 먹고, 매운 거 먹고, 오만 거 다 먹었더니 아프더라고요.(웃음) 그 후로 바뀌게 됐죠. 지금은 사실 요가하면서 떡볶이, 술, 이런 너무 자극적인 걸 먹으면 다음 날 진짜 몸이 너~무 무겁고, 수련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식습관이 바뀌어가는 것 같아요. 100%는 아니지만.”

식단관리에서 벗어나서 뭐든 먹어도 된다면 지금 바로 먹고 싶은 음식으로 고민 없이 떡볶이를 꼽았다. “저는 매번 떡볶이인 것 같아요, 정말로.(웃음) 떡볶이는, 제가 보기에 90%의 여자들은 좋아해요. 떡볶이 싫어하는 사람 없어요. 구체적으로 치즈떡볶이.(웃음) 아, 치즈떡볶이 너무 좋아요 진짜. 맛있겠다.”


‘패션모델 지현정’에 대한 이야기가 떡볶이까지 왔다. 살짝 옆길로 샌 듯한(?) 인터뷰를 정상궤도로 돌리기 위해 좀 더 프로페셔널한 소재를 꺼냈다.

‘코로나19’로 전반적인 산업들이 어려움에 처한 가운데, 패션산업 역시 이를 피하지 못했다. 패션계의 가장 큰 행사이자 전 세계 바이어들과 프레스들이 집결하는 글로벌 프레젠테이션 행사인 ‘서울패션위크’가 취소된 것. 이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톱모델 중 한명인 한혜진이 전에 없던 디지털 런웨이를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었다. 오랜 기간 준비했던 쇼를 공개하지 못하게 된 디자이너들의 의상을 모아 17시간에 걸친 100벌의 런웨이를 마쳤다.

“집에 TV가 없어서 방송은 못 봤지만 기사랑 (혜진)언니가 인스타그램 올린 거 봤어요. 일단 ‘정말 언니는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옷을 갈아입는 게 생각보다 되게 힘든 일이거든요. 그리고 헤어, 메이크업도 많이 고치더라고요. 진짜 엄청 힘든 건데, 그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100벌을 하겠다는 도전장을 내민 것 자체가 ‘언니가 이래서 성공했구나’ 생각했죠.(웃음) 얼마 전에 어디서 봤는데, 나보다 성공하거나 잘 나가는 사람은, 하기 싫은 일을 나보다 많이 한 사람이라는 거예요.(웃음) 모델들한테 (100벌) 하라고 하면 다 하기 싫다고 할 거예요. 그 하기 싫은 걸 함으로써, 언니는 그 위치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는, 디지털이라는 영역이 엄청 커졌잖아요. 그리고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도 없어진 것처럼 패션쇼 시장이 되게 변화하고 있는데 거기서 언니가 큰 첫 단추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근데 100벌을 시킬까봐 겁나기는 해요.(웃음) ‘한혜진도 했는데 네가?’ 이럴까봐.(웃음) 자리를 잡는다면 효율적으로 바뀌어야 된다고 봅니다.(웃음)”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다음 시즌, 혹은 내년의 ‘패션위크’ 개최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혜진이 그랬듯이 다른 방식의 패션쇼들이 도전적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시도들은 되게 많았어요. (기존 패션쇼에선) 옷을 입고 걷는 걸 했는데, 걷는 게 사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예전에는 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 사람처럼 입고 싶다’라고 영감을 받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는 SNS 같은 것들을 통해서 스틸 이미지를 보거나 움직이는 영상을 볼 수 있잖아요. 심지어 길에서도 최대한 걷는 걸 줄이려고 하는 시대이기도 하고. 이제 ‘걷는 것’에 대한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형태로 재밌는 몸의 움직임을 통해 풀어볼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의 대답을 듣고 있으니 -앞서 그가 고민했듯이- 패션쇼의 영역을 후배들에게 물려준다고 하면, 경력이 충분한 선배들이 과감하고 새로운 도전을 통해 또 다른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인’의 도전과 ‘장인’의 도전은 대중이 받아들이는 느낌도 다를 것이다. ‘장인’의 영역에 들어선 톱모델들의 새로운 역할이지 않을까.

“맞아요. 오히려 대부분 새로운 시도는 신인 모델이랑 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많은데, 말씀하신 것처럼 언니들이 테이프를 끊어 줬을 때 그 파급력도 그렇고, 좋은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실험적인 것에 대해서 벽을 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어릴 때 80살 노인이 되는 것도 찍어봤고, 가면을 쓰고 얼굴이 전혀 안 나오는 화보도 찍어봤고. 그런 건 어떤 선배로서의 책임 같은 것도 느끼는 것 같아요.”

“사실 모델들이 생각보다 기피하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어요. 그런 것에 대해서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를 선배들이 혜진 언니처럼 이렇게 잘 보여주면 그 후로도 많은 발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모델들도 그런 것에 있어서 생각을 깊이 해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연차로 내년이면 ‘패션모델 지현정’은 20년차를 맞는다. 그 동안의 패션모델의 삶을 런웨이로 비교해달라고 부탁했다.

“약간 닮은 점이 있네요. 런웨이에 오르면 탑에 갈 때까지 정면만 보고 가잖아요. 그렇게 탑에 가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뒤에 뒷번으로 나오는 모델이 나왔을 때 저는 그녀한테 바톤터치를 하듯이 뒤돌아서 들어가죠. 사실 사람들은 들어가는 모델들한테는 크게 관심이 없어요. 나오는 모델에게 관심이 있죠. 그게 어떤 어쩔 수 없는 순리긴 하죠. 하지만 프로페셔널한 모델이라면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가 원하는 완벽한 모습을 잃지 않고 백스테이지에 들어갈 때까지 잘 해내는 게 프로페셔널이죠.”

“사실 저도 내려오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탑이 아닌 백스테이지를 향하고 있는 거죠. 평생 모델을 할 수는 없는 거고, 무슨 일을 하던지 정점을 찍는 순간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잘 내려오느냐’도 저한테 책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은퇴를 준비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은퇴는) 안 할 거예요!(웃음)”


지현정에게 런웨이란, “생각보다 별 거 아니”었다. “제가 지금 상황이어서 이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연연해할게 아니라는 생각? 런웨이 자체를 되게 크게 여겼던 것 같아요. 런웨이가 끝나고 나서 남는 것들도 있긴 하지만, 다음 또 런웨이가 있는 거고 또 그 다음 런웨이가 있는 거잖아요. 물론 제가 그 런웨이 위에 있을 때는 늘 최선을 다해왔지만, 지나가고 다음 런웨이를 준비하거나 혹은 제 인생의 넥스트 스탭을 준비할 때 과감하게 흘려보낼 수 있는 그런 용기가 살면서 되게 필요한 것 같아요.”

“미디어에서는 모델들이 런웨이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들만 나오잖아요. 그런 모습이 비춰지는 것도 좋지만, 또 그런 면만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도 안타깝기는 해요. 사실은 생각보다 ‘워라벨’을 잘 지키고 있는 모델들도 많아요.”

“말 그대로 퍼포먼스고 쇼잉인데, 그 모습이 전부고 그걸 위해서 내 인생을 전부 희생한다고 여기시는 분들이 많고, 그런 질문도 너무 많이 받았어요. 당연히 저도 제 일에 굉장히 큰 부분이니까 엄청 신경 쓰고 최선을 다하긴 하지만, 그걸 인생의 전부로 여기는 건 사실 아닌 거죠. 그런 모델들은... 정말 신인 시절에 잠깐.(웃음) 모델들이 할 수 있는 너무 다양한 영역이 있잖아요. 하나의 직업이 특정 분야에 얽매이는 것도 많이 깨졌고.”

최근 모델들의 활약이 커지고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그들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런웨이에 대한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다. 모델들에게도 좀 더 다양한 재능을 요구하고 있기에, 캣워크 연습보다는 연기나 춤을 연습 한다던가 끼를 살릴 개인기 발굴에 열심인 모습인 듯도 싶다. 조금 과하게 표현하면 런웨이 자체가 형식적인 것으로 되어가는 형국이다.

“약간, 그런 면이 있죠. 확실히.”

시대에 따라 변하는 패션처럼, 패션모델계도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톱모델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지현정은 최근 패션모델계의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제일 큰 키워드는 다양성인 것 같아요. 옛날에는 모델에 대한 되게 티피컬한, ‘이래야 돼’ 라는 게 명확하게 있었어요. 비율은 9등신이어야 하고, 키는 이 정도는 돼야 하고 그런. 지금은 진짜 많이 무너진 것 같아요. 저도 가끔 ‘내가 꼰댄가?’ 이렇게 느낄 때도 있어요.(웃음) 바뀐 것들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게 아니라 뭔가 되게 열려있구나 하는 생각이 되게 많이 들어요.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옛날이랑.(웃음)”


의상협찬: 잉크(eenk)

[G기자의 사만모①] 지현정, 도약을 위한 백스테이지로 (기사링크)
[G기자의 사만모②] 지현정, 요가라는 이름의 나침반 (기사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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